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29일 토요일

비 오는 날, 타령...

하루종일 멀쩡하던 하늘이 그르렁대더니 끝내 비를 뿌려댄다.


...요 근래 이 곳 날씨는 정말 '변덕' 그 자체다. 날씨가 좋아 친구에게 날씨 좋다고 문자를 보내고 나면 바로 흐려지고 비 내리고 우박 쏟아지는 날의 연속이다.

...곧 처녀총각 가슴 설레게 할 봄이 오는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봄이 오는데 긴 진통이 필요한가보다. 며칠 바깥 출입을 안 해서 오늘 좀 나가볼까 했더니 흠;;; 여러모로 고민스럽게 하네. ...아니지, 날씨에 굴복해선 안되지.

...부침개에 막걸리라면 좀 어울릴까.

...자료 전송받는데 보통 3-4시간이라니 너무하는 거 아닌가?

...이래저래 동영상 강좌, 문건을 좀 읽어보고 있는데 너무 어렵다. 그간 공부하는 머리를 너무 사용하지 않은 탓이야. 잔머리만 굴리고 있었으니 기본적으로 굵직하게 돌아가야 하는 머리가 둔해졌다. 흠;;;

...낼 모레부터 5.1절(노동절) 장기휴가 기간이라 집 주인들도 집을 비울 듯. 연길가는 기차표는 있을까?

2006년 4월 28일 금요일

리마 증후군

인질범들이 인질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인질과 동일시함으로써 공격적인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 리마 신드롬이라고도 한다. 1997년 페루 리마에서 반정부조직 요원들이 127일 동안 인질들과 함께 지내면서 차츰 인질들에게 동화되어 가족과 안부 편지를 주고받고, 미사 의식을 여는 등의 현상을 보였다는 데서 '리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인질사건은 1996년 12월 17일 페루 반군들이 일본대사관을 점거하고 400여 명의 인질을 억류하면서 시작되어 이듬해 4월 22일 페루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끝이 났다. 당시 14명의 인질범은 모두 사살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인질범들은 인질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질들을 위한 의약품류의 반입을 허용하는 한편, 자신들의 신상을 털어 놓는 등 인질들에게 동화되는 여러 가지 이상 현상을 보였다. 리마신드롬은 이러한 현상을 빗대어 심리학자들이 붙인 범죄심리학 용어이다.

즉 인질범들이 인질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인질과 동일시함으로써 공격적인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인질이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오히려 자신들을 볼모로 잡은 범인들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납득하기 어려운 심리현상을 스톡홀름증후군이라고 한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에 침입한 4명의 무장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볼모로 잡고 6일간 경찰과 대치한 사건에서 처음 관찰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스톡홀름 증후군

인질이 인질범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에게 동조하는 비이성적 현상을 가리키는 범죄심리학 용어.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도 한다.

인질사건에서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오히려 자신들을 볼모로 잡은 법인들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에 침입한 4명의 무장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볼모로 잡고 6일간 경찰과 대치한 사건에서 처음 관찰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처음에는 인질들도 범인들을 두려워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들에게 동화되어 자신들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을 적대시하고, 사건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심리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인질사건과 같은 극한상황에 처하게 되면 강한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인해 인질범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을 오히려 고맙게 여겨 차츰 그들에게 온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자신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에게 반감까지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인질범들이 인질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인질과 동일시함으로써 공격적인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을 리마 증후군이라고 한다. 1997년 페루 리마에서 반정부조직 요원들이 127일 동안 인질들과 함께 지내면서 차츰 인질들에게 동화되어 가족과 안부 편지를 주고받고, 미사를 개최하는 등의 현상을 보였다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mov] 홀리데이 | Holiday | 假日


“有錢無罪 無錢有罪” 이 말 외에 다른 말을 덧붙이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88년 10월 8일 12명의 죄수 탈옥. 그 속에 지강헌이 있었고 전국민에게 울분을 토해내듯 인질극을 벌였던 이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 후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18년 세월 속에서 과연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을까. 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맛봤던 것도 어쩌면 전씨의 올림픽 개최 열망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면 착각일까. 유래없이 단기간 내에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인들. 그 행복한 성취감은 자주 정치인들이 자신은 민주화 세대라고 떠벌리며 이용되는 영광스러운 과거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노회찬 의원이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의하면 여전히 대한민국 헌법은 만인에 불평등하다고 느끼고 있는 이가 73%에 다다른다고 한다. 법치국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해괴한 설문조사 결과라니… 법이 인민을 보호해주지 않고 권력자만을 보호해 준다니… 믿고 싶지 않을 뿐이다.

삼성이나 두산 그 외 많은 대기업들은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아 자산을 불리고 영토를 넓혀가고 대추리 서민들 역시 제대로 법의 보호를 받아(?)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처지에 있다. 법은 만민에게 평등하다고 말한 이 과연 누구인가. 법은 평등한 적용기준이 아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만큼은.

작년 6월에야 보호감호법이 철폐되었다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여전히 돈으로 법을 사고 파는 일이 빈번한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직 끝나지 않는 비극이다. 작은 법리해석을 두고도 정의를 위해 몇 년씩 자비를 들여 투쟁을 한(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삼성비리를 털어내면 국내 경제가 휘청거릴까 내심 고민하고 있는 검찰도 있다. 한 개인의 권리와 삶은 별 것 아니지만 국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권력가, 기업가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감동까지 전달해주는 모양이다.

영화 <홀리데이>는 최민수의 오버연기와 억지스러운 허구를 삽입함으로 인해 싸구려 영화가 되어버렸다. 정작 지강헌(영화 속 지강혁)이 부르짖었던 “有錢無罪 無錢有罪” 이야기 하나만 보고 달려가고 몰아가는 바람에 좀 더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회현상들을 놓치고 말았다.


다만, 이성재의 연기는 꽤 빛을 발한다. 너무나 화려한 몸 근육 때문에 시선을 종종 뺏기곤 했지만(몸 근육이 어울리는 영화 내용이었다면 좋았을 걸…) 살이 빠진 이성재의 얼굴 굴곡과 눈빛, 표정 등은 영화와 잘 어울린다. 그러고보면 이성재는 감독의 역량부족이나 영화선택의 실수로 간혹 빛을 잃곤 해서 그렇지 꽤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이성재를 제외한 나머지 조역 탈주범들은 연기를 너무 못한다. 특히 장세진과 파트너는 자꾸 영화와 겉도는 느낌이다. 브로커로 나온 배우도 오버센스다. 여현수는 영화 속에 깊이 뭍어나진 못하고 이얼의 연기 변신은 아주 충격적이었지만 감정이 너무 흘러넘친다. 이얼의 파트너로 나온 배우가 조역으로 적절한 선을 유지하지 않았나 싶다.

최민수는 왜 건달 똘마니를 데리고 다니는 것일까. 그냥 감독의 의도일까? 당시 경찰, 검찰은 깡패 두목이다..라는 식의? 최민수의 배역이 너무나도 허구적이기 때문에 영화의 몰입을 자꾸 방해한다. 최민수는 <나에게 오라>, <테러리스트>, <남자 이야기> 정도에서 적절한 배역과 연기를 보여주지만 그 이후의 행보는 너무 폼만 잡는 것 같다. 영화에도 많이 개입을 한다는 소식을 접해서인지 이번 영화에도 자신의 장광연설을 늘어놓고 감독을 홀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본이 좀 더 좋았다면 어땠을까… 배우들의 부족한 부분이나 오버연기도 잘 덮어주지 않았을까? <실미도>, <공공의 적2> 시나리오 작가 김희재가 각본을 맡았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난 이 두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가 마치 보호감호법 철폐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처럼 마지막 자막을 올리는 것이 의아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자막에 비해 영화는 이야기를 제대로 못한 격이 되지 않았나 싶다. CGV와 마찰로 “有錢無罪 無錢有罪”가 현실화되고 이슈화되긴 했지만…


적어도 영화 <홀리데이>는 당시 현실보다도 드라마적이지 못하다. 특히 당시 인질로 잡혀있었던 고모양이 마지막 생존자였던(현재도 수감중이던) 강모씨를 위해 제출한 탄원서 내용이라던가 이를 근거해 추측해 볼 수 있는 범인과 인질들 사이에 존재했을 스톡홀름 증후군과 리마 증후군 등은 오히려 더 극적이다. 이는 오히려 유오성이 주연했던 같은 내용의 TV단막극이 더 낫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 정태춘, 박은옥의 <아! 대한민국> 앨범을 좋아했을 때, 정식 음반으로 나오지도 않았던 걸 공연현장에서 팔던 테잎을 사서 듣고 또 들어 테잎이 완전 맛이 갔을 때 읽었던 글 한토막이 생각이 난다.

“모든 가슴을 울리는 것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것들이다.”

보호감호법

보호감호제도는 동종 또는 유사한 죄로 2회 이상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고 형기 합산 3년 이상인 자가 다시 유사한 특정의 죄를 범한 때, 보호감호시설에 수용하여 감호 및 교화하고, 사회복귀에 필요한 직업훈련과 근로를 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로 1980년 12월 18일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제정한 법률이다.

1980년 5.17 비상계엄전국확대조치 직후 계엄업무수행에 있어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설치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모체가 되었던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제정한 보호감호제도는 입법 제정 당시 소위 삼청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소급 적용하여 보호감호를 실행하였다.

그러나 집행의 현실을 보면 서신을 검열하고 동료나 교도관이 볼 수 있는 상태에서 용변을 보아야 하며, 피감호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청송 제1,2감호소는 2.6평의 좁은 공간에서 약 4-6명의 인원이 냉난방 시설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활하는 등 시설면에서 일반 수형자가 수용되어 있는 교도소보다 열악하며, 운동시간도 제한되고 또한 선거권까지 전면적으로 제한되었다.

이와 같이 피감호자에 대한 처우가 형법의 적용을 받는 수용자와 별반 다를 것이 없고, 피감호자에 대한 처우가 사회복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로 인해 피감호자들이 보호감호기간을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여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으며, 사회로부터의 냉대를 견디다 못해 결국 또 다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또한 보호감호제도는 헌법이 명시하는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이 인정되어 1991년 보호감호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사회보호법에 대해 위헌판정이 내려졌고, 이 영화가 제작 중인 2005년 6월에서야 폐지되었다. 하지만 2005년 6월 이전에 보호감호에 적용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소급 적용되어 여전히 논란의 불씨를 남겨두고 있다.

[mov] 야수 | Running Wild | 野兽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아니 나는 얼만큼 행복한 존재일까.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크고 작은 행복의 범위를 제외한 사회적 동물로서 나의 행복지수는 얼마가 될까.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와 비교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니 자부심을 가져야 할까. 한국에서도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행복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보다 못한 사회가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도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행복은 상대평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즉, 절대평가 속에서 느껴지는 행복, 삶의 가치만이 한 개인에게 의미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 개인은 절대 다른 국가사회(혹은 문화) 속에 흡수될 수 없다. 그렇게 보이더라도 그건 그저 표면 위에서 부유하고 있을 뿐이며 정교하게 모방하거나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그럼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어떤 사회일까. 어떤 삶들이 부벼지는 공간일까. 각자 모두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국가사회일까. 불만은 있되 그래도 살만한 곳일까. <야수>에 등장하는 장도영과 오진우는 공권력에 속하면 그 힘을 남용하거나 지켜가되 비교적 자신의 행복지수, 성공지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그 공권력의 반대편에 서 있지만 결국 사회권력, 국가권력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유강진이 있다. 그 과정 속에는 권력과 권력이 맞부딪히며 묘한 공명을 일으킨다. 이후에는 공권력 따위도 필요없다. 물고 할퀴는 처절한 싸움만이 남을 뿐이다.

<야수>가 다른 형사영화 혹은 권력을 다룬 영화와 차별점이 있다면 비교적 직설화법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따.위 ㅈ같은 사회가 우리가 사는 사회고 국가다”라고. 그리고는 덜 길들여진 두 마리 야수를 내키는대로 행동하도록 방치한다. 지치고 지칠 때 알아서 쓰러지도록. 거대 권력사회라는 조련사가 야수를 길들이려고 하지만 야수들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아리지만 한편으론 카타르시스를 동반한다.


유강진은 폭력배 출신 국회의원이지만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에 폭력배 아닌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얼마나 많은 국회의원이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국민들에게 깡패 짓을 하고 있는가. 국민의 세금과 피와 땀을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의 하는 짓이라곤 민의를 악용해 자신의 배만 불리려 하고 있으니 깡패와 다름없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세상에 그 법칙이 적용되면서 변질되었다. 동물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인간은 마치 온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듯이 착복을 하고 남이 가진 최소한의 권리마저도 유린한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건 진리다. 장도영은 불행한 가정출신이고 오진우는 부모는 등장하지 않지만 부인에게 이혼요구를 당한다. 유강진은 깡패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맞다. 세상은 아주 정상적으로 지극히 ‘불공평’하다. 그러나 그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도 최소한 지켜야 할 룰은 있다. 최소한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는 말아야 한다. 이 룰이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하면 힘없는 인민은 사는 게 그저 괴로울 따름이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별 생각을 다 하고 있지만 <야수>가 말하고 있는 방법이 너무 직설적이라 반응도 그런듯 싶다.

<야수>에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지만 내 판단으론 장점이며 독특한 시도라 생각한다.)

첫째,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한 인물 심리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핸드헬드처럼 다른 영화에서도 자주 접하는 부분이다. 눈에 띄었던 장면은 인물에게 짧고 빠른 크로즈업/아웃이 종종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인물에의 몰입을 유도하고 있다. 영화가 시간을 더해갈수록 카메라와 몰입도는 괜찮은 간극을 유지해간다.

둘째, 인물의 분장이다. 몇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의 분장이 억지스러울 정도로 과장되어있다. 처음엔 조명의 문제인가 싶었는데 분장을 의도적으로 두드러지게 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확실히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몇 장면만 그랬다면 분장사나 조명기사의 실수라고 생각했을 텐데 오히려 몇 장면을 제외한 모든 장면에서 분장이 과장되었다. 인물의 컨트라스트가 강해지고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느끼게 된다. 눈에 거슬리고 어색했을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오히려 난 새로운 느낌이라 좋았다.

셋째, 마지막 장면을 아예 드러내 놓고 시작한다. 주인공이 어떻게 되리라는 걸 미리 짐작하고 영화의 흐름을 쫓는 건 극히 위험한 방식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 영화는 그럼으로 인해 주인공들에 대한 답답한 심정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어떤 기대감없는 무력감에서 비롯되는 동질감이랄까.

넷째, 비극적 결말이다. 일단 장도영이 같은 경찰들에게 영웅본색의 주윤발처럼(붕대를 붙인 느낌도 비슷한) 엄청난 총알 세례를 받고 죽는다. 주인공을 저렇게 죽이는 건 홍콩 영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홍콩 느와르’식이지만 홍콩 영화의 많은 영향이 남아있는 <야수>에는 어울리는 장면이다. 게다가 한국영화에서는 비극적 결말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점에서 격려를 보내고 싶다. 특히 오진우가 장도영식 머리 스타일(똑같진 않지만)로 변해서 유강진에게 한 두발도 아닌 여러 발의 총알세례를 퍼붓고 허탈하게 웃는(우는) 마지막 장면(관객을 똑바로 쳐다보며)은 반전 아닌 반전이었달까. 최소한 내게는 일말의 카타르시스가 되었다. 두 야수가 덤벼들어 수 많은 피들 중에서 겨우 하나의 피만 솎아냈지만 그건 오로지 비극이라기 보다는 일말의 거친 희망을 느끼게 한다.

물론 <야수>는 여러모로 미흡한 점이 많다. 장도영 여자친구 역이었던 엄지원은 비중이 너무 작아 아쉽기만 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거슬렸던 건 다름아닌 장도영이 오진우에게만 깍듯이 반말을 한다는 것이다. 거친 놈의 야수라면 아무에게나 반말을 지껄여야 상황에 맞을 터인데...왜 그랬을까.(억지로 짜맞춰보자면 장도영은 이복동생이 있었지만 불안한 자신을 기댈 형같은 존재가 없었다. 그런데 오진우는 왠지 그에게 형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호랑이처럼 굴다가 꼬리내린 강아지가 되었던 것일까?라고 추측...-_-;), 장도영의 잦은 눈물도 역시 분위기를 흐리는데 일조를 한다. 아무튼 그저 71년생 감독이 받았을 홍콩영화(느와르)의영향이나 20대 사회에 가졌을 법 한 비관적인 시선, 젊은 치기들이 왠지 반가웠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다.

유강진 역의 손병호를 제외하고 권상우나 유지태는 연기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긴 하다. 그나마 유지태는 낫다. 올드보이에서 보여준 차가우면서도 고민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의 연장선상으로 보이긴 하지만 검사역에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권상우는 왜 그렇게 어설프게 보일까. 발음의 한계일까? 유지태도 발음이 부정확하긴 하지만 그래도 음색이라도 좋지. 개인적으론 권상우가 발음과 목소리 음색을 좀 다듬어서 거친 역할을 하는 게 잘 어울릴 것 같다. 꽃미남 권상우는 별로다.


문득, 장태산 만화의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가 생각난다. 영화처럼 거친느낌의 펜터치와 길들여지지 않은(을) 주인공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2006년 4월 22일 토요일

간만의 햇살...좋다. :)

오늘도 눈이 내린다는 걱정스러운 소식을 뒤로 하고 아침부터 햇살이 너무 좋다. 바람은 좀 부는 편이지만 황사는 여전히 소식이 없고 그저 따뜻한 햇살과 조용한 동네 풍경이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나른해지기도 한다. Joan Baez의 음악이나 Beyond의 음악이 한층 더 오늘을 평화롭게 한다. Joan의 노래는 뭐 말할 것도 없고 Beyond의 노래는 들을 수록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80년대 후반 그 유명했던 "천장지구"라는 영화를 통해 처음 접했지만 다른 음악들 역시 느낌이 좋다.


흠;;; 오늘은 이발을 좀 해볼까. 간만에 시내(-_-;)에 나가서 DVD도 좀 보고 수영복도 사야겠다. 수영은 염 젬병이지만 중국 선생 한 분이 수영이 잘한다며 늘 같이 가자고 하는데 수영복이 없어서 번번히 기회를 미루고 있었다. 수영이 전신운동에는 최고니까 수영복 하나 가지고 있으면서 틈틈이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 머물고 있는 집이 동화학원과는 아주 가까워서 좋지만 시내와는 좀 떨어진 곳이라 한 번 마음먹으면 며칠씩이고 집 근처를 벗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날씨 이렇게도 좋은데... 나가서 어슬렁거려야지.

어제는 학교 교수님들과 학생 몇 명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여학생 둘이 한국인인 내가 신기한지 "정말 한국인 맞아요?"라고 연신 물어보고 "한국인 원래 ***해요?"라며 내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호기심을 보이다가 기어이 대장금 이야기가 나오고 난 후 내게 하는 말이 "대장금에 나오는 황제(임금) 닮았어요"라고 한다. 대장금을 몇 편 봤을 뿐인지라 순간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한참 기억을 떠올린 후에야 그게 임호라는 걸 알았다.


앗!!! 개그맨 윤택이 닮았다고 한참을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다가 좀 더 배우스러운 사람을 닮았다니... 허허... 기쁠지고...-_-;;; 옆에 있는 교수님들은 덩달아 황제를 닮았다고 하니 좋겠다고 하면서 어쩌고 저쩌고 함께 나를 띄우기 시작한다. "오늘은 내가 쏜다!!! 라는 말이 듣고 싶었던 거죠?"라고 응수하니 모두들 웃느라 정신없다. 결국 一言为定(말 한대로 지킨다)이라며 어제 저녁은 내가 계산했다. 한 교수님은 계속 내가 아리랑을 부르는 걸 듣고 싶다고 우기고 우겨서 모두들 함께 노래방으로 직행. 전통 아리랑과 윤도현의 락버전 아리랑을 연달아 불러줬다. - 역시 근래 노래 부르는 건 왠지 벅차다. 중국 노래도 부르고;;; 나름 즐거운 시간.

햇살이나 만지작거리면서 목욕탕 다녀와야겠다.
모두들, 멋진 주말되시길~ :)

2006년 4월 19일 수요일

4월 19일 눈이 내렸다.

아침 하늘이 우중충 하더니 기어이 비가 오고 말았다. 아침인지 오후인지 모를 정도로 어두운 하늘. 작업하던 게 있어 학교로 가는 길이 스산하다. 스토리보드 몇 가지 수정하고 이미지 출력하고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문을 나서는 길... 앗... 눈이 내린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추운 공기를 타고 눈으로 변했다. 눈발이 점점 거세진다.


4월 하고도 19일. 길 위에 쌓일만큼 눈이 왔다.


오후에 창선생님하고 이런저런 얘기하고 작업 대충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비가 온다. 요즘 중국 날씨는 기상이온이 심하다. 북경엔 3년 동안 올 황사가 요 며칠 사이에 몰아쳤다고 하질 않나. 우루무치는 황사가 별로 없다고 하질 않나. 지금쯤이면 봄이 왔어야 할 장춘에 눈이 오질 않나.

장춘(长春), 이번에 이름 값을 못하고 있다. 긴 봄은 고사하고 긴 겨울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장춘의 봄은 늘 짧기 때문에 동북의 이 도시,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보다.

장춘은 그저 계절상의 봄 만을 기다리는 도시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동북은 지식인들의 유배지로, 이웃나라와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인해 삶마저 척박해졌기 때문에 마음의 봄까지도 염원하고 기다리던 곳이었음에 틀림없다. 봄날씨야 한 두 달 스쳐 지나가면 그만일 테지만 동북사람들의 마음 속엔 따뜻한 봄이 오랫동안 머물기를 바랬을테고 1년 내내 혹은 평생 봄의 기운이 가득하길 바랬을 것이다.

이렇게 추운 날이 며칠 지나고 나면 뜨거운 봄이 오리라... 장춘의 바램처럼.

...그렇게 생각(만) 해본다.

2006년 4월 16일 일요일

중국인들의 질문, 그리고...

중국에 와서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중국 사람들에게서(특히 비교적 나이가 좀 있는…) 한국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한국에 대한 질문이 한국문화에 대한 일반적 호기심에 의한 것이라면 전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요즘의 질문은 좀 더 자세한 것들, 즉 황우석 박사나 FTA 한미협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추가된다는 것이다.

사실 황우석 전 교수의 이야기는 세계를 떠들석 한 사건이었고 FTA는 유명한 영화배우, 감독들이 시위에 참석했다는 이슈가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현상 때문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보기에는 이유가 빈약하다. 나름대로의 생각엔 최근 중국에서 급속도로 유행을 타고 있는 한국드라마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그 전에 중국 내 한류가 있었다고 하지만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진 못했던 게 사실이다.

4년 전 중국을 여행할 때 항주의 한 거리에서 중국 소년이 H.O.T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걸 본 이후로 지금까지 한류는 가수, 영화배우 등 스타위주의 문화현상이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한국드라마가 유행인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그것은 <대장금>이나 <내 이름은 김삼순>,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중국 대륙을 완전히 휩쓸면서(특히 <대장금>) 본격적으로 한국문화,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에 <겨울연가>도 꽤 흥행을 하긴 했지만 그건 단지 배용준과 슬픈 사랑이야기에 매료된 것임을 볼 때 역시 한국, 한국문화보다는 배우와 드라마 내용의 한류였을 뿐이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중국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문화관련 기구 및 업체들의 한중교류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인이 외국을 나가는 경우는 한국인이 외국을 나가는 것과 달리 복잡하고 어렵다.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없을 뿐더러 보증인이나 보증금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들이나 단체의 단체장 등의 경우는 좀 수월할 수 있겠지만 그들 역시 상급기관의 비준을 받지 못하면 나갈 수 있는 조건이 되어도 나갈 수 없게 되어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조금씩 변하고 있는 중이다. 큰 문제만 없다면 외국을 나가는 일을 막지 않고 있다. 일례로 한국에 조선족 노동자는 물론이거니와 한족 등의 중국인들도 꽤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편의 드라마가 15억 중국 인구의 관념을 바꿔놓은 것일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영향력이 지대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 한국문화에 관심이 높아진 중국에서 한국인이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행복하기만 할까? 때론 이렇게 높아진 관심 때문에 난감한 경우를 접하기도 한다. 그건 역사적 문제에 대한 부분인데 고구려 영토 문제라던가 남북 통일 문제, 한국전 당시 중공군(당시의 명칭)의 참전 문제, 조선족의 한국 내 불법출입국, 서울의 개명문제, 현재 중국 내에서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이 벌이는 좋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경우다.

현재 재중 한국인에 대한 질문은 가급적 질문을 받는 당사자를 고려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지만 기타 문제들은 질문을 받는 경우 제대로 대답해도 대답하지 못해도 서로를 곤란하게 할 뿐이다.(그러고 보니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고는 한국 정부가 제대로 공식적 표명을 하지 않았거나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국사람들하고 대화를 할 때 가급적 민감한 문제들은 서로 피해가는 편이긴 하다. 내가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 역시 대화 중에 무의식적으로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면서 피치못할 경우가 있긴 하지만 삶과 개인의 취향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은 편인 듯 싶다.

나는 중국인들에게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하고 있을까. 많은 한국인들은 그런다. 안 좋은 문제도 좋게 대답하고 좋은 문제는 더욱 좋게 말해야 한국인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아진다고. 과연 꼭 그럴까? 억지로 내가 나서서 욕을 하는 경우는 전혀 없지만 없는 얘기를 지어내지도 못한다.

만약 너무 과대 포장된 인식이 있으면 나름 부드럽게 꼭 그런 면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잘못된 인식이 있으면 제대로 알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 자신이 생각하기엔 그게 오히려 스스로의 양심에도 걸리지 않고 한국을 제대로 알고 한중간 공통점과 다른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는 중국인 친구들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내 자신이 한국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말을 늘 전제하고 있다. 이유는 한국에 있을 때 중국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내가 하는 말과 비슷한데 가령 중국 음식이 어떠냐고 물으면 어디 지방 음식을 물어보냐고 되묻는 것과 같다. 동북삼성을 비롯해, 북경, 상해, 남방, 중부, 서부, 서북부 등의 음식이 모두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전체 면적은 길림성 전체 면적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땅덩어리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취향이나 특색은 모두 다르고 문화수용 능력도 모두 다르다고 생각해서다.

사실, 중국에도 80~90%에 이르는 빈곤층-대부분 농촌 출신이거나 농민들이 존재하고 문화대혁명을 거치고 등소평 이후 중국 시장 개방이 된 이후에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어 꽤 많은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 역시 꽤 남다르다. 특히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걸러지지 않은 많은 날 것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한 순간의 눈가림은 별 의미가 없다. 문제는 어떤 나라, 어떤 환경에 살던 스스로가 가지는 문제의식과 생활방식의 진보성이다.

중국인들에게 외국인 대접을 받으며 한국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실 스스로도 꽤 많은 것을 얻고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내 의식의 발전을 위해 국가를 구분하지 않고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여전히 이기적인 부분이나 고집스러운 부분이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차츰 나아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국가를 떠난 사람과 사람이 주가 되는 친구를 사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족 : 중국에 처음 발을 디딘 후 느낀 것은 중국은 절대 하나의 국가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유럽의 여러 나라가 모여 EU를 형성한 것처럼 중국 역시 56개 소수 민족과 한족이 모여 각 지방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형성된, 겉으로 보기에만 하나의 나라일 뿐이라고 (아직까지는) 생각한다. 물론 대다수 중국인들은 부정할 테고 스스로가 중국인임을 자부하며 살아갈 테지만…

2006년 4월 13일 목요일

스토리보드 릴을 시작으로...

장춘에 오자마자 曾 선생님과 작업을 같이 할 기회가 생겼다.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 내 작품 준비도 하지만 함께 진행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曾 선생님도 기쁘게 맞아주셨다. 내용은 좀 더 진행되면 밝히겠지만 느낌이 좋다.

현재 중국에서 유명한 중국화 화가 吴冠中(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유일무이한 생존작가의 화전이 열렸었다고 한다.)의 스타일을 참고하겠다고 하는데 그의 간결하면서 산뜻한 느낌의 그림들이 참 좋다. 曾 선생님은 吴冠中의 그림을 제대로 표현해낼까 걱정이 된다고 하지만 모방이 아니고 애니메이션으로 화풍을 표현해내는 것이라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셨고 나 역시 그의 말에 동의했다.

처음 만났을 때 러프 스토리보드를 처음 보고 작업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는데 그 이후로 몇 차례 만나 더 이야기하고 진행하면서 내 의견도 상당수 반영되었고 이런 과정들을 계속 거치면서 이야기는 좀 더 탄탄해져갔다.

며칠 전 스토리보드가 마침내 다 완성이 되었다고 했다. 스토리보드 릴을 만드는 것은 함께 하자고 해서 매일 학교에 나가 무척 느린 컴퓨터로(-_-) 인내심을 같고 작업을 했다. 학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가며 타이밍도 새로 잡아내고 제작방법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음악도 올려보고 세세한 부분도 수정을 하면서 어제 겨우 작업이 끝났다. 완벽한 스토리보드 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정도라면 본 작업에 착수해도 별 무리가 없겠다 싶다.

나름 이 작품이 기대가 된다. 몇 몇 장면들은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고민을 해야겠다. 현재 함께 작업할 인력이 확보되지는 않았지만 다음 주 쯤에는 인력확보를 하면서 본 작업에 힘을 받지 않을까 싶다.

몇 가지 작업에 대해 연마를 해야겠다.

2006년 4월 8일 토요일

기다림.


기다리면 온다 합니까.
떠난 사람입니까.
돌아올 사람입니까.
오후 반나절을 앉아 기다렸는데
사공은 보이질 않는다.
뱃전에 발을 딛자
현기증이 일었다.
어리석음은 기다림이 약이다.

2006년 4월 7일 금요일

이사했습니다.

머물 집을 옮겼습니다. 사실 처음 오자마자 머물던 선생 집도 괜찮았습니다만 선생이 바쁜 일도 있고 집을 작업실 위주로 활용을 하던 터라 집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전에 알고 있던 또 다른 선생이 함께 식사를 하던 중 자기 집에 방이 비는데 집에 있는 시간도 적고 하니 함께 묵어도 좋다고 해서 (여차저차) 옮기게 되었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새로 옮긴 집이 환경은 좀 더 좋군요.^^; 물론 그 전 집 보다는 보다 시내에서 멀어지긴 하지만 그건 제게 큰 장애는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밖에 나가 놀 일이 적어지게 되니 작업할 여건도 좋고 근처에 월마트(참 국제적으로 놀고 있는 전빵이 되겠군요)가 있으니 물건 구매하는데도 크게 문제는 없네요.

이 선생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혼인신고를 한 부부인데요. (물론 중국은 혼인신고를 먼저하고 혼례를 나중에 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니 이상한 눈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부인(역시 대학 교수입니다.)도 제게 오빠라고 부르며 아주 즐겁게 살아가는 젊은 화가구요. 남자 역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만화가입니다.

얼마 전 월마트에 가서 줄넘기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요즘 황사가 좀 심하군요. 게다가 4월임에도 불구하고(이미 청명이 지났습니다.) 눈이 내리는 군요. 제가 2-3년 전에 장춘에 머물 때는 이런 이상기후를 접하지 못했었는데 올해는 좀 특별하다 싶습니다.

근처에 태권도장이 있어 찾아가 봤는데(쿵후 도장보다, 태극권 도장보다 더 많은 게 태권도장입니다.) 헬스 기구는 거의 없고 그냥 바닥에 매트 깔아 놓고 품세배우고 기술 배우고 하는 곳이더군요. 포기했습니다. 날씨 좋아지면 줄넘기나 열심히 해야겠어요. 암튼, 시간은 참 빨리 갑니다. 그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