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1일 목요일

예나 지금이나 - 2009년 안에 1987년 있다.



정말 1987년과 2009년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뛸 사람들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하리만큼 변함이 없다. 변함없다는 게 '덕담'으로 쓰이지 않을 경우엔 그야말로 저주를 퍼붓는 '악담'이 되는 것인데 변함없음은 '정체'며 근대화 된 사회에서 '정체'는 '퇴보'며 '죽음'이다.(그렇다고 모든 걸 발전논리로만 보면 안된다)

2009년에 1987년이 느껴지고 겹쳐 보이는 기시감(旣視感-데자뷰déjà vu). 단지 어떤 기억의 착각으로 인한 것이라면 괜찮으련만 오히려 더 명확해지고 또렷해지는 과거사의 부활이라니 뜨거운 날씨에 이보다 더한 악몽은 없을 듯 하다.

90년대 초반, 정태춘(과 박은옥)이 서정성이 가득한 주옥같은 노래들을 세상 밖으로 추방시키고 팬들의 가슴 속에만 묻어둔 채 두 눈 부릅뜨고 처음 불렀던 '아! 대한민국'. 심장이 벌떡이고 가슴이 찢길 것 같았던 이 노래를 10년 후에 다시 들었을 때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여전히 세상은 변함이 없음을 느낀다. 강산이 두 번 변할 시간 동안, 아니, 강산이 너댓 번은 더 변했을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정치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나아진 게 없는 듯 하다. 얼마나 젠장맞을 세상인가.

정태춘의 다른 노래, '그대, 행복한가'를 들으면서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될 날이 멀지 않을 거라 염원했고 믿었고 기다렸는데 약 20여 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멀어져 버린 꿈이 된 듯 싶다. 햇살은 따갑게 내 미간을 누르고 아랫턱이 주저않을 만큼 꽉 다문 입은 좀체로 열기가 힘들어진다.

아! 대한민국
작사|작곡|노래: 정태춘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 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 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 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이 땅
식민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 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 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그대, 행복한가
작사|작곡|노래: 정태춘

그대 행복한가 스포츠 신문의 뉴스를 보며 시국을 논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어린이 유괴 살해 기사는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보수 일간지 사설을 보며 정치적으로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점심 굶는 어린애들 얘기는 있지 있어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 애들을 굶기고 죽이는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행복한가 시장 개방 자유 경제 수입 식품에 입맛 돋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칼로리와 땀 냄새는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주한 미군 기동 훈련과 핵무기에 고무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평화와 인도주의의 구호는 있지 있구 말구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것들의 희생양이며 표적인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행복한가 거듭나는 공화국마다 그 새 깃발을 쫓아 행진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민족과 역사의 거창한 개념은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막강한 공권력과 군사력에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보호하고 지키려는 그 무엇은 있지 그 무엇이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것들의 대상이며 주인인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끊임없이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을 매도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 그들을 가두는 법전과 감옥이 있지 법전과 감옥이
그대 알고 있나 노동하는 부모 밑에 노동자로 또 태어나는 저 아이들 아이들
그래 저들은 결국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분노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최규석의 100도씨
[mov. or ani.] - 6월항쟁 애니메이션 - 잘못을 바로 잡는 힘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한글뜻도 맘대로 바꾸는 희한한 나라
    부제: 독해 능력이 너무 낮아 난독증이라 불린다. + 말장난 + 궤변질 / 한국어도 모르면서 맘대로 글 쓰는 이들을 보며… / 진중권씨의 블로그 글을 Daum에서 블라인드 처리를 한 사태에 부쳐…. / 언론 탄압과 무엇이 다른가? 시작하기 전에 2009.6.6 19:08 - 7:08 PM Jun 6th from web 기가 막힌 언론의 짓거리들을 적어야 하는데 몸과 눈이 너무 피곤하다. 운동이라도 갔다 와야겠다. 트위터의 Trending Topics..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