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5일 일요일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힘 -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고치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 공지영의 '도가니'


처음엔 최규석 작가가 일러스트를 담당하는 소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나중에 작가가 공지영이라는 사실을 알고 관심이 갔지만 소설을 띄엄띄엄 끊어서 읽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쉽게 접근하질 못했다. 그러다 80 여회가 넘어가는 순간 첫 회부터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던 날 새벽은 '도가니'를 읽으며 보냈다. 가끔은 분노하며 가끔한 안도의 숨을 쉬며, 때론 눈물을 훔치며, 심박수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요동을 치며 새벽을 보냈다.

'도가니'는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2005년 6월 22일 성폭력 관련 제보로 시작된 '광주 인화학교' 실제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실제 인화학교 사건은 잘 해결이 되는가 싶더니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다시 학교로 복귀하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별다른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다.

'도가니'는 읽기 불편한 소설이다. '도가니'는 사실과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소설인데 그 사실과 현실이 너무 불편하고 가슴이 아파서 읽는 내내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공지영 작가 역시 가끔씩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그의 마음도 무거워 보이지만 불편한 진실을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자 애를 쓰는 모습이 아름답다.

현실의 결말은 비극이지만 소설 '도가니'의 결말은 어떨까. 결말이 현실과 같이 비극으로 끝나더라도 혹은 현실과 달리 긍정적 결말이 되더라도 변하지 않는 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끔찍한 현실을 반드시 바라봐야만 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지영 작가가 말하는 대로 진실은 몹시 게이르고 치장도 하지 않으며 생뚱맞고 비논리적이며 불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진실이 아닌 거짓을 향해 구애(求愛)를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힘들지만 견뎌야 하고 불편하지만 참아야 한다. 진실이 내 곁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 진실이 세상에 가득 차게 하기 위해서 진실을 똑바로 쳐다봐야 한다.

세상이 너무 말초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으로 가득 차 더디고 교만한, 게다가 불편한 진실은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지만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결코 거짓으로 뒤덮이진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무진의 자애학원'이나 '광주의 인화학교' 뿐만이 아닌 세상의 모든 불편한 진실과 힘있게 대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실의 속성처럼 더디지만 꾸밈없이 날것을 드러내고 교만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진실을 이야기하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의 관계가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고 싶진 않다.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두려워 진실을 묻어버리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고 싶다. 이런 선문답이 있었다. '만인이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네 갈 길을 가겠느냐' 물론 현실 속에서 잃을 게 많아진 지금은 선뜻 대답이 나오진 못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네!'라고 대답을 하고 있다. 진실을 대면하고 진실을 드러낼 수록 잃게 되는 건 잠시지만 얻게 되는 건 오히려 더 크고 영원할 것이라는 걸 알고 새겨야겠다.



[record my mind] - 도가니 마지막 회, 강인호와 서유진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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