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더미 애니메이션(Dummy Animation)의 새로운 발견
<지옥>을 제작했던 경험 때문에 이번 작품 역시 로토스코핑 방식으로 제작하려고 했던 연상호 감독은 작지만 복잡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사실 늘 하던 방식이라 쉽게 생각했던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하지만 로토스코핑이 보기엔 쉬워도 직접 진해하다 보면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되거든요. 촬영 장소라던가, 화면 앵글이라던가 등등... 참 고민이 많이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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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지옥>을 보면 저걸 어떻게 완성했을까 스스로가 대견하게 생각되곤 해요. 많이 부족한 부분을 안고 시작했고 마무리했던 작품이거든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랑은 단백질>은 <지옥>의 경험치로 본다면 초반 작업 세팅하는 부분은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로토스코핑을 위한 촬영을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스토리보드와 대사, 각 씬의 분위기를 검토했고 정리했다. 그리고 배우들의 대사 녹음 파일을 씬 별로 구분하여 다시 정리했고 연기의 방향성을 설정했다. 촬영을 하기로 한 4월 30일. 나는 카메라를 챙겨 들고 연감독 집으로 향했다. 연감독의 집은 수 많은 DVD와 화보집, 자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평소 애니메이션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애니메이션 쟁이 감독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 물건들이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촬영을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해 잠시 집 안을 정리해야 했다. 사실 촬영을 하기 위한 환경이나 시스템은 열악했지만 이곳에서 <지옥> 시리즈가 탄생했음을 생각한다면 애니메이션 제작에 필요한 건 쾌적한 환경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 "현명한 열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방 한 쪽에 놓여있던 컴퓨터에 배우들의 대사 웨이브(wave)파일을 카피해 놓고 한 씬 한 씬 재생해가며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열심히 연기를 하며 촬영에 임했다. 내가 카메라를 잡고 연감독이 모든 캐릭터를 연기했다. 원래 사람 동작의 작은 습관이나 패턴은 고유한 게 있어 한 사람이 모든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연감독이야 말로 <사랑은 단백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의 성격, 습관, 말투 등에 이미 정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저도 사실 수줍음도 많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배우들 대사 녹음할 때도 그랬지만 이렇게 캐릭터를 대신해 연기를 하고 있노라면 그런 제 성격은 어디론가 사라지곤 하네요. 하핫. 이번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호였습니다. 재호는 규정하기 어려운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많은 캐릭터들 중에서 재호가 비교적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부분도 있고 키(key)를 쥐고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거든요. 돼지 사장이나 닭 사장 캐릭터는 배우들이 녹음할 때 감정선을 잘 잡아줬기 때문에 비교적 쉬었구요.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던 대로 진행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익숙했던 제작방식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가장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새벽에 잠도 오지 않더군요. 그러던 중에 '그래! 이거다!'라고 할 만한 아이디어가 머리에 반짝 스쳐가더군요.
어차피 닭 사장 외 다른 캐릭터들도 모두 3D 더미를 만들려고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원화를 할 때 캐릭터의 턴어라운드 데이터가 있으면 작업이 편리하거든요. 그런데 3D 더미를 바로 애니메이팅을 해서 그 데이터로 원화로 그린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촬영할 때도 화면 앵글에 구애 받지 않고 아이-샷만으로 촬영한 후에 기술감독이 그 촬영소스를 보며 3D로 동작의 키(key)를 잡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죠. 그럼, 촬영이 쉬워지지 않겠어요?
장편이건 단편이건 기존 애니메이션 중에 이미 3D 더미를 활용한 경우가 있었어요. 하지만 원화를 그려내기 위해 작품 전 과정을 3D 더미로 애니메이션을 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사랑은 단백질>이 처음이 되겠네요.
① 보다 자연스럽고 정교한 캐릭터 움직임 표현 가능
② 애니메이션 원동화 작업시간 절감
③ 캐릭터 움직임에 대한 최종 아웃풋 프리뷰 용이
④ 형태 변형, 타이밍 불일치, 입 셀 불일치 등의 문제점 최소화
⑤ 실촬영 소스가 3D 더미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 삭제 및 부족한 부분 첨가 가능
⑥ 2D와 3D의 장점만을 활용 등이 그것이다.
특히 ⑤번의 경우 로토스코핑 기법과 비교했을 때 아주 편리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로토스코핑은 촬영 후 앵글의 변화나 동작의 수정 등이 쉽지 않고 수정을 하려면 불가피하게 재촬영을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더미 애니메이션의 경우 3D 캐릭터의 즉각적인 수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⑥번의 경우 부연설명을 하자면 동작 관련한 부분은 3D로 표현하기가 2D보다는 편리하기 때문에 더미 애니메이션이 적합하고 표정 관련 부분은 3D보다 2D로 직접 해결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화 담당자들은 동작이나 형태에 대해 고민을 하기보다 사실적인 표정연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 보다 풍성한 연기 표현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장점 외에 촬영 후 3D 더미 제작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단점으로 거론될 수 있지만 실제로 작업을 진행해 본 결과 그 단점은 다른 많은 장점으로 인해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
연찬흠 기술감독
애니메이션은 시간과의 전쟁이다. 더미 애니메이션 기법은 시간에 쫓기는 감독과 애니메이터들에게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해줄 것이다. 하긴 그런 여유는 반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유가 생기면 애니메이션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욕망하는 유전자가 그들 몸 안에서 슬며시 고개를 들테니까.
원문 출처: 월간 CGLAND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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