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걸은 연기를 그만둔다고 몇 번씩 말했었다. 심지어는 연기를 그만두고 승려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보도가 나가기도 했다. 사실 승려가 되던지 말던지 그건 이연걸 개인의 몫이고 삶이지 남들이 왈가왈부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이연걸의 무술을 영화 속에서 계속 만나고 싶은 팬들의 입장에서는 이연걸의 그런 발표는 못내 아쉬울 수 있다.
아무튼 그런 이연걸의 마지막 영화라며 <곽원갑>이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은 영화가 재미있는지 여부를 떠나 이연걸의 ‘마지막 영화(라며?)’라는 사실에 더 관심을 두고 있었다. 영화는 순조롭게 개봉을 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양분화되었다. 재미있다, 그리고 재미없다.(당연한 소리-_-;) 솔직히 나는 재미있었다. 한국에 개봉하기 전 중국에 있을 때 봤는데 <곽원갑>은 딱 이연걸‘식’ 영화였고 난 그게 좋았다.
중국 CCTV6 영화채널에서는 이연걸과 우인태 감독, 원화평 무술감독, 그리고 손려, 동용 등 감독 및 주연 배우들이 출연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곽원갑>의 개봉을 1-2일 앞둔 시점에서 <곽원갑 상영 기념회>를 준비한 것이었다.
우인태 감독은 이미 이소룡의 아들 이국호(브랜드 리) 주연의 <용재강호>나 장국영, 임청하 주연의 <백발마녀전>, 장국영, 오천련의 <야반가성> 등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미국에서는 <프레디 vs 제이슨 / Freddy Vs. Jason>, <51번째주 / The 51st State>, <처키의 신부 / Bride of Chucky>등과 같은 영화의 감독을 맡기도 했었다.
중국 일부 비평가들은 우인태 감독이 B급(?) 영화로 쏠쏠한 재미를 보는 화교 감독으로 보면서 <곽원갑>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기억에는 미국에서 촬영한 영화를 제외하고(보지 않았다) <용재강호>나 <백발마녀전>같은 경우는 꽤 의미도 있고 촬영기법이나 진행에서도 당시 꽤 괜찮은 영화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 싶다. 특히 내게 <백발마녀전> 1,2는 아주 인상적인 영화다. <곽원갑> 역시 그다지 세련된 맛은 없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나 전체적인 흐름에 있어서 우인태 감독 영화 중 베스트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이연걸은 이번 영화를 찍고 난 후 더 말이 많아진 듯 하다. 물론 그 전 인터뷰를 보더라도 꽤 말하기를 좋아하는 배우기는 했지만 이 영화가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역설하고 또 역설했다. 기자가 이번 영화가 정말로 마지막이냐고 물었다. 이연걸은 씨-익 웃으며 영화를 보면 알 거라고 대답했다. 무슨 뜻이었을까. 하지만 기자와의 문답 속에서 이연걸은 <곽원갑>이 자신의 마지막 영화라는 이야기를 끝까지 하지 않았다. 거듭 중요하게 한 이야기는 ‘때려 부수고 죽이는’ 그런 영화는 이제 자기에게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곽원갑>이 여태 자신의 찍은 영화들 중 ‘무술’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그것은 바로 이연걸이 ‘무술’에 대해 갖는 의식의 변화를 뜻하기도 한다.
9살부터 무술을 시작한 이연걸은 12세 때 ‘전 중국 최고 무술대회’ 첫 우승을 거머쥔 이후 연이어 우승을 독식하며 5연패를 달성한다. 그 이듬해 1979년 이연걸은 영화 <소림사>를 시작으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딛는다. 이연걸은 CCTV1 <예술인생>에 출연해 자신의 무술인생에 대해 회고한다. 무술신동이란 소리를 들으며 ‘중국 무술대회’ 5연패를 하는 동안 전 세계를 돌며 무술시범을 보이고 이후에 영화계에 진출하는데 이 때부터 이연걸은 무술계, 북경시민들의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많은 부담을 안고 활동을 한다. 영화계 진출한 후 세계에 진출할 때도 역시 젊은 나이였을 텐데 그 때 역시 전 13억 중국인들의 명예를 위해 살았다고 할 만큼 부담을 느끼고 산 흔적이 역력했다. 이연걸은 정식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북경대학에서 강연회를 할 때도 자신은 똑똑하지 못하고 배운 게 없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다. 자신이 살아 온 인생역정에 대해 말을 할 뿐이고 그 안에서 배울 게 있으면 배우고 받아들이기 싫으면 받아들이지 말라 한다.(이 점은 성룡과 비슷하다)
현재 무술황제라 칭해지고 95년 ‘중국 당대 무성 10걸’에도 속한 이연걸이 40여 년 동안 찍어온 영화들은 그저 무술일 뿐이거나 때리고 부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태극권>, <대도무문>, <영웅>, <황비홍> 등에서 간혹 삶에 대해 설파하거나 무술에 대해 언급을 한 적은 있었지만 그건 분명 이연걸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이연걸이 서장불교(밀교)를 믿으며 깨달음이 쌓여가는 동안, 그리고 무술수련을 계속 해가는 동안 그 자신 스스로 ‘무술’에 대해 혹은 '무술(과)인생'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곽원갑>을 만나게 되었고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쏟아내기 위해 애를 쓴다. 역시 영화 속에서 그런 교과서적(?)인 내용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관객은 바보가 아니라면서 그런 시시콜콜하고 구구절절 옳은 얘기는 길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비평하지만,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곽원갑>이 전해주는 얘기는 (적어도 내게) 그리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맹인으로 등장하는 여주인공 손려가 이연걸과 함께 모내기를 하며 하는 말이 있다.
‘모’도 생명이에요. 너무 가까이 붙으면 서로의 성장을 방해하죠. 최소한의 거리가 필요해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서로 존중하고 도우며 살 때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찾아오죠.
이연걸은 <예술인생>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武)’는 ‘지(止)’와 ‘과(戈)’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선조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죠. 전쟁과 분쟁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무(武)’라고 말입니다. 무술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외부적인 표현이나 기술에 있지 않습니다.
Sina.com과의 인터뷰에서는
무술은 자신 뿐만이 아니라 남을 해하지도 않습니다. 손에 있는 칼을 놓을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칼조차도 모두 버리는 것입니다. 가슴을 열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 그게 바로 무술의 최고 경지입니다. 그건 곧 ‘사랑(愛)’이죠. <곽원갑>은 제 42년 무술 인생의 종결점에 서서 무술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존했던 곽원갑의 삶을 통해 이연걸은 이번에 많은 깨달음을 얻은 듯 하다. 그 동안 꾸준히 추구해왔던 무술인으로서의 삶, 종교적인 삶의 굵은 매듭을 <곽원갑>에서 보여주고 있다. 중국인들 마음 속의 영웅이던 아니던,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던 말던 그는 그 나름대로 바른 길을 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곽원갑>에서 이연걸의 얼굴 표정은 참 다양하다.(그래봐야 몇 개 되지도 않는다) 모든 영화에서 나온 표정들을 다 보여주는 듯 하다. 한 3시간 짜리로 만들어도 되었을 텐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얘기를 풀어내려고 한 점이 아쉽다.
아직 성룡보다 10년 정도 젊지만 이연걸도 참 많이 늙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귀여운 미소와 태산도 가라앉힐 만큼의 침묵은 여전하다. 어릴 때 돈과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무술인의 삶을 살아온 그에게, 현재 중국에서 前부인에 대한 여전한 애정과 우정의 과시로 칭송을 받는 그에게, 이제 남은 인생 불교와 무술로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되길 응원한다.
그런데 이연걸 말처럼 태극권 경지에 오르면 정말 신선(神仙)이 될 수 있는 걸까?
그 외,
이연걸이 영화를 그만둔다는 설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곽원갑> 이후로는 무조건 치고 받는 영화는 찍지 않겠다”는 말이 와전된 것이고 또 하나는 “<곽원갑> 이후로는 과거 의상(황비홍, 방세옥, 태극장삼풍 등)을 입고 무술영화를 찍지 않겠다”는 말이 와전된 것이다. 영화를 찍지 않는다는 말은 중국 기자가 추측해서 쓴 게 아닌가 싶다. 그 예로 이미 이연걸 주연의 2007년 개봉 예정작
ROGUE가 인터넷에서 소개되고 있다.
원화평과 이연걸은
너무도 오랫동안 함께 작업을 해와서 이번 영화에서도 호흡이 잘 맞았다고 한다. 이연걸은 원화평을 “동작이 없는 액션을 만드는 세계 유일의 무술감독”이라 극찬하고 원화평은 이연걸을 “무술대가”라고 존중한다. <와호장룡>에서 이연걸 캐스팅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하는데 이연걸의 <와호장룡>은 어땠을까. 어쩌면 <곽원갑>보다 더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기회는 아니었을까?
우인태 감독은
한쪽 발을 저는 지체장애자다. 어릴 때부터 체력도 약하고 다리도 불편해 하고 싶은 걸 맘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인해 자신의 생각과 꿈을 펼칠 수 있는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게다가 실제 곽원갑도 신체가 허약한 인물이었다고 하니 <곽원갑>은 우인태 감독의 삶과도 잘 어울리는 영화가 된 셈이다.
곽원갑은 이소룡의 <정무문>이나 이연걸의 <정무영웅>에서
음독살해 당한 사부로 등장하는데(실제 곽원갑도 일본인이 장기간에 걸친 음모에 의해 음독살해 당했다.) 그렇다면 이소룡과 이연걸이 연기한 “진진”이란 인물 역시 실제 인물일까? 곽원갑이 <정무체육관>을 만든 건 사실이지만 직계제자는 단 한 명 뿐 인걸로 알려지고 있다. “진진”은 영화를 위해 가공되어 만들어진 인물이다. 또한 실제로는 외국 무도인들과 실제로 맞붙어 싸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외국인들은 곽원갑의 이름만 듣고도 도망갈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영화 내용이 실제 곽원갑의 삶과 달라 소송에 휘말린 상태다. 영화는 딱 세가지만 진실이라 한다. “시대배경”, “곽원갑의 정무정신”, “곽원갑이 죽는 나이”
참고 사이트
http://ent.sina.com.cn/f/huoyuanjia/
http://www.jetli.com/
http://cineseoul.com
http://baid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