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22일 일요일

젊은 벗이여, 당당하게 살아라.

젊은 날, 오로지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그 맑은 눈에 어른들이 당당하지 않게 보여, 그들처럼은 살지 않으려 했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작문 숙제에 나는 선생 아닌 다른 것은 무엇이라도 좋다고 썼다가 심한 꾸중을 들었다. 선생인 아버지와 친척들, 그리고 학교 선생들에 대한 반항 탓이었다. 그러나 나도 선생이 되었고, 나의 선생들처럼 당당하게 살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젊은 벗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당하게 살아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홀로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떤 인연의 무리든 간에 그 속에 뒤섞여 자아를 잃고 살지 말라. 어려서부터 무리 속의 삶에 지쳤던 나는 부모, 형제, 처자까지 남들과 똑같이 대하고자 노력했다. 기타 혈연, 지연, 학연, 지연 따위는 철저히 무시했다. 따라서 동창회든 종친회든, 등산회든 골프회든, 친목계든 관혼상제든, 교회든 절이든 일체의 모임에 가지 않는다. 젊은 벗이여, 고독해라!

내게는 그런 인연으로 맺어진 동기, 동료, 선후배나 스승, 제자, 벗이 없다. 물론 스승, 제자, 벗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배울 만하면 스승이고, 가르칠 만하면 제자이며, 마음이 통하면 벗이다. 그들은 오직 인간 대 인간으로 그렇게 관련될 뿐이다. 따라서 스승이라고 해서 우러러볼 것도, 제자라고 해서 낮춰 볼 것도 아니다. 사실은 모두 벗이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닌가? 젊은 벗이여, 모든 인간을 벗삼아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어떤 지배, 명령, 복종, 지시,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벗으로서의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어떤 권력이나 이데올로기부터도 자유롭고, 영웅주의나 천재주의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과 가치를 지켜라. 그리고 그런 세상을 꿈꾸고 그렇지 못한 현실에 당당히 맞서라.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현실에 대한 도전 없이 당당한 삶은 있을 수 없다. 젊은 벗이여, 꿈꾸고 맞서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참된 벗일수록 각자가 분명한 자신의 생각을 갖고 그것을 굽히지 않으며 실천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 없이, 아니 아무 생각 없이 남들에 떠밀려 사는 사람들을 어려서부터 많이 보아온 나는 남들과 똑같은 소리를 하거나 글을 쓰는 자를 경멸한다. 특히 자기 생각을 굽히거나 말과 행동이 다르게 사는 자를 스승은커녕 벗으로도 삼지 말라. 젊은 벗이여, 굽히지 말라!

물론 이처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서 특히 어렵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한다. 젊은이여, 그럴수록 더욱더 당당하게 살라고. 오로지 당당하게 당당하게 살라고. 당당하게 사는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젊은 벗이여, 저 도도한 패거리 문화가 만드는 억압과 불평등, 무사상과 무실천의 야만을 당당하게 갈아엎어라!

2005년 4월에
박홍규

고종석, 김진애, 박노자, 박홍규, 손석춘, 장회익, 정혜신, 조정래, 홍세화 등의 필자가 펴낸 책의 머리말에 나오는 글이다.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나는 당당하게 살아왔는가? 내 젊은 날의 깨달음은 무엇인가? 그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서 당당하게 살기가 가장 어렵다는 말은 더더욱 공감한다. 외로움이나 버거움은 그냥 덤으로 가져가야 할 업인가?

요즘 들어 애니메이션을 하는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작품을 만들어 영화제에 내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며 생각을 나누고 실천을 나누겠다는 초발심도 근래에 들어 힘겨움으로 흔들리곤 한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도 아니고 최근에 끝낸 작업 때문에 지쳐서도 아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생각이 맞물려서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생각을 좀체로 풀어보지 못하고 있다. 또 다시 대면하게 된 삶의 매듭이라 생각하고 있기에 그나마 버텨내고 있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하고자 했던 생각들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애니메이션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들고 좋은 작품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지금 내 나이, 젊다면 젊고 젊지 않다면 젊지 않다. 하지만 위에 있는 글은 비단 젊은 벗들에게만 말하는 건 아닐 터. 나이를 먹어가고 세월이 한참 흘러도 당당하게 살고 내 주체적 이성과 감성을 가지고 주체적 상대와 교류하며 괜찮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실천하고 노력해가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부디 시류에 휩쓸리지 않기를... 부디 하고자 했던 일의 끝간 데를 알아내기를... 서둘러 정착하고 서둘러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기를...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살아야겠다.

댓글 2개:

  1. 당당하게 산다는 것. 어떤 사람이든 자신을 성찰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사는일에 바쁘게 쫓기다보면 타성에 젖기 마련인데 제가 딱 그런 거 같아요. 아- 애니매이션 만드시는군요. 완성되시면 말씀해주세요. 열심히 홍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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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왕도비정도 - 2005/10/24 18:43
    전에 쓰던 스킨은 바탕이 어둡고 글자가 밝은 색이었거든요. 그래서 위에 있는 글이 이젠 잘 안보이는 군요. 읽기 불편하셨을 듯.^^

    저의 경우엔 타성에 젖어 사는 건 잠깐 방심하면 늘 반복하는 삶의 태도랄까요?

    (퀄리티를 떠나서)부끄럽지 않게...즐겁게 만든 작품이 나오면 말씀해 드릴게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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