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젠 와불(臥佛)이 일어나 활불(活佛)이 되셔야지"늘 긴장과 초조로 안절부절 못하는 건 나의 실천력, 취사력 태만 때문이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판단은 보류하고라도 나은 방향으로의 확고한 행동조차 여전히 타인의 시선 속에 갇혀 방황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잠을 자고 있는 와불에게 일침을 가해 수염에 불 붙은 듯 바쁘게,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십 수년 전 어느 날, 내게 던졌던 말.
불성(佛性)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 영성과도 같고 천주(天主)와도 같다. 누워있는 와불이 일어서 육근(六根)을 움직이면 활불이 된다. 종교, 철학, 예술, 교육, 사회운동, 정치 등 인간세상 모든 방면에서 그 참맛을 알기 전에는 누워있는 와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활불이 된다는 건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들이 사회와 함께 어우러지고 부딪히며 신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육근을 움직일 때마다 나와 너가 둘이 아니어야 한다. 나의 손짓, 발짓, 몸짓, 마음짓이 세상과 소통하며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깊은 잠에서 깨지 못하는, 피곤에 스러진 와불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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