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보다 어딘가에 Anywhere but here
감독 :: 웨인 왕
주연 :: 수잔 서랜든(아델), 나탈리 포트만(앤), 레이 베이커
모녀지간이던 부자지간이던 혹은 모자, 부녀지간이던 모두 부모자식간이라는 큰 틀에서는 감정의 흐름과 막힘이 일단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같은 성별의 묶임이 될 경우에는 좀 더 디테일하고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겠지. 자신의 처지를 대조해가며 뒤돌아보며 한 발자욱 더 들어가 생각을 하게 되겠지.
보는 내내 두 사람은 같은 모습이면서 다른 모습이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델.은 앤.보다 겉으로 보기에는 천방지축이고 자기 멋대로지만 그건 자신이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약해지고 자신도 지탱하기 힘든 삶을 이겨내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앤.은 늘 신중하게 행동하길 원하고 큰 변화에 두려움을 느껴도 내색하지 않지만 그건 자신이 어른으로 대접받고 싶어하는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감추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 느껴졌다. 즉 아델.의 겉모습은 앤.의 속모습과 닮아있고 앤.의 겉모습은 아델.의 속모습과 닮아있다고 느끼면 지나친걸까?
모녀간의 갈등, 전개 뒤에 나름의 해피엔딩은 익숙한 이야기지만 그 흐름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만족한다. 여자가 아니라서 좀 더 밀접한 관계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성장해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모녀가 함께 성장해가는 성장영화. 어쩌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늙어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삶을 돌아보고 미래에 도전하며 이겨내고 나아가면서 평생을 성장해가는 것은 사람의 운명일 것이다. 그게 작은 일이던 큰 일이던 간에.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경험에 익숙해지고 삶에 익숙하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만 그 익숙함으로 인해 도전해 볼만한 일도 미리 판단해서 포기하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던가, 그 익숙함이 드러나면서 자신의 고집이 강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문제다. 사춘기 때는 그 나름의 방황과 고민으로 인해 자신의 고집이 강해지고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는 일도 잦다. 그러고보면 때론 사춘기 시절 그 어릴적 생각과 행동의 범위가 넓어져서 어른이 되었다는 것 뿐 실수하고 반복되는 삶은 크게 다르지 않나 싶기도 하다.
모녀지간이 부녀지간보다 좀 더 색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어머니는 딸에게 의지도 하고 때론 친구의 감정도 종종 느끼는 것 같다. 여성으로써의 공감대는 나이를 상관하지 않게 되는 힘인가? 이 영화도 역시 그렇다. 또 이 영화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 있으면 좀 좋고 없어도 그리 불편하지 않은 존재 정도랄까?
...앤.이 영화 오디션 장에 가서 아델.의 흉내를 내는 장면은 약간 작위적인 냄새가 나긴 했지만 감독의 의중은 충분히 이해를 했다. 자식은 부모를 닮아간다는 것. 그 닮아가는 속에서 때론 거부하고 반항하며 때론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해 간다는 것. 그런데 가끔은 서로 닮아가는 건 아닐까?
...LA경찰에 대해 앤.이 호감을 갖게 되는 장면과 마지막에 아델.에게 힘이 되는 장면은 유머스러웠다. 게다가 경찰차에 새겨진 글귀 '도움을 준다'를 보고는 픽~웃음이 나왔다. 감독이 미국생활할 때 경찰에 도움을 받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탈리 포트만의 표정 연기는 참 인상적이었다. 가식적인 웃음 뒤에 굳어지는 표정이라던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들, 환하게 웃을 때는 갈등이 다 해소된 듯한 느낌까지 전달되는 걸 보면서 참 괜찮은 마스크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잔 서랜든이야 말할 나위 없겠지?
...그런데 화가 났을 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정말 화가 가라앉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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