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0일 수요일

대한민국 검찰이 무서운 이유

PD수첩의 무죄선고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한바탕 소동을 치루고서도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PD수첩에 대한 고소/고발, 음해로 시끄러웠던 기억보다 무죄에 대한 기억을 갖게 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것이다.

 

언론에 대한 검찰의 무작위 고소/고발 폐해에 대한 좋은 선례가 남겨졌고 언론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재판까지 가는 상황에서 한쪽은 이득을 얻고 한쪽은 손해를 입는 법이다.

 

법은 좋은 편, 나쁜 편이 없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과 같다. 그래서 힘이 있건 없건, 권력의 편에 섰건 등을 졌건, 빽이 있건 없건 법 앞에서는 평등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의 칼을 이용함에 있어 '사견'이 끼어들거나 '집단의 카르텔'이 작용하면 양날의 칼은 한쪽만 날이 선 반쪽짜리 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법을 안다는 자들, 집행하는 자들이 이 법의 칼을 사용할 때는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한 용도로, 타인의 공적을 깍아내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일반인들이라면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정부관계자와 검찰은 아무렇지도 않게 언론을, 시민단체를, 국민을 법으로 희롱하고 농락한다. 모든 일들이 사필귀정으로 끝을 맺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법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고 혹여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후다. 타격은 입을 대로 다 입고 손해는 손해대로 다 입고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고 난 후다. 그렇게 일련의 소동들이 잠잠해지고 난 후 '해명'을 한다 해도 애초 사건이 벌어질 때와는 전혀 다르게 대다수의 매체들은 '몇 줄의 기사'로 보도할 뿐이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해명'은 존재하지도 않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사건의 발단과 진행은 기억하되 결말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 많은 비리 정치인들이 4년이 지나고 나면 다시 국민의 손에 선출되곤 한다. 수 많은 비리 공직자들이 솜털보다 가벼운 징계를 먹고서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대한민국에서 법과 가장 가까운,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들은 과연 국민들과 함께 법 앞에 평등한지, 법 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뜻대로 사실은 은폐되고 왜곡될 것이며 그들의 의도대로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기소요건조차 성립되지 않을 일들이 기소가 되고 상식으로도 판단될 문제들이 재판정에 서야 하는 건 그들의 법을 엄중히 다뤄서가 아니라 법을 제 입맛대로 다루려고 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자들은 '정부'도, '당'도, '재벌'도 아니다. 치외법권에서 살고 있는, 국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제 맘대로 휘두르며 법을 업수이 여기는 '검찰'이다. 그들이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현재와 같이 언론을 대하고 국민들을 대했다면 그냥 '박쥐'와 같은 존재라며 헛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아니, 일말의 희망을 품었을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그 편에 설테니까.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소위 말하는 오른쪽, 수구의 편에 서서만 말하고 행동하고 기소하며 심판하려 든다. 변함없는 편향성, 그들은 변할 줄을 모른다. 무섭다.

 

PD수첩의 무죄 판결에 대해서 여전히 할 말이 많은 검찰이다. 하지만 그들의 반론을 읽어보면 그들이 대한민국 검찰인지 미국 검찰의 한국지사인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으며 그들의 억지는 또다시 법 위에 서서 물을 흐리려고 하는 수작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한민국 검찰이 부끄럽지만 무섭기도 하다.

 

양심있는 검찰들의 일대 반란, 혁명을 기대한다는 건 꿈일 뿐일까.

이혁재 폭행사건이 심각한 이유

개인적으로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갖고 사사건건 발언을 하는 세태에 대해 관심도 없을 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연예인은 청소년들이 매체를 통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접하고 싶은 대상이란 점에서 타인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면 '일부분' 수긍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연예인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선택, 행동 등에 대해 '마녀사냥'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연예인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중들이 일희일비하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건만 '이혁재 폭행사건'에 대해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유는 딱 한가지다. 이혁재가 '조폭을 대동'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폭행사건이라고 볼 수가 없다. 만약 술에 취해 종업원을 때리거나 했다면 이혁재의 주사가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별 관심도 없다. 그런데 '조폭'과 함께 찾아가 폭행을 했다면 이건 무척 심각한 일이다.

 

조폭은 그야말로 사회에 기생하는 존재다. 그들은 불로소득으로 연명하고 사람을 폭행하고 협박하고 때론 살인까지 저지르며 살아간다. 일반인들에게 그들은 영화나 개그의 소재가 아니라 끔찍하고 두려운 존재일 뿐이다. 조폭관련 영화가 양산되고 조폭관련 개그가 쏟아져 나오니 사람들은 조폭이 단지 추상적인 존재 또는 현실과 괴리된 존재로 인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조폭은 절대 일반인과 함께 존재해서는 안될 부류다. 어느 나라에나 이런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들이 일반인의 세계로 넘어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사채로 인해, 건설-유흥업소 사업권 다툼때문에, 신도시-뉴타운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민 주거지 철거현장에서, 도박현장에서, 그들과 잘못된 결혼생활이 진행되는 가정 내에서 조폭들에게 맞고 죽임을 당하며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폭'이란 존재가 그저 웃음으로 넘길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개그 프로그램에 조폭 소재로 웃기려는 사람들이 달갑지 않다. 조폭을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역할도 하지 못한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서 조폭은 버젓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기생하며 일반인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고 사는 흡혈인간들이지만 그들을 다루고 대하는 방식은 미화(美化)일색인 경우가 많다. 연예인과 조폭이 오늘의 일 뿐만은 아닌 걸로 알고 있지만 절대로 일반인의 세계로 넘어와서는 안된다. 이번 사태의 경중을 제대로 생각해 본다면 이혁재는 본인의 취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혁재 뿐만이 아니다. 개그맨 김준호도 TV에서 걸핏하면 아는 '조폭 형님'을 거들먹 거리며 개그 소재로 삼고 있다. 많은 연예인들이 밤무대에서 활동하는 걸 생각하면 조폭과 형님동생 하는 연예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획사 사장 중에도 꽤 될 거고 매니저 중에도 꽤 될 것이다. 대한민국 운동선수-특히 과거 운동선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잘 나가는 K모씨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스스로 잘 컨트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이 그렇다며 변명하는 것조차 안 된다. 만약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거나 청산할 수 없다면 스스로가 '연예인'의 굴레를 벗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그 어떤 이유와 변명을 하더라도 조폭을 대동한 이혁재 폭행사건은 심각하고 우려스럽다.

2010년 1월 16일 토요일

아이티의 비극

flickr ccl image

 

'아이티(Haiti)'의 비극. 지진 7.0의 강도(强度)도 문제지만 극빈국이었기 때문에 참사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아이티 국민들의 가족을 잃은 울부짖음과 집과 삶의 터전을 잃어 망연자실한 표정들은 가슴을 메어지게 한다. 그들의 아픔에 위로를 보낸다.

 

전에 MBC '세계와 나 W'에서 소개된 아이티는 아이들이 진흙쿠키를 먹으며 연명한다거나 정치가 불안정하다거나 벌목으로 황폐화되고 있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진까지 발생했으니 사망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건 뻔한 일이다. 국가시스템은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하고 사회 시스템 및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하게 되는 자연재해/재난은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아이티는 왜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아이티를 통치하는 자들의 어리석음도 있겠지만 그들의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경제대국들이 더 문제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미끼삼아 빈국의 지도층을 구워삶아 매수하고 그들이 가진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원하는 대로 부려쓰고 약탈하는 게 문제다. 내정불간섭이라는 원칙은 고수하지만 경제력으로 빈틈이 보이는 나라는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만약 대한민국이나 그에 반하는 경제능력을 가진 나라가 아이티와 같은 지진-자연재해를 마주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아이티와 같은 처참한 상황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확산되고 심해지진 않을 것이다. 빈곤은 빈곤을 낳고 빈곤은 악순환을 거듭한다.

 

조속히 해결되기 어려운 아이티의 비극을 보며 문제의 원인을 다시 생각해 본다. 왜 아이티는 극빈의 나라가 되었는가. 그들의 노동력과 그들의 자원은 왜 정당한 가치로 환원되지 못하는가. 그들이 하루 10시간을 노동해서 손에 쥐는 돈과 우리가 하루 10시간을 노동해서 손에 쥐는 돈의 무게와 가치는 왜 엄청난 간극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세상의 불균형과 빈곤의 확대는 경제력을 무기로, 자본을 흉기로 사용하는 나라들의 문제겠지만 그런 나라들의 국제깡패같은 행위를 조장하게 하는 건 나라의 정치인들과 그 지도자를 뽑은 그 나라 국민들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먼 이웃나라 아이티, 먼 이웃나라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 그 외 강대국의 경제논리에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많은 나라의 국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눠야 하는 이유다.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티가 어서 고통에서 벗어나길, 아픈 상처가 조속히 치유되길 염원한다. 더불어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아이티에 진흙쿠키가 사라졌으면, 그들의 노동이 정당한 가치로 환원되기를 바라본다.

2010년 1월 15일 금요일

셀마의 단백질 커피 DVD 출시!

 
<셀마의 단백질 커피>가 드디어 DVD로 출시되었습니다. 김운기(원티드), 연상호(사랑은 단백질), 장형윤(무림일검의 사생활) 세 감독의 중편 애니메이션을 묶어 옴니버스로 극장 개봉을 했었는데 Special Features(메이킹 및 스토리보드, 원동화 테스트 등) 및 감독 코멘터리를 추가하여 DVD로 출시했습니다. 제가 참여한 작품은 <사랑은 단백질>입니다.
 
교보문고Yes24에서 구매 가능하군요.

 

제품 소개 및 내용 보기


 
부가영상 중에 이스트에그(본편)은 자막이 올라갈 때 오른쪽 하단에 커피잔 모양같은 게 잠깐 나타나는 데 그걸 선택하면 원동화 테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너무 빠른 시간에 흘러가니 찾아낼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찾아서 보는 재미가 있으니까요. Special Features에 들어있는 인터뷰가 썩 맘에 들게 녹화된 게 아니라서 아쉽지만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니 좋은 경험과 추억으로 남겨야겠지요.

2008년에 공개된 작품이니 벌써 2년이나 지났군요. 개봉 후 약 1년 반 정도가 지나서 DVD가 나왔습니다. 시간 정말 빠릅니다.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판타지 드라마 히어로

'히어로'가 막을 내렸다. 현 시대와 맞물려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너무 노골적이어서 좀 낯 뜨거운 점도 있었지만 오히려 통쾌한 점도 있었고 정공법으로 밀고 나갔다. 상징적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은유와 직설적 화법들이 가득 찬 드라마였지만 가슴 뜨거워지는 몇 몇 장면들과 말하고자 한 바를 놓치지 않고 말하는 착한 드라마였다.

히어로가 판타지 드라마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최종회 마지막 자막 때문이었다. 마지막 용덕일보로 사용되던 집이 보여지다가 용덕일보 간판이 사라지면서 자막이 떴다.

"용덕일보를 찾습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 언론, 기자, 정의를 가진 용덕일보. 그 자막 때문에 여태까지 드라마를 통해 봤던 내용들이 일장춘몽처럼 느껴졌고 문득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히어로가 판타지로 느껴지는 슬픈 현실.

물론 정의로운 지방의 작은 신문사도 있을 것이고 주류 언론들 속에 진정한 기자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기자들도 있을 것이다. 꾸준히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는 소수의 참언론 종사자들이 있지만 그 힘이 너무 미약해서 보이지 않는 것 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덕일보가 더더욱 판타지처럼 느껴지는게 아닌가 싶다.

히어로의 마지막 자막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진정한 언론을 찾습니다"거나 "진정한 언론 만들기에 동참합시다" 정도가 아닐까. '양심'이 명(命)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참언론, 진짜기자.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되건 되지 않건 사회, 국가라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필요한 존재들이다.


아바타 기술력은 2000억 원?

9시 뉴스를 보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아바타'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도 미국 CG기술의 90%까지 따라잡을 수 있도록 정부가 2000억 원을 지원한단다.(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는 CG산업 육성에 2013년까지 총 2천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저 얘기가 왜 안나오나 싶었다.

문득 '쥬라기 공원'이 흥행을 하고 있을 때 흘러나오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쥬라기 공원'의 흥행수익이 자동차 몇 십만대, 몇 백만대 수출효과와 맞먹는다느니 '쥬라기 공원'같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손을 걷어부치고 달려들었다는 이야기들.

영화 뿐만이 아니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였다. 꿈에 부푼 장미빛 미래들을 거론하며 헐리우드에 버금가는 영화와 애니메이션 제작만이 미래의 희망인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눈 먼 돈들은 쏟아졌고 누군가는 그 돈으로 몇 년을 넉넉히 먹고 살았고 누군가는 돈 냄새도 맡지 못하고 제작 현장을 떠나갔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이 낸 세금은 그 누구도 모르게 여기저기에서 소모되었고 허공에 뜬 채 사라졌다.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영화/애니메이션은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만 생각한다. 정말 2000억 원만 투자하면 몇 년 사이에 미국 CG기술의 90%를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인가. 가까운 일본과 중국은 2000억 원을 투자 못해서 CG기술이 헐리우드만 못한가.

한국의 기술력이 많이 발전했다는 건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애니메이션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방법이 글러먹었다. 9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 동안 지원방식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냥 돈을 가져다가 쏟아 붓는 거다. 누구 좋으라고?

2000억 원이 아니라 2조 원을 들이 부어도 지금과 같은 투자/양성 방식이라면 희망을 품기 어렵다. 시간이 약이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것은 이 나라 위정자들에겐 공염불에 불과한 이야기일 뿐이다.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개새끼

개는 먹을 걸 주면서 길들일 수 있다.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리면 된다. 심하게 맞아 본 개는 때린 사람의 무서움을 기억한다. 먹을 것과 채찍을 병행하면 개들은 충분히 길들일 수 있다. 말을 잘 들으면 먹이를 던져주고 잘못하면 때린다. 아주 단순한 행위의 반복이지만 시간이 오래될 수록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충성스러운 개가 된다.

내 맘에 들지 않으면 짖고 물어 뜯다가도 조금만 잘해주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꼬리를 흔들어 대는 건 개들의 전매특허다. 경기(經氣)가 조금만 좋지 않으면 아우성을 보내고 내가 살고 있던 집 가격이 치솟으면 환호를 보낸다. 정작 변화가 필요한 곳, 정작 개선이 필요한 곳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 건 왜일까. 잘못한 건 잘못한 것이고 개선해야 할 것은 개선해야 한다. 잘잘못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당장 눈 앞의 '내 이익'에만 쌍심지를 켜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은 정부가, 권력이 아주 좋아하는 조련 대상일 뿐이다. 가령 세종시 원안에 찬성을 하던 사람이 수정 안이 나오면 반대를 하다가 수정안이 자신이 유리한 쪽인 것 같으면 다시 찬성으로 돌아선다. 이 뿐인가. 좋아하는 정부, 지도자건 싫어하는 정부, 지도자건 잘하는 일이 있고 못하는 일이 있는 건 당연하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대한 살핌과 통찰없이 그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일희일비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지조없는 이들의 양심엔 털이 수북하게 날 거다.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이 난다'는 말은 진실이다.

개가 되느냐, 사람이 되느냐를 선택하는 건 약간의 불편함이 수반될 뿐 어려운 결정은 아니다.


와불(臥佛)이 일어나 활불(活佛)이 되셔야지.

"그래, 이젠 와불(臥佛)이 일어나 활불(活佛)이 되셔야지"

늘 긴장과 초조로 안절부절 못하는 건 나의 실천력, 취사력 태만 때문이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판단은 보류하고라도 나은 방향으로의 확고한 행동조차 여전히 타인의 시선 속에 갇혀 방황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잠을 자고 있는 와불에게 일침을 가해 수염에 불 붙은 듯 바쁘게,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십 수년 전 어느 날, 내게 던졌던 말. 

불성(佛性)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 영성과도 같고 천주(天主)와도 같다. 누워있는 와불이 일어서 육근(六根)을 움직이면 활불이 된다. 종교, 철학, 예술, 교육, 사회운동, 정치 등 인간세상 모든 방면에서 그 참맛을 알기 전에는 누워있는 와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활불이 된다는 건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들이 사회와 함께 어우러지고 부딪히며 신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육근을 움직일 때마다 나와 너가 둘이 아니어야 한다. 나의 손짓, 발짓, 몸짓, 마음짓이 세상과 소통하며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깊은 잠에서 깨지 못하는, 피곤에 스러진 와불일 수 밖에 없다.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서문(序文)

서문(序文)

닫힌 가슴 열고 졸린 정신 깨워 나태한 육근 매질하여
범부의 산 정상에 오르고 보면 확연히 보인다.
미욱한 안개 걷히면 내 살던 동리, 손바닥마냥 훤히 보이듯
그렇게 마음의 파란만장이 더욱 확연히 보일 뿐이다.
깨어있기. 와불이든 입불(立佛)이든 깨어만 있으면
잦은 걸음 조급치 않고 큰 걸음 성기지 않으니 그게 바로 낙(樂)수용.
정상에 서서 보니 정상(頂上)이 어디고 평지(平地)가 어딘가.
이제라도 알았으면 시선 멀리 두고 가기만 함세.



십사,오년 전 어렴풋한 그 때.

2010년 1월 10일 일요일

봄을 사다.

매춘(買春)

쨍한 볕 아래 꼭꼭 숨겨둔 욕정이 고개를 치민다.
그러지 않으리,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모른다.
무늬가 화려한 샛노란 나비에도 맥을 못추고
금새 자위를 시작해 발갛게 몸을 달군다. 욕정은.
솜털도 옆으로 뉘이지 못할 미풍에도 식어버릴 발정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흙내음에 취해 바지춤을 내린 건
숫제 해결할 수도 없는 욕망을 좀체 버리지 못해서다.
덜어낼 수도 없어 가슴 언저리에 바짝 매달린 젊음은
기억도 할 수 없이, 수 많은 봄하늘에 뿌려댄 욕정으로
딱딱하게 말라 밤꽃냄새도 나지 않게 되면
다신 그러지 않으리 다짐을 한다. 하지만.






95년 봄 즈음 남긴 몇 줄에 첨삭.

2010년 1월 9일 토요일

낙서

말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그립다.
온 몸 가득 사람이 그리우면
그리워서 착해진다.
날 일으켜 달라 투정부리는 내가
꼭 애 같다.





기억도 없는 오래 전, 노트의 낙서.

2010년 1월 8일 금요일

소문

 

갑자기 '김연아 소문'이란 검색어가 보였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내 블로그에도 이 정도로 들어오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검색을 하고 있다는 뜻일 거다.(내 블로그 글은 "김연아, 소문, 무료배송, 대마초, 서경석, 외국어, 미국, 종부세, 선진국, 후진국"인데 모두 낚인 거다.-_-;)

 

무슨 내용인지 기사를 봤더니 "일본의 압력에 의해 4대륙대회에 출전한다"는 요지의 내용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25일 앞두고 컨디션 조절을 해야해서 불참을 원했는데 일본의 압력과 강요로 인해 출전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기사를 읽으면서 김연아 선수는 인터넷을 자주 하는 것 같던데 이런 기사를 읽으면 어떤 마음이 생길지 궁금했다. 혹 이런 기사들이 김연아의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유명해지는 만큼 루머도 많아지고 유명세에 시달린다고는 하지만 대놓고 '소문'이라는 기사가 너무 많다.

 

'소문'의 진원지는 어디의 누구일까. 혹은 그 '소문'을 확대, 재생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만약 그 소문이 단지 소문일 뿐이라면 소문에 대한 '주의'와 '경고'의 메시지도 함께 돌아다녀야 할텐데 '소문'은 '진실'이 되거나 진실이 아닌 소문은 그냥 연기처럼 사라질 뿐이다. 한 번 전파되기 시작한 '소문'은 사람들에 의해 키워지고 부풀려져서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거대한 괴물이 되곤 한다.

 

소문은 소문 자체로 전파되기도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처럼 진실을 품어안고 소문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는 진실을 진실대로 말하지 못할 경우에 자주 일어난다. 마지막 하나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소문이 탄생되는 것이다. 추악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완전히 다른 내용의 소문을 퍼트리면서 진실을 감추는 것이다.

 

매체와 기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문(이슈 또는 '~설')'를 만든다. 사람들은 '소문'을 쫓고 소문을 쫓는 사람들에 의해 때론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도 하고 반드시 처벌되어야 할 범죄자들이 몸을 숨긴다. 소문 그 자체로 피해(또는 이득)를 보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가 계속 소문을 확대재생산하기 때문에 피해(이익)를 보는 것이다.

 

수 많은 검색어가 난무하고 실시간 검색어가 중요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밀물처럼 몰려드는 정보들에 '부회뇌동(附和雷同)'해서는 안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전한 사실로 증명되지 않은 정보들에 대해서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여유도 필요할 것이다. 특히 기사들의 행간(行間)을 읽는 법을 키워야 한다. 행간에 보이지 않는 활자로 적힌 내용은 기사 전체를 다시 읽을 수 있는 묘미를 주기도 하고 '진실'을 전하는 '키(key)'가 된다.

 

죽도록 미워하면 닮아간다고 했던가. 찌라시 기자들, 양심없는 기자들이 써내는 기사와 사이비 언론들이 쏟아내는 정보에 날 선 비판을 하던 사람들이 스스로가 '기사'를 생산해 내는 위치를 갖게 되면서 그들과 닮아가는 꼴을 보게 된다. 일반인들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정보'와 '소문'을 받아들이는 피동적 위치에서 '소문'과 '정보'를 능동적으로 생산해 내는 위치가 된 것이다. 자신의 손가락을 통해, 키보들 통해 써진 글들이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때 느껴지는 쾌감이나 달콤함의 유혹은 떨쳐내기 힘들다. '기자윤리'를 강요하던 시대에서 '네티즌윤리'가 중요해진 시대로 바뀐 것이다.

 

누군가가 맛있는 뼈다귀를 던져주길 기다렸다가 눈 앞에 떨어진 뼈다귀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개가 되기 보다는 스스로의 입맛과 취향에 맞는, 스스로가 원하는 양질의 음식을 찾기 위해 'explore'하는 '사람'이 되는 게 더 낫다.

2010년 1월 7일 목요일

사진 현상소의 이해 안되는 상술

당장 사용해야 할 여권사진이 필요했다. 

예전에 포토프린터로 출력해놓은 게 있어 찾아봤는데 
이리저리 온통 뒤져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프린트를 하면 되는데 마침 프린터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 

문득 **마트 출입구 쪽에 현상소가 있는 걸 떠올렸다. 
컴퓨터를 뒤져 예전에 여권사진을 포토샵으로 편집해 8장으로 만들어 놓은 파일을 찾아냈다. 
(뭐, 자료정리야 잘 해두는 편이니 찾는 건 몇 번의 마우스 클릭이면 끝...-_-a)

usb 메모리카드에 고이 담아 **마트 현상소로 갔다. 
매대 앞에는 터치스크린으로 된 세 대 정도의 셀프현상 기기가 놓여있었다. 

장당 250원! 

오호라! 이렇게 싼 걸... 괜히 사진 찾는다고 난리법석을 피웠네.
기계가 메모리카드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엉거주춤 서성이니 주인이 다가온다.

"뭐, 도와드릴까요?"

"네, usb인식을 잘 못하는 것 같네요"

주인 아주머니가 톡, 톡, 톡 몇 번 건드리니 바로 인식을 한다. 역시.

"어떤 사진을 출력하시려구요?"

"아, 네, 바로 그거... *****.jpg로 된 거요..."

하지만 아주머니가 사진 미리보기를 보더니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말한다.

"이 사진은 안되거든요. 증명사진은 장당 250원이 아니구요. 증명사진 8장으로 묶여져 있으면 현상비가 7400원입니다."

"네?.... 아니...왜... 어떻게...그런... 허....이런...."

"요즘은 개인적으로 편집을 해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증명사진을 이렇게 250원 내고 뽑아가고 그러면 저희 장사하는데 지장이 많거든요. 그래서 직접 사진을 촬영하고 현상을 하던 편집해 온 사진을 현상하던 같은 가격으로 출력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아...네... 음...."

출력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뭘 골똘히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려 오던 중에 집 앞에도 자그마한 현상소가 있음을 생각해냈다.

"저기, 사진 출력 좀 하려구요"

주인 아저씨가 나와 usb를 건네받고 사진을 확인하더니

"무조건 장당 3000원입니다. 요즘은 일반인들도 포토샵들을 잘해서 편집을 어쩌고 저쩌고.."

"아, 알겠습니다. 출력해주시죠"

"손님은 그래도 한 번에 이해를 해주시네요. 어떤 분들은 화를 내시기도 하고 기분 나빠하시거든요...어쩌고 저쩌고.."

"네, 빨리 출력해주세요"

먼저 갔던 **마트 현상소보다는 쌌지만 3000원도 그다지 적당한 가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먼저 갔던 곳에서 가격을 들어서 그런지 '비교가격'이 무척 싼 느낌도 있었고 3000원이면 집에서 프린터 다시 연결하며 씨름하고 이런저런 복잡한 일들을 하는 비용과 대충 맞을 것 같아 출력을 하기로 결정했다.

몇 가지 생각이 든다.

1. 증명사진(여권, 명함판, 반명함판 등등)을 촬영해서 출력하는 비용의 원가는 얼마일까.(사진관마다 가격차이가 큰 편이다)

2. 터치스크린 달린 (컴퓨터 모양의) 기계로 출력하는 건 장당 250원인데 기준은 뭘까. (두 군데 밖에 가격을 보지 않았으니 평균가격은 아닐 듯)

3. 증명사진을 출력하는 것과 일반사진을 출력하는 비용을 굳이 따로 받아야 하는 사진관의 명확한 이유는 뭘까.

예전에는 개인이 사진기를 보유한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니 사진관에 가서 '설정된 사진'도 찍고 증명사진도 반드시 사진관에 가야만 찍을 수 있었다. 그 때는 사진기를 보유한 것이 '특수한 경우'에 속했고 소위 말하는 '전문가'였다. 신혼여행지나 관광지에서 사진기를 목에 걸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들고 다니며 대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봤었다. 비싸긴 했지만 여행자의 손에는 사진기가 없었으니 그들의 사진기를 빌어 '기념'을 남기는 것에 그다지 인색하지 않았다.

시대가 달라졌다. 한 집 안에 최소 1대 이상의 사진기가 있고 요즘 젊은이들은 '포토샵'은 기본이며 포토프린트 기능이 있는 프린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게다가 사진 역시 아날로그 필름 방식이 아닌 디지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관에서도 여러가지 비용문제의 고려로 인해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한다. 시대가 이렇게 변했으니 사진관에 와서 출력을 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단 적을 것이다. 그래서 앨범, 사진달력, 사진 블라인드 등 여러 제품을 제작하며 수입에 보태고 있는 것이다.

사진관 혹은 현상소는 어떻게 해서 시대의 흐름에 맞게 대처해야 할까. 오히려 포토 프린트로는 따라갈 수 없는 품질 또는 크기의 사진 출력을 해서 누구나 사진을 출력하고 싶게 해도 될 것이고 디지털 카메라 사용은 할 줄 알되 사진 출력 등을 잘 못하는 혹은 하지 않는 잠재된 고객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면 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런데 증명사진 출력이 자신들의 수입에 지장을 준다며 장당 250원씩 하는 걸 적게는 10배에서 30배의 금액을 지불하라고 하다니 참 이해가 안된다. 차라리 증명사진 한 개당 250원씩 받는다면 사진 크기가 작으므로 4X6사이즈에 8장 정도 들어가니 250X8,  2000원 정도 받으면 될 것 아닌가.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면 700-800원 정도면 가능하지만 밖에서 먹으면 3-4,000원 하는 이유는 그들이 대신 물을 끓이고 라면을 풀어 넣고 반찬과 함께 내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겆이까지 해주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적정가격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도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증명사진은 10배, 30배를 받아야 한다"라고 하니...

사실,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 그들의 설명과 상술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