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는 동생이 나보다 더 나아보이고 대단해보이기 시작했다. 그 언제부턴가...라는 시기는 아무래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이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 나에게 '형만한 아우 없다'는 얘기를 할 적마다 난 꼭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 내
동생은 형보다 나은 아우다'라고... 이건 겸손을 떨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충분히 그래 보였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음에 불과하다.
동생이 사운드 방면에 소질이 있고 내 졸업작품 주제곡을 작곡도 해주었는데
전공은 컴퓨터 공학과라 난 늘 동생이 음악 쪽으로 전공을 바꾸어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많은 어른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런 걸 반대했었다. 사실 컴퓨터 공학과를 나와 박사 과정을 밟고 나면 이러저런 명예와 부는 사운드 쪽보다 쉽게
상당부분 따라오는 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진로를 고민하는 동생을 볼 때마다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저 '니가 결정할 사항이야'라고 말하고는 슬쩍 구렁이 담넘가듯 했었다.
그
리고 시간이 흘러 사운드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을 때도 난 무덤덤하게 그러냐며 손을 내밀어 청했을 뿐이다. 그렇게 결정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학을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내 자신의 위치였다. 사실 동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학
가는 걸 도와주고 싶었지만 난 내 욕심대로 중국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으니 어머님 혼자 두 아들 유학비용을 대준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동생이 만약 유학을 못가게 된다면 내가 중국에 있는 걸 포기하고서라도 동생을
보내주고 싶었다. 그건 아무래도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동생에 대한 미안함도 한 몫 했음직 싶지만 그것보다 차라리 될 놈을
밀어주자는 생각이 더 자리하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다행이도 나도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생이 유학을
가게 되었다. 여전히 돈이 부족해 하고 싶은 공부 일정을 단축해 1년만을 계획하고 가지만 분명 1년 공부 마치고도 여기저기 능력
좋게 일을 해내며 호주에서 잘 생활할 것이라 생각은 든다. 만약 그게 되지 않으면 내가 한국으로 들어가야겠지. 그것 정말 싫은
일이긴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는 있다.
나도 잘 되어야 동생을 돕고 식구들도 도울 수 있는데 난 자꾸 중국생활이
몸에 익어가고 입에 익어가면서도 변변찮은 결과물 하나 없다. 물론 8개월 지났는데 뭐가 있길 바래면 그게 도둑놈 심보 아니냐고
질책할 사람들도 줄을 섰겠지만 사실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은 이미 사적으로 유용하고 싶은 꿈과는 멀어진 지 오래다. 돈 벌어서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님 마지막 여생에 도움이라도 될까 하는 생각 뿐. 아버님께도 제대로 사는 모습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난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사실 동생의 성공에 내가
덕을 볼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 다만 동생이 성공해서 내가 못한 물질적인 효도, 정신적인 효도라도 좀 해줬으면 하고
책임전가하는 수준 정도의 바램은 있다.
동생 가는데 해준 건 없고 심적으로 기운을 팍팍 밀어준 것도 없이 그냥 형 된 입장으로 믿는다는 말만 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참 내가 못났다 싶다.
잘
살아서 식구들, 아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은데 그 잘 살자.는 캐치프레이즈는 이미 소시적부터 입에 달고 마음에 담고
살았던 말이라 이젠 변변찮은 내 모습에 적잖이 실망도 한다. 술 한잔 걸치고 뭔가 잘난 듯 떠들 때면 그런 생각도 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꼭 그러고 나면 밀려드는 허탈함은 참 견디기 힘들다.
어쨌든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하러 떠난 동생이 건강하게 잘 공부하고 돌아오길 아니, 돌아오지 않고 호주에 정착해도 무방하니 하고 싶은, 이루고 싶은 일들 잘 이루길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도 또 다시 일어서야지...남들과 비교해서 더디다고 느끼기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턱없이 부족한 능력과 심지를 가지고 여태껏 용케도 버텨왔으니 한 걸음이라도 내딛어야지...
녀석~ 건강해야 한다.
04|06|11 22:38:00
** 결국 이런저런 이유(라지만 쩐의 문제)로 돌아와 열심히 살고 있는 동생. 잘 될 게다. 조금만 더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면 좋겠다. 3년 전 참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았고 많은 일이 있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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