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7일 월요일

PISAF 참관기 - 개인적인 상념

사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먹고 산다는 건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꾸준히 애니메이션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보여주려는 노력은 페스티벌이나 전시회 등을 통해서 나타난다. SICAF나 PISAF, 그리고 CAF 등은 코 앞에 10주년을 두고 있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다. 각각 서울시, 부천시, 춘천시에서 돈을 받아 행사를 꾸려나가는데 이익을 창출하는 게 목적이라기 보다는 가진 예산으로 최대한 멋지고 잘 행사를 운영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을 알리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각 시정부의 돈을 받아서 하는 것이니 그쪽 사람들 체면차리게 해주기도 하고 대접도 해주고 그러겠지.


가면 갈수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그 빛을 바래가고 있는 것 같다. 여기저기 들리는 소문들, 내막들을 종합해봐도 예전만 같지 못하고 모두 침체기에 접어든 듯 보인다. SICAF는 올해 거의 실패라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CAF의 경우는 행사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 지역민이 아니라면 잘 모를 정도가 되었고 PISAF는 올해 직접 가서 보니 몇 년 전(내가 참여해봤던)과 비교해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페스티벌인지 동네 전시회인지 모를 정도로 사람들 수도 적고 부스를 배치한 것도 그렇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고생하는 스탭들이야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학교 교수들이니 없는 시간 쪼개어 가며 행사를 준비했을테고 그 노력과 정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국제 학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다.


PISAF 개막식 때 개막작 상영 전 꽤 많은 인사(?)들이 축사를 해줬는데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축사를 하려고 안달을 했던지 난 졸려서 자버렸고 많은 사람들이 야유를 보낼 정도였다. 물론 다들 한 자리(?)씩 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나름대로 애니메이션 판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당연히 부천시장이나 정책 담당 국회의원이 없으면 애니메이션 판이나 PISAF정도는 문 닫을 처지 아니겠나.-_-; 아닌가? 암튼, 그렇게 개막식 때에도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데 행사는 완전히 뒷전인 것처럼 보였다.


계속 의문이 들면서 보기에 답답했던 것 한가지는 애니메이션 상영 전에 트레일러가 나오는데 보통 영화제에서 트레일러가 나오는 것과는 달리 세 편의 광고가 나오더라. 첫 번째는 경기도 홍보영상, 두 번째는 엠파스 광고, 세 번째는 농협 광고. 사실 이 광고들을 접하면서 난 당혹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게 왠 지랄인가 싶었다. 경기도에서 PISAF를 후원하니 광고 넣어줘야 한다고? 엠파스도 지원 좀 해줬나 보지? 농협도? 아무리 그래도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TV나 케이블 방송에나 나올 광고들이 버젓이 상영이 되고 있고 그 광고를 봄으로 인해 난 본편을 보고 싶은 마음이 절반 이상씩이나 깍이고 말았다. 트레일러는 왜 있는 것인지 모르는 것일까. 정 그렇게 광고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면 최소한 간단한 애니메이션으로 광고영상을 만들어 틀던가. 경기도 홍보영상은 혹 '대권' 도전을 위한 정치 선전 영상물일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수하고 좋은 애니메이션을 많이 준비하고도 그 애니메이션들 앞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붙어있는 광고들 때문에 '페스티벌'이 '동네잔치'로 끝나는 듯 해서 허탈하기만 하다.


그리고 왜 주말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올 것임도 불구하고 복사골 문화센터 안에 있는 커피 라운지나 휴게실 등은 문을 닫는 것일까. 애니메이션이 일찍 끝나서 밖에 나가 차 한잔 하며 기다리고 싶어도 앉을 공간도 없고 차 마실 곳도 없어서 슈퍼에서 음료수 사다가 한쪽 구석에서 깨작대며 기다렸다. 그것도 중국에서 오신 감독님들, 교수님들과 함께. 참 민망하기 짝이 없는 노릇. 내가 복사골 문화센터의 구조를 잘 몰라서이기도 하겠지만 있었더라도 안내판도 없으니 알 턱이 있나.


이제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은 사라질 참인가?

댓글 11개:

  1. trackback from: PISAF 2005 개막식을 다녀와서.
    PISAF 2005 개막식을 보고 와서 남기는 글.



    1



    행사를 개최하고 얼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참 많았나보다.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도지사, 시장 등등. 끝도 없이 계속될 것만 같던 축사 릴레이?

    답글삭제
  2. 형은 졸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 선하게 생기신 조직위원장 부터 다른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한마디씩 할 때 "존경하는 홍건표 시장님 덕분에..." 뭐 이런 얘기를 한참 하더라고. (한참은 아닌가? 암튼).





    그런데, 그 때 "아- 저 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관계자였던 사람 중 한명이 피켓 들고 저 뒤에 서서 홍준표 시장 앞에다 대고 침묵시위 같은 거 하거나 -_-)ㅗ 뭐 이런 거 하지 않을까? 하면 어떻게 될까? 정말 하면 재밌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 "아, 홍건표 시장은 이런 식으로 우리의 판타스틱한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키워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뭏튼 길기도 길었지만 참 별의별 상상을 다 하게 만드는 축사 릴레이었어.

    답글삭제
  3. @써머즈 - 2005/11/08 23:24
    그 존경하는...이란 말은 조직위원장이 말할 때부터 감 잡았지 뭐.



    "권력=돈"이기 때문에 예산 받아서 하는 영화제는 '모'아니면 '도'지. 판타스틱 영화제가 되거나 피사프가 되거나.



    얼굴이 화끈거려서 혼났다. 폐막식 때도.=_=;;;

    답글삭제
  4. 아아...폐막식때...폐막상영을 기대하고 끝까지 기다렸는데..

    길고 긴 연설과 수상끝에..

    대상한 작품밖에 상영안해서 정말 정말 정말 아쉬웠어요..;

    설마 앞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지체해 안한건가....ㅇㅁㅇ!;

    답글삭제
  5. @상林 - 2005/11/09 21:05
    그렇죠? 무척 긴 시간을 기다린 보람은 온데간데 없고

    행사를 자축하고 자찬하는 얘기만 가득한...=_=;;;

    대상한 작품도 중요하지만

    함께 수상한 작품도 중요하다는...

    아무리 앞에서 시간을 지체했더라도

    수상작은 다 보여줘야 하지 않았나 싶네요.



    암튼, 아쉬운 폐막작 상영이었어요.

    전 덕분에 '나비효과'를 꽤 많이 봐버렸네요. 허헛...-_-;;;

    답글삭제
  6. 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
  7. @Anonymous - 2005/11/10 08:01
    흠...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힘들었겠구나...하고 짐작만 할 뿐이다.

    닫을 건 닫고 살아도 사는데 지장없다.

    힘내라...

    답글삭제
  8. 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
  9. @Anonymous - 2005/11/14 18:51
    제 돈 들여 대접한 건 아닙니다.

    시간과 육체적 노동을 투자한 거지요. :)

    답글삭제
  10. 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
  11. @Anonymous - 2005/11/15 19:01
    넵!!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