2mb와 인수위에서 내놓고 진행하려고 하는 "영어관련" 정책 및 사업은 그 누가봐도 엉터리고 졸속이며 말도 안되는 소리임을 안다. 물론 이와 무관한 상위 몇 % 사람들이야 그들이 영어정책을 내놓든 일어정책을 내놓든 중국어 정책을 내놓든 아무런 상관도 없을 테지만 고스란히 그들의 실험대에 올라 모르모트가 되어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일반 국민들이다. 이 나라를 향후 5년간 운영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영어에 미쳐있는 걸까? "기러기 아빠의 완전한 퇴출"을 핑계삼아 이 나라의 국어를 영어로 바꾸고 싶어하는 것일까? 2mb는 이 나라를 자신이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맘껏 실험해보고 싶은 실험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영어정책이 난항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찌라시 신문들의 기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의 사고방식이 보이는 듯 해 답답함을 넘어 두렵기까지 하다.
그들은 "기러기 아빠"들이 더이상 기러기 아빠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기러기 아빠들은 단지 자녀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그 힘든 시간을 견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한국의 전반적인 교육이 선진화되지 못하고 서울대를 선두로 한 줄세우기 학벌체계가 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어떤 교육을 받던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펼치기 힘들거나 악몽같은 입시기간을 지내고 난 후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취업에 난항을 겪고 설사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다 해도 다시 '그들만의 리그'에 편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하는 이 나라에서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되는 한 교육과 취업, 한 인간의 미래 등을 고려한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기꺼이 기러기 아빠가 되기를 자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아주 단순하고 교묘하게 영어의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인수위의 발상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짜증이 난다.
설령 모든 기러기 아빠들이 영어 문제로 인해 생겨난 사회적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학생이 고교만 졸업하면 기본적인 생활영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게다가 "생활영어를 할 수 있다"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걸 측정해서 점수라도 매기겠다는 날이 오면 생활영어에 대한 메뉴얼이 생기고 다시 학원을 다녀야 할 것이다. 생활영어라는 것은 영어가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한국이란 나라는 아시아권에 속한 나라지 영미권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영어가 생활이 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지, 그들의 계획 중엔 새로운 도(道)를 신설해 외국인들만 살게 하고 달러만 사용하는 상권을 조성할지도 모를 일이다.) 생활한국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많은 국어학자들과 지식인들이 이 나라의 젊은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제대로 된 토론과 글쓰기도 안되는 상황에서 모든 걸 스톱!하고 '영어'를 향해 내달리자고 하는 2mb과 인수위의 진짜 속셈이 궁금하다.
(외국어를 공부해 본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국내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하더라도 외국어를 공부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목적은 어학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외국에서 어학을 공부한 이들의 외국어 능력도 천차만별인데 이는 유학생들의 생활태도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다. 즉 해외에 거주를 한다고 하더라도 계속 한국인만 만나서 어울리고 얘기하게 되면 절대 어학은 늘지 않는다. 대부분 외국어 실력이 충분히 늘었던 사람들을 경험담을 들어보면 자신을 철저히 외국인들 사이에 두고 모든 말과 생각을 외국어로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혼자서 여행도 다니고 혼자서 쇼핑도 하고 혼자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외국어가 자신의 언.어.처.럼 됐다는 것이다. 이런 '몰입'상태를 지속하면서도 최소 1년에서 길게는 수 년이 지나야 외국어를 꽤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이 역시 '전공외국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생활외국어를 잘한다는 것이다.
2mb와 인수위의 발상이 얼마나 아메바적인지 그리고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데도 그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거나 혹은 정말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다. 결과가 어떤 식으로 마침표를 찍게 되는지에 상관없이 업적을 기리고 치적만 쌓으면 된다는,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의 전형이다. 청계천 복원공사 역시 취지는 좋았지만 검토방법, 진행방법, 사후관리방법 등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냈지 않나. 그나마 청계천 복원공사는 서울시에 한정된 것이었다. 상암동 DMC 의혹 역시 서울시 한 지역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영어정책(대운하 등 기타 정책 역시)은 전국민을 상대로 하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하는 정책이다.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폐업처리하고 땡처리해서 문닫으면 되는 현대같은 회사가 아니란 것이다.(대기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서 설레발치겠지만)
만약 2mb 정도의 생활영어 수준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소란을 떨지 않아도 (조금 과장하자면) 국민의 3분의 1, 혹은 절반은 이미 충분한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이 고교 졸업 후 기본적인 생활영어를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몽니를 부릴 일이 아니다.
정작 영어가 필요한 이들이 누구인지 면밀히 검토해서 지원을 늘리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정체불명의 영어마을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하며 얼굴 하얀 백인 위주의 외국인 말고 여러 피부색의 외국인들에 대한 인식 변화에만 힘쓰더라도 영어가, 외국어가 지금보다는 좀 더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영어 못지 않게 국민들이 (한)국어를 더 잘 구사할 수 있도록 국어정책에 신경을 쓰고 국어가 좀 더 외국인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