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9일 화요일

완전한 해탈 천도를 기원합니다.

연길에서 연휴가 끝나는 대로 돌아오려고 표를 알아봤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지라 8일 표를 구하지 못하고 9일 표를 끊을 수 밖에 없었다. 9일 저녁 기차. 12시쯤 용정에서 먼저 연길로 나왔다. 저녁에 기차역에서 영덕 형님을 만나기로 했다.

용이와 명호를 만나 점심을 간단히 하고 영중 형님에게로 갔다. 유치원엔 한국에서 다른분이 와 계셨고 형님과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영덕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중 형님 표정이 굳어진 채로 말한다. “영덕이 아버님 열반하셨단다.”

이번 5.1절 휴가 때도 북경에서 오자마자 아버님 병세가 어떤지 보러갔던 영덕 형님. 아버님은 3년전에 중풍으로 쓰러지신 후 호전되었다가 다시 뇌가 수축되는 병을 얻으시고 악화되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의사는 길어야 석달, 빠르면 보름 안에 열반에 드실 거라 말을 해줬다고 했다. 결국 향년 74세의 나이로 열반에 드셨다. 영덕 형님은 내가 용정을 떠나오고 나서 바로 전화를 받고 아버님 댁으로 건너갔다고 했다.

영중 형님과 부랴부랴 기차역에 가서 표를 반환하고 훈춘까지 2시간 정도 시외버스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영덕 형님 형수를 기다린 후 다른 친구 분 차로 금당현 안까지 40여분 정도 들어갔다. 이미 시간은 저녁 9시 반을 넘긴 상태였다.

도착 한 후 바로 집에 들어가 영전에 절을 했다. 한국은 보통 재배(再拜)를 기본으로 하는데 연변에서는 한 번이나 세 번 절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한다. 연변의 풍습에 맞춰 절을 한 번 하고 영덕 형님 식구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잠시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얼마 챙기지 못한 조의금을 영덕 형님께 건네고 근처 영덕 형님 친구분 댁에 가서 잠을 청했다.

친구분과 영중 형님과 셋이 간단히 맥주를 하며 얘기를 나눴다.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있다는 얘기며 다행이 한국이 잘 살게 되어서 조선족들에게 돈 벌 기회가 되니 좋다는 얘기며 농사 짓는 얘기 등등 서로 궁금한 부분들에 대해 조금씩 얘기하며 의견을 교환했다. 지금 마을에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얘기가 가장 씁쓸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제일 젊은 나이가 40대 초반이고 아이들의 경우엔 연길시, 용정시나 훈춘시에 나가 공부를 하고 점점 가족단위로 마을을 떠나고 있다 한다. 한 20여 년 전만 해도 300여 가구가 살던 게 지금은 80여 가구만 남았다고 한다. 돈을 주고 집을 지으라 해도 나서는 사람이 없고 살던 집도 그대로 버려두고 모두들 도시로 나갔다고 한다. 중국이야 땅을 정부에서 분배를 해 준 후 농사를 짓게 되니(그래도 조금씩 면적의 차이는 있다) 농사 지을 땅이 없어 걱정하지는 않지만 일손도 부족하고 농산물 가격이 너무 낮아 많이 힘들어 하는 모습이다.

이튿날 새벽 4시쯤, 훈춘으로 나가는 자가용이 있다고 해서 일어났는데 결국 일이 바쁜 사람들이 먼저 가고 영중 형님과 나는 일어난 김에 영덕 형님 집으로 건너가 발인에 대한,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눴다.

중국의 경우 한족은 보통 사망한 다음 날 바로 장례를 치루고 화장을 한다. 조선족과 같은 소수민족의 경우엔 각 민족의 풍습에 따라 장례를 치루고 매장을 하거나 민족의 풍습을 따라 처리한다. 그래서 이번 경우는 3일 째 되는 날 발인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묘자리를 준비해놓고 관을 가지고 와서 입관을 한다고 한다.

이래저래 일 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긴 하지만 장춘에 돌아가 처리할 일도 있고 해서 오늘 떠나기로 했다. 마침 영중 형님도 연길로 다시 나가게 되어서 둘이 함께 아침 6시 버스로 훈춘으로 나가서 다시 연길로 가기로 했다.

영덕 형 형제들은 모두 넷인데 막내가 이미 38세다. 각자 시정부, 세무국, 환경국 쪽에서 일을 하고 있어 조문객들이 꽤 많이 올 것 같은데 일을 많이 도와드리지 못하고 오게 되어 미안한 마음 뿐이다.



영덕 형 아버님, 부디 완전한 해탈천도를 기원합니다.

댓글 6개:

  1. 문득...책이 피료한거 가터

    추천좀 쌔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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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째째파리 - 2006/05/20 10:23
    나 요즘 책 안 읽고 있어서...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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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고마운 친구!

    아버님 장례식은 잘 마쳤고 지금 북경에서 매주 월요일 저녁 8시 천도재를 모시고 있네. 나도 한국 장례문화에 익숙하여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발인식날 수많은 조문객들에 의하여 문화의 차이점을 인정할수 밖에 없었네.

    기회가 되면 며칠후 장춘으로 가려 하였는데 아마 지금 쯤 한국에 있을 가 생각되는구만...

    하여튼 장춘에 가게되면 연락은 해 볼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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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영덕 - 2006/05/27 21:53
    네. 형님. 잘 마치셨다니 다행입니다. 문화의 차이는 그저 차이일 뿐이겠죠. 조문객들의 마음, 친지들의 마음은 모두 한결같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아직 장춘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급하게 떠나오느라 연락도 못 드렸네요. 장춘에 가게 되면 전화 드리도록 하지요.



    잘 지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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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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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Anonymous - 2006/06/03 17:33
    그렇겠지요.



    건강은 지킬 수 있을 만큼 지키려고 합니다.

    잘 살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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