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16일 월요일

축구와 애니메이션

한국:바레인 경기를 보다가 느낀 감상 하나. 한국이 바레인에 1:2로 패한 후 문득 의문이 하나 생겼다. 왜 졌을까. 왜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 수비라인의 허점 등의 문제가 거론되는 것일까. 2002년에 히딩크 아래서 뛰던 선수들이나 지금의 선수들 사이에 엄청난 실력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개개인이 보는 분석과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축구 문외한인) 내가 보기엔 그렇다는 것이다. 감독의 능력, 전술의 차이, 선수 개개인의 컨디션, 능력차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비슷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2002년의 성과는 그저 그 때의 성과로만 머물러야만 하는 것인가? 보통 한 개인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고 나면 그 이후는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게 어렵긴 하다. 하지만 그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을 때의 수준은 어느 정도 일정정도 기간을 유지하기 마련이고 그 노하우는 자신이건 타인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축구'는 왜 그럴까. 히딩크가 영웅대접을 받는 것 이외에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이 해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거나 거뒀다는 거 외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의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를 답습하거나 혹은 외려 퇴보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퇴보라는 것도 2002년에 비해 상대적인 퇴보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 문득 자율성과 타율성, 능동성과 피동성에 대해 생각이 닿았다. 한국 축구는 타율성, 피동성에 길들여진 게 아닐까 라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위에서 전달되면 전달되는 대로 하기는 하되 자신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경우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는, 즉 자신의 자율성이 발휘되기에는 여기저기 눈치보거나 상하계급의 문제가 고려되거나 자신이 랫동안 그 집단에 소속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문제까지 고려되면서 적당히 안전한 선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히딩크의 지도력이나 훈련방침이 더욱 효과를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축구에서만 그럴까. 다른 분야에서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애니메이션을 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 역시 좋은 결과를 이뤄내지 못하는 것을 봤을 때 축구의 경우와 비슷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OEM에 길들여져 온 시스템이나 작업방식이 프로덕션과 같은 제작능력을 향상시켰다고는 하지만 그건 자체적 능력이 향상되었다기 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건너오는 작업물의 지시서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그대로만 따라서 하면 일정정도 수준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원화, 동화를 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실력차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적지 않은 수가 OEM 작업에만 길들여진 나머지 창작 애니메이션 내에서 제작능력을 제대로 발휘해내지 못하는 것을 본다면 제작능력이 향상되었다는 것 역시 타율성과 피동성에 의해 진행되어 옴에 따라 생겨난 허상일 여지가 많아 보인다.

또 하나의 일례로 국내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가 300여 개에 이르는 지금 독립(단편)애니메이션의 수준 역시 딱히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학교 다닐 때는 교수님 및 강사, 선배들의 조언과 작업방향에 대한 디렉션이 있었기 때문에 그저 따라만 간다해도 일정정도 퀄리티를 유지하는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에 나왔을 때 지속적인 작품활동을 하지 않거나 작품을 만들어 내더라도 졸업작품을 능가하는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적다는 것은 역시 학생들의 자세가 타율과 피동성에 길들여져 있었음을 방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영화 쪽에서는 피동성보다 능동성이 과한 상태로 지속이 되다 보니 사람이 몰려 돈을 받지 않아도 그 언저리에서 기회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아지게 되었지만(영화는 OEM이 없긴 하다) 최소한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작품의 질이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율과 타율, 능동과 수동. 이는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고 한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간에 타율을 벗어나 능동성을 획득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이뤄내지 못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삼성과 같은 기업은 나와도 구글이나 애플사같은 기업은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이 그래도 세계에서 알아주는 세계기업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다.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지, 기업 마인드가 무엇인지는 거론되지 않을 테니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