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1일 월요일

호칭의 문제

김규항씨 블로그에서 ‘선생님과 사장님’ 이란 포스트를 봤다.


호칭 문제는 나도 몇 년 간 지속적으로 고민을 하던 문제라 전적으로 공감을 표한다. 사실 호칭에 대해 별 다른 고민 없이 살아온 세월이 더 많았기에 여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호칭 때문에 난감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연배가 비슷하거나 아래일 경우엔 ‘~씨’라 하고 연배가 좀 많을 경우엔 ‘선생님’이라 칭한다. 여기서 연배의 비슷함이나 많을 경우의 경계선이 모호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상황파악을 해가며 쓰는 호칭이기에 큰 무리는 없다.


직책을 붙여 부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예를 들자면 ‘교수’다. 그런데 ‘교수’의 직책에 오르려면 시간강사->겸임강사->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정교수의 수순을 밟아야 하기에 엄밀히 말하면 내가 접해있는 ‘판’에서는 ‘교수’라 부를 사람들이 별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다고 ‘강사’라는 호칭을 붙이기에는 냉랭한 분위기가 형성이 되기 때문에 ‘선생님’으로 부르고 있다. 시간강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나는 학생들이 내게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해서 몇 번을 ‘강사’나 ‘선생’으로 불러달라고 해도 학생들은 ‘교수’라 부른다. 또 ‘교수’라 부르지 않으면 불쾌해하는 ‘선생’들도 꽤 있나 보더라. ‘박사’의 경우는 단지 ‘학위’의 이름을 뿐인데도 최상의 계급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불려지곤 한다. ‘아무개 석사’라고 하는 호칭은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박사’라는 직책이 있긴 하지만 ‘박사 학위’를 가진 이들 역시 ‘박사’로 불려지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건 곧 신분의 상승을 의미한다.


일본에 정통하신 한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일본은 한국처럼 직책을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고 ‘~씨’와 같은 호칭으로 부른다고 한다. 중국에 정통하진 않지만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중국에서도 남자의 일반 호칭은 미혼, 기혼 모두 ‘선생’이다. 여자는 미혼일 경우에 ‘시아오지에(小姐)’, 기혼일 경우에 ‘뉘스(女士)’가 된다. 직책을 붙여 부르는 경우는 서로 잘 알고 난 후지만 잘 알고 난 후에는 공식적인 자리 외에는 보통 바로 이름을 부르곤 한다. 어르신일 경우엔 성(姓) 앞에 라오(老)를 붙이기도 한다. 나이가 어릴 경우엔 역시 성 앞에 시아오(小)를 붙인다.(사실 중국의 호칭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영어권 나라의 경우엔 Mr. Miss. Mrs를 붙이겠지.


아무리 한국 사회에 인도의 카스트와 같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호칭을 보면 계급이 존재함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 계급은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계급을 우선으로 다방면에 걸쳐 계급을 형성하며 호칭을 부르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사장님’이란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나처럼 약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젊은이가 어디를 가더라도 장사하는 사람들은 나를 ‘사장님’으로 불러 세우길 마다하지 않는다. 난 사장님이란 말을 들을 때 꽤 불쾌하고 언짢다. 내가 언어로 해를 입은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저 나를 ‘돈지갑’ 정도로 보는 것으로 판단이 되기 때문이다.


호칭 문제에서 조금 옆길로 새긴 하지만 그와 관련된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바로 ‘나이’다. 예전엔 내 나름의 기준으로 호칭을 하겠노라고 마음을 먹고서도 나보다 어린 사람이 내게 ‘~씨’라고 하면 쉽게 넘겨지지 않았었다. 나 역시 ‘나이’라는 계급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고 ‘형’이나 ‘형님’ 대접을 받으려는 ‘조폭 사회’의 생리를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직책으로 부르게 되는 호칭도 문제겠지만 ‘나이’가 가지게 되는 호칭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도 꽤 큰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인간들 서로가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겸양의 자세보다는 줄을 세우고 등급을 매겨서 자신이 속한 계급 속에서 누리고 묻어가려는 심리가 많지 않나 싶다. 아무리 옳은 얘기를 하고 정당한 요구를 해도 일단 나이가 어리면 끗발이 서지 않는 사회다. 서로 ‘나이’로 제압하고 ‘직책’으로 제압하는 사회에서 평등한 대화가 오고 가길 바라는 건 어려운 일이다. 호칭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의미도 있겠지만 ‘인간’끼리 소통을 하려는 기본 틀이기도 하다.


‘형식은 본질을 규제한다’는 말이 있다.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에 내 삶이 구속되고 매여갈 수 있음을 느낀다. 호칭에서 계급이 사라지게 되는 때가 참으로 계급이 사라지게 되는 날이다.

댓글 8개:

  1. 올블로그에서 보고 들어왔습니다. 이민생활을 하면서 한국 교회에서만 보이는 직분제도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한국인 사회에 있는 "호칭"과 "계급"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었는데 마침 비슷한 주제의 글을 읽게되어 기쁘네요. 트랙백 신고드립니다.

    답글삭제
  2. @verisimo - 2005/11/21 05:25
    verisimo님, 반갑습니다. :)

    그렇찮아도 방금 외국에 있는 친구가 한국에서 관광오신 교회 관계자분들 얘기를 했었어요.



    행복한 이민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

    답글삭제
  3. trackback from: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행.복.한.자.유.인 - 호칭의 문제



    예전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긴 한데, 올블로그에서 보고 트랙백 걸었습니다.





    한국 교회에 가면, 여러가지 호칭이 많습니다.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답글삭제
  4. @kisca - 2005/11/21 15:22
    -_-;;;

    답글삭제
  5. 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
  6. @Anonymous - 2005/11/22 06:47
    어? 모르는 일인데? 정말?

    허허...너 이제 어쩌냐.ㅎ

    허락받지 않으면 무효라고 소송이라도 걸어라.-_-;;;

    답글삭제
  7. trackback from: 论我国的称呼问题
    论我国的称呼问题

    原著-金承仁 ,许诚译



    在很长一段时间里,因为对称呼方面没有太重视,所以一至于,每次认识一&#2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