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도 어릴 적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자신있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또렷한 눈망울을 반짝거리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꿈꾸는 나의 삶, 우리의 세상은 꼭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경쟁이 나와 상대를 모두 아프게 한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나이가 어렸어도 남을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못해본 것 같다.
물론 공부를 잘해 등수 안에 들고, 1등을 하고, 상을 받으면 기분좋고 우쭐했던 적은 있었지만
함께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악다구니를 써가며 바득바득 경쟁을 하려고 하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가진 복(福)과 재능(才能)만으로 겨우겨우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물론 게으르긴 했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엔 순수하게 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가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마치 순수한 무엇인마냥 오해를 하겠지만
대동소이(大同小異)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살면서 무수히 생각해 보았을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린 시절, 혹은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왔던 어떤 가치와 신념이 이루어지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남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당당히 이뤄내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남들은 행복한데 나만 불행한 것인가.
내가 행복하면 남들도 행복하게 보이는 것인가.
도대체 행복의 최소기준은 무엇이고 행복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가.
이 장면은 크리스 가드너(Will Smith)가 정식 주식중매인이 된 후에 감격에 겨우 인파들 속으로 걸어나와 행복을 만끽하는 장면이다. 아내는 떠났고 아이를 홀로 키우며 도전한 주식중매 직업, 그 길이 순탄치 않았고 힘들었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훤하다. 월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고 한 푼도 없어 홈리스 생활도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던 직업을 손에 넣었다. 아마도 다른 선택이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자신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을 살려 마침내 주식중매인이 된 것이다.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인 크리스 가드너의 삶이 딱 여기에서 멈췄으면 결코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 가드너는 그 이후에 '가드너 앤 리치 컴퍼니'라는 굴지의 투자사를 설립하면서 갑부가 되었고 그의 인생역정이 ABC-TV 다큐멘터리 '20/20'에 소개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영화까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가 마침내 찾은 것은 '행복'이었다는 코멘트와 함께.
그가 갑부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인생역정을 보면서 쾌감을 느낄 수 있을까.
그가 갑부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행복을 보며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고 해서 모든 고통이 행복해지거나 하진 않는다. 희망을 놓진 못할망정 사랑하는 가족이 겪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책임을 지는 입장으로선 죽을만큼 괴롭고 힘든 일일 것이다. 저 순간 느끼지 못했던 행복은 크리스가 정직원이 되는 순간 바로 찾아온다. 아들과 지하철 화장실에서 잠을 자거나 노숙자들이 기거하는 곳에서 힘겹게 버텨내던 시절에 꿈꾸던 가장 행복은 최소한의 생활력-매일 월급이 통장에 찍히고 집 월세 걱정하지 않고 아들 생일 날 선물 사주고, 아들이 먹고 싶은 것 지갑걱정 하지 않고 사주는 것, 아내에게 '돈돈돈'이란 잔소리를 듣지 않는 것-일 것이다.
크리스가 제대로 된 번듯한 직업을 갖게 된 후 엄청나게 감격을 하는 이유는 그 동안의 고단한 생활 속에서 (남들은 다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이 느끼지 못하던 '행복'이 자신에게 왔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돈'이 '행복'인가. '돈'이 없으면 '행복'을 느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인가. 물론 돈의 많고 적음에 대해 수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의 삶의 유지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갖게 되는 건 '심리적, 물질적 박탈감'과 '악순환으로 흐릿해지는 미래(희망)'일 것이다. '최소한'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평등'이 진리고, '격차'가 법칙인데 '최소한'을 요구하는 행위는 위법인가.
크리스의 삶에 감동을 받는 건 왜일까. 그가 주식중매인의 자격으로만 평생을 평범(?)하게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건 그다지 큰 행복이 아닌 것일까. 물론 그렇진 않겠지.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극적인 것도 필요하고, 어쩌고저쩌고..하니까 이해는 된다. 다만, 일상으로 현실로 눈을 돌려보면 자신의 '적정한'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남들보다 우월한' 삶 속에서, 현재보다 '더 나은'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어한다.
언젠가 '생활 속 달인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분야에서 최소한 10년 이상 수십년 씩 종사해 온 사람들인데 경제적으론 늘 궁핍해 마지 않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그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달인들이 하는 일을 좇아하진 않을 것이고 그들이 느끼는 행복보다 오히려 크리스가 느끼는 행복을 찾고 싶어할 것이다. 왜일까.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바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회.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해서 주눅드는 사회.
편법을 쓰지 못하면 재능없다고 비난받는 사회.
가진 게 없으면서 평등과 분배를 이야기하면 자격지심 때문이라고 꾸중듣는 사회.
가진 게 많으면서 편법과 불법을 이야기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용인하는 사회.
크리스가 찾은 행복이 일반적인(?) 직장을 얻은 것에서 종료되지 않고(영화에서는 그렇지만)
그 이후에 그가 이룬 부와 명성으로부터 역으로 거슬러 온 행복이란 점에서 자꾸 현실에 눈이 간다.
...영화장면에서 느낀 몇 가지.
크리스 가드너가 첫 면접을 보는 날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은 상태로 면접장소에 나타났다. 면접관들 역시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어떤 이는 악수를 하는 것조차 불쾌하게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한국이랑 비슷할 것이다. (물론 조금 다르다. 한국이라면 면접대기자들을 부르는 직원도 크리스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무시했을 가능성이 많다. 사전에 차단시켰을 지도...)
다음이 중요한데 물론 크리스의 넉살과 면접관 중 한 명(트위슬)과의 사소한 친분도 한 몫을 했지만 면접관들 역시 최대한 면접자의 의견을 듣는데 신중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기회를 준다. 미국도 100% 다 저럴거라고 믿진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의 관용은 열려있지 않나..라고 생각을 해봤다. 특히 크리스의 콧수염을 봐라.
한국이라면 나이먹은 구직자나 젊은 구직자나 수염은 다 밀어야 하고 반드시 양복을 입어야 하며 외형에 관련한 코멘트와 노하우가 하나 가득이지 않나. 직업마다 복장이 다르고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외형에 치중하는 사회 분위기를 보면 머리가 아프다. 외형에 가장 목메다는 직종이 하나 있다. 국회의원.
오른쪽에 보이는 인물이 실제 크리스 가드너라고 하는데 영화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현실과 현실을 투영한 영화 속에서 실존인물과 실존을 대체한 인물이 마주치는 장면을 다시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크리스 가드너 역을 했던 윌 스미스의 친 아들 제이든 스미스 역시 영화 속 크리스 아들 크리스토퍼를 연기하면서 현실과 비현실이 교묘하게 얽힌 영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
2면까지 맞춘 게 내 퍼즐인생의 최고 기록이다. 메뉴얼이라도 구해서 연습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팟 터치 무료 어플 중에 있어서 다운을 받긴 했는데 역시 머리가 아파서 돌려보다 포기. 퍼즐 잘하면 두뇌단련에 도움이 되려나??? 큐빅을 처음 보고 모든 면을 다 맞춰 낸 크리스는 스톡브로커가 되지 않았더라도 무언가 해냈을 인물이 되었을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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