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 홍세화 via 일상다반사 by 후박나무
글을 읽다 몇 가지 기억이 떠올라 적는다.
내가 다니던 대학 앞에는 소위 '대학로'라는 게 있었다. 크지 않은 도시였기에 젊은 대학생들은 대학로 그곳에서 대부분의 일과를 보내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대학 근처에 가면 크고 작은 서점이 곳곳에 있었고 전통 주점과 당구장, (비디오를 볼 수 있는) 다방 그리고 비교적 촌티나는 상점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 시대가 급변했고 대학로 역시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당구장은 PC방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가격을 점점 인하하더니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고 속칭 비디오 다방(커피숍)은 최신 시설을 구비한 비디오방으로 변해갔다. 촌티나는 상점들은 인테리어에 상당히 공격적인 투자를 하며 자리를 잡아갔고 전통주점은 '인동초'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사라졌다.
사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가끔 들렸던 서점이 점차 눈에 띄지 않더니 어느샌가 시험준비를 위한 서점을 제외하고는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었다.
즈음, 마지막까지 남아서 인문학 서적을 팔던 서점이 한 군데 있었는데 서점 주인아저씨(기억으로는 형님뻘)는 소아마비였다. 한쪽 다리가 유난히 가늘었던 데다가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있어 기억이 선하다. 약간은 차갑지만 온화한 기운이 흐르던 주인아저씨는 어느 날 서점을 찾았던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건 말건 관심없는 듯 책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묶고 있었다.
주인아저씨에게 "어? 서점 이제 안 해요?"라고 물었다. 주인아저씨는 다른 날과는 다른 좀 더 엄숙하고 조금은 침통한 표정으로 "네"라고 짧게 답했다. "어.. 여기가 대학로에서 마지막 남은 서점인데... 이제 어디에서 책을 사야 하나..."라고 주인아저씨가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는데 그 때 난 씁쓸하게 가느다란 웃음을 짓던 주인아저씨의 모습을 보았다. 난 그 쓸쓸하고 슬픔이 막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주인아저씨의 표정과 분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 서점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던 날 부터 대학로는 급속히 유흥가로 변해갔던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 대학 교정(캠퍼스)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기타치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어느 누구도 무언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서 소위 '지성의 대학로'는 어느 짧은 시간동안 '무식한 대학로'로 부끄러움 하나도 없이 완벽하게 얼굴을 바꿔버렸다.
그때의 난 (지금도 그렇지만) 철이 없었고 사리분별이 명확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서점이 자취를 감췄다'는 현실에 대해서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대학로'에서 서점이 사라지다니 그 보다 더 큰 충격이 있을까. 서점이 사라진 후의 대학로는 돈을 쓰는 자와 돈을 버는 자 두 부류만 남아 서로 물고 뜯는 일만 가득해지게 되었다.
오색의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대학로의 밤거리는 나름대로 꽤 운치가 있다. 하지만 날이 밝고 아침이 되면 (좀 과장을 하자면) 정신 못차리는 술취한 대학생들과 그들의 틈에 어지럽게 방황하는 고등학생과 젊은이들이 넘쳐났다. 누가 대학로를 그렇게 변하게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니 각자 살길을 찾아,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그때가 아마도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구호가 (지금도 큰 이슈인) '등록금 인하'의 구호로 바뀔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사상과 철학, 이념의 목적이 뚜렷했던 세대가 무언가를 손에 얻어 쥐게 된 후엔 누구도 그 이후에 대해 논의한 바가 없었고 마치 방향잃은 부표처럼 흥청거리진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들어온 '새내기'들은 '4.3 추모집회'를 하던 '5.18 추모집회'를 하던 이젠 철지난 이슈와 이념으로 치부하며 함께 어깨걸기를 꺼려했고 대신에 '돈'을 들여 몸치장을 하고 '돈'을 쓰며 몸에 알코올을 붓고 사랑을 나누고 젊음을 탕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방향잃은 부표, 386세대들은 지금 정치를,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을 텐데 그들이 원하던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는 문열이만 하고서 모두 함께 '먹고 사는' 문제로 가열차게 걸음을 옮겨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 (여러가지 이유와 원인들이 있겠지만) 대학로에 서점은 사라지고 책은 잃지 않는 대학생만 넘쳐나게 되지 않았나 싶다.
홍세화씨가 말한 '무식한 대학생'이란 말은 옳다. 하지만 대학생만 무식한 게 아니다. (물론 나를 포함해) 수 많은 성인(成人)들이 무식하다. 역사적 사실을 줄줄 꿰고 있다고 해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해서, 수 많은 고전들을 읽었다고 해서 유식한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성인들은 무식하다.
하지만 홍세화씨가 대학생을 지칭해 무식하다며 깨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엔 충분히 공감한다. 근래에 개인적으로 내린 작은 결론, 세상의 수 많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학생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난 꼭 학벌에 속하는 '대학생'만을 지칭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젊은이들 중 열에 아홉은 대학생이라고 해도 무방하니 꼭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홍세화씨의 외침에, 질문에 반응을 보일 대학생들이 많은가라고 반문해보면 개인적으론 무척 비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일은 아니지만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이런 생각들을 종합해보면 역시 대학생이 변하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 한 줌은 있다는 것이다.
홍세화씨의 글을 읽으며 나의 '무식'을 비수로 찌르는 듯 해서 아프고 비참했다. 무식해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나의 유식은 금새 밑천을 드러내기 마련이라 스스로가 무식하지 않다고 항변할 수도 없다. 그래서 빨리 유식해지지 못할 바에야 스스로의 무식함을 절절히 곱씹어보고자 기억의 편린들과 몇 가지 생각을 두서없이 기록한다. 적어도 스스로 유식하다며 '자존자대'하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 링크 걸린 글 내용 중 '그대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는 그대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대가 선택당한 것이다'라는 말을 곱씹게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소신지원해서 간 대학'이 사실은 '대학들의 (줄세우기로 인한) 비열한 선택의 결과'임을 인정한다면 이 나라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괴한 시스템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대학생들이 '무식의 굴레'를 벗어던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