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0일 수요일

대한민국 검찰이 무서운 이유

PD수첩의 무죄선고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한바탕 소동을 치루고서도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PD수첩에 대한 고소/고발, 음해로 시끄러웠던 기억보다 무죄에 대한 기억을 갖게 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것이다.

 

언론에 대한 검찰의 무작위 고소/고발 폐해에 대한 좋은 선례가 남겨졌고 언론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재판까지 가는 상황에서 한쪽은 이득을 얻고 한쪽은 손해를 입는 법이다.

 

법은 좋은 편, 나쁜 편이 없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과 같다. 그래서 힘이 있건 없건, 권력의 편에 섰건 등을 졌건, 빽이 있건 없건 법 앞에서는 평등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의 칼을 이용함에 있어 '사견'이 끼어들거나 '집단의 카르텔'이 작용하면 양날의 칼은 한쪽만 날이 선 반쪽짜리 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법을 안다는 자들, 집행하는 자들이 이 법의 칼을 사용할 때는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한 용도로, 타인의 공적을 깍아내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일반인들이라면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정부관계자와 검찰은 아무렇지도 않게 언론을, 시민단체를, 국민을 법으로 희롱하고 농락한다. 모든 일들이 사필귀정으로 끝을 맺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법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고 혹여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후다. 타격은 입을 대로 다 입고 손해는 손해대로 다 입고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고 난 후다. 그렇게 일련의 소동들이 잠잠해지고 난 후 '해명'을 한다 해도 애초 사건이 벌어질 때와는 전혀 다르게 대다수의 매체들은 '몇 줄의 기사'로 보도할 뿐이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해명'은 존재하지도 않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사건의 발단과 진행은 기억하되 결말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 많은 비리 정치인들이 4년이 지나고 나면 다시 국민의 손에 선출되곤 한다. 수 많은 비리 공직자들이 솜털보다 가벼운 징계를 먹고서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대한민국에서 법과 가장 가까운,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들은 과연 국민들과 함께 법 앞에 평등한지, 법 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뜻대로 사실은 은폐되고 왜곡될 것이며 그들의 의도대로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기소요건조차 성립되지 않을 일들이 기소가 되고 상식으로도 판단될 문제들이 재판정에 서야 하는 건 그들의 법을 엄중히 다뤄서가 아니라 법을 제 입맛대로 다루려고 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자들은 '정부'도, '당'도, '재벌'도 아니다. 치외법권에서 살고 있는, 국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제 맘대로 휘두르며 법을 업수이 여기는 '검찰'이다. 그들이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현재와 같이 언론을 대하고 국민들을 대했다면 그냥 '박쥐'와 같은 존재라며 헛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아니, 일말의 희망을 품었을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그 편에 설테니까.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소위 말하는 오른쪽, 수구의 편에 서서만 말하고 행동하고 기소하며 심판하려 든다. 변함없는 편향성, 그들은 변할 줄을 모른다. 무섭다.

 

PD수첩의 무죄 판결에 대해서 여전히 할 말이 많은 검찰이다. 하지만 그들의 반론을 읽어보면 그들이 대한민국 검찰인지 미국 검찰의 한국지사인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으며 그들의 억지는 또다시 법 위에 서서 물을 흐리려고 하는 수작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한민국 검찰이 부끄럽지만 무섭기도 하다.

 

양심있는 검찰들의 일대 반란, 혁명을 기대한다는 건 꿈일 뿐일까.

댓글 6개:

  1. 그들의 환골탈태는 한낱 꿈이자 희망사항이기 때문에 더욱 암담하고 두려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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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블링크 - 2010/01/20 23:26
    블링크님의 답글을 보니 저 역시 가슴이 턱 막히네요. 꿈과 희망사항을 이뤄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더욱 열심히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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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rackback from: 법과 양심
    일찌기 옛사람이 말한 바 있듯이 법은 대체로 강한 자, 자본가, 부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가진 자들의 행위를 정당화, 합법화하고 약한 자들의 행위를 불법화한다. 불특정 다수의 약자인 사람들이 강자들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뭉치고, 공부하고, 참여하고, 주장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그래야 가진 자들만의 법이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법으로 변경할 수 있다. 양심이 법의 뿌리이나 양심만으로는 법을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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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는 몰라도 인터넷을 하다보면... 꼴통인 XX들보다는 제대로 된 시각을 지닌 분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여 그나마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검찰 내부에도 양심있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지만... 결국 그것이 악화인지 양화인지는 판단하는자의 몫일테고... 실제 중요한 건 무엇이 올바르냐가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올바른 사람들의 생각이 모여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간절히...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자유인님..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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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그별 - 2010/02/03 15:59
    그별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희망을 품는다는 것, 시대를 뛰어넘어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치관의 재정립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지만 좋은 변화를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고 있으니 쉽사리 포기해서는 안되겠지요.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 혹은 뒤를 이어 따라오는 세대들이 살아야 하는 동안에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것이겠죠.



    '인간/사람'이 무엇인지 많은 생각이 드는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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