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4일 일요일

최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나간 일, 자신의 삶과 직접 관련을 갖지 않는 역사 속의 사건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아주 진보적이라는 역사학자 한 분이 대학생 시절의 추억까지 끌어대면서 유시민 씨를 두둔하고 나서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현실 속에서 체 게바라나 김산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한다면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 현실 속의 체 게바라나 김산을 존경할 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하는 우리는 현실 속의 체 게베라나 김산엔 관심이 없거나 그들을 비웃곤 하지요.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광주에서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을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늙은 어머니, 처음으로 입을 맞춘 날의 두근거림이 그대로 남은 애인, 제 목숨보다 귀한  새끼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독립군들처럼 죽고 나서 존경과 명예가 남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폭도요 빨갱이로 남는 것입니다. 남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언제까지 어떤 고통을 겪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끝까지 총을 들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정신입니다.

광주의 정신, 민주주의의 정신(규항넷) 부분 발췌

피 끓던 젊은 시절엔 나도 목숨을 걸고 투쟁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광주에 있었다면 총들고 함께 싸울 줄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나의 의지와 나의 이상을 막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가진 게 없고 미련을 둘 게 없는 시절이었다면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닐 거라는 건 세월이 흐르며 보다 제대로 '역지사지'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지나간 일, 내 일이 아닌 타인의 일에 대해서 입을 놀려 '말'을 꺼내고 손을 놀려 '글'을 꺼내는 건 정말 쉬운 일이다.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내지 않고서 치열하게 살다 간 사람들을 비용도 치루지 않고 빌려 쓰며 자신을 포장하는 일은 정말 쉽지만 역겨운 일이다. 현실 속에 있어서 현실을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계는 거짓과 가식으로 가득한 비현실 세계다.

최소한 양심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하고, 최소한 겸손해질 줄 알아야 한다.

최소한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현실 속의 체 게바라와 김산을 알아보고 지지할 줄 알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또 반문해야 한다. 사람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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