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26일 토요일

자그락자그락...












소리도 없이 쏟아지던 비가 시간이 지날수록 귓가에서 자그락자그락 맴돌고 있다.
엊그제 봤던 영화 한 편이 계속 마음에 남아 흔들고 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 라디오 방송을 켜 놓고 음악이 나올 때만 마음을 동한다.
주말같지 않은 주말, 해야할 일은 많은데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맛있는 부침개를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온갖 이미지와 텍스트가 머리 근처에서 눈 앞에서 아른거림에도 정확히 보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꼭 제대로 정리를 해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쉽지만은 않다.

2006년 8월 24일 목요일

"조선족"이 "조선족"인가? 호칭에 대한 주절거림...

아래 글도 그렇고 내 블로그를 뒤지다 보면 가끔 "조선족"이란 단어를 접할 수 있다. 난 "조선족"이란 말이 싫다. "조선족"이 싫은 게 아니라 부득이하게 사용하고 있는 "조선족"이란 "단어"가 싫다. 물론 "고려족"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면,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조선족"이란 말에 숨겨진 "차별"을 싫어한다. 미국, 일본, 유럽에 살고 있는 한국인, 한국인 2-3세는 그들의 국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교포, 동포라고 부르는 반면 한국보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은 '족'이란 조사를 붙여 부르거나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살다보면 조선족을 만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고 한국의 많은 매체에서도 조선족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눈엔 조선족은 이방일 뿐이고 자신들보다 계급이 낮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아닌 사람도 많다는 거 안다.) 이런 개념들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하게 된 건 언제부턴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문제라고만 치부하기엔 복잡하다. 왜 이런 차별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현재 한국의 기원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고조선'이라고 한다. '옛날 조선'이란 뜻이겠지. 그렇다면 그 조선이란 이름을 버리고 한국-코리아가 된 이유는 뭘까. 일본인들이 조센진(조선인)이라고 부르는 건 한국인을 얕잡아 보는 것이라 발끈하면서도 우리는 너무 쉽게 조선족을 "조선족"이라 부르고 있다. 만약 각 나라별로 호칭하는 방법에 따라 정한 호칭법이라면 고려인은 "까레이스키"가 되어야 할테고 조선족은 "차오시엔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베트남의 "라이따이한"처럼.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외국인들은 보통 국적에 따라 자신을 나타낸다.(내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지만) 국가위주의 편재 속에서 당연한 일이다. 가령 "나는 미국인이지만 아버지는 멕시코인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다."라고 말한다. 그럼 그 사람은 어떤 민족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혈통순결주의, 민족주의 때문에 해외에 살고 있는 수 많은 동포들을 '한국인'으로 부르길 원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문제들을 양산해 내고 있고 그들에 대한 인식의 차로 인해 반목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옳은 일인가? 단지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들에게 차별대우를 받아도 된다는 뜻인가? 이미 한국에서도 혈통순결주의는 빛을 바랜지 오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900번 이상 외래의 침략을 받은 한국에서 100%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건 어불성설이다.(여성을 비하하거나 다른 뜻은 없으니 오해 마시길.) 게다가 현재 많은 외국인들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한국인인가, 아닌가. 한민족의 범주 내에 포함시키지 못하는 민족, 혈통은 한국인이 될 수 없는 것인가. 국가와 민족, 인종으로 사람을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으로 사람이 재편되고 있는 현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호칭인데 왜 신경쓰냐고 묻는다면? 위에서도 말했지만 호칭은 별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 호칭에 담겨진 차별이 문제다. 호칭을 바꾸건 바꾸지 않건 상관없지만 그 호칭에 담긴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호칭이 분명 문제가 있다. 단어는 생각과 사상을 담는 그릇. 하지만 때론 그 그릇으로 인해 생각과 사상이 바뀔 수도 있다. 간혹 "형식이 본질을 규제"하기도 하니까.

중국 조선족이 처음부터 "조선족"은 아니었다고 한다. 간도 땅에 살고 있던 조선족은 알게 모르게, 영문도 모른 채 중국 공산당에 의해 중국인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당시 중국인들이 조선족을 호칭했던 말은 "조선인"이었다. 이유는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려지고 있었고 간도 땅 조선족들은 북한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던 탓이다. 게다가 그들은 중국에도 북한에도 편입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중국과 북한의 이해관계에 의해 이리저리 이용(?)당하다가 어느 순간 중국인이 되었고 중국은 조선인을 자신들의 소수민족의 일부분으로 편입시키고자 "조선족"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 역시 그들을 조선족이라 부르고 있다. 한국인이 조선족이라 부르는 저의에는 중국에 대한 반감, 멸시와 함께 그들 자체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나 한국의 매체에서 그들을 다루는 태도를 보면 역시 비관적이다.

이런 저런 이유때문에 내가 바라는 바는 호칭에 상관없이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똑같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캠페인 차원으라도 혹은 공식적으로라도 해외에 있는 같은 민족들에 대한 호칭을 통일시켜주길 바란다.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기 전 혹은 후에 타의에 의해 외국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해 깊은 이해와 배려, 애정으로 다가섰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선족"을 "중국동포 혹은 재중동포"(현재 이렇게 부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지역은 "러시아 동포, 우즈벡 동포"등으로 불러주거나 혹은 각 나라에서 한인을 부르는 고유명사로 직접 불러주던가 하면 좋겠다. 아니면 외국에 사는 중국인들을 화교라고 부르듯이(화교는 华侨-화치아오라는 뜻으로 중화의 화, 우거(거주)할 교를 써서 외국에 사는 중국인이란 뜻이다. 华人이라고 해서 중화인의 줄임말인데 이는 한인(韓人)과 같은 말.) 다른 단어를 만들어도 좋을 듯 싶다.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있다면 알려주시거나 제안해 주시길.)

그렇지 않아도 호칭에 무척 민감한 대한민국에서 위와 같은 현상은 자연스러울지 모르겠지만 그 호칭이 많은 차별을 만들어 냄을 안다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맘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하고 쓴 글은 뭐 정리가 될까마는) 막 써내려간 글이라 정리가 잘 안되고 있다. 윽.

중국어 번역을 하면서...;; (어렵군)

9월 15일에 장춘에서 <장춘국제애니메이션교육포럼>이 열린다. 그 때문에 학교에서는 많은 일들을 처하느라 분주하다. 그 와중에 한국측 교수, 감독들과의 연락 및 그 분들의 발표원고 번역 등이 내 손에 쥐어졌다. 사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조직위에서도 내게 일을 부탁하면서 꽤 미안해 했는데 조직위나 나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조직위는 이미 조선족을 찾아 번역을 부탁하려 했었다. 면접 때는 나도 함께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런데 한 두명 와서 발표원고를 보고는 두 손 들고 못하겠다고 한다. 그럴 수 밖에. 애니메이션 관련 및 IT신기술 관련 전문 용어가 대부분인데다가 그 외 단어들 중에도 외래어가 참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을 뒤져가며 몇 개의 사전을 뒤적이며 번역을 할 수 있긴 하겠지만 급한 시간을 생각하면 조직위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다. 별 수 없이 그 일들이 내게로 왔다.

아, 정말 힘들다. 내가 중국어를 얼마나 배웠더라?-_-; 그 정도 배우고 번역을 한다는 게 오히려 신통할 지경이다. 다행히 애니메이션 전공자라 번역할 중국어 단어를 쉽게 찾아내곤 하지만 번역은 역시 어렵다. 일반적인 문장이라면 문법이 다소 부드럽지 못하더라도 쉽게 번역을 하겠지만 포럼에서 발표할 원고들인지라 문법은 고사하고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번역을 해야하니 거 참 고역이다. 물론 이렇게 엄살은 떨지만 나름 (열심히) 해내고 있다. 게다가 이렇게 한 번 번역을 하고 나면 나 역시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단어 및 문장구조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니 공부는 되는 셈이다.

현재 번역하고 있는 건 원문 전체를 하는 게 아니라 간단한 요약본을 만드는 건데 실제 문장을 만드는 시간은 덜 소요될 지 모르겠지만 원문을 정리하는 게 꽤 까다롭다. 큰 제목, 소 제목만으로도 문장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본문에서 핵심되는 문장을 발췌해야 하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정독은 아니더라도 원문을 필히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손에서 만들어진 중문은 조직위로 넘겨지고 조직위에서는 좀 더 부드럽거나 자주 쓰는 어휘로 다듬는다. 발표원고기 때문에 단어 자체를 바꾼다기 보다 동사, 목적어 순서가 잘못된 부분이나 주어가 생략된 부분을 다시 정리하는 셈이다. 그 와중에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실무자와 직접 만나 말로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함께 수정을 한다. 아, 그런데 방학 중에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였을까. 중국어 성조, 발음이 모두 엉키고 꼬여버렸다.-_-; 암튼, 꽤 고난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중국어 번역을 하던 중에 느낀 점 몇 가지.

1. 한국어를 쓸 경우엔 주어가 종종 생략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중국어에서는 주어가 생략된 문장은 거의 없다. 이유가 뭘까. 주어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엔 모두가 함께 인식하고 있는 문제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중국인들은 문장의 주체를 중요시하는 걸까?

2. 한국어에 외래어가 무척 많다.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한국어 어휘 중 70%-80%(혹은 그 이상?)가 한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외 10%-20%는 외래어인 듯 하다. 동사, 조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단어가 그렇다. 한국어가 표음문자라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중국은 많은 경우 외래어가 들어오면 일단 자신들의 언어(한자)로 전환해 사용한다. 가령 블로그는 博客(BoKe;보커)라고 읽는다. 발음도 비슷하지만 "다양하고 많은 손님들이 모이는 오가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유명한 口可口乐(코카콜라)도 있지 않은가. 북한의 경우에도 순우리말을 사용하려고 무척 애를 쓰는 걸 볼 때 한국은 쉽게 외래어를 받아들이고 영어로 표현하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영향이 있을까, 없을까.

3. 아직 중국어에 대한 이해, 앎이 얄팍하기 때문에 번역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데 한국에서 쓰는 한자 중에 상당부분 중국어와 상통되는 단어가 있긴 하지만 이미 쓰지 않는 한자들이 많다. 그리고 분명 내 이해하는 관점으로는 다른 뜻임에도 불구하고 내 설명을 들은 중국인들은 같은 뜻이라고 말한다. 종종 느끼는 거지만 처음 외국과의 교류를 시작했던 사람들이나 외국어 사전을 만든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글을 배우는 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 생활을 배우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었지.

4. ( - ), ( _ ), ( ; ), ( : ), ( () ), ( <> ), ( [] ) 등의 기호 활용에 둔감한 편이다. 분명 한국어에서도 저 부호를 쓰는 경우가 많을 텐데 각기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를 못하고 있다.

5. 문장으로 소통하는 게 직접 대화로 의사소통하는 것보다 어렵다.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하는 건 표정과 손동작도 함께 동원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사람이 가진 어떤 기(氣), 기분, 정서들이 함께 표출되어서 그렇겠지. 물론 문장으로 정리하는 건 말로 하는 것보다 더 이성적이고 감정을 배제하기 때문에 유용한 면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직접 말로 대화를 하는 것 역시 그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메신저를 활용해 대화를 나눌 때 이모티콘을 쓰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학교 과제 제출이나 면접 때 필요한 자기 소개서엔 이모티콘을 쓰면 '어이'가 가출하니 조심.

6. 외국어를 잘한다는 것, 쓰임새가 많다. 아! 어릴 적 그렇게 많았던 영어 수업 시간, 왜 열심히 하지 않았던가...!!! 후회는 소용없다. 할 때 하자.

2006년 8월 21일 월요일

거짓말


그래, 알아,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단 걸.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 먹먹한데 어떻게 하냐고.

욱하는 치기에, 겁없는 용기에,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툭 던졌다. "사랑해"

거짓말, 사라지지 않았어. 흔적은 없지만.
세상이 모두 한통속이었어. 뱉어놓은 말도 모두.
속았어, 철저히, 바보처럼.

2006년 8월 17일 목요일

봉준호,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남. 이런~ 너무 부럽다;;;

한국에 있지 않기에 '괴물'을 볼 수 없는 이 아쉬움은 '불법 DVD 천국'에서 DVD가 하루빨리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살 달래고 있다. 극장에서 보지 못하게 된 절망적 상황은 이제 다시 어떻게 되돌려 보지도 못하게 되었고 그저 DVD가 어떻게든 빨리 출시되기 만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을 돌다 보면 여기저기 괴물 스포일러로 가득하지만 그것마저 눈 감고 넘기기엔 너무 유혹이 강해 별 수 없이 조금씩 보긴 했었다. 하지만, 직접 볼 때는 싸그리 다 잊고 봐주마.

어쨌든 봉준호, 괴물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난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고, 그의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번 괴물에 대한 여러 정보들은 내게 진수성찬과 같았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마음은 이미 두근거리고 있을 정도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지만, 실망해도 좋다, 일단 좀 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러던 중 한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접하게 된 글이 있었으니... 바로 "<괴물>의 봉준호, <20세기소년> <몬스터>의 우라사와 나오키를 만나다"라는 내용이다. 아니, 이런...!!! 봉준호, 너무 부럽다. 우라사와 나오키를 만나다니. <야와라>, <마스터 키튼>, <해피>를 비롯해 <몬스터>, <20세기소년>과 같은 엄청난 걸작을 그려낸 우라사와 나오키를 만나다니!!! 그저 부러움에 멍하니 글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다른 만화들도 충분히 걸작이지만 특히 <몬스터>에 빠져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심지어 그 안에 소개된 몬스터와 관련된 짧은 동화는 애니메이션으로 그대로 재현해보려고 생각도 했었다. 엄청난 인물들의 얽힌 관계를 아주 부드럽고 때론 역동적으로 그려나가는 그의 재능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었다. 몬스터 요한의 슬픈 미소와 닥터 덴마의 맑은 눈동자,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의 사연, 슬픔과 아픔, 행복의 경로를 쫓아가며 숨이 멎기도 하고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기도 했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게다가 <20세기소년>의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부한 상상력,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 게다가 내 어릴 적 단면도 슬쩍 엿볼 수 있게 하는 추억의 장면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 근미래를 자유롭게 왕래하며 풀어내면서도 어긋남이 없는 톱니바퀴처럼 부드럽게 들어맞는 이야기는 단숨에 그 속에 빠져들기 충분했고 켄지 일당을 행적을 쫓아가며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지만 곧 볼 수 있겠지) 한 동안 '20세기소년'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내게 <20세기소년>은 어떤 만화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새로 시작한 연재 <플루토>는 1편만 봤는데 아~ 또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런 만화들을 그려 낸 우라사와 나오키를 만나다니!!! (아니! 봉준호를 만나다니!!!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걸까?-_-;;;)

그래, 유명해지고 볼 일이다.-_-; 그 둘의 만남이 무척 부럽지만 지금의 내 처지를 돌아보며 깊은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불끈불끈 샘솟는 뜨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의 대화를 읽으며, 보며 순간 몇 가지 아이디어가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한다.

두 사람,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다른 점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참 보기 좋다. 언젠가 만약 우라사와 나오키가 만화를 그리고 봉준호가 영화로 촬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현재 나와있는 만화 중 <몬스터>나 <20세기소년>을 봉준호가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 <몬스터>는 미국에서 이미 판권을 사서 영화로 제작한다고 하니 그렇담 <20세기소년>을 봉준호가 만들면 어떨까. 스케일이 크니 반지의 제왕처럼 시리즈로 쭈욱~... 잘 뽑아낼 것만 같다.

그들의 만남이 심히 부러운 새벽, 그저 가슴만 두근거릴 뿐.

쳇, 암튼 많이 부럽다.;;;


★ 봉준호,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남 - 텍스트로 읽기
★ 봉준호,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남 - 동영상으로 보기

2006년 8월 16일 수요일

친일파(반역자) 재산 환수 조사 작업 착수 소식을 듣고...

친일파 재산 환수를 위한 조사 작업이 착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 블로거가 말하길 '친일파'라는 말은 본질을 슬쩍 흐리며 좋게 말해주는 뉘앙스가 많이 풍기기 때문에 '반역자'로 부르기를 주장하고 있다. 동감한다. 암튼, 친일 반역자 재산 환수 조사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이번엔 좀 제대로 진행하고 마무리를 봤으면 좋겠다.

전두환이처럼 얼렁뚱땅 29만원 밖에 없다고 발뺌하듯 도망가는 녀석들은 절대 없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철저히 긁어와야 한다. 그 재산 싹 긁어온 후 제대로 된 곳에 팍팍 쓰길 기대한다.

이참에 독립운동 유공자 재산 환급 조사 작업 같은 건 안 하나? 역시 모 블로거가 한국에서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가난하다고 말하던데 독립운동하시느라 집안 살림 거덜내고 가족들까지 힘들게 고생하며 푼돈부터 거금까지 몽땅 독립운동하는데 쓰셨던 어르신들, 그리고 그 가족, 후손들에게 훈장 하나 딸랑 지급하고 몇 푼 안되는 연금 주면서 생색내지 말고 좀 근사하고 폼나게 대접 좀 해주면 좋겠다.

모쪼록 당대가 인정을 하건 못하건 간에, 시대가 흘렀건 어쨌건 간에 정당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부당한 사람에게는 벌을 줘야만 비로소 살맛나는 세상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암튼, 이번에 친일 반역자 껀은 지대로 좀 허자~~~!!!

복고(復古), 현상유지, 혁신 중에 뭘 주장할까.

옛날 위세가 당당했던 사람은 복고(復古)를 주장하고,
지금 위세가 당당했던 사람은 현상유지를 주장하고,
아직 행세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혁신을 주장한다.
- 루쉰

복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처에 널렸다. 물론, 대부분 한 자리씩 꿰차고 앉았던 사람들이겠지. 지금은 그 위세가 예전만 못해 자꾸 옛날 생각날 테니 과거가 좋다고들 궁시렁대고 있겠지. (현재가 좋지 않으니) 그런 사람들에 편승해 과거가 더 좋았을 거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현재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 패배자들이다. 과거는 돌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더 잘 살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나 이제 돌아갈래"라고 외쳐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으면 박하사탕도 제대로 못 먹었던 영호씨는 이미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사람다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 역시 현재를 잘 살아보려는 몸부림에서 그런 것이지 그런 반성조차 없는 과거로의 회귀는 볼쌍 사납다.

현상유지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서로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인다. "이제 그만~"이라고 이야기 해봐도 뽀동한 텔레토이 어린 것들이 뭘 아냐고 혼을 내기 바쁘다. 그만큼 해 쳐드셨으면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하건만, 벌써 강산이 몇 번은 변했을 시간동안 권력을 쥐고 흔들면서 좋은 상황은 한 번도 만들지 못하고서도 다시 또 번쩍거리는 권좌가 그립다고 아우성이다. 현상유지도 모자라 복고까지 주장하며 벼룩의 간을 빼먹을 태세로 눈들이 뻘겋다.

지금 어떻게 몸부림을 쳐봐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때문에 부득이 시위를 하고 항거를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 중에는 제대로 행세하고 싶어 "갈아보자"고 선동하는 자들도 있다. 정말 제대로 된 삶을 위해 시스템을 흔들어 보려는 게 아니라 "너는 해 먹었는데 나라고 못 해먹으란 법 있느냐"며 뗑깡을 부리는 부류들. 정말 지리한 현실과 투쟁하는 이들을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해 도구로써 이용하는 부류들. 그러고 나서 앉는 "높은 자리"는 과연 편안할까. 그들이 구구절절 입에 달고 있는 건 '혁신'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복고나 현상유지나 혁신 모두 "한 자리, 한 껀" 해먹고 싶은 이기심, 욕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듯 싶다. 물론 이리보면 이렇게 보이고 저리보면 저렇게 보이는 게 루쉰 글 행간 속에 숨겨진 재미고 의미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가 그리 나쁜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부득부득 우길 수도 있다. 그래 우겨라. 우겨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우겨서 진실이 될 것 같았으면 여전히 천동설을 믿고 있어야 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고 있어야 하는 법. 많은 성자, 선지자들이 사람의 마음과 정신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건 다 이유가 있다. 근본을 치유하지 못하면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뿌리가 아닌 가지에 나와있는 문제를 해결하면 옆에서 새로운 가지가 치고 올라오며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낸다.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는 방법은 썩은 뿌리를 도려내는 것이다. 자신은 하나도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길 원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건 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뿌리를 도려낼 때는 늘 아픔을 동반하는 법이고 그 아픔을 견뎌내고 잘 치유해야만 비로소 문제 해결에 다다를 수 있다.

"아직 행세를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말 중에 "행세"가 정확이 무엇을 지칭하는 지 알듯 모를 듯 하지만 내가 바라는 최소한은 사람사는 이치에 어긋나지 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시스템과 삶의 방식이다. 그게 무엇이냐고 세세하게 물어봐야 나도 계속 풀어가고 알아가는 중이니 쉽게 몇 마디로 답을 낼 수는 없겠고 함께 찾아가고 공부해 가면 좋겠다.


이 때문에 글을 적은 건 아니지만 문득 생각이 나 첨언하자면, "친일파(어떤 블로그가 말한 반역자가 더 맞을 듯)" 재산 환수를 위한 조사를 착수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대로 청산을 했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불합리한 일들이 도처에 벌어지고 있으면서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일에 너무 익숙하다. 뒷 목이 저리도록 켕기는 게 없는 사람 중에도, 당당하고 떳떳한 사람 중에도 쉽게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 나중에 어떤 댓가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설마...) 그런데 결코 떨어지지 않을 떡고물에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사는 건 나중에 혈압 올라 병 얻기 딱 쉽상이다. 건강은 미리 챙기는 게 좋겠다. 오히려 댓가를 바라는 거라면 제대로 듣고, 바르게 보고, 소신껏 말하고 사는 게 훨씬 빠르고 게다가 건강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