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4일 일요일

[謹弔] 노무현 前대통령, 사나이 노무현

노무현 前대통령의 완전한 해탈천도를 기원합니다.

진정한 사나이
자신이 도덕적으로 청렴하다고 자신하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을지언정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절대 번복하지 않는다.
한 입 갖고 두 말하는 것을 경멸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반드시 해낸다.
친구와 가족들의 고통을 자신이 다 짊어질 지언정
절대 그들의 뒤통수를 치거나 배신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형성한 도덕적 가치관, 삶의 가치관에 대해서
늘 고민하며 발전을 시켜가되
쉽게 말로 하지 않고 반드시 행동으로 나툰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 내면의 멋과 중요함을 잘 안다.
겉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그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심지(心志)가 변하는 법은 없다.
자신의 뜻에 맞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비난하거나 무시하기보다 관용과 포용으로 지켜보며 함께 공존하거나
추후라도 뜻에 공감하게 되면 적극적 지지를 한다.
높은 자리보다 명예로운 자리를 원하며
재물보다 마음의 부(富)를 소중히 한다.
도시보다는 시골을, 인공적인 것보다는 자연을 좋아한다.
반려자에겐 무뚝뚝해도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고
자식들에겐 엄격해도 손님들에겐 관대하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선 유머가 풍부해서 늘 웃음이 있다.
한 번 믿음을 준 사람에겐 평생 의리를 지키고 살며
어떤 일을 도모할 때는 반드시 타당한 이유가 있다.
법도와 규칙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며
혹 법도와 규칙에 어긋나는 일일 경우엔
타인에게 피해가 되는 일이 아닌 반드시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
절대 남의 것을 탐하지 않으며
절대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 때문에 종종 비타협적이란 얘기를 듣는다.
보수적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나와 남을 두루 살피려는 보수다.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는 심각하게 가슴 아파하고
반면교사하여 두 번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때론 반려자나 자식, 친척, 측근들이
이 단순하고 의기로운 사람 몰래 일을 벌이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아주 사소한 잘못이라도) 잘못을 했다고 판단되면
바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무한책임을 진다.
사나이들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관계와 돈 흐름의 깨끗함이다.


지역을 가르자는 뜻이 아닌 태생으로서의 '경상도 사나이' 노무현 前대통령. 그의 모습은 때때로 오래 전 작고하신 선친(대구 출생)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선친은 그야말로 보수적인 사람이었는데 절대로 이해가 안되는 보수가 아니었다. 삶 속에서 충분히 이해가 갈 만한 보수적 자세를 견지하셨는데 정치적으로는 다른 지점에 있었다 할지라도 삶의 자세와 마음 씀씀이, 실천력 등은 나의 삶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쳤고 귀감으로 삼고 있다. 오랫동안 전라도에서 생활하셨지만 천상 경상도 사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선친의 모습과 급작스럽게 서거하신 노무현 전대통령의 모습이 겹쳐졌던 건 위에 서술한 내용들 때문이었다.

노무현 前대통령의 정치적 공과(功過)는 역사가 가름해주겠지만 그 외에 노무현 前대통령이 가장 잘 한 것을 꼽는다면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로 돌아가 농사꾼이 된 것이라 생각한다. 역대 대통령, 혹은 알아준다는 역대 고관대작들 중에 퇴임 후 노무현 前대통령처럼 시골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고 평범한 삶의 모습을 드러냈던 적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가 봉하마을에서 보여준 삶의 자세만은 (정치색을 배제하고라도)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굴곡이 있고 지지와 비판이 늘 공존하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 기대어 판단되지만 삶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반드시 '현재'에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정치적 입장과 이해 때문에 지지도 하고 비판도 했지만 '노무현'이라는 개인이 보여 준 삶의 태도와 자세는 올곧았기에 급작스러운 그의 죽음은 애통하고 비통하며 억울할 뿐이다.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그렇다. 이 따위의 나라에서 가장 하기 힘들었던 '언론과의 싸움', '청렴한 정치', '지역갈등 해소', '남북협력', '

노무현 前대통령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도록 몰아세운 '대한민국'이 끔찍하다. 그를 '자살'로 몰아세운 '대한민국'에 대해 우리는 모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미친 세상에서는 미친 자들이 정상이고 정상인 자들이 미친 자들로 취급받는 법이다.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과거 딴지일보와 노무현 前대통령의 인터뷰 내용([정치] 일망타진 이너뷰 제 3탄 - 노무현) 중 일부분을 옮겨와 본다.

김: 정치인 노무현의 옆엔 사람이 없다고 하는 평가가 있습니다. 노무현 옆에서는 떡고물도 없고 깨 끗한 정치를 한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또 한 편으론 정치적 리더쉽의 부재 아니냐, 혼자서 현실정치 돌아가게 할 수 있는 거 아닌데... 이건 집권 능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확대할  수도 있는데..

노: (고개를 끄덕이며) 그건 이제, 표면적으로 그렇습니다. 그, 표면적으로 어떤 뭐, 드러내놓고 계보로 움직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게 가능성이 있을 때 지지의사를 표명 할 심정적 동조자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 실제로 그 정치 계보로써 그렇게 뭉쳐있는 것이 당내에서  이런저런 경쟁을 하는 데에는 다소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국가적 지도력을 창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적 지도력이란 것은 많은 사람들,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어야 되고, 그리고 공정, 공정한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지, 몇몇 사람들을, 이해관계로 똘똘 뭉치게 하는 능력.. 그게 성공한 지도자다, 이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

노: 답변하기 전에, 아까 내가 좀 미흡했던 답변. 그 계보가 많다는 것이 그것이 곧바로 지도력이 아니다라고 말을 했지만, 제가 그 내놓고 계보처럼 뭉친, 이해 관계나 연고로 뭉쳐있는 사람은 없지만, 서로 존경하고 신뢰하고 힘을 합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항 상 위로, 선배를 모시고 정치를 해왔어요. 존경하는 선배를 모시고 정치를 해왔고. 그 점에 있어선  모자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 다음에 이제, 다음 꺼 말씀을 드리면, 아무튼, 요 부분에 대해선 어떻든 제가 그 게임을 하는 이상, 게임의 결과에 대해선 승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임을 할 땐 게임 결과에 승복해야 하고.  그 다음에 이제, 저로서는 역사성과 정통성 같은 것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치인인데, 그럴  경우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고민하고… 여러 가지 상황들을 가정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뿐이지,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긴 참 어렵다는 생각 을 하고 있습니다.

김: 근데, 궁금한 게, 왜 그렇게 조선일보는 노무현 장관님을 물고 늘어질까요? 지치지도 않고. (웃음)
노: 그거는 제가 답변을 다른 방향으로 할께요. 저, 많은 사람들이 좀 잘 지내보라고 합니다. (웃음)
김: 노장관님은 직업이 정치인인데 잘 좀 지내시지.. (웃음)

노: 저도 개인적으로 잘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지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그분들도,  공정하게도(웃음), 개인적 호불호와는 관계없이 그들이 옹호하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비호하고,  관철하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들이 양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무리 친한 정치인이 라고 해도. 거기에 도전하는 사람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 이익은, 짧게 말해서 수구적 이익입니다.

또, 어떤 분은 이렇습니다, 그런 이익에 대해서 애착과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일컬어 주류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위 주류적 이익, 한국 사회에 주류적 집단이라고 스스로 자처해온 수구 기득권 세력. 멀리 올라가면 친일파의 맥이 나오고, 가까이 오면 독재정권과 항상 결탁해오고. 항상 강자와 결탁하면서 특권을  누려왔던, 부당한 이익을 누려왔던 집단이지요.

소위 한국의 주류라고 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기초가 거기 있습니다. 전쟁 나면 아들 군대 안 보내고 , 법 위에 군림해왔던 사람들입니다. (이 대목에서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

그것이 소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수 수구 언론이 옹호하려고 하는 가치이고 이익이고, 바로 그들이 그 세력이고 그 이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양보하지 않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김대중 대 통령이 거기에 도전해서 성공했고, 겁도 없이 노무현이 초선 의원이 돼가지고 거기에 도전한 것이지 요. 

김: 달라이 라마 방한이 무산됐습니다. 연장 선상에서 질문인데,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계신 다면 어떻게 하실 건지.

노: 그건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철학이 중요하지만, 한나라의 지도자가 개인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철학대로만 행동할 수 없는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그 제약 또한 현실적인 것이므로 그것은 때로는 그 제약을 받아들일 땐 받아들여야 되고, 때론 제약 을 깨기 위해서 노력해야 됩니다.

그런 과정에, 그 현실적 과정 속에서 달라이 라마의 방한에 대해서 선택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것은 그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과 함께 판단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죠. 지도자 철학대로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 있고, 때론 상황에 따라서는 방한을 허용하지 않는 그런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고  생각합니다.

김: 국가적 이익의 관점에서?

노: 그렇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보수주의자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노예제도 옹호론자들이 볼 때는 급진주의자라고 비난을 받으면서 굉장히 많이 시달렸습니다.

시달렸는데, 이 링컨이 죽고 난 뒤에, 11년 뒤, 그 목사 (보좌관쪽을 보며) 이름이 뭐지. 그 당시 흑 인 지도자, 잭슨 목사 아닌가 싶은데. (다시 고개를 김 쪽으로 돌리며) 하여튼 흑인 지도자 목사가  링컨의 조그만 초상을 만들어서 링컨의 영전에 봉헌하면서 그 얘길 합니다.

그는, 그는 정말 우리 흑인들에게 섭섭하게 했다. 왜냐면 흑인들의 요구를 너무 더디게 들어줬고, 때 로는 남부 주를 해방시킨 북부 사령관이 노예해방 조치를 했을 때 그것을 다시 취소하기까지 했다.  노예 해방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여러 가지 조치가 있었다. 그런데 대한 섭섭함을 다 얘기하면서 . 그러나 나중에, 그 사람이 죽고 난 시점에서 보니까 그가 결국엔 많은 노예를 해방시켜 놓았더라..  흑인들이 푸른 군복을 입고 군대도 가고, 행진할 수도 있었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렇게 이야길  하면서 링컨의 노예 해방자로서의 공을 아주 높이 기리는 그런 연설을 합니다.

그것이 정치입니다. 링컨은 노예 해방론자이지만 그는 그 시기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면서 결국 아주 합리적인 속도, 속도 조절을 한 것이거든요. 노예 해방의 속도를 아주 정교하게, 뭐라고 할까요,  아주 현명하게 디자인해냈단 말이에요. 그것이 정치입니다.


조선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고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한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 자손들까지 멸분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의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근조] 노무현의 연설 중에서...- summerz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런 고집불통의 노무현이지만, 40대의 젊은 나이에 아직도 서슬이 퍼런 전직 대통령을 향해 호통치던 성깔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에게만큼은 한번도 성질을 부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기는커녕 너무 권위가 없어 세간의 비웃음만 당했던 대통령. 그게 인간 노무현이 추구하던 민주주의였다. 너무 앞서 갔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옳은 방향이었다...(중략)...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이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상황에서 말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전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이만큼 했으니 앞으로는 너희들이 해라. 하지만 너희들은 이런 나보다 더 잘 해야 된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謹弔] 인간 노무현을 보내며...- ddan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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