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녹음과 후시녹음을 함께 병행하는 영화와 달리 애니메이션은 영상제작을 진행하거나 완료한 후에 어떠한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마치 마임(mime)을 보는 것과 같다. 이때 무언극 상태인 애니메이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사운드다. 혹자는 애니메이션에서 사운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어 70% 정도라고 말할 정도다. 정말로 그럴까? 재미있게 봤던 애니메이션을 다시 꺼내어 볼륨을 꺼두고 영상만 보면 사운드가 애니메이션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면 사운드 작업을 절대로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감독이나 작업자들의 사운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작업현장에서는 시간 및 비용 문제 때문에 원하는 만큼의 사운드 후반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편이다.
연상호 감독은 처음부터 사운드 문제를 짚고 넘어가려 했다. 작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오윤석 사운드 감독(영상음악제작소 <복화술> 대표)과 <사랑은 단백질>의 사운드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사랑은 단백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2004년 부터 <사랑은 단백질>에 사용하게 될 음악과 사운드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탓이었다.
사운드 후반작업은 벌거숭이에게 여러 가지 장신구와 옷을 입히는 과정이라 볼 수 있는데 영상을 보완해주기도 하고 때론 영상을 리드하기도 한다. 사운드가 일반적인 이해로 보면 공정의 제일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작업으로 생각해서 영상의 보완기능이나 영상의 흐름을 쫓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그렇지 않다. 물론 사운드가 과할 경우 영상을 해치는 경우도 있지만 적절하게 리드하게 되면 영상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하면서 작품 전체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사운드 역할이 가장 극대화될 수 있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오히려 영화보다 그 책임이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연상호 감독은 <사랑은 단백질>에서 사운드가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고민 역시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연상호: <사랑은 단백질> 음악요? 오래 전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분위기를 생각해 왔어요. 정말 오래, 많이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단백질> 음악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트롯(trot)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뽕짝같은 것이라기 보다 영화 <밀양>에서 나오는 음악같은... 작곡자가 남미사람이라고 하는데 이창동 감독의 주문을 받아 트롯 느낌으로 배우지 못한 지방 사람들의 촌스러운 감성을 잘 살려낸 것 같아요. 정말 잘 어울리더군요.
<사랑은 단백질>의 닭 사장, 돼지 사장의 기본 주조를 이루는 감성은 마치 시장바닥에서 일을 하면서 막 우는 것 같기도 한... 그런 건데 이런 감성을 살릴 수 있는 건 소위 뽕삘인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을 실제로 출력해 낼 때는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담아야겠죠.
작품이 본격적으로 제작에 돌입하면서부터 연상호 감독의 고민은 점점 더 심해졌다. 게다가 원작만화가 전달하고 있는 느낌을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낼 때는 다른 방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해법으로 사운드와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연상호: 음악에 관객의 입장을 담는 겁니다. 그러면 복잡한 이야기 구조가 정리가 될 수 있어요. <사랑은 단백질>은 음악을 제외하고는 공격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구조거든요. <사랑은 단백질>이 가지고 있는 틀이나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사랑은 단백질>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이 모호하다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게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만화매체랑 별 차이가 없게 됩니다.
관객을 보다 공격적으로 몰고 가줘야 합니다. 그 역할을 음악이 해줬으면 하구요. 마치 애니메이션이 상영되는 내내 옆에 밴드가 연주를 하며 애니메이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반응하는 것 같은... 밴드들이 연주를 하다가 "어? 저거 왜 저래?"라는 게 느껴지기도 하고... 함께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는...
오윤석 감독은 음악에 관객의 입장을 담았으면 좋겠다는 연상호 감독의 이야기에 그런 방법이 위험요소도 있고 어려운 점도 있긴 하겠지만 상당히 매력있는 시도라고 했다. 중요한 건 음악이나 사운드의 시작과 끝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영상과 어떤 호흡으로 반응하게 될지를 조율하는 일일 것이다.
<사랑은 단백질>은 제작방식부터 새로운 시도로 시작을 해왔는데 마무리 후반작업 역시 새로운 시도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연상호 감독과 오윤석 감독은 <지옥>을 함께 작업하며 이미 호흡을 한 번 맞췄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 <사랑은 단백질> 사운드 작업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 교감되는 부분이 꽤 많았다. 오윤석 감독 역시 연상호 감독 못지 않게 이번 작업에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오윤석: <사랑은 단백질> 작업 초기에 대사 선녹음을 끝낸 후 대사가 입혀진 애니메틱스를 참 많이 봤어요. 느낌요? 좋죠. 그런데 이런 질문은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만화 원작이 있는 작품인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당위성은 무엇일까. 앞으로도 이런 질문은 꾸준히 나올 것 같아요.
저는 원작도 봤고 테스트 필름도 봤는데 당위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원작만화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만화라는 형식 때문에 놓친 부분이나 표현되지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원작만화) 작가의 역량 때문이라는 게 아니라 만화라는 매체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애니메이션에서는 육성으로 대사가 녹음되었잖아요? 재호, 돼지 사장, 닭 사장, 닭돌이 같은 캐릭터들이 육화(肉化)된어서 좋아요. 물론 선녹음도 잘 되었구요. 여기에 음악도 들어가고 애니메이션의 확실한 연출방향이 결정되면 작품 자체가 굉장히 강해질 거란 생각이 들어요. 원작만화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는데 애니메이션 <사랑은 단백질>은 적절한 연출이 들어가고 화면으로 보고 육성으로 듣게 되면서 굉장히 강한 메시지를 담은, 강한 형식을 가진 작품으로 발전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갖는 방향이 이런 게 아닐까요?
연상호: 그렇죠. <사랑은 단백질>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이유가 분명히 있어요. <사랑은 단백질>이 가지고 있는 주제가 상당히 복잡한 편인데 단순한 어떤 메시지가 복잡하게 얽힌 게 아니라 심층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서 욕심이 났어요. 이 심층적인 메시지가 만화에서는 펼쳐진다고 하는 형식으로 인해 병렬적인 구성을 가지고 풀어지는데 애니메이션은 이와 달리 처음에서 끝으로 내달리는 상당히 직선적인 구성 때문에 풀어내기가 쉽지 않아 안타까웠죠.
그런데 이 심층적인 주제를 엔딩에서 노골적으로 전달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걸 애니메이션에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지금까지는 대개 하나의 컨셉, 하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방식과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사랑은 단백질>을 하면서는 심층적인 내용을 직선적인 방식을 통해 한 번에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지금도 막판 조율에 있어서 가장 많이 쓰이는 부분은 (애니메이션을) 봤을 때 느낌이 만화를 봤을 때처럼 그냥 상황에 대해서 이해가 되고 넘어가 버리는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점입니다. 강렬한 인상을 줬으면 좋겠고 하나의 느낌이 정확하게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될지 안 될지는 작품이 나와봐야 알겠지만요.
오윤석 감독은 <사랑은 단백질> 사운드 작업 준비를 하면서 나중에 관객들이 작품을 보게 될 때 많이 웃길 바라고 있었고 사운드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윤석: <사랑은 단백질>은 장르로 보자면 코미디잖아요. 코미디라서 관객들이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소심하게 웃는 것보다 큰 소리로 깔깔거리면서 웃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어요. 팍!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으면 좋겠어요. 감독님과 상의를 해야겠지만 중요한 부분들은 임팩트를 주고 어느 부분에서라도 관객들이 많이 웃을 수 있도록 사운드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요.
연상호: 그런데 엔딩은 굉장히 무거웠으면 좋겠어요. 신나게 웃으면서 보던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암전이 되었을 때 가슴에 뭐가 팍! 올 정도로 진지한.. 그러면서 무겁고 쿨한… 가볍지 않은 음악...
오윤석: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애니메이션 전반적으로 웃기고 재미있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 상황과 내용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사운드로 관객의 감성을 조율하는 건 의외로 쉬울 수 있다. 슬픈 악기와 슬픈 멜로디로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해 눈물을 흘리게 하고 재미있는 악기와 소리로 관객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일차적 감성을 건드리는 것 뿐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와 작품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캐릭터들의 여러 상황과 복잡한 감정마다 관객들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건 쉽지 않다.
연출자가 원하는 타이밍에 관객들이 반응하게 하고 반응의 정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물론 영상의 연출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운드 연출 역시 중요하다. 그것이 연상호 감독과 오윤석 사운드 감독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의 목표인 셈이다.
현실 공간에서 소리를 채취하다.오윤석 감독은 <사랑은 단백질> 사운드 작업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작업 진행을 할 때 되도록 샘플CD를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운드를 직접 녹취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하는데 <사랑은 단백질>은 한국 중단편 애니메이션 중에는 접하기 힘든 사운드로 가득 채워질 것 같다.
애니메이션 사운드를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한국에서) 갈수록 비중이 높아지는 부분이 바로 폴리(Foley)인데 사운드를 직접 채취하는 방법이다. 영화에서는 후시녹음을 할 때 배우들의 대사 뿐만이 아니라 현장녹음이 불가능한 모든 소리를 폴리 작업을 통해 해결하는데 대부분의 한국 애니메이션은 여태껏 폴리작업 보다는 샘플CD를 활용한 사운드 후반작업이 이루어졌었다. 이는 시간과 비용문제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계획을 잘 세운다면 보다 풍성한 사운드를 얻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오윤석: 자료를 수집하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되도록이면 샘플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제작규모나 여건을 고려하다 보면 샘플을 전혀 쓰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되도록 샘플사용은 자제하려고 합니다.
샘플을 쓰면 쓸수록 소리가 좋지 않더군요. 샘플을 사용한다는 것은 디지털 데이터를 카피해서 사용한다는 것인데 디지털 데이터는 이론적으로만 보면 데이터 손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데이터 손상이 있더라구요. 쓰면 쓸수록 탁해지는 걸 느꼈어요. 다른 작업을 진행할 때 잘 녹음된 샘플이 있었는데도 직접 녹음을 해서 들어봤거든요. 느낌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직접 녹음한 사운드의 질이 더 좋더라구요. 그래서 샘플을 최대한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사운드 작업은 보통 일주일 전에 와서 해달라고 하기 때문에 샘플을 쓰지 않는다는 게 쉽지 않겠지만 <사랑은 단백질>의 경우엔 시간 여유가 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 같아요. 가능한 모든 소리를 다 직접 녹음해 볼 생각입니다.
연상호 감독은 오윤석 감독의 작업 방향이 아주 좋다며 반색을 했다. 대사 녹음, 음향 등의 사운드 모두 디지털 가공을 하지 않고 원래 소리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작품의 사운드는 더욱 자연스럽고 풍성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업 초기 대사 녹음을 한 후 대사를 듣는 사람들마다 재호의 목소리가 원음이 아니라 디지털 처리를 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연상호 감독과 오윤석 감독 모두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연상호: 사운드에 디지털 처리를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처음엔 돼지 저금통 같은 캐릭터 목소리를 디지털 처리하면 어떨까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냥 다 녹음해서 갔던 게 좋았던 것 같아요. 디지털 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방향은 잘 잡힌 것 같아요.
오윤석: 제가 작업하려고 생각했던 방향성과 작품이 잘 맞아요. 그게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거죠. <사랑은 단백질>이 SF도 아니고 카툰형식도 아니잖아요.
전에 <사랑은 단백질> 테스트 필름 보면서 욕심이 좀 났던 부분이 있는데 돼지 사장이 스쿠터 타고 와서 자취방 건물 앞에 서는 시퀀스예요. 그걸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스쿠터 한 대 빌려서 영상에 딱 맞춰서 녹음을 해보려고 합니다. 생동감 있게... 그것도 요즘은 장비가 좋아져서 크기는 작지만 성능 좋은 하드디스크 방식 디지털 녹음장비가 있어서 가능한 거죠. 녹음을 해보니까 소리가 좋더라구요. 그런 방식으로 영상에 사운드를 입히면 전달되는 느낌이 다르죠.
샘플로 작업을 하면 꺼풀이 하나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소리에 힘이 없고 전달이 잘 되지 않아요. CD 디지털 매체에 담겨있는 걸 쓰게 되면 소리가 변질되는 것 같더군요. 과학적으로 디지털 샘플링 한 사운드 데이터를 여러 번 카피하면 음질이 떨어지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귀로 느꼈거든요. 원인은 잘 모르겠네요. 과학적으로 증명을 해보고 싶네요. 하하.
애니메이션 영상을 마무리해가는 시점에서 연상호 감독이 타이밍과 연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동안 오윤석 사운드 감독 역시 후반작업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여러 사람의 노력과 정성 그리고 재능이 결합되는 순간 작품의 질은 좋아지기 마련이고 함께 한 이들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완성된 컷들을 붙여 보면서 단지 대사만 들을 수 있을 뿐 음향과 음악은 머리로, 가슴으로 상상해야 하지만 그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소리 없는 세상 속으로 사운드가 건네지는 그 순간 <사랑은 단백질>은 모든 관객들 앞에 나설 준비가 끝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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