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8일 토요일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본적인 정(情)이 흐르지 않는다면 관계는 어느새 멀어지고 말테지. 정을 주고 받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타협을 하거나 뇌물을 주고 받게 된다면 그건 본질을 훼손하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서로 가까워질 수 있을까.

오늘 상사(?)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으며 머리 속으로는 그 말의 잘잘못과 내 잘잘못을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누가 얼마만큼 잘하고 잘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경계를 넘어서는 것.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어제 저녁부터 내 마음 속에 평소와는 다른 내가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그게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마음 먹는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원인결과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살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어떤 경우엔 실수를 수 백번하다가 한 번 잘해도 이해받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엔 수 백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는 경우로 인해 완전히 틀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어떻게 판단하고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아마 내 20살 때 아는 분에게 들었던 "일의 경중(輕重)", "일의 선후(先後)"에 대한 문제일게다. 그리고 중용에서 말하는 "시중(時中)"의 개념. 이게 완전히 내 것으로 체화되지 못한다면 난 언제나 "틀어지는" 편에 서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모든 게 나로부터 인한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상대방의 오해, 곡해 혹은 성격 때문에 내가 잘못 이해되고 무시되는 경우도 있을테니. 하지만 어쨌든 간에 그것 또한 내가 "보여지는" 것에 대한 부분이므로 나의 잘못도 있는 것이긴 할테다.

공정한 판단과 결정 후에 "어긋남의 강"을 건너간 후 다시 이야기해도 늦지는 않을 게다. 서둘러서 그 강에 빠지는 경우도 언제든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니...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던 내 일 처리 방식에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지 다시 생각해 본다.

"연마(硏磨)"와 "취사(取捨)"하는 공부의 끈을 다시 조일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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