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0일 목요일

모두 끝났다...지만,

보통은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휴식을 취하곤 하는데 오늘은 어느 곳으로 채널을 돌려도 계속 이명박 당선자의 얼굴 뿐이다. 그의 웃음과 그 주변의 환호성들은 기분을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내가 아주 어리숙했을 무렵(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이 되었을 때 그 다음날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도 고요했고 일상에 변화는 없었다. 그렇게 10여년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말도 안되는 논리와 말도 안되는 자격을 가지고 등장한 한 대선 후보가 투표한 국민의 50% 가까이 되는 지지를 받으며 덜컥 대통령직에 당선이 되어버렸다. 내일 곧 대한민국이 붕괴되고 망할 것 같은 느낌이겠지만 이명박을 원하지 않았던 개개인의 속은 타들어가고 공허한 마음은 좀 오래 후유증을 가질지언정 세상은 10여년 전 그때와 변함없이 고요할테고 일상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조금 지나보면 조금씩 피부로, 생활로 느껴지는 변화가 있긴 하겠지만 내일 당장은 어제와 다름없이 해가 뜰 것이다.

견딜 수 없는 건 비상식적, 비정상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의 환호와 그에 달라붙는 수 많은 매체, 군중들의 환한 모습을 본다는 것일테다. 한국에서 진보세력이 제대로 등장이나 한 적이 있었던가. 한국에서 이념의 대결이라고 할 만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면 이 답답한 가슴은 그걸 모르고 살아왔던 자신의 무지함, 무력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거나 알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몸부림없이 살았던 것에 대한 댓가일지도 모르겠다.

이젠 호흡도 좀 길게 가고 시선도 좀 더 멀리 맞추고 의연하게 가슴도 좀 펴야 병치레없이 살 수 있을테다. 이 비참한 결과를 진보세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이들의 탓으로 돌려도 큰 상관은 없겠지만 그보다는 스스로가 좀 더 날 선 비판과 비평의 심지를 가지고 성찰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자꾸 자기합리화로 '쿨한 척'은 말아야지.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국민들은 "합리적 바보"가 되었는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 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모습이다. 언론매체는 10년만의 정권교체, 실용의 승리 경제의 승리라는 보도를 쏟아낸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BBK문제를 포함해서 도덕성의 문제를 다루던 언론매체들은 이명박의 당선가능성과 함께 철저히 이명박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중 SBS의 선거방송은 보기 역거울 정도로 이명박을 추켜 세우는 모습이었다. 이번 대선은 결국 '경제'가 BBK에 대한 의혹을 덮어버린 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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