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30일 수요일
삼각관계 - freestyle
출처 : 许诚的胡思乱想
오랜만에 듣는 음악이라 기분이 좋다.
몸을 흔드는 젊은 친구들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다.
보통은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같은 음악에 저런 춤을 추지 않는데
오히려 느낌이 더 좋아 보인다.
소시적에 저렇게 관절을 꺾으며 춤을 배워보려 했던 때가 생각난다.ㅋ
이젠 관절 꺾다가 부러질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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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28일 월요일
따라 해 보기;Pack Place - 좋은 하루 되세요~!!!
outsider님 블로그 포스팅 '광고판 생성기(generator)'을 보고 재밌어서 따라해봤다.
따라하기- http://atom.smasher.org/pack/
좋은 하루 되세요~!!! :)
* 한글, 일어, 중국어는 모두 FBI사이트로 이동한다고 함. 광고판이 dot로 되어 있으니 이해는 하겠는데 왜 FBI사이트로 이동하는 것이냣!!! 췟!-,.-

- 클릭하면 큰 그림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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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에 대한 스치는 단상.
어디선가 읽었다고 소개 한 문장 하나.
정말 세상도, 생각도 많이 바뀌긴 했다.
사실 저 위 글을 읽는 순간 나도 피식거리긴 했지만 다른 측면으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수 많은 지식, 금언, 명언들, 특히 선각자들(석가모니, 하나님, 예수, 소태산, 성모 마리아, 노자, 공자, 맹자, 강증산 등등;이상 무순위)이 말한 걸 모아놨다고 일컬어지는 소위 '경전'에 등장하는 명문장들에 대해 많은 이들(나를 포함)은 오해를 하기 쉽상이다. 왜냐하면 말과 생각이라는 건 그 때 당시의 사회상황, 역사적 지점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지금 현대생활에서 풀어내려고 하면 늘 앞뒤가 안맞고 아전인수격으로 곡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령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라고 하는 말이 있다고 하자. 그 말을 신봉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런저런 이유와 변명을 들어가며 거짓말을 한다. 그렇다면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따르는 게 옳은가? 문제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라는 말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한 말이었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상황적 사실이 실종된 상태에서는 단지 '말(혹은 글)'일 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많은 이들이 선지자들의 한(쓴) 말(글)에 '토'를 달 때는 꼭 개인의 실명을 밝히고 '주석'을 달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의 뜻과 자신의 뜻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고 나중에 보는 이들이 원문을 읽고 난 후 자신의 글을 읽기 원했으며 이를 통한 자연스러운 토론, 토의 과정을 거쳐 보다 완성된 입체적인 '말과 글'의 함의가 드러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몇 경전을 제외하고는 당사자 본인이 직접 구술하고 적은 내용도 아니다. 제자들이나 직접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말과 글을 한데 모아 편집한 것일 뿐이다. (노자 도덕경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이런 경전들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시대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듬어지고 걸러진 내용들이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글을 글로만 믿고, 말을 말 자체로만 믿어버릴 때 문제가 생긴다. 그 글과 말 사이의 행간에 숨겨져있는 참 뜻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누리꾼들의 살벌한 답글들이나 '우르르' 몰려다니며 설전을 벌이는 모습들에서 이런 폐해들을 느끼곤 한다.)
세상도 변하고 사고도 변하더라도 성현들의 말과 글이 담긴 참 뜻은 변하지 않는다.
변명같지만 내가 한 말과 글은 변할 것이다. 아직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내 모습은 말과 글을 토해내는 당시의 참 뜻은 그 글과 말에 오롯이 담겨있을 테지만 그 이후에 반복되는, 번복되는 말과 글에는 내가 살아가는 삶의 (나름대로) 치열함과 열정이 담겨지길, 보다 더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도록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중 죄 없는 자, 내게 돌을 던지라"고 예수가 말했다지만, 그거 요즘 말로 바꾸면 "잔말말고 입 닥치샘" 아닌가요?
정말 세상도, 생각도 많이 바뀌긴 했다.
사실 저 위 글을 읽는 순간 나도 피식거리긴 했지만 다른 측면으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수 많은 지식, 금언, 명언들, 특히 선각자들(석가모니, 하나님, 예수, 소태산, 성모 마리아, 노자, 공자, 맹자, 강증산 등등;이상 무순위)이 말한 걸 모아놨다고 일컬어지는 소위 '경전'에 등장하는 명문장들에 대해 많은 이들(나를 포함)은 오해를 하기 쉽상이다. 왜냐하면 말과 생각이라는 건 그 때 당시의 사회상황, 역사적 지점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지금 현대생활에서 풀어내려고 하면 늘 앞뒤가 안맞고 아전인수격으로 곡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령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라고 하는 말이 있다고 하자. 그 말을 신봉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런저런 이유와 변명을 들어가며 거짓말을 한다. 그렇다면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따르는 게 옳은가? 문제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라는 말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한 말이었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상황적 사실이 실종된 상태에서는 단지 '말(혹은 글)'일 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많은 이들이 선지자들의 한(쓴) 말(글)에 '토'를 달 때는 꼭 개인의 실명을 밝히고 '주석'을 달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의 뜻과 자신의 뜻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고 나중에 보는 이들이 원문을 읽고 난 후 자신의 글을 읽기 원했으며 이를 통한 자연스러운 토론, 토의 과정을 거쳐 보다 완성된 입체적인 '말과 글'의 함의가 드러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몇 경전을 제외하고는 당사자 본인이 직접 구술하고 적은 내용도 아니다. 제자들이나 직접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말과 글을 한데 모아 편집한 것일 뿐이다. (노자 도덕경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이런 경전들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시대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듬어지고 걸러진 내용들이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글을 글로만 믿고, 말을 말 자체로만 믿어버릴 때 문제가 생긴다. 그 글과 말 사이의 행간에 숨겨져있는 참 뜻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누리꾼들의 살벌한 답글들이나 '우르르' 몰려다니며 설전을 벌이는 모습들에서 이런 폐해들을 느끼곤 한다.)
세상도 변하고 사고도 변하더라도 성현들의 말과 글이 담긴 참 뜻은 변하지 않는다.
변명같지만 내가 한 말과 글은 변할 것이다. 아직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내 모습은 말과 글을 토해내는 당시의 참 뜻은 그 글과 말에 오롯이 담겨있을 테지만 그 이후에 반복되는, 번복되는 말과 글에는 내가 살아가는 삶의 (나름대로) 치열함과 열정이 담겨지길, 보다 더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도록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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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인 무료 음악 서비스
블로그아고라에서 '합법적인 무료 음악 서비스 Q~'라는 포스트를 봤다. 호기심에 들어가 읽어봤는데 방식이 꽤 신선하다. 따라서 이것저것 해보는데 툴바를 설치하라고 뜬다. sp2를 쓰기 때문에 바로 설치가 되지는 않았는데 '툴바'라는 얘기에 살짝 망설이긴 했다. 그러다가 한 번 해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강력한 삭제 툴'로 지워야겠다고 맘을 먹고 설치를 했다. 설치 후 검색해 보고 Q~사이트에도 가서 음악을 검색해보니 이거 참 괜찮은 '물건'같다.
물론 여전히 어둠의 경로를 통해 많은 MP3를 다운 받아 각종 프로그램으로 듣는 게 보편화 되어있긴 하지만 저작권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음악 저작권 문제가 대두되면서 많은 포털 사이트에서 음악 링크 거는 것 조차 금지를 시키고 유료로 음원을 사서 한정된 기간 내에 사용하게 했는데 Q~에서 서비스하는 방식은 이를 역이용하는 셈이 되었다.
이는 블로그라는 매체가 붐을 일으키면서 새롭게 모색된 방법인 듯 싶다. 방금 Q~ 툴바를 설치해서 음악을 들으면서 작성하는 포스트라 더 많은 얘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첫 느낌은 꽤 신선하고 재밌다. 음악이 재생되는 동안에는 음원을 확보하고 있는 블로그를 닫으면 안된다. 약간 불편(?)하다고 느껴질 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는 음원을 가지고 있는 블로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툴바가 조금 더 진화하면 툴바 내로 블로그에 대한 정보가 기록이 되고 익스플로어는 띄워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 적당한(?) 사용료를 지불한 음원에 대해 '거시기'한 방법으로 듣는 셈이긴 하지만 블로그는 서로 공유할 때 그 가치가 살아나는 법이고 음원에 대해 사용료를 지불한 블로거도 자신의 블로그를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행위였을테고 이를 통해 자신의 블로거로 다른 블로거들을 초대하게 되는 일이 되니 일석이조가 아닌 듯 싶다. 다만, 공개하고 싶지 않은 블로거, 많이 알려지는 게 싫은 블로거에게는 역시 좋지 않은 서비스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암튼, 음악을 통해 랜덤한 세상을 보게 되는 방식이라... "Life is Random"란 모 회사의 카피가 생각난다. 꽤 인기를 얻게 될 방식이란 생각.
Q~에 대한 기사
Q~ 서비스에 대한 또다른 생각
Q~ 블로그
물론 여전히 어둠의 경로를 통해 많은 MP3를 다운 받아 각종 프로그램으로 듣는 게 보편화 되어있긴 하지만 저작권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음악 저작권 문제가 대두되면서 많은 포털 사이트에서 음악 링크 거는 것 조차 금지를 시키고 유료로 음원을 사서 한정된 기간 내에 사용하게 했는데 Q~에서 서비스하는 방식은 이를 역이용하는 셈이 되었다.
이는 블로그라는 매체가 붐을 일으키면서 새롭게 모색된 방법인 듯 싶다. 방금 Q~ 툴바를 설치해서 음악을 들으면서 작성하는 포스트라 더 많은 얘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첫 느낌은 꽤 신선하고 재밌다. 음악이 재생되는 동안에는 음원을 확보하고 있는 블로그를 닫으면 안된다. 약간 불편(?)하다고 느껴질 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는 음원을 가지고 있는 블로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툴바가 조금 더 진화하면 툴바 내로 블로그에 대한 정보가 기록이 되고 익스플로어는 띄워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 적당한(?) 사용료를 지불한 음원에 대해 '거시기'한 방법으로 듣는 셈이긴 하지만 블로그는 서로 공유할 때 그 가치가 살아나는 법이고 음원에 대해 사용료를 지불한 블로거도 자신의 블로그를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행위였을테고 이를 통해 자신의 블로거로 다른 블로거들을 초대하게 되는 일이 되니 일석이조가 아닌 듯 싶다. 다만, 공개하고 싶지 않은 블로거, 많이 알려지는 게 싫은 블로거에게는 역시 좋지 않은 서비스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암튼, 음악을 통해 랜덤한 세상을 보게 되는 방식이라... "Life is Random"란 모 회사의 카피가 생각난다. 꽤 인기를 얻게 될 방식이란 생각.
Q~에 대한 기사
Q~ 서비스에 대한 또다른 생각
Q~ 블로그
2005년 11월 24일 목요일
가정식 백반을 먹으며 생각에 잠기다.
작업실 앞 가정식 백반을 하는 식당이 있다. 가격은 3,000원. 다른 식당들은 보통 3,500원에서 4,000원을 하는데 반해 500원이 싸다. 이 식당은 원래 오리고기를 파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가정식 백반이라니 처음에 생각할 때는 장사가 어지간히 되지 않아 백반을 주 메뉴로 바꿨나 보다 생각했다. 음식 맛은 평범하다. 평범하다는 말은 짜거나 맵거나 독특한 맛이 없다는 뜻이다. 가정식 백반에 나름대로 충실한 맛이랄까.
오늘 혼자 식사를 하러 갔는데 마침 주인 아주머니 혼자 계셨다. 손님도 나 혼자다 보니 아주머니께서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서울 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 판결이 오늘 나오는데 알고 있는지, 본인은 ‘수도 이전’에 반대한다는 등의 얘기들. 마침 TV에서 부산 재래시장에 관한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부산 출신인지 만면에 환한 얼굴로 TV프로그램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거들기 시작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식사하는데 열중했다. 평소라면 아주머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까 궁금해 질문도 하고 맞장구도 칠 법 했을 텐데 오늘은 그런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아주머니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얘기를 이어가셨다. 대략의 얘기는 이렇다.
그런데 이야기 말미에 문득 아주머니께서 한 초등학교 학생의 급식비를 매달 후원하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셨다. 남편 분이 ‘자신의 코도 석자’면서 무슨 남을 돕느냐고 구박을 하지만 자신이 생각할 때는 남과 나누는 기쁨, 주는 기쁨이 너무 크다고 한다. 그래서 한 초등학생을 위해 매일매일 시장을 보고 남은 잔돈을 모아 매달 5만원을 아이 통장에 입금을 시켜주면 아이 통장에서 학교 급식비 통장으로 자동이체가 된다고 한다. 급식비는 4만원 가량이지만 만원 정도는 학교 신문을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5만원을 매달 입금하고 있다 하신다.
덧붙여 ‘아프리카 이런 곳’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은데 자신이 힘은 없지만 매달 만원씩을 후원하고 있다고 하신다. 남을 위해 본격적으로 돕는 건 식당을 그만 두게 되면 할 생각이라 하신다.
어쨌든 아주머니께서 남을 위해 후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나 자신하나 제대로 건사하며 살고 있다고 자신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을 위한 생각은 지금보다 더 풍요롭지 않았었나. 세월이 흐르면서 내 자신의 고민에 천착하게 되고 크고 작은 고민들이 많아지긴 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적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밖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생기면 되도록 이 식당으로 오겠다고 생각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500원 인상 조치를 할 생각이지만 물가 인상에 따른 부득이한 일일 뿐 재료가 나빠지거나 할 이유는 없다고 하신다. 음식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라 하시니 더욱 그렇다.
식사를 마쳐갈 무렵 마음 한 구석에 부끄러운 마음이 생긴다. 누구에게 부끄러운 건가. 내 삶이 과연 누구에게 부끄러워야 하고 누구에게 당당해야 하는 건가.
예전에 스승님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스승님도 당시 몇 학생에게 후원을 해주고 있었다.
보이지 않게 후원을 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스승님이 후원을 하는 방식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행동’이며 그 행동이 담고 있는 ‘사랑’이다.
덧 :: 한가지 생각난 게 있는데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서초구청에 연락을 해서 소년소녀가장을 돕겠다고 했더니 서초구에는 딱 2명 밖에 없고 '도움의 손길'이 넘쳐나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 서초구청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후원'을 모두 받아들여 소년소녀가장 뿐만이 아니라 독거노인이나 기타 이웃들에게 나눠줄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서초구가 최고로 잘 사는 곳이라 하더라도 그 후원을 받아들여 다른 구와 함께 연대하여 어려운 이들과 나누는 일을 왜 하지 않는 것일까.
오늘 혼자 식사를 하러 갔는데 마침 주인 아주머니 혼자 계셨다. 손님도 나 혼자다 보니 아주머니께서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서울 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 판결이 오늘 나오는데 알고 있는지, 본인은 ‘수도 이전’에 반대한다는 등의 얘기들. 마침 TV에서 부산 재래시장에 관한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부산 출신인지 만면에 환한 얼굴로 TV프로그램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거들기 시작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식사하는데 열중했다. 평소라면 아주머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까 궁금해 질문도 하고 맞장구도 칠 법 했을 텐데 오늘은 그런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아주머니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얘기를 이어가셨다. 대략의 얘기는 이렇다.
- 주변 식당 아주머니들이 자신을 미워한다. 이유는 식대가 500원 싸기 때문이다.
- 자신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 포기당 5,000원(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니 너무 비싼데 맞나?)하는 배추를 구입해서 김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식대는 3,000원이다.
- 고추 가루도 직접 고향 어머님께 부탁을 해서 빻아 사용하다.
- 음식 맛도 맛이지만 재료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산다.
- 다른 식당에서 나오는 반찬을 볼 때 자신이 그 식당 주인이라면 부끄러울 것 같다.
- 사람들이랑 함께 좋은 걸 나눠 먹고 살아야 한다.
- 자신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 포기당 5,000원(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니 너무 비싼데 맞나?)하는 배추를 구입해서 김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식대는 3,000원이다.
- 고추 가루도 직접 고향 어머님께 부탁을 해서 빻아 사용하다.
- 음식 맛도 맛이지만 재료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산다.
- 다른 식당에서 나오는 반찬을 볼 때 자신이 그 식당 주인이라면 부끄러울 것 같다.
- 사람들이랑 함께 좋은 걸 나눠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야기 말미에 문득 아주머니께서 한 초등학교 학생의 급식비를 매달 후원하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셨다. 남편 분이 ‘자신의 코도 석자’면서 무슨 남을 돕느냐고 구박을 하지만 자신이 생각할 때는 남과 나누는 기쁨, 주는 기쁨이 너무 크다고 한다. 그래서 한 초등학생을 위해 매일매일 시장을 보고 남은 잔돈을 모아 매달 5만원을 아이 통장에 입금을 시켜주면 아이 통장에서 학교 급식비 통장으로 자동이체가 된다고 한다. 급식비는 4만원 가량이지만 만원 정도는 학교 신문을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5만원을 매달 입금하고 있다 하신다.
덧붙여 ‘아프리카 이런 곳’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은데 자신이 힘은 없지만 매달 만원씩을 후원하고 있다고 하신다. 남을 위해 본격적으로 돕는 건 식당을 그만 두게 되면 할 생각이라 하신다.
어쨌든 아주머니께서 남을 위해 후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나 자신하나 제대로 건사하며 살고 있다고 자신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을 위한 생각은 지금보다 더 풍요롭지 않았었나. 세월이 흐르면서 내 자신의 고민에 천착하게 되고 크고 작은 고민들이 많아지긴 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적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밖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생기면 되도록 이 식당으로 오겠다고 생각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500원 인상 조치를 할 생각이지만 물가 인상에 따른 부득이한 일일 뿐 재료가 나빠지거나 할 이유는 없다고 하신다. 음식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라 하시니 더욱 그렇다.
식사를 마쳐갈 무렵 마음 한 구석에 부끄러운 마음이 생긴다. 누구에게 부끄러운 건가. 내 삶이 과연 누구에게 부끄러워야 하고 누구에게 당당해야 하는 건가.
예전에 스승님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스승님도 당시 몇 학생에게 후원을 해주고 있었다.
나 : 그런데 선생님은 왜 후원금을 매달 직접 만나서 전해주세요? 아니면 꼭 은행에 가서 입금을 하시죠? 바쁘신데 번거롭지 않으세요? 한꺼번에 후원금을 전달할 수도 있고 매달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게 해놔도 되지 않아요?
스승 : 자동이체로 하거나 한꺼번에 후원금을 전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않겠니?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이렇게 작은 수고(?)를 들이는 이유는 한 ‘사람’을 후원하는 일은 ‘자동이체’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일깨우기 위함이란다. ‘사람’을 위하는 일은 쉽게 잊는 마음을 챙기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후원하는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대화’를 하기 위해서야.
스승 : 자동이체로 하거나 한꺼번에 후원금을 전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않겠니?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이렇게 작은 수고(?)를 들이는 이유는 한 ‘사람’을 후원하는 일은 ‘자동이체’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일깨우기 위함이란다. ‘사람’을 위하는 일은 쉽게 잊는 마음을 챙기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후원하는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대화’를 하기 위해서야.
보이지 않게 후원을 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스승님이 후원을 하는 방식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행동’이며 그 행동이 담고 있는 ‘사랑’이다.
덧 :: 한가지 생각난 게 있는데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서초구청에 연락을 해서 소년소녀가장을 돕겠다고 했더니 서초구에는 딱 2명 밖에 없고 '도움의 손길'이 넘쳐나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 서초구청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후원'을 모두 받아들여 소년소녀가장 뿐만이 아니라 독거노인이나 기타 이웃들에게 나눠줄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서초구가 최고로 잘 사는 곳이라 하더라도 그 후원을 받아들여 다른 구와 함께 연대하여 어려운 이들과 나누는 일을 왜 하지 않는 것일까.
[mov] 스윙 걸즈 | Swing girls
스윙 걸즈 | Swing Girls
감독 | 야구치 시노부
출연 | 우에노 주리, 히라오카 유타, 칸지야 시호리, 모토카리야 유이카, 다케나카 나오토, 시라이시 미호
보고 나서 행복한 마음이 가득 생기는 영화. 트럼펫이나 색소폰, 드럼 정도의 악기를 꼭 다뤄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는 영화. 문득 예전에 ‘Shall we dance’를 보고 나서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Swing girls’는 Jazz, 아니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 그러고 보니 ‘Shall we dance’에 나왔던 아저씨 다케나카 나오토도 ‘Swing girls’에 나온다.
이 아저씨는 일본 영화의 감초 역할로 자주 등장하는데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심약한 소시민의 삶을 잘 표현하면서도 유머와 따뜻함을 놓치지 않는 배우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케나카 나오토는 알고 보니 영화와 드라마에서 배우로 출연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감독으로 데뷔해 국제적인 상도 받았던 만능 탤런트라 한다. 그러고 보니 ‘도쿄 맑음’이란 영화가 이 사람 작품인 게 뒤늦게 생각난다.)
상황설정이 무척 황당한 부분이나 이야기의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런 면들이 영화를 더 생기있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싶다. 보면서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고 보는 내내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남자아이들의 수중 발레 이야기를 담은 ‘워터 보이즈’도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작품이라고 한다. 두 영화가 닮은 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귀가 함께 즐거운 ‘Swing girls’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또 이 감독은 ‘매트릭스’ 촬영기법을 모방하는데 진짜 멧돼지가 아닌 게 빤히 들여다 보이는 엉성한 설정이 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런 기법은 MBC 코미디에서 조혜련을 위시한 몇몇 코미디언들이 시도한 바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최근 화제작 ‘웰컴투 동막골’의 멧돼지 씬이 이 영화를 따라 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던데 영화를 보지 않았으니 패스.

낙제생들로만 이루어진 여름 보충수업 반 아이들이 어떻게 음악을 쉽게 배우고 악기를 최단시간에 다룰 수 있게 되는지 신기하지만 그런 논리적 추리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영화는 유쾌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야구부 주장이 던지는 말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의 두 가지 대답 “끝까지 해내는 인간과 포기하는 인간”, 그리고 “신나게 즐기며 사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은 이 영화의 성격과도 맞닿아있다. 명품을 걸치는 게 먼저인 날라리 여고생들, 컴퓨터를 갖다 놓고도 설명서가 어렵다는 핑계로 배우지 않는 낙제생, 다룰 줄 아는 악기는 고작 ‘피리’ 밖에 없었던 아이들이지만 정말 신나는 게 무엇인지,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난 후엔 포기하지 않는 인간으로 내달려 결국 꽤 멋진 공연을 이뤄낸다.


Jazz의 음을 건널목 신호등 알람 소리에서 찾아내는 것도 재밌다. 어쩌면 음악은 인류가 시작하면서부터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문화의 산물일 테고 현대 생활 속에서도 음악은 삶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홍수 속에 살지만 정작 들을만한 음악은 적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조차도 남들과 함께 소통하지 못하면 외면 받는 각박한 현실이지만 그렇게 정직하게 음악은 늘 우리 주변에 있고 그걸 오롯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다시 즐거운, 행복한, 좋은 소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많은 취미와 다양한 재주를 가진 것도 복이겠지만 할 줄 아는 게 단지 ‘이 것’뿐인 것도 행복이다. 못하는 걸 하고 싶어하는 미지에 대한 앎, 배움의 욕망도 중요하지만 단지 할 줄 아는 ‘이 것’을 즐길 줄 아는 삶의 자세야 말로 중요한 에너지이며 원동력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소중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계속 몇 번을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영화 ‘Swing girls’는 그래서 따뜻하고 유쾌하다. 영화에 나오는 연주곡들은 배우들이 긴 트레이닝을 거쳐 직접 연주를 했다고 하니 이 영화의 진실성이 느껴진다. 게다가 ‘Swing girls’라는 콘서트도 했다고 하니 배우들도 정말 즐거운 영화, 콘서트, 음악생활이 아니었겠나 미루어 짐작해본다.
어쩐지 악기 다룰 때 손가락 움직임과 입, 가슴의 호흡 등을 유심히 봤는데 ‘싱크율’이 좋더라.
감독 | 야구치 시노부
출연 | 우에노 주리, 히라오카 유타, 칸지야 시호리, 모토카리야 유이카, 다케나카 나오토, 시라이시 미호
보고 나서 행복한 마음이 가득 생기는 영화. 트럼펫이나 색소폰, 드럼 정도의 악기를 꼭 다뤄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는 영화. 문득 예전에 ‘Shall we dance’를 보고 나서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Swing girls’는 Jazz, 아니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 그러고 보니 ‘Shall we dance’에 나왔던 아저씨 다케나카 나오토도 ‘Swing girls’에 나온다.

그럼, 프리 스타일로 한 번 해볼까? -_-;;;
이 아저씨는 일본 영화의 감초 역할로 자주 등장하는데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심약한 소시민의 삶을 잘 표현하면서도 유머와 따뜻함을 놓치지 않는 배우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케나카 나오토는 알고 보니 영화와 드라마에서 배우로 출연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감독으로 데뷔해 국제적인 상도 받았던 만능 탤런트라 한다. 그러고 보니 ‘도쿄 맑음’이란 영화가 이 사람 작품인 게 뒤늦게 생각난다.)
상황설정이 무척 황당한 부분이나 이야기의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런 면들이 영화를 더 생기있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싶다. 보면서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고 보는 내내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남자아이들의 수중 발레 이야기를 담은 ‘워터 보이즈’도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작품이라고 한다. 두 영화가 닮은 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귀가 함께 즐거운 ‘Swing girls’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또 이 감독은 ‘매트릭스’ 촬영기법을 모방하는데 진짜 멧돼지가 아닌 게 빤히 들여다 보이는 엉성한 설정이 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런 기법은 MBC 코미디에서 조혜련을 위시한 몇몇 코미디언들이 시도한 바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최근 화제작 ‘웰컴투 동막골’의 멧돼지 씬이 이 영화를 따라 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던데 영화를 보지 않았으니 패스.

What a woderful world with 멧돼지
낙제생들로만 이루어진 여름 보충수업 반 아이들이 어떻게 음악을 쉽게 배우고 악기를 최단시간에 다룰 수 있게 되는지 신기하지만 그런 논리적 추리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영화는 유쾌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야구부 주장이 던지는 말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의 두 가지 대답 “끝까지 해내는 인간과 포기하는 인간”, 그리고 “신나게 즐기며 사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은 이 영화의 성격과도 맞닿아있다. 명품을 걸치는 게 먼저인 날라리 여고생들, 컴퓨터를 갖다 놓고도 설명서가 어렵다는 핑계로 배우지 않는 낙제생, 다룰 줄 아는 악기는 고작 ‘피리’ 밖에 없었던 아이들이지만 정말 신나는 게 무엇인지,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난 후엔 포기하지 않는 인간으로 내달려 결국 꽤 멋진 공연을 이뤄낸다.

중고라도 좋아. Jazz에 빠졌어

선생님이 오셨어!!!
Jazz의 음을 건널목 신호등 알람 소리에서 찾아내는 것도 재밌다. 어쩌면 음악은 인류가 시작하면서부터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문화의 산물일 테고 현대 생활 속에서도 음악은 삶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홍수 속에 살지만 정작 들을만한 음악은 적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조차도 남들과 함께 소통하지 못하면 외면 받는 각박한 현실이지만 그렇게 정직하게 음악은 늘 우리 주변에 있고 그걸 오롯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다시 즐거운, 행복한, 좋은 소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Jazz의 박자는 이렇게..이렇게..
많은 취미와 다양한 재주를 가진 것도 복이겠지만 할 줄 아는 게 단지 ‘이 것’뿐인 것도 행복이다. 못하는 걸 하고 싶어하는 미지에 대한 앎, 배움의 욕망도 중요하지만 단지 할 줄 아는 ‘이 것’을 즐길 줄 아는 삶의 자세야 말로 중요한 에너지이며 원동력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소중하다.

우린 '소리'만 낼 수 있으면 돼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계속 몇 번을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영화 ‘Swing girls’는 그래서 따뜻하고 유쾌하다. 영화에 나오는 연주곡들은 배우들이 긴 트레이닝을 거쳐 직접 연주를 했다고 하니 이 영화의 진실성이 느껴진다. 게다가 ‘Swing girls’라는 콘서트도 했다고 하니 배우들도 정말 즐거운 영화, 콘서트, 음악생활이 아니었겠나 미루어 짐작해본다.
어쩐지 악기 다룰 때 손가락 움직임과 입, 가슴의 호흡 등을 유심히 봤는데 ‘싱크율’이 좋더라.
그리고 이 배우... " tt_lesstext=" 닫기 ">
모토카리야 유이카, 매력있다.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데 이 사진들은 웃는 게 없다.-_-;
모토카리야 유이카, 매력있다.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데 이 사진들은 웃는 게 없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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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감독 | 가스 제닝스
출연 | 마틴 프리만(아서 덴트), 모스 데프(포드 프리펙트), 샘 록웰(자포드 비블브락스), 주이 드샤넬(트리시아 맥밀란/트릴리언), 존 말코비치(허마 카불라)
상당히 웃기다고 했는데 내겐 웃기는 부분이 적었던 영화. 일단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의 유머 코드를 알지 못했던 것도 있겠고 영화에 나오는 유머들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내가 수준이 낮은 것일 수도 있다.-_-;;(수준이 높다고 해야 맞을까? :P) 그래도 영화는 즐겁게 봤고 생각할 것들이 많아서 좋았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 Pub에서 아서와 포드가 맥주 한 잔씩 할 때 포드의 재치(?)있는 말과 행동은 지구 멸망이 왠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정도로 유쾌했다. 게다가 꼭 수건을 가지고 가야 한다니. 무슨 중요한 쓰임새가 있을 줄 알았다. 쓰임새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_-; 미국의 한 회사가 개발했다는 ‘Earth dog tag’도 어쩌면 유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착한 외계인’을 만나야 하지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지구를 backup 해뒀다가 다시 복구해준다는 설정이었다. 그리고 그 복구 작업을 일일이 사람들(아니 외계인?)이 수작업으로 진행한다는 것도 신선했다. 하나님 창조설이나 다윈의 진화론을 깔끔하게 무시해도 될 만큼 매력적인 설정이었다고나 할까?

바다를 만드는 작업.-0-
또 한가지는 중간중간 내용 설명을 위해 사용되었던 애니메이션이다. 샤이놀라의 애니메이션은 마치 ‘Catch me, if you can’이나 ‘Monster inc.’의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아마 칼라나 움직임에서 받은 느낌일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난 후에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내용은 역시 톡톡 튀는 발상과 허무개그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Guide Book
감독이 어쩌면 우주의 진리를 꿰차고 있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삼십 칠만 분의 일초간 번뜩이며 떠올랐다가 사실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서 내 자신을 비롯해서 사람들의 뇌에 담긴, 마음 속 깊이 담긴 데이터와 이미지들을 분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코비치씨
배우들 연기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 이 영화는 상황 설정이 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사실 배우들의 연기는 수다스러웠다는 것 외엔 그다지 인상에 남지 않았다. 등장 인물 중 가장 흥미로웠던 캐릭터는 ‘Marvin’이었는데 조울증에 걸린 ‘로봇’인데다 사색하기 좋아하고 염세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 캐릭터가 좀 더 많은 ‘꺼리’와 역할 담당을 하지 않은 게 좀 아쉬웠다. 존 말코비치는 정말 생각지도 못하는 영화에서 생각지도 못한 배역으로 가끔 마주치는 듯 하다. ‘존 말코비치 되기’를 경험해 본 사람은 나처럼 예상치 못한 등장은 없었을까?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Marvin
확장된 사고 방식으로 무엇에도 걸림 없는 마음의 크기로 유쾌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게 어떨까. 은하수를 여행하기 위해 히치 하이커가 되어 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가이드’를 꼭 읽어야겠고(그럴 필요가 없을지도.-_-;) 수건도 챙겨야겠지.
은하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구라도 다 돌아봤으면 하는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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