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27일 목요일

휴식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로 숨어 들었건만
이 놈의 더위는 스믈스믈 목 뒤를 타고 온다.
뜨겁게 달궈진 엔진은 그르렁 거리며 호흡을 고르고
입 안에 가득한 수박 몇 조각으로 더위와 씨름한다.
다시 그늘 밖으로 나갈 일이 걱정스럽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그늘 안으로 바람을 불러
달콤한 낮잠 늘어지게 자고 싶다.
후, 여름 햇살은 따끔하면서 길다.

노동시간 최고...!

죽기 전까지 일만해도 늘 부족한 시간.
죽어라 일해도 벌이가 없어 고단한 주머니.
그래도 죽지 않으려면 이렇라도 살아야지.
'여유'라는 말은 민망해서 사라진지 오래.
그 많던 이익은 누가 다 가져간 걸까.
FTA가 시작되면 좀 '여유'로워질까.
일 하지 않고 집에서 쉴 수 있을지 모르니...
하긴 이래저래 '여유'가 생긴다 한들
고단한 주머니론 할 게 없겠네. 

민족과 국가

좀 지난 얘기. 이승엽 선수가 맹활약을 하고 있는 일본프로야구계, 올스타전이 열리며 덩달아 "일본 올스타전은 한국인 잔치?"란 기사가 떴다. 목적은 분명하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건드려 잇속을 챙기보자는 속셈이다. 쉽게 넘어갈 누리꾼들은 없겠지만 이런 기사를 쏟아내도 이미 무감각해져버린 사회는 어떤 상황이든 쉽게 흔들리는 법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헤즈볼라를 잡는답시고 레바논을 침공하면서도 민족과 국가는 그들의 정당성을 담보해주는 달콤한 변명이 되곤 한다. 아나키스트가 되자는 소리가 아니라 적어도 내 민족과 국가를 앞세우며 남의 민족을 깍아내리거나 피해를 줘선 안되는 것이다. 이미 계급으로 나뉘어진 세계사회에서 민족과 국가의 망령 앞에 쉽게 이성을 잃곤 한다. 눈 가리고 아웅해도 나 몰라라 한다.


* 기사 중 픽-하고 웃었던 대목. "...일본야구의 영웅 나가시마 시게오, 뉴욕 양키스의 마쓰이 히데키도 한국계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소문으로 기사쓰고 먹고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

2006년 7월 20일 목요일

뜨거운 여름, 크리스마스.


산타도, 루돌프도 여름엔 휴가다.
하지만 겨우내 오지 않았던 산타를
여름까지 기다린 마음은 어쩌나.

수북히 먼지가 쌓인 트리,
수 개월 먼지 바람이 쓸고 간 창 너머로
뜨거운 태양만 작열한다.

아기예수도 여름이 싫어 겨울에 오셨을까.
여름엔 그 어떤 축복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곧 빛 바랠 색색의 방울과
푸르름을 잃어버릴 트리만
여전히 산타를 기다리며
크리스마스를 축복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어 강의, 일단 오늘로 종강!

마침내 지날 달 말에 시작한 한국어 강의가 오늘로써 끝났다.  물론 내가 이곳에 온 건 한국어를 가르치가 위함이 아니었다. 다만 학교에서 한국어반을 개설한 후 한국어 선생을 급하게 찾고 있었고 마침 내가 학교에 있으니 부득이 나에게 잠시만이라도 한국어를 가르쳐 주지 않겠냐고 요청을 해와서 수락했던 것이다. 이제 학교 모든 일정이 끝났고 모두들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기에 오늘로 (일단) 종강을 했다.

중국 학생들이 아닌 학교 선생님들(교수 및 직원)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한류열풍과 한국 드라마, 영화로 인해 한국에 대한 관심은 이미 높았던 상태였고 적지 않은 선생님들은 이미 전부터 나와 교류가 있었기에 흥미 반, 열의 반으로 한국어 강의를 듣고자 했다. 선생님들을 가르치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 학생들이라면 과제를 내주고 쪽지시험이라도 보면서 끌고 갈 수 있지만 선생님들은 학교 일이 바빠지면 결강하기 일쑤고 학교 업무를 보느라 복습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선생님들은 꽤 재밌게, 즐겁게 한국어 수업을 했고, 마쳤다. 선생님들의 절반 정도는 정말 열심이고 흥미를 잃지 않고 있었기에 가르치는 나도 덩달아 신이 났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비단 언어 뿐만이 아니라 문화도 함께 가르치게 되기에 (조금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으나 그 역시 재미있는 방식으로 지루하지 않게 가르쳤고 결과적으로 절반(혹은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자평해 본다. 아직 문장이나 어법은 시작도 못했다. 어법과 조사, 동사변형 등을 시작하게 되면 아마도 상당부분 어려워하고 힘들어하지 않을까 싶다.

ㄱㄴㄷㄹ...부터 ㅏㅑㅓㅕ 그리고 발음, 받침, 곁받침 등을 가르치며 나도 한국어에 대해 다시 찾아보게 되고 공부하게 되었다. 스스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그 날 저녁 인터넷으로 정보를 뒤져가며 제대로 된 정보를 주려고 애를 쓰다보니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나 역시 한국어를, 한국 문화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여전히 중국어가 부족하긴 하지만 선생님들의 격려와 긍정적인 피드백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자신이 생겼다. 일주일에 두 번, 하루에 두 시간씩 강의하는 걸로는 그들이 배우는 한국어가 여전히 초보 단계에 머물 수 밖에 없었지만 가르치는 나의 입장으로서는 시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기분좋은 시간들이었고 그들 역시 탄탄한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몇 몇 선생님들은 9월 15일에 있을 <장춘국제애니메이션교육포럼> 행사에서 한국인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 위해 무던히 노력 중이다. 지금도 내게 한국어를 배운 많은 선생님들은 나를 만나면 수줍게 웃으며 정확하진 않지만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참 보람있는 일이다. 이 참에 전문적으로 한국어나 가르쳐 볼까? :P

새학기가 시작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선생님들에게 방학 중에 한국 드라마, 영화를 자막과 함께 보라고 권유해뒀다. 방학이 지나고 다시 만나게 된다면 지금까지 배운 내용들 잘 복습한 착한 학생들^^;이길 기대한다.

2006년 7월 16일 일요일

왜 거짓말을 하겠느냐...

대만의 역사학사, 정치인, 출판인, 문학가 등등 많은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李敖(Li ao)가 봉황방송국(凤凰电视台) "李敖有话说-리아오 할 말 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이런저런 과거사를 소개하다가 한 말이 있다.

"진짜 패로도 이길 수 있는데 왜 가짜 패를 만들어서 놀겠느냐. 진짜 실력으로도 이길 수 있는데 왜 가짜를 만들어 비교하겠느냐. 진실된 말로도 이길 수 있는데 왜 거짓말을 하겠느냐." - 李敖

리아오가 과거 영화판 사람들과 한데 섞여 놀다가 간단한(?) 도박을 했는데 상대방이 돈을 잃자 리아오가 패를 가짜로 만들어서 사기도박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한 것이다. 그 때 법정에서 리아오는 자기변론을 펼치면서 위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리아오는 도박을 절대로 하지 않았고 그 때 자신이 한 말을 늘 보감 삼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세상엔 많은 가짜가 판을 친다. 가짜 전문가, 가짜 정치인, 가짜 선생, 가짜 선진국, 가짜 휘발유 등 여기도 가짜 저기도 가짜인 세상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모두들 자신이 가진 실력(본질)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가짜로라도 실력(본질)을 과대포장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고 하는 데서 오는 폐단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짜 행세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어떤 부분이든) 부족한 가짜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훌륭한 가짜(?)를 만들어 내기 위해 거짓말을 시작하고 나면 그 모든 전말이 온 천하에 공개되기 전에는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을 끊임없이 양산해 내야 한다.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하지만 가짜들은, 거짓말쟁이들은 피곤할 줄을 모른다. 가짜가 진짜를 삼켜버린 덕분이다. 가짜로 한참을 생활하다보면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그 진위를 아예 잊거나 스스로 만든 거대한 최면에 갇히고 만다.

남들은 분명 가짜로 보고 있지만 본인만 스스로 진짜라고 믿는 정신착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아주 정교한 가짜라도 완전히 진짜가 될 확률은 없다. 가짜는 그대로 가짜이니까. 99.9% 비슷하다고 해도 가짜는 가짜일 뿐이다. 진짜 실력이 아닌, 진실된 말이 아닌 가짜 실력과 거짓말.

속이 덜 찬 사람들, 헛똑똑인 사람들, (남을 해하건 말건) 자신의 이득만 챙기는 사람들, 자신의 능력으로는 무엇하나 해낼 수 없는 사람들이 가짜가 될 확률이 높다. 진실된 말만 하고 살기엔 이미 뿌려놓은 거짓말이 많아 수습이 되지 않음으로 세상 자체가 온통 거짓이고 자신만 참이라고 아예 본말을 전도시키는 사람들도 많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진짜가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일이 무척 어렵다. 그리고 가짜들이 진짜를 모두 가짜로 몰아세우기 때문에 대세만 따르거나 다수결만 따르다 보면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 점점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오히려 가짜에 동화되는 경우도 꽤 많아지게 된다.

하지만 가짜 패가 아니더라도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진짜 패로 진실된 말로 살아가야 하고 꼭 그래야 한다. 그건 한 사람이 완전한 인격체, 생명체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생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실된 말을 하는 사람을 골라내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가 진실하게 되는 수 밖엔 없다. 자신의 실력과 능력이 가짜의 힘을 빌리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글을 읽을 때만 행간의 의미를 되새길 게 아니라 사람들 관계 사이의 행간,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의 행간도 잘 읽어야겠다.

가짜 패에 새가슴이 되고, 가짜 실력에 주눅들고, 거짓말에 현혹되는 그런 일은 절대 없길...

2006년 7월 15일 토요일

생각할 수 있는 만큼의 공간.


보여지는 만큼의 하늘, 생각할 수 있는 만큼의 공간.
나머지는 상상으로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한.
너무 멀어 시선도 생각도 닿지 않는 곳의 당신.
눈만 감고 마음만 열면 그나마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래서 이 만큼의 하늘도 내겐 넓은 공간.

2006년 7월 14일 금요일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다.

지단이 마테라치를 머리로 들이 받은 후 기자회견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전부는 아니지만) 공개했다. 지단의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나는 자극을 받은 뒤 대응한 사람이다. 대응을 한 사람이 늘 벌을 받고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데 이는 공평하지 못하다" 물론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고 사과를 했지만 자신의 결백과 정당함을 위해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런 주제의 기사는 한국 사회에서 정말 많이 보도되는 것일텐데 내용은 이렇다.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남편에게 살충제를 먹여 살해한 최모씨(39.여)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이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고 결과의 경중이 무척 다름을 안다. 다만, 두 가지 내용을 접하며 '폭력'이란 것에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 지단이 한 말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 것 뿐이다. 지단이나 최모씨 두 사람 모두 '폭력'을 행사한 것은 맞지만 지단이 행사한 폭력의 결과와 최모씨가 행사한 폭력의 결과는 다르다. 최모씨의 경우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건은 결과만을 두고 따진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지단은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한국 사회에서 매 맞는 남편도 많다고 하지만 폭력 아래 노출된 주부와 아이들은 더 많다. 그런데 법적인 판단은 늘 결과를 가지고 따진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가정 내 폭력은 '집안 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모든 책임을 떠안는 사람은 늘 여성과 아이들이다.

지단의 말을 최모씨에게 대입해 보자면 "분노(살의)를 유발한 폭력 남편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데 이는 공평하지 못하다." 물론! 난 살인을 어떠한 이유에서도 찬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대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도 쉽게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 해보면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주부)은 이미 그 목숨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명이 끊어져 숨을 쉴 수 없는 것만 죽음이 아니라 살아갈 희망을 잃었거나 마음이 죽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삶이다.

폭력 남편은 습관으로 혹은 재미로, 또는 정신이상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거나 상대를 무력화 시키며 쾌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 폭력을 온 몸으로 받아낸 여성들의 경우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고 힘들(것이)다. 견디지 못할 정도의 폭력 속에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최선, 아니 차악의 방법은 무엇일까. 폭력으로부터 도망을 치거나 그도 힘들 경우엔 폭력의 근원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엔 물리적 폭력만으로 끝나지 않는 폭력의 순환으로 인해 여전히 폭력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두번 째의 경우엔 자신이 모든 책임을 감수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두번 째의 경우엔 종종 자식을 위한 경우가 많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사실 좋은 결과를 담보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경우에도 늘 "분노를 유발한 자"들에 대한 법적인 처벌이나 사회적 안전장치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폭력을 휘두르는 이가 늙어 힘에 부쳐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할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본인이 깨닫고 반성을 한 후 폭력을 거두어 들이기만 기다려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혼을 하거나 이혼을 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을 당한 이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후고 심한 경우엔 살아갈 희망을 잃었거나 정신적, 심적으로 '사망'을 한 뒤일 것이다.

지단의 경우엔 물리적 폭력을 당하지 않았다지만 정신적 폭력을 당한 후였고 그에 따른 대응을 한 것이다.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은 절대적으로 다른 이야기인가? 차이는 있을 지언정 '폭력'이란 범주엔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정신적 폭력을 당해 본 이들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심적 고통을 겪게 되고 그건 시간이 오래 흘러도 쉽게 치유가 되지 않는다. 육체적으로 가해진 폭력은 상처가 아물면 어느 정도 잊게 되지만 정신적 폭력은 그렇지가 않다. 최모씨(그외 많은 가정폭력)의 경우는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이 동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며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저 남자들끼리 주먹다짐 한 번으로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폭력, 사회의 폭력, 국가의 폭력, 집단(단체)의 폭력은 피해자보다 "분노를 유발한 자"들에게 더 관대하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거 봐, 너만 손해잖아. 참고 또 참으면 얼마나 좋아." 그리고 다시 폭력을 행사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가 아니라 "참는 자에게 상처만 있다"

난 '폭력'에 대해서는 '행사하는 폭력'이나 '되돌려주는 폭력' 모두 반대한다. 바램이 있다면 사회, 국가의 법제도나 일반인의 인식 속에서 '되돌려주는 폭력'보다 '행사하는 폭력', '분노를 유발하는 자'들에 대한 제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모든 결과는 모든 원인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결과만 바라보기 보다 원인을 분석하고 과정을 이해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남을 격려하는 좋은(?) 일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런 사고는 견지되어야 한다. 원인 분석하고 과정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다고 말하면 안된다. 재생산되는 잘못된 결과를 막으려면 늘 처음에 단도리를 잘해야 하는 법이다.



* 일본의 경우 1, 2
* 호주의 경우 1
* 미국의 경우 1, 2
* 독일과 그 외 나라의 경우 1


*
지단의 헤딩이 한 번이 아니라 앞서 이미 두 차례나 더 상대 선수에게 폭행을 했다고 하는데 마테라치는 어떨까.

마테라치의 멋진 수비 보기 - 클릭

2006년 7월 13일 목요일

중국 장춘 - 어두운 밤, 폭우...


그냥 계속 빗소리만 들립니다.


낮에는 소리도 없더니 밤이 되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낸다. 전압이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한 숙소는 형광등과 복도의 등은 깜박거리며 폭우에 못내 시달리고 있다. 후덥지근한 방안은 그나마 폭우로 인해 잠시 시원한 기운으로 가득찬다. 동북 장춘의 무더위는 시원한 비로 잠시 열기를 식혀내고 있는 중이다. 숙소 건너편 아파트에 전기가 나갔다. 숙소도 조만간 전기가 잠시 끊기겠지. 늘 적막한 밤이었는데 빗소리는 요란하게 말을 걸어오고 그 수다스러움에 왠지 편안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폭우와 사나운 태풍으로 고생하는(했던) 사람들이 떠올라 편안함도 이내 부끄러움으로, 미안함으로 얼굴이 뜨거워진다. 화끈거림은 빗소리가 식혀주겠지. 뜨거운 여름의 밤이 잠시 이렇게 지나간다. 빗 속에 서서 살갗으로 올라온 여릿한 삶의 흔적을 흘려보내고 싶다고, 잠깐 생각했다.

2006년 7월 12일 수요일

고려인, 조선족 그리고 한국인이 중국어로 대화하며...

한국인인 나, 중국인이면서 조선족인 리용, 우즈베키스탄인이면서 고려족인 씨얼와. 중국 장춘에서 만난 셋이 간단한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마음 속에 묘한 감정이 일렁인다. (내가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같은 민족인 세 사람이 중국에서 만나 '중국어'로 소통하고 있다는 현실이 왠지 묘한 서글픔(?정확한 표현은 아니다)을 느끼게 한다. 중국에서 200만명 정도 되는 소수민족으로 살아 온 리용, 그리고 고려인 2세인 부모에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가지고 91년 소련의 해체를 직접 몸으로 겪은 고려인 3세 씨얼와(현재 우즈베키스탄엔 약 20만 명의 고려인이 거주),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

 

리용은 조선어(한국어)를 할 줄 알지만 나를 만날 때는 늘 중국어로 대화를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내 중국어 공부를 도와주기 위한 배려와 그가 중국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며 필히 구사해야 할(했던) 언어(중국어)의 습관화, 그리고 연변에서 듣고 접한 한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 등의 이유 때문에 그는 내 앞에서 99% 중국어로 대화를 시도한다. 씨얼와는 조선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부모와는 달리 여러 환경적 이유로 조선어를 배우지 못했고 러시아어가 자신의 모국어가 되었다. 물론 후에 한국어를 잠시 배웠는데 너무 어려워 제대로 습득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난 현재까지도 내가 구사하는 한국어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면서 새롭게 배운 중국어를 가지고 이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실, 세 사람이 앉아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모두 부모님의 어쩔 수 없는 선택, 혹은 국가 간 분쟁의 원인, 자연적인 잔류 등의 이유로 인해 각각의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 아닌가.


그들의 대화를 듣던 중 문득 한국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조선족들에 대한 인식이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에 속하지만 예전에 정말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에 대한 대접이 박했다. 대접이 박했던 것 뿐만이 아니라 이들이 중국에 살면서 조선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무식한 한국의 졸부들이 가서 돈질을 해대며 사람들을 농락했고 악덕 기업주들악덕 중개업자들이 한국에 가서 일을 하겠다는 이들을 속여 돈을 갈취해 냈다. 이로 인해 조선족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지게 되었고 (순박했던) 그들도 점점 약아지게 되었다. 분을 삭이지 못한 조선족, 혹은 한국인의 습성을 나름 파악한 조선족들이 한국인에게 해꼬지를 하거나 사기를 치고 금품을 갈취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은 한국인들이 저지른 일에 비해 더 빠르고 폭 넓게 확산되었고 한국인들 사이에서 조선족을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태도가 비일비재 해 온 것이다. 물론 내가 단순 묘사한 내용이 조선족에 대한 편애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이곳 중국에서 돈 좀 있다는 한국인들이 하는 꼴을 보면 그다지 편애도 아니다.

 

지금은 나름대로 서로 조심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중이기 때문에 큰 문제들은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눈에 조선족은 이방인이며 외국인이며 중국인일 뿐이다. 아시아에 살고 있는, 그것도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 살고 있는 (소위)'한민족'에게는 '~족'이란 이름을 붙이고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 살고 있는, 역시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에 살고 있는 '한민족'에게는 '교포'며 '동포'며 심지어는 국적이 한국인이 아닌 이들(하인즈 워드, 미셸위, 다니엘 헤니 등)에게까지 '한국'의 국적을 선사해 '한국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대주의에 자본에 눈이 먼 사람들의 작태다. (난 하인즈 워드나 미셸위에게 아무런 반감도 없고 관심도 없다.)

몇 개월 전 한 조선족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한국이 잘 사니까 다행인 것 같아요. 우리같은 사람들이 그래도 한국에 가서 돈도 벌 수 있고 참 좋은 것 같아요. 한국이 참 고마워요." 난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왜 그리 부끄러웠던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었다.

 

우즈베키스탄인 씨얼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작년에 개봉했던 <나의 결혼 원정기>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촬영되었는데 그 내용은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노총각 우즈벡 가다'를 모티브로 했다. 한국 내에서도 한국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결혼할 대상을 구하기 위해 혹은 농촌의 일손을 충당하기 위해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로 가서(그럴 수 밖에 없다) 여자를 공수해 오는 것이다. 정말 웃기지도 않은, 슬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는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두었지만 씨얼와에게 이 영화 얘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씨얼와는 한민족이면서 한국어(조선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에 크게 개의치는 않는 것 같지만 그의 표정에는 말 못할 사정들이 꽤 있어 보였다. 씨얼와와 취업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며 그에게 한국어를 배워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러시아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는 그가 한국어를 배운다면 동북아시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욱 많아지게 될 것 같았음으로. 다만, 그렇게 말하는 내 자신이 왠지 부끄러웠다.

 

과연 우리 셋이 느끼는 민족은 무엇이고 국가는 무엇일까. 대체 핏줄은 무엇이고 역사는 무엇이고 현재는 무엇인가. 과거의 역사를 겪어 보지 않는 나로서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긴 하지만 최소한 출생부터 같은 언어를 쓰는 부모, 자신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한 터전에서 살아왔던 가족이라는 점에서 이들과의 합석은 기쁘면서도 애잔한 감정을 갖게 하며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술자리는 기분 좋게 끝났고 서로의 우정을 다짐하며 각자 집으로 향했지만 여전히 내 속은 복잡하고 미묘하기만 하다. 어쨌든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리용, 씨얼와 그리고 그의 여동생 아료나.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표현하고 소통해야 하는 점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지금은 많이 좋아졌긴 했지만) 과거 한국이 이들을 소홀하게 대했던 점만 아니라면 오늘 자리는 보다 기쁨이 넘치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막연한 생각도 해본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에 살고 있는 한민족들은 한국이 부모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반면 아시아의 끝 편에서 살고 있는 일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들은 외국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싶어한다.)



약간 옆길로 새는 이야기일 수는 있겠지만 문득 김규항씨가 질문했던 "이건희와 나는 같은 민족인가?"라는 말이 생각난다. 옆길로 새는 이야기 하나 더. 나는 요즘 중국에서 종종 "나는 세계인이다"라고 말한다. 세계인의 기준치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국가, 민족, 성별, 나이, 직위, 자본간의 차별을 반대하는 차원에서 농반진반 이렇게 말하고 있는 중이다.

2006년 7월 7일 금요일

남성과 여성의 차이,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

한 여성 친구 이야기 한 토막.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이렇다.

친구는 대학 다닐 때 사회에 대한 의식과 인식이 충분히 깊고 꽤 많은 운동에 참여하던 남성 선배를 꽤 동경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함께 어울려 다니기도 하고 생각과 행동을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고 그 때 믿었던 선배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어떤 상황 때문에 그랬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당시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을 때는 친구의 선배가 평소에 하던 말이나 행동이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했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이익을 쫓아 함께 하던 사람들을 배신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상황이 남녀평등, 여성해방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 친구는 여성해방이나 남녀평등에 대한 남자들의 생각과 말을 믿지 않았고 남자들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나의 경우 그 친구와 술자리에서 혹은 여러 상황에서 편하게 토론하거나 대화를 하곤 했는데 종종 결정적인 순간에 남자와 여자라는 문제 때문에 대화가 중단되거나 비약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과거에 겪었을 아픔, 배신감으로 인한 상처를 나름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 친구에게 남자들 중에는 그렇지 않은-충분히 남녀의 동일한 가치에 대해 얘기하는-남자들이 점점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조차도 결국 남자가 하는 남자 이야기 정도로 치부되거나, 남자를 좋게 이야기하려는 남자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이며 친구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했다.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이유로 친구를 탓하거나 무시한 적은 없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가며 종종 동반되던 말이 "여자의 적은 여자의 내부에 있다"라는 말이었다. 나 역시 전에는 남자와 여자를 생식기관의 차이, 호르몬의 차이, 사고방식의 차이 정도로 구분하고 인식하던 수준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남성 안에 여성성이 있을 수 있고 여성 안에 남성성이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많은 상황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러한 생각을 단지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정도의 작은 범주에만 가둬놓고 있었다. 그러나 한 편의 글을 읽고 난 후 단지 생활 속 작은 범주에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보다 폭 넓게 자리하고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즉 생식기관이 남성인 전부가 여성해방, 남녀평등을 저해하는 게 아니라 남성과 여성 둘 모두 안에 존재하는 남성성, 가부장성이 문제의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 부터 세뇌당하다시피 들어 온 "남자는 이러해야 한다", "여자는 저러해야 한다"라는 말이 남성, 여성 안에 굳건한 남성성, 여성성을 심어버렸고 그로 인해 여성이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성성, 가부장성을 재학습, 재복습하는 방법 밖엔 없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지하거나 편을 드는 건 100% 옳지 않다는 것이고 남성들 역시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100% 옳지 않다.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여성 생식기를 가진 남성성, 가부장성이 자신들의 울 안으로 들어온 격이 되었기 때문에 부지불식 간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단순한 남, 여 구도로 문제를 바라볼 게 아니라 남성성, 가부장성의 문제로 인식을 전화해 문제를 풀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해방, 남녀평등은, 인간평등은 그저 허울좋은 구호로만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