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3일 토요일

마더(Mother) - 엄마 있어?

영화에 대한 평보다는 '마더'에 보며 떠올랐던 여러 생각들을 정리해두고자 하는 차원에서 기록.

영화 말미, 크레딧 올라가기 전 문득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들'과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이 떠올랐다. 한국영화 중 서스펜스와 스릴러의 정점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서스펜스 [suspense]   [명사] 영화, 드라마, 소설 따위에서, 줄거리의 전개가 관객이나 독자에게 주는 불안감과 긴박감. ‘긴장감’, ‘박진감’으로 순화. 
스릴러 [thriller] [명사] 관객이나 독자에게 공포감이나 흥취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만든 연극·영화나 소설 따위.


영화 '마더(Mother)'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바보 아들과 미친 엄마의 살인의 추억' 정도가 되려나.


영화 속 김혜자는 시종일관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며 아들을 스토킹(하는 듯) 하고 아들에게 그녀의 눈동자 초점이 머무는 순간엔 세상의 그 무엇도 그녀에게 접근할 수가 없다.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바보 아들을 지켜보며 자신을 온전히 내던진다. 그건 과거에 그녀가 아들에게 싸구려 농약을 마시게 해 바보로 만든 것에 대한 속죄일 수도 있고 오랜 시간 지내오며 의식/무의식을 지배해버린 습관같은 것일 수도 있다. 미치진 않았지만 미칠 수 밖에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제정신을 가지고 살기엔 쉽지 않다.

진태(진구)의 씬이 적어 아쉽기도 하고(연기가 괜찮다고 생각함) 궁금한 점도 더욱 증폭이 된다. 진태는 혜자(김혜자)와 어떤 관계였을까. 모종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 친아들은 아닌 아들? 아님, 성적인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경찰서에서 나와 웃옷을 벗고 도준(원빈)의 방에 앉아있는 모양새가 너무 자연스럽던데... 보통은 친구 어머니에게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형사처럼 '어머님(또는 어머니)'라고 부른다. 설명이 부족해 가설만 많아질 뿐이지만 설명이 없어서 긴장감은 더욱 팽팽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진태(진구)는 도준(원빈)을 이용해 먹기만 하는 듯 한데 그게 진태의 도준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엄마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에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는 호칭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도준이 잡혀들어간 후 혜자는 진태에게 의지하는데 그래서 더더욱 잘 도와주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세팍타크로 형사의 연기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세팍타크로'라는 운동경기를 떠올려 낸 봉준호는 참 재치있다. 언어가 주는 강한 된발음과 형사의 폭력은 아주 멋드러지게 어울렸고 송새벽은 그에 맞는 최적의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사투리가 너무 자연스러웠는데 추측이 맞다면 전라북도 사투리인 듯 하다. 전라도 사투리와 충청도 사투리가 교묘하게 섞인 듯한 사투리. 크레딧을 보니 촬영장소 중에 전라북도 익산이 있던데 그쪽 사투리를 차용하지 않았을까.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특히 중요하게 느껴지곤 하는데 '마더'에서도 역시 공간이 주는 느낌은 다른 영화들에 비해 무척 독특하면서도 일상적이다. 장소선택(헌팅)을 정말 잘하는 것 같다. '마더'의 공간은 모든 주민들이 서로를 알고 있는 거대한 공동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모두는 각각의 사연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김혜자 주변의 인물들은 김혜자가 아들에게 농약을 먹여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알면서도 그에 대해 다른 시선을 보내지 않는 건 그 행위가 나름 타당한 것이었거나 그들이 김혜자와의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거나 일 것이다. 게다가 그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비슷하면서도 다른 또 하나의 진실, 비밀이 된 진실 쌀떡소녀 역시 공동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 싶다. 그들이 사는 동네는 마치 버려진 공동체같았다. 치외법권인 듯, 혹은 나름 체제를 갖추고 있는... 글을 쓰다보니 윤태호의 '이끼'가 떠오른다. '마더'를 보면 '이끼'는 강우석보단 봉준호가 적격일 것 같다.

영화는 박찬욱의 박쥐모다 더 많은 실마리를 풀어놓고 생각하게 하지만 그에 비해 결말은 공허하게 느껴졌다. 결말이 공허했다는 것은 영화가 나에게 던져주는 실마리에 비해 공허했다는 뜻이지 결말은 무척 아름답고 한국적이고 '엄마'적이고 슬펐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지극히 한국적이란 느낌을 갖게 하는데 말투(사투리)를 포함해 지역적 공간, 인물 간의 관계, 영화 속의 상징 등이 대체적으로 '지극히' 한국적이다. 특히 관광버스 씬은 그야말로 봉준호스러운 한국냄새가 물씬 나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소재가 보편적이면 외국인들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소재나 다뤄지는 내용, 디테일들이 보편적이면서도 국지적(한국적)이면 외국인들은 쉽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영화가 점점 진화하고 발전하면 장이모우처럼 또는 이안처럼 세계적인 거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봉준호가 '붉은 수수밭'을 찍거나 '브로크백 마운틴'을 충분히 찍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물론 오히려 그런 장르보다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나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같은 쪽이 더 가까울 것 같긴 하지만.

갈수록 영화제 감독이 되어가는 박찬욱에 비해 봉준호는 조금 더 서둘러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각각의 장단점들이 있겠지만 중요한 건 박찬욱이나 봉준호같은 감독이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흥분되고 그들의 영화가 기다려진다고나 할까. 어떤 감독의 영화를 기다린다는 것, 쉽지 않다. 그들이 촬영할 영화의 제목만 발표해도 그 때부터 가슴 설레며 기다려지지 않는가. 별개의 이야기지만 개인적인 또다른 취향(무술, 액션)으로 인해 류승완 감독도 기다리는 감독이긴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성룡이나 이연걸, 견자단과 같은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그의 취향이 아닐 수도 있지만 '아라한 장풍 대작전'에서 류승범의 고깃집 액션을 생각해보면 그의 재능이 사장되는 건 무척 아쉬운 일이다.

영화 '마더'는 절제된 미장센, 롱샷이 종종 등장한다. 한 마을을 관망하는 듯 하다가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엄마와 등장인물들의 얼굴 클로즈업(또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인해 영화의 원금감은 급속하게 롤러코스터를 타며 심장박동이 그에 따라 빨라지다가 느려지기를 반복하면서 결코 숨을 쉽게 쉬게 놔두지 않는다. 그로 인해 영화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잇다.

또한 '마더'는 사운드와 음악의 승리. 특히 사운드의 절정. 사운드가 영화의 분위기를 50% 이상 잡아준다. 특히 손작두의 소리를 포함해 사람들 때리고 맞는 소리나 폐관된 놀이공원의 쇳소리, 고물상 불타는 소리, 빗소리, 김혜자의 숨소리 등 소리들은 깔끔하면서도 때론 둔탁하게 때론 날카롭게 각 씬에 맞는 최적의 볼륨과 함께 최상의 선택을 들려준다. 한국영화를 보면서 사운드가 이토록 깔끔하면서도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영화는 별로 없지 않았나 싶다. 박찬욱의 '박쥐'에서 흡혈하는 소리를 억지로 과장되게 크게 했다면 몰라도 보는 내내 흡혈하는 소리가 감정을 돋아나게도 했지만 방해하기도 했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코믹하기도 했다. 의도한 거라면 '최고' 아니면 '실패'. '마더'는 영상과 사운드가 아주 자잘한 톱니를 물고 돌아가듯 최적의 하모니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영화 끝부분에 혜자가 도준 대신 범인으로 지목되어 잡혀들어온 다운증후군 남자아이에게 '엄마 있어?'라고 물으며 우는 장면이 있는데 혜자가 허벅지에 침을 놓는 장면과 더불어 이 장면은 마치 모든 걸 설명하는 듯 하다. 특히 혜자가 허벅지에 침을 놓는 장면은 슬프고 아름답고 씁쓸한 장면으로 한국의 여러 정치사회적 상황을 간결한 은유로 표현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 김혜자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허벅지를 걷어올리는 장면에서 섹시함을 드러낸다. 놀랍다. 이 외에도 약간은 페티쉬같은 전미선의 엉덩이(실제라면)도 무척 섹시하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행'에서 카메라가 신민아의 목덜미를 잠깐 훑고 지나가는 장면도 마찬가지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섹시함,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그 잠깐의 찰나를 아주 강렬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아니었나 싶다.

도준이 버스 터미널에서 침구함을 건넬 때 도준을 죽이려 했던 혜자와 도준을 살리려 했던 혜자의 모습과 5살 어린 시절을 기억해내버린 도준의 다 잊었다는 듯한 무심한 표정이 교차하면서 그들의 관계가 갑자가 주변인물들로 확장되더라. 그 어색한 표정들과 몸짓들... 모든 게 다 무너져 내리고 붕괴될 법한 지점에서 김혜자는 나쁜 기억을 잊게 해주는 신비의 경혈자리가 있는 허벅지에 스스로 침을 놓으며 현실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춤이 왠지 어색하듯이 기억은 잊혀지지 않고 스스로 감출 뿐이며 자연스럽게 현실로 복귀하려고 해도 이미 생채기 난 상흔은 더 이상 아프진 않지만 가끔 가려워지면서 기억을 끌어올려질 것이다. 다만, 나쁜 기억조차도 징그럽게 웃으면서 추억할 정도는 되겠지. 구치소 면회실에서 도준이 5살 때의 기억을 끄집어 냈을 때 발광하며 괴성을 지르던 김혜자가 아주 신기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그 때 일을 기억하지?'라고 묻는 장면처럼...

김혜자의, 김혜자에 의한, 김혜자를 위한 영화 마더.
예고편에서 느껴졌던 김혜자의 광기가 오히려 영화 속에서는 많이 약해진 듯 해서 아쉬웠다. 김혜자의 광기가 초반에 다 발산해버려서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약해지는...느낌이었달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더'는 철저히 김혜자의 영화였다. 하지만 그녀의 영화였기에 영화가 가지는 한계 역시 김혜자의 것이었지 싶다. 봉준호가 아무리 디테일하게 설계를 해도 김혜자가 가진 아우라는 역시 쉽게 쳐내거나 컨트롤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어쩌면 봉준호의 장점과  김혜자의 장점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 부분도 있지만 그 둘의 조합 때문에 (-)가 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추측...

영화를 보며 느꼈던 것 중에... 자식의 생사여탈권은 엄마에게 있다...는 것. 그건 대한민국만의 특별한 권한이며 자본주의가 심화되고 사회가 미성숙한 상태에서 머문 시간이 길어질 수록 더더욱 막강한 권력이 된다. 세상 엄마는 다 똑같다...라는 말에서 한국 엄마는 꽤 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모성(母性)과 '대한민국 엄마의 모성'은 비슷하지만 큰 간격을 두고 다르기도 하다. 자식을 품에서 놓을 수 없는 대한민국의 엄마들에겐 어떤 원죄가 있는 걸까. 엄마를 엄마 이상의 존재로 만들게 된 원인은 사회, 우리들에게 있지는 않나. 그런 엄마들이 생겨나게 된 것에 대해 대한민국은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

영화는 또 김혜자의 '살인의 추억'이라고 할 만 한데, 등장인물들만 봐도 그렇다.
물론 송강호(박두만)와 윤제문(형사, 제문)을 동급으로 보긴 어렵겠지만 지역 토박이 형사라는 것, 그리고 김뢰하(조용구)와 송새벽(세팍타크로 형사)는 옆에서 보조역할을 하며 폭력을 쓴다는 것, 김병순(반장 역)과 진태(진구)는 김상경(서태윤)과 신재호(송반장) 정도의 역할...(?) 게다가 전미선의 신체(알몸)노출 및 영화 속에서의 역할, 여중(고)생 살해사건, 사건 관련자는 바보-박노식(백광호)와 원빈(도준), 폐쇄적인 소도시, 밥 먹는 장면(봉준호가 꼭 넣는 장면), 단란주점, 일반주점, 논두렁, 동네버스, 여학생 살인사건, 현장검증, 비, 밤길, 외딴 집(고물상과 최후의 생존자), 치료 등등...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조금은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것과 밝혀지지 않는 차이....랄까?

봉준호 영화는 박찬욱 영화와 마찬가지로 보면서 머리나 가슴, 심장이 끊임없이 활동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나름 즐겁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에 대한 부분을 곱씹게 된다. 그 과정이 너무 무겁거나 힘들거나 지치게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천만 다행이다.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마더’, 봉준호 감독과 배우 김혜자의 기막힌 앙상블!
    봉준호 감독이 김혜자, 원빈 주연의 <마더>로 돌아왔다. 그는 항상 영화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는 감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는 스쳐지나가는 장면도 놓쳐서 안 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세심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영화를 연출하고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단 이야기다. 이런 봉준호 감독이기에 과연 <마더>가 어떤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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