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래 아직 상영 중인 영화에 대해서는 글을 잘 안 쓴다. 영화 광고해주는 것도 아니고, 스포일러니 그런 시비에 휘말리기도 싫고...
심슨 패밀리에 중독증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하여간 TV에서 하면 무조건 봤다 (설마 우리나라에서도 해줬겠지?)
심슨 극장편은 실제 동화 제작은 북한에서 하고, 우리나라에서 기획했고, 그 외의 부분들, 그러니까 진짜 부가가치를 올리는 것은 미국에서 한 만화영화다. 요즘 한국 사람 좋아하는 것처럼 제작기술이라면, 한국 기술이 엄청 들어간 영화라고 하지만...
짤탱이 없이 2주만에 대부분의 극장에서 내렸다. 허겁지겁... 거의 마지막 회 비슷한 걸 봤다.
올해는 황망하게 영화를 여러편 놓쳤다. 택시 4, 해리포터, 이 정도 되는 영화도 올라가기가 무섭게 내려갔다. 올해, 특히 이런 편식이 심해졌다. 주식에서 프로그램 매수가 있는 것처럼 영화도 개봉해서 입소문이 퍼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냥 바로 dead... 그야말로 death 매치와 비슷하다.
미국에서부터 인도까지, 꽤 여러 나라의 영화 시장을 연구한 적이 있지만, 2007년의 한국 영화시장처럼 무서운 초고속 회전의 시장을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원 샷 원 킬이다. 불과 딱 1년 전 문화다양성을 외쳤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라고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심슨은 최고 인기 만화시리즈이고, 불패의 시리즈물이다. 게다가 이 에니메이션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안 통한다.
너, 누군데? 넌 뭔데 이렇게 유치해?
넌 뭔데 연애 안해?
2. 카길, 코믹 잔혹극
심슨에 나오는 이파는 물론 EPA, Department 보다 한 끝발 아래의 Agency라는 등급을 가지고 있는 미국 환경청이다. Clean Air Act로 세계적 원형을 한 번 만들었고, 폐기물 처리 및 토양복원과 관련된 Super Fund도 EPA 작품이다. 내 미국 친구들은 DoE에 절반, EPA에 절반이 근무하고 있다.
한 때는 EPA의 해외 환경상에 추천위원을 한 적이 있었다. 내 추천으로 한국 사람들도 몇 번 EPA상을 수상했다... 물론 난 잘 한게 없어서 상을 안 받았다.
이번 심슨의 악당은 이파라고 불렀던 바로 미국 환경청이다 ('무서운 영화 4'에서 미국 대통령이 UN 연설문에서 '언'이라는 대박을 내더니, 요즘 이런 식의 말장난이 미국 영화에서 유행이다.)
늘상 이피에이라고 불렀던 기관과 세계 최대의 정보국이라는 NSA까지, 하여간 공공 장치에 말로만 듣던 미국 연방군까지 전부 등장했다.
미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환경 기관은 3개가 있는데, 하나가 이피에이이고, 또 다른 하나가 오레곤 병법이라고 우리가 부르던 오레곤주,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동차 규제법안을 가지고 있는 LA이다.
영화에서는, 지금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고...
문제는 카길, 바로 그 카길이 이피에이의 환경청장으로 나온다. 카길이 뭔지 모른다고?
어지간히 음식물에 신경을 쓰지 않는 평범한 한국 고등학생이 하루에 먹는 음식의 절반 이상은 카길사 제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침에 먹고 나온 샌드위치는 카길산 밀가루... 식당에서 먹는 고기국물도 이제는 어지간하면 카길사 쇠고기 유통육, 여기에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각종 쥬스들까지, 대부분 카길사의 제품이다.
이 카길이 미국 환경청장으로 나와서 NSA와 연방군대를 동원해서 미국에서 가장 잘 산다는 중서부 백인마을을 격리시키는 것, 그것이 심슨 영화의 기본 플롯이다.
3.
우리나라 사람들은 심슨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호머 심슨은 가난하지 않다. 그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가끔은 용접과 같은 막일도 하지만, 보통은 안전을 관리하는 엔지니어이고,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한전 전문직 과장이나 부장 정도 되는 위치다. 전세계에서 상위 1% 내에 들, 미국 중서부 중산층 마을의 2층짜리 자택과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는, 연봉 7만에서 8만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을...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연소득 1억원이 넘는 백인 중산층이다.
제국의 심장에서 무기력하게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벌써 몇 년째 전쟁이 일어나고, 약탈이 일어나는 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전문가들을 상징한다.
지독할 정도로 민주당 중심적인 만화이고, 그래서 가끔 공화당 주지사가 있는 곳에서는 심슨 티를 입고 등교하는 것을 조례 같은 것으로 금하기도 할 정도로, 극단적인 민주당 만화이다.
물론... 무기력하다. 그래서 프랑스나 독일 비평가들은 이 만화에 대해서, 세계 어떤 제국의 역사에서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제국을 통치하려 한 적은 없다고 날 선 비평을 들이댄다 (난, 그냥 키키덕 거리면서 열심히 본다.)
철학적으로는 poilitally correct를 지향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정도도 극좌파에 해당할 정도이니, 참, 신기할 뿐이다.
프랑스에서는 politically correct라는 말은 보통은 역겹다, degoutant과 동격어로 쓰인다. 혹은 "너는 위선적이고, 비겁해"라는 말을 할 때, 영어로 politically correct라는 말을 인용한다. 욕이다.
미국에서도 욕이라고 들었다. 순 우리말식으로 표현하면, "황우석을 지지하는 일 정도는 하지 않아"라는 말과 뉘앙스가 비슷하다.
이 말을 제일 재밌게 들었던 것은 공지영이 작년에 한참 책이 잘 팔릴 때 이 얘기를 꺼냈다. 정치적으로 자신이 건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설가가 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결심이라서, 이 말을 듣고 공지영을 새삼 다시 봤다 (그러더니 바로 중앙일보 연재를 시작해버렸다...)
정치적으로 건전하다... 이걸 조금 더 한국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노무현스럽다 정도 되지 않을까, 혹은 그보다는 조금 더 왼쪽에 있는 말이라고 해야할까...
맨 처음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 EPA의 국장 몇 사람과 DoE (에너지성)의 고급 간부들 그리고 DoS라고 부르는 국무성 공무원들을 따로따로, 아주 길게 만날 일이 있었다. 국무성 공무원이, 야, 대단했다... 부시를 지지할 수 없다고 하더니, 정말로 공무원을 그만두었다.
그와 얼마 전에 편지를 주고 받은 적이 있었다.
겨우 그렇게 민주당에 힘을 밀어줘봐야 케네디가 아니면 그 후계자뻘인 힐러리인데, 기분 좋아? 참 저기도 도망갈 구석이 없는 답없는 나라다.
그리고 막상 우리나라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배꼽을 뽑으면서 좌파식 더티 코미디를 즐기는 심슨이 2주도 극장에서 버티지 못하는 이 상황이... 도대체 뚫고 도망갈 탈출구라고는 없다...
4.
심슨은 상영시간이 80분 정도 된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하나씩 해독을 하려해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참 수다스러운 영화다.
스파이더맨 재미없다, 돼지가 연기를 해도 그보다는 잘할 거다, 인디안 흉내내는 맨하탄의 카르마 유행, 재수없다,
하다못해 호머 심슨도 아내가 적어준 가사일을 하는데, 공화당의 마초들 집안일 너무 안 돕는다... 쉴새없이 수다스럽게 2007년 미국 백인들의 고민이 숨도 쉴 틈 없이 쏟아져나온다.
그런대로 봐줄만했던 <마리 이야기>, 악몽과도 같았던 <원더풀 데이즈>, 아무리 DVD라도 사주고 싶어서 손을 뻗었다가도 미안하지만 이내 손이 내려가고야 말았던 <여우비>, 이런 것들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없다.
하다못해 스타벅스 마시지 말라는 말이나, 서울대 법대 재수없다 혹은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도 먹고 살게 해주라 - 호머 심슨도 고졸이다 -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아니면 심슨처럼 대놓고 대통령도 놀려먹고 공무원도 놀려먹고, 삼성도 놀려먹고... 원래 그런게 예술이다.
한국 에니메이션, 돈이 없어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질문이 하나 들었다.
돈만 있으면 되는거야?
한국 예술, 영화나 만화나, 소설이나 연극까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없다. 감독이나 배우나, 외치고 싶은 외침이 너무 없고, 그저 이거 망하면 큰 일 난다는 소심함만 읽힌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 예술이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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