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식.
형을 만난 것은 내 나이 스물 넷에 한국을 떠나 꼬박 열 몇 시간을 비행기로 날아 도착한 <인도>에서 한 달 후 즈음 한국으로 돌아오긴 전 머물렀던 <캘커타>에서 였다. 처음 발을 디딘 외국이라는 낯선 곳. 그것도 배낭여행에 가장 마지막 코스라고 불리던 인도. 온 몸이 삐쭉삐쭉 긴장이 서고 늘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것도 잠시. 일주일 후부터는 이방인으로 누릴 모든 혜택을 다 누리는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대륙을 횡단했었다.
그 여행의 막바지 한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캘커타에서 동식 형을 만났다. 반바지에 신발을 구겨 신고 작은 배낭을 메고 러닝 셔츠같은 옷을 입고 수동 사진기를 손에 든 모습이었다. 발 뒤꿈치는 물집이 잡혀 다 터져있는...어쩌면 정말 배낭여행을 가장한 우리보다 노련한 경험이 묻어보였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행 중에 단 한 번도 한국인을 만나지 못했던 터였고 캘커타에 도착해서 만난 첫 번째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에 반가워하며 기뻐했었다.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과 형이 가고 싶어했던 곳이 일치했기 때문에 난 일행과 헤어지고 형과 함께 몇 군데를 돌아다녔다. 많은 얘기를 했고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형이 찍은 사진을 볼 때는 감동 자체였다. 기능도 별로 없는 작은 수동 카메라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은 삶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 얼굴. 표정이었다. 어떤 사진은 가슴에서 울컥하는 슬픔이 밀려오고 어떤 사진은 한 없는 자유로움에 눈을 감게 되기도 했다.
인도의 금주령을 피해 배낭 여행자에겐 가장 물가가 비싼 항목으로 꼽히는 맥주를 먹기 위해 자리를 옮겨가며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인도에서의 건배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며 폭우가 쏟아진 캘커타의 골목을 무릎이 잠겨가며 걷고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인도에서 동식 형과의 만남은 그렇게 딱 1박 2일이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동식 형은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전화를 하며 지금까지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벌써 10년 시간인가? 96년 그 해 인도에서 돌아온 형은 "마지막 여행"이라는 책을 출판했고 황송하게도 내 이름이 몇 번 등장한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책 "제주도"도 발간했고 월간 PAPER 등 많은 곳에서 형의 글고 사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형의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고 특히 사진은 사람의 깊이를 담아내는 진심이 있다. 스스로 사진 찍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인생을 배워가고 살아가고 견뎌내면 그런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완성해가는 방식으로 형의 글과 사진은 참 애정깊다. 사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관계를 어루만지는 따스함이 있다.
그런 형이 이번에 사진 전시를 한단다. 전시를 하는 속마음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바빠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형의 홈페이지에 가보니 사진도 판매 한다하고 사인도 해준다 한다. 가격이 참 착하다고 한다. 형이 칭찬한 함께 전시하는 화덕현이란 분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이 궁금해진다.
새삼스럽게 문득 인도가 가고 싶어진다.
인도 언저리에 있는 티벳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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