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4일 목요일

가정식 백반을 먹으며 생각에 잠기다.

작업실 앞 가정식 백반을 하는 식당이 있다. 가격은 3,000원. 다른 식당들은 보통 3,500원에서 4,000원을 하는데 반해 500원이 싸다. 이 식당은 원래 오리고기를 파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가정식 백반이라니 처음에 생각할 때는 장사가 어지간히 되지 않아 백반을 주 메뉴로 바꿨나 보다 생각했다. 음식 맛은 평범하다. 평범하다는 말은 짜거나 맵거나 독특한 맛이 없다는 뜻이다. 가정식 백반에 나름대로 충실한 맛이랄까.


오늘 혼자 식사를 하러 갔는데 마침 주인 아주머니 혼자 계셨다. 손님도 나 혼자다 보니 아주머니께서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서울 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 판결이 오늘 나오는데 알고 있는지, 본인은 ‘수도 이전’에 반대한다는 등의 얘기들. 마침 TV에서 부산 재래시장에 관한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부산 출신인지 만면에 환한 얼굴로 TV프로그램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거들기 시작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식사하는데 열중했다. 평소라면 아주머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까 궁금해 질문도 하고 맞장구도 칠 법 했을 텐데 오늘은 그런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아주머니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얘기를 이어가셨다. 대략의 얘기는 이렇다.


- 주변 식당 아주머니들이 자신을 미워한다. 이유는 식대가 500원 싸기 때문이다.
- 자신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 포기당 5,000원(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니 너무 비싼데 맞나?)하는 배추를 구입해서 김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식대는 3,000원이다.
- 고추 가루도 직접 고향 어머님께 부탁을 해서 빻아 사용하다.
- 음식 맛도 맛이지만 재료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산다.
- 다른 식당에서 나오는 반찬을 볼 때 자신이 그 식당 주인이라면 부끄러울 것 같다.
- 사람들이랑 함께 좋은 걸 나눠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야기 말미에 문득 아주머니께서 한 초등학교 학생의 급식비를 매달 후원하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셨다. 남편 분이 ‘자신의 코도 석자’면서 무슨 남을 돕느냐고 구박을 하지만 자신이 생각할 때는 남과 나누는 기쁨, 주는 기쁨이 너무 크다고 한다. 그래서 한 초등학생을 위해 매일매일 시장을 보고 남은 잔돈을 모아 매달 5만원을 아이 통장에 입금을 시켜주면 아이 통장에서 학교 급식비 통장으로 자동이체가 된다고 한다. 급식비는 4만원 가량이지만 만원 정도는 학교 신문을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5만원을 매달 입금하고 있다 하신다.


덧붙여 ‘아프리카 이런 곳’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은데 자신이 힘은 없지만 매달 만원씩을 후원하고 있다고 하신다. 남을 위해 본격적으로 돕는 건 식당을 그만 두게 되면 할 생각이라 하신다.


어쨌든 아주머니께서 남을 위해 후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나 자신하나 제대로 건사하며 살고 있다고 자신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을 위한 생각은 지금보다 더 풍요롭지 않았었나. 세월이 흐르면서 내 자신의 고민에 천착하게 되고 크고 작은 고민들이 많아지긴 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적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밖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생기면 되도록 이 식당으로 오겠다고 생각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500원 인상 조치를 할 생각이지만 물가 인상에 따른 부득이한 일일 뿐 재료가 나빠지거나 할 이유는 없다고 하신다. 음식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라 하시니 더욱 그렇다.


식사를 마쳐갈 무렵 마음 한 구석에 부끄러운 마음이 생긴다. 누구에게 부끄러운 건가. 내 삶이 과연 누구에게 부끄러워야 하고 누구에게 당당해야 하는 건가.


예전에 스승님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스승님도 당시 몇 학생에게 후원을 해주고 있었다.


나 : 그런데 선생님은 왜 후원금을 매달 직접 만나서 전해주세요? 아니면 꼭 은행에 가서 입금을 하시죠? 바쁘신데 번거롭지 않으세요? 한꺼번에 후원금을 전달할 수도 있고 매달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게 해놔도 되지 않아요?


스승 : 자동이체로 하거나 한꺼번에 후원금을 전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않겠니?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이렇게 작은 수고(?)를 들이는 이유는 한 ‘사람’을 후원하는 일은 ‘자동이체’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일깨우기 위함이란다. ‘사람’을 위하는 일은 쉽게 잊는 마음을 챙기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후원하는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대화’를 하기 위해서야.



보이지 않게 후원을 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스승님이 후원을 하는 방식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행동’이며 그 행동이 담고 있는 ‘사랑’이다.


덧 :: 한가지 생각난 게 있는데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서초구청에 연락을 해서 소년소녀가장을 돕겠다고 했더니 서초구에는 딱 2명 밖에 없고 '도움의 손길'이 넘쳐나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 서초구청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후원'을 모두 받아들여 소년소녀가장 뿐만이 아니라 독거노인이나 기타 이웃들에게 나눠줄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서초구가 최고로 잘 사는 곳이라 하더라도 그 후원을 받아들여 다른 구와 함께 연대하여 어려운 이들과 나누는 일을 왜 하지 않는 것일까.

댓글 7개:

  1. trackback from: ★ 연탄 한 장 값을 아시나요? : 댓글당 100원 적립 운동
     



     

       전철로 일찍 나서는 이른 미명 길 전철역에서 몸을 바짝 웅크리고 밤을 지샌 듯, 한 데 잠일지라도 함께 있어 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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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참 마음 따듯하게 만들고 자신도 돌아보게 만드는 글이네요.

    이런 마음들을 올블로그나 블로그아고라에서도 모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관련한 제 글과도 엮어놓고 갑니다.

    활기찬 금요일 맞으시고, 건강한 생각과 글, 앞으로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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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초하 - 2005/11/25 03:45
    초하님, 안녕하세요. 격려 감사합니다. :)

    초하님도 넉넉하고 행복한 금요일 맞으시고

    더불어 주말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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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자유인님, 다녀가셨군요. 같은 이름의 이웃지기가 또 있어 잠시 헷갈렸습니다.

    겸손하십니다. 댓글 당 금액을 크게 잡아도 될 터인데... ^^

    여기 시스템과 관리의 문제로 아마도 트랙백에 어려움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유인님도 행복하고 넉넉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기회보아서 위 방법들을 제 방에도 소개할 생각입니다.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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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초하 - 2005/11/25 10:49
    네... 괜찮고 말구요. 너무 흔한 이름이지요? :)

    금액을 크게 잡는 것도 생각해보고 있고 다른 방법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네요. 건강 유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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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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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Anonymous - 2005/11/28 05:23
    네 쪽에다 글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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