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지원제도 건의'라는 포스팅을 보고 몇 가지 적어본다.
연상호 감독이 말하는 '지원제도의 설계 개선'은 지원받는 대상자를 기획자, 사장, 회사에서 스태프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를 '국립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개념으로도 생각하고 있다.
전반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또한 발상의 전환이란 측면에서도 무척 신선하다.
연상호 감독의 개인적인 성향이 잘 드러나는 제안으로 보인다. 그가 작품을 만들며 고민하던 중심에는 자신의 작품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스태프들에 대한 처우 및 중요성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기에 지원제도 개선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두 가지 고민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연상호 감독이 쓴 글의 내용 중에 '크리에이터나 기획 회사에게 돌아가는 것은 작업이 완성된 후 판권에 대한 부분을 적절한 비율로 국립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나누도록 하는 것'은 좋고 지원제도가 '자신이 전에 투자한 부분을 지원금을 받아 메꾸려고 하는 행위'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은 옳다.
다만, 몇 가지 노파심과 우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그건 지원금을 스태프들의 임금으로 돌리게 된다면 그 어떤 기획사, 크리에이터도 지원제도에 신청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을 뿐더러 신청을 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스태프들과 모종의 계약을 통해 지원금이 역시 스태프들의 통장보다는 기획사나 크리에이터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이건 연상호 감독이 답글에서 말했듯이 '사람의 문제'일 수 있다.)
이는 다양한 편법으로 인해 스태프들의 불안한 처우가 조성될 우려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건데 반복되는 말이긴 하지만 스태프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할
때 기획사나 크리에이터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스태프들에게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지원금을 빼돌릴 가능성이 많다. 게다가
스태프들이 기획단계에서 자신의 임금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고 대부분 기획하는 측에서 조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저임금으로 기획안을 올릴 가능성이 많다. 결국 '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느냐는 운영의 측면에서 약간의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지언정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란 뜻이다.
NFBC와 같은 '국립애니메이션스튜디오'가 생긴다면 여러가지 시도와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겠지만 현재 상암동에 있는 컨텐츠진흥원이 설립된다는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당시에도 그곳이 마치 '국립애니메이션스튜디오'와 같은 곳이 될 거라는 예측이 무성했었는데 컨텐츠진흥원 또는 그에 배정된 예산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해 특혜를 선점하려고 하는 몇 개 단체들의 충돌, 의견불일치 등으로 인해 결국 과거를 답습하는 정도의 '선'에서 정리가 된 걸 생각해보면 '설립'보다는 '해법'에 더 고민이 들어가야 하지 않나 싶다. 페어플레이를 할 수 있는, 공신력이 있는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제도는 또다시 문제점을 양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현재 지원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면 그건 '지원제도 운영'에 대한 것이다.
지원제도의 운영 핵심에 심사위원들이 있다. 문제는 현재 대다수의 심사위원들이 '글로벌', 'OSMU', '흥행',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심사위원 개별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각 사항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된 데이터 혹은 경험치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심사위원의 구성원을 보면 대체적으로 애니메이션 회사 대표, 애니메이션 PD, 방송국 PD, 대학교수, 각종 행사 기획담당자, 기관 정책담당자 등으로 구성된다. 그들이 말하는 '글로벌', 'OSMU' 등등은 현장에 있는 감독, PD, 스태프들도 이야기하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다. 그들이 말하는 시장에 대한, 혹은 데이터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물론 이는 그들'만'의 문제라고 보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성공한 케이스라는 게 전무한데 어떤 데이터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사위원이 되어야 한다.(다들 전문가라고 말하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또한 지원제도를 통해 지원금을 지급한 후에 제작되는 과정 등을 제대로 관리하느냐다. 물론 정책담당자들(실무자) 역시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 적이 있거나 그쪽 분야 종사자일 경우도 많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가장 편한 관리는 지원금을 받은 쪽에서 알아서 해오게 하는 방법이다. 어떤 꼼수를 쓰던 간에 서류만, 결과물만 있으면 되는 관리방식이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매니징한다면 프로젝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여러가지 방법들을 함께 고민해줘야 한다. 어려운 관리방식이다. 쉬운 관리방식을 택하면 관리도 쉬울 뿐더라 자신의 위치가 바로 '권력'이 된다.
스태프들에게 직접 돈을 주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프로젝트 관리만 제대로 하면 지원금의 용처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으며 스태프들도 제대로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원제도는 지원제도로만 끝나서는 안된다. 사후처리를 해줘야 한다. 정부지원금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더 많은 곳에서 상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영화제에서 본선에 올라가거나 수상을 하는 것만으로 '실적'을 이야기한다. 지원제도가 '영화제 수상작품 만들기 지원제도'가 아닐텐데 사후관리를 너무하지 않는다. 그게 지원금을 받은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그건 현실상황을 정말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큰 회사에서도 TV방송국과 이야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고 극장 하나 잡아 상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영화 쪽에서는 잘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더더욱 할 말이 없다. 영화 쪽은 기획사, 투자사가 애니메이션 쪽에 비해 월등히 많다. 아니,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전문투자사도 없을 뿐더러 전문으로 마케팅을 하는 회사도 드물다.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은 그 스스로가 모든 걸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상업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그 중에 성공하는 모델이 몇 개라도 등장하도록 지원제도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사위원의 선정부터, 제도의 운영 및 지원제도로 만들어진 작품의 사후관리까지 운영관리제도가 보다
촘촘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만약 '대박'나는 작품으로 '돈'을 벌고 싶은 게 목적이라면 지원제도의 방향성을 좀 더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겉으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주식투자자의 심정으로 지원제도를 운영하면 안되는 것이다.
사실, 지원제도는 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일회성' 역시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자금력이 어느 정도 되는 회사는 가끔 '보충하기 위해' 지원제도를 활용하기도 하고 상황이 좋지 않으니 '지원금'이라도 받아 운영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개인, 소규모 팀, 작은 회사들은 '지원제도'가 아니면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차저차해서 지원금을 받아도 덩치가 작은 쪽은 '지원금의 유효기간'이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원제도가 단발성인 경우가 많다보니 '한 번 타 먹으면 그만!'이란 심정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스태프들의 안정은 '고용안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다.
반복되는 '일회성'은 '안정적인 미래'를 담보하기가 어렵다. 물론 그 일회성 역시 필요한 곳이 있으니 계속
유지가 되는 것이겠지만 관리할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오히려 '일회성'을 '지속성'으로 전환할 방법은 많다. 지원제도의 성격을 수정보완할 수도 있지만 지원제도에 들어가는 비용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방법들도 많다는 뜻이다. 정부시책은 '실적위주'에서 벗어나 애니메이션이 소비되는 시장을 형성하는데 비용을 사용해야 한다.
문득 이런 고민이 생긴다. '지원제도'는 필요악인가. 또는 '지원제도'는 만능(萬能)인가. 이건 분명해 보인다. 현재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치고 자신의 처지가 불안하지 않은 사람없고 갈수록 미래는 암울하게 보이는데 시장은 형성조차 되어있지 않고 자신의 꿈과 미래를 위해 바쳐야 할 목적이 점점 빛을 잃어간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지원제도'는 때론 한줄기 희망이 되기도 하고 절망이 되기도 한다는 것.
국가차원의 어떤 '지원제도'나 애니메이션계의 '시스템', 교육에 대한 '방법과 문제'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지만 아직까지는 자잘한 편린들이라 스스로도 쉽게 정리가 되지 않을 뿐더러 여러가지를 고려하다 보니 글을 쉽게 쓰기가 힘들다. 여기엔 일정부분 '자포자기'라는 심정도 작용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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