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22일 일요일

Blood Diamond와 노자의 不貴難得之貨(불귀난득지화)


2003년 1월, 40개국이 불법적인 다이아몬드 유통을 방지하는 '킴벌리 협약' 을 만들었다. 하지만 불법적인 다이아몬드 소비자들의 무분별한 구매때문에 계속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아직도 아프리카에선 20만명의 소년병들이 존재한다.

- Blood Diamond Ending 중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불편하다. 전쟁에 대한 잔인한 묘사는 현실감있게 다가와 심장을 계속 두드린다. 하지만 생각하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며 공감하게 만든다. 


영화는 위 사진과 같은 다이아몬드로 인해 어떻게 세상과 사람을 파괴하는지 보여주려 한다. 세상은 저 조약돌만한 투명한 돌덩이 하나를 위해 목숨 따위는 돌보지 않아도 된 것이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의 손을 자르고 강간하고 불을 지르고 스스럼 없이 목숨을 앗아간다. 다이아몬드를 차지하려 하는 자는 사실 아프리카인들이 아니다. 그들의 피와 목숨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미국, 유럽, 아시아 여러 국가의 돈 있는 자들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프리카에서는 부족간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고무, 석유, 황금 등이 나올 때마다 아프리카에선 끊임없는 살육이 반복된다. 아프리카 인민들끼리의 전쟁이라기 보다는 자원을 좀 더 확보하려는 넥타이를 맨 얼굴 하얀 이들끼리의 잇속 다툼이거나 그들의 모습을 쏙 빼닮은 검은 백인들끼리의 잇속 다툼이다. 그들의 다툼 속에 아프리카의 흙은 붉게 물들어 가고 검은 피부는 붉은 피로 덧칠해지고 있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어부의 아들은 연필 대신 총을 쥐게 되고 우유를 마시는 대신 맥주를 들이키고 예방접종을 맞는 대신 마약주사를 맞으며 자신을 파괴한 자들을 좇으며 자신의 가족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다. 이 아이들은 어떤 이유를 가져다 대더라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총을 들었으되 피해자며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되 이미 죽은 아이들이다. 이들의 영혼을 어떤 방법으로 구제하며 보상할 것인가.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는 순간 그간의 불행과 끔찍함은 행복과 환한 미소로 바뀔 수 있겠지만 아프리카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다이아몬드는 꿈 속의 꿈일 뿐이다. 다이아몬드의 주인은 말끔한 정장을 입고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돈과 권력 정도는 있는 자들일 뿐이다. 그 외에는 모두 그들의 평생 노예일 뿐이며 그들의 노리개일 뿐이며 목숨을 버리는 것조차 불사하는 충직한 일꾼들일 뿐이다.


그래도 끝내 신념을 지켜내는 자들, 가족의 가치와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자들이 있기에 세상이 조금씩은 변해갈지도 모를 일이다. 희망이 없다고 단정하기엔 그들의 노력과 땀의 결실이 아직 열매를 맺지 못했기에 잠시 보류할 뿐이다.


특히, 펜을 굴리고 언로(言路)에서 짐을 챙기는 자들의 어깨가 무거워야 할 판이다. 한 개인-특히 언론인이 세상과 타협하는 순간 수십배, 수백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희망의 끈을 놓치게 될 것이며, 세상과 이별을 고하기 전까지 불행의 불구덩이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과 싸우지 못하겠다는 언론인이 있다면 사람들을 호도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누구의 편에 서서 나팔수가 되는 짓이라도 멈춰야 할 것이다. 언론인이 되는 자유는 스스로가 가졌지만 그 직업을 가지고 사실을 전하고 진실을 대면하며 매체를 통해 '내용'을 전할 권리는 전적으로 일반인들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은 깊은 지하창고에 감춰두기 마련이지만 그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 밝혀지지 않더라도 세상의 가치가 올바르게 서고 진실에 용기있게 대면하는 세상이 된다면 지하창고의 불편한 진실은 그 스스로 모습을 감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불법과 비리, 불편한 진실의 진면목을 낱낱이 밝히는 내부고발자(휘슬 블로워(whistle-blower), 딥 스로트(Deep Throat))들의 양심선언이 중요하다. 그들이 치루는 댓가를 사회비용으로 함께 나눠야 하고 그들의 노력에 모두가 힘을 합쳐 보호하며 마음을 모아야 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제일 먼저 떠올랐던 글귀는 노자 도덕경 중에 등장하는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弱其志, 强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知者不敢爲也. 爲無爲則無不治.

-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

이 중 '不貴難得之貨'이다. 물론 여러가지 해석, 주석이 달릴 수 있겠지만 단순히 생각해 보면 '얻기 어려운 것을 귀하게 여기지 말라'는 뜻이다. 얻기 어려운 것을 귀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사람들을 그것을 얻기 위해 호상(互相)간에 쟁정을 일삼을 것이며 얻기 어려운 것의 양과 유통을 통제하며 사람들을 통치하려 들 것이다.

단순하게 말할 문제가 아닌 걸 알지만 대한민국에서 전세, 월세보다 자기 집을 구하는 게 쉬워진다면 부동산 투기라는 게 쉽게 형성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집을 구하기 어려운 세상에선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집을 다량으로 보유하고자 할 것이다. 이 뿐인가. 다이아몬드부터 시작해, 석유, 돈, 명예, 직장 등등 지금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없는 게 있다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 경쟁과 쟁투도 모두 그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얻기 어려운 걸 귀하게 여기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성대로 세상을 살라고 권하는 세상이던가? 그렇기에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시스템, 제도화해서 국가가 혹은 사회집합체가 통제도 하고 관리도 하고 교육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국가가, 시스템이, 사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영화에서도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유통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단체(G8)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노력하는 몇 몇의 개인의 노력에 힘입어 '킴벌리 협약'이라는 결실을 맺는다. 물론 다이아몬드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존재하는 한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완전 소멸되기 힘들 겠지만 최소한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구입이 비윤리적인 행위며 다이아몬드 생산국 국민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일임을 알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유의미한 것이다.

다국적 기업, 초국적 기업이 만들어내는 수 많은 재화들을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게 박리다매로 넘어오는 물건이던 명품백, 명품시계처럼 고가의 물건이건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와 근거를 마련해 소비하기 마련이다. 그 기업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르거나 사회의 시스템을 망가트리는 악행을 저질러도 그것이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자조적인 이유로 그 기업들의 사회적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의 부조리를 바꾸는 최선의 방법은 정말 작은 것에 있다. 또한 그것이 한 개인의 고발이던 사소한 잘못으로부터 밝혀진 진실이던 혁명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사회를 꽤 괜찮은 가치로 전환시키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영화를 보며 마음이 무거웠던 건 문제가 '다이아몬드'에 국한되지 않고 '미국'과 '유럽'에 제한되지 않으며 '아프리카 사람들'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삼성', '이마트', '강부자', '정치인', '조중동', '서울대-연고대', '강남', '친일파', '친미파', '신자유주의' 등의 문제와 자연스럽게 치환되고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회 전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 국민-서민들은 아프리카에서 손목이 잘리고 총을 들고 난사하며, 권력의 노예가 되어 죽을 때까지 생존의 문제와 싸워야 하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과 변화가 더욱 중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
이 영화에 등장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코넬리, 디지몬 하운스 등 세 명의 주인공들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연약하고 곱상한 모습을 완전히 탈피했다. 마틴 스콜세지 영화에 출연한 이후의 행보는 거칠고 남성다운 그러면서도 심약한 모습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도 튀지 않게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제니퍼 코넬리도 저널리스트의 모습을 과장없이 표현하고 있고 디지몬 하운스는 '콘스탄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사랑으로 충만한 가장의 모습과 자신의 분노를 극렬하게 표현하는 연기를 인상깊게 해냈다.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기초로 하고 있는데 에드워드 즈윅 감독 역시 다큐와 리얼을 오가는 듯한 연출을 자연스럽게 해낸다.

레오는 보면 볼 수록 매력적이다. 특히 아프리카 남쪽 사투리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걸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레오의 대사를 들으며 레오의 원래 영어발음인 줄 알았다. 그 외에 약간 거만한 듯 맥주를 마시는 설정이나 조급함이 보이는 담배를 피우는 설정, 아프리카에서 태어나고 자란 백인처럼 보이기 위한 설정 등 물 오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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