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1일 월요일

[mov] 연애의 목적

연애의 목적



감독 | 한재림
출연 | 박해일(유림), 강혜정(홍), 이대연(조선생), 박그리나(희정), 박준명(연호)


첫 도입부분부터 약 20여분 간은 불쾌한 느낌이 먼저였다. 유림은 왜 이렇게 도발을 하는 것일까. 홍은 왜 딱 부러지게 거절을 못하는 것일까. 20여분이 흐르고서야 둘이 서로 관심이 있었다는 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이후로는 처음보다 불쾌한 마음이 조금씩 걷힌다.


왜 이렇게 불쾌한 느낌이 가득했을까. 무모하게 들이대는 남자의 용기가 부러워 질투가 났던 것일까? 그렇게 무모한 남자에게 은근슬쩍 밀고 당기며 받아주는 홍이 예뻐서 질투가 났던 것일까? 아니다. 어쩌면 내 과거 어떤 모습(들)이 떠올라 부끄러워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지만 불쾌한 느낌은 여전히 무모한 저 남자가 한국 사회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에서, 그리고 영화처럼 괜찮은 사랑으로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는 희박한데도 남성과 여성의 편가르기가 명확해 보인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만약 박해일이 아닌 비호감 남성이 그 따위 짓(?)을 했다면 엄청난 비난과 욕설에 시달렸을 텐데 유림이 아닌 박해일기에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잘 넘어선다. 물론 유림과 같은 남자는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남자가 ‘성’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판타지를 최대한 몰아가고 있고 실제 경험담이던 구전으로 떠도는 무용담이든 가리지 않고 성적 판타지, 남성 판타지를 여자라는 대상 위에 배설해낸다.


기습뽀뽀를 하고 택시를 잡지 못해 아주 난처한 상황-_-;;;



홍에게 유림이 초면에 반말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잠깐 다른 상상을 해봤다. 만약 홍이 남자였다면… 그랬다면? 유림은 반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말을 했다면 두 가지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유림이 ‘어깨’ 출신 정도 되는 캐릭터여서 아무도 유림에게 시비를 걸지 못하는 경우이거나 유림이 상대에게 두들겨 맞는 경우다. 한국에서 남자끼리 반말을 하는 경우는 자신보다 어리거나 동갑일 경우일 뿐이다. 그 외에는 특별한 상황이 된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연상의 여인과 결혼을 해도 남자는 반말을 하고 여자는 존칭을 쓰기 일쑤다. 물론 사회가 많이 달라져서 그렇지 않은 부분이 점점 많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렇다. 성적 계급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만약 역할을 바꿔 홍이 먼저 유림에게 그런 성적 농담을 건네고 섹스를 탐하는 캐릭터로 시작되었다면? 영화는 남자, 여자 모두에게 외면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그런 여자는 여전히 ‘천한’ 여자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여자도 남자의 선제 공격에 의해 점점 문을 열고 ‘원래 섹스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할 경우에는 달라진다. 이 역시 남자의 리드 없이는 여자의 성적 선제 공격은 어렵다는 뜻이다. 남자는 굴러먹으면 ‘영웅본색’이 되지만 여자는 굴러먹으면 ‘굴러먹는 여자’가 될 뿐이다. 나중에 홍이 유림을 성희롱, 강간범으로 몰아세우고 불면증을 해소했다는 건 어이없긴 하지만 유림이 대한민국 남성을 대표하는 것이었다면 그리고 홍이 대한민국 여성을 대표하는 것이었다면 어느 정도(아주 일부분)는 이해를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대한민국 대표 남녀에 관한 사랑 얘기가 아니다. 사회 시스템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지 몰라도 영화니까 다시 만나 진짜 사랑을 하는 것으로 결말을 낼 수 있지 현실이었다면 장담할 수 없다.


저런 표정으로 바라보면 거절 못할...-_-;;;



유림이 홍의 녹음 테잎을 듣고 몰아세우는 장면에서는 화가 났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풀어질 여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맥주 캔을 던지며 폭력을 행사할 듯 하며 위협을 한다거나(이미 집에 강제로 쳐들어온 불한당이다.) 자신의 주장만을 우겨대며 상대를 상처 주는 유림은 나쁜 놈이다. 그런데 홍은 오히려 그런 상황으로 인해 마음이 풀리고 유림을 받아들인다. 거…참.


유림이 무척 나쁘게 느껴졌던 scene



영화 중반 이후로는 둘의 사랑 이야기고 서로 밀고 당기는 애정관계가 형성이 되어 그다지 큰 불쾌함 없이 보긴 했지만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도발에 기분이 나빠질 듯 말 듯 보는 내내 내 자신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둘의 사랑에 의해 6년간의 희정, 3년간의 연호가 이별을 선고 받은 것은 불쌍하긴 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반려자를 아웃시키는 건 아직까지 이 땅에서 용서가 되는 일이다. 하지만 여파가 영화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나타났다면 영화는 심각한 영화가 되고 말았을 테니까. 결혼을 한 상태였다면 더욱 심각해지겠지.


하지만 난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모든 것들에 반감을 느끼지 않는다. 불쾌했던 건 유림의 태도였고 도발이었을 뿐이다. 남녀가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이 인생을 결정지을 만한 큰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결혼을 했더라도 이혼 역시 ‘쿨’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 땅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살아온 이로서 그게 쉽지 않다는 것 역시 인정한다. 이성은 움직여도 감성은 여전히 ‘쿨’하지 않은 것에 묶여 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하지만 몇 년 전과 비교해보면 엄청나게 달라지긴 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마음은 그다지 즐겁지 못하다. 재미있는 요소 못지 않게 영화를 즐기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많았다.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봤자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크게 달라지거나 변하진 않겠지. 영화에 내 모습이 보이는 부분도 있었고 내 모습과 완전 반대인 부분도 있다. 보기 나름이고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영화가 즐겁지 않은 이유는 많다. 내 경험이든 내가 들었던 남의 경험이든 들추어 보면 여전히 아픈 사람들이 존재하고 힘겨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영화를 영화로만 보지 못했던 건 영화의 내용이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많은 일과 닮아있기 때문이고 현실은 영화와는 닮았지만 꽤 많이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기적 ‘옳음’으로 ‘그릇됨’을 포장해 상대의 ‘옳음’을 무시하지 않았나 되돌아 본다.


문득, 얼마 전 웹상에서 ‘미니스커트’ 논란이 일었던 게 생각난다.


‘쿨’함과 ‘자유’로움이 나와 상대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있을까.


그런데 도대체 연애의 목적은 뭘까?-_-a

댓글 2개:

  1. 어쨌든, 나도 보고 싶다. 그때 보고 왔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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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wolhoo - 2005/11/21 05:44
    언젠가는 보지 않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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