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와서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중국 사람들에게서(특히 비교적 나이가 좀 있는…) 한국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한국에 대한 질문이 한국문화에 대한 일반적 호기심에 의한 것이라면 전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요즘의 질문은 좀 더 자세한 것들, 즉 황우석 박사나 FTA 한미협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추가된다는 것이다.
사실 황우석 전 교수의 이야기는 세계를 떠들석 한 사건이었고 FTA는 유명한 영화배우, 감독들이 시위에 참석했다는 이슈가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현상 때문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보기에는 이유가 빈약하다. 나름대로의 생각엔 최근 중국에서 급속도로 유행을 타고 있는 한국드라마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그 전에 중국 내 한류가 있었다고 하지만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진 못했던 게 사실이다.
4년 전 중국을 여행할 때 항주의 한 거리에서 중국 소년이 H.O.T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걸 본 이후로 지금까지 한류는 가수, 영화배우 등 스타위주의 문화현상이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한국드라마가 유행인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그것은 <대장금>이나 <내 이름은 김삼순>,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중국 대륙을 완전히 휩쓸면서(특히 <대장금>) 본격적으로 한국문화,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에 <겨울연가>도 꽤 흥행을 하긴 했지만 그건 단지 배용준과 슬픈 사랑이야기에 매료된 것임을 볼 때 역시 한국, 한국문화보다는 배우와 드라마 내용의 한류였을 뿐이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중국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문화관련 기구 및 업체들의 한중교류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인이 외국을 나가는 경우는 한국인이 외국을 나가는 것과 달리 복잡하고 어렵다.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없을 뿐더러 보증인이나 보증금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들이나 단체의 단체장 등의 경우는 좀 수월할 수 있겠지만 그들 역시 상급기관의 비준을 받지 못하면 나갈 수 있는 조건이 되어도 나갈 수 없게 되어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조금씩 변하고 있는 중이다. 큰 문제만 없다면 외국을 나가는 일을 막지 않고 있다. 일례로 한국에 조선족 노동자는 물론이거니와 한족 등의 중국인들도 꽤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편의 드라마가 15억 중국 인구의 관념을 바꿔놓은 것일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영향력이 지대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 한국문화에 관심이 높아진 중국에서 한국인이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행복하기만 할까? 때론 이렇게 높아진 관심 때문에 난감한 경우를 접하기도 한다. 그건 역사적 문제에 대한 부분인데 고구려 영토 문제라던가 남북 통일 문제, 한국전 당시 중공군(당시의 명칭)의 참전 문제, 조선족의 한국 내 불법출입국, 서울의 개명문제, 현재 중국 내에서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이 벌이는 좋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경우다.
현재 재중 한국인에 대한 질문은 가급적 질문을 받는 당사자를 고려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지만 기타 문제들은 질문을 받는 경우 제대로 대답해도 대답하지 못해도 서로를 곤란하게 할 뿐이다.(그러고 보니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고는 한국 정부가 제대로 공식적 표명을 하지 않았거나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국사람들하고 대화를 할 때 가급적 민감한 문제들은 서로 피해가는 편이긴 하다. 내가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 역시 대화 중에 무의식적으로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면서 피치못할 경우가 있긴 하지만 삶과 개인의 취향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은 편인 듯 싶다.
나는 중국인들에게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하고 있을까. 많은 한국인들은 그런다. 안 좋은 문제도 좋게 대답하고 좋은 문제는 더욱 좋게 말해야 한국인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아진다고. 과연 꼭 그럴까? 억지로 내가 나서서 욕을 하는 경우는 전혀 없지만 없는 얘기를 지어내지도 못한다.
만약 너무 과대 포장된 인식이 있으면 나름 부드럽게 꼭 그런 면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잘못된 인식이 있으면 제대로 알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 자신이 생각하기엔 그게 오히려 스스로의 양심에도 걸리지 않고 한국을 제대로 알고 한중간 공통점과 다른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는 중국인 친구들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내 자신이 한국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말을 늘 전제하고 있다. 이유는 한국에 있을 때 중국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내가 하는 말과 비슷한데 가령 중국 음식이 어떠냐고 물으면 어디 지방 음식을 물어보냐고 되묻는 것과 같다. 동북삼성을 비롯해, 북경, 상해, 남방, 중부, 서부, 서북부 등의 음식이 모두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전체 면적은 길림성 전체 면적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땅덩어리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취향이나 특색은 모두 다르고 문화수용 능력도 모두 다르다고 생각해서다.
사실, 중국에도 80~90%에 이르는 빈곤층-대부분 농촌 출신이거나 농민들이 존재하고 문화대혁명을 거치고 등소평 이후 중국 시장 개방이 된 이후에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어 꽤 많은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 역시 꽤 남다르다. 특히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걸러지지 않은 많은 날 것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한 순간의 눈가림은 별 의미가 없다. 문제는 어떤 나라, 어떤 환경에 살던 스스로가 가지는 문제의식과 생활방식의 진보성이다.
중국인들에게 외국인 대접을 받으며 한국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실 스스로도 꽤 많은 것을 얻고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내 의식의 발전을 위해 국가를 구분하지 않고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여전히 이기적인 부분이나 고집스러운 부분이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차츰 나아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국가를 떠난 사람과 사람이 주가 되는 친구를 사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족 : 중국에 처음 발을 디딘 후 느낀 것은 중국은 절대 하나의 국가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유럽의 여러 나라가 모여 EU를 형성한 것처럼 중국 역시 56개 소수 민족과 한족이 모여 각 지방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형성된, 겉으로 보기에만 하나의 나라일 뿐이라고 (아직까지는) 생각한다. 물론 대다수 중국인들은 부정할 테고 스스로가 중국인임을 자부하며 살아갈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