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30일 월요일

모르겠다.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매듭을 지어가야 할지...도대체 모르겠다. 다만 조금씩 명확해지는 것들은 있다. 지켜내기 쉽진 않겠지만 지켜내야 한다는 당위성의 일부분은 명확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2005년 5월 22일 일요일

젊은 벗이여, 당당하게 살아라.

젊은 날, 오로지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그 맑은 눈에 어른들이 당당하지 않게 보여, 그들처럼은 살지 않으려 했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작문 숙제에 나는 선생 아닌 다른 것은 무엇이라도 좋다고 썼다가 심한 꾸중을 들었다. 선생인 아버지와 친척들, 그리고 학교 선생들에 대한 반항 탓이었다. 그러나 나도 선생이 되었고, 나의 선생들처럼 당당하게 살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젊은 벗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당하게 살아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홀로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떤 인연의 무리든 간에 그 속에 뒤섞여 자아를 잃고 살지 말라. 어려서부터 무리 속의 삶에 지쳤던 나는 부모, 형제, 처자까지 남들과 똑같이 대하고자 노력했다. 기타 혈연, 지연, 학연, 지연 따위는 철저히 무시했다. 따라서 동창회든 종친회든, 등산회든 골프회든, 친목계든 관혼상제든, 교회든 절이든 일체의 모임에 가지 않는다. 젊은 벗이여, 고독해라!

내게는 그런 인연으로 맺어진 동기, 동료, 선후배나 스승, 제자, 벗이 없다. 물론 스승, 제자, 벗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배울 만하면 스승이고, 가르칠 만하면 제자이며, 마음이 통하면 벗이다. 그들은 오직 인간 대 인간으로 그렇게 관련될 뿐이다. 따라서 스승이라고 해서 우러러볼 것도, 제자라고 해서 낮춰 볼 것도 아니다. 사실은 모두 벗이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닌가? 젊은 벗이여, 모든 인간을 벗삼아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어떤 지배, 명령, 복종, 지시,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벗으로서의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어떤 권력이나 이데올로기부터도 자유롭고, 영웅주의나 천재주의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과 가치를 지켜라. 그리고 그런 세상을 꿈꾸고 그렇지 못한 현실에 당당히 맞서라.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현실에 대한 도전 없이 당당한 삶은 있을 수 없다. 젊은 벗이여, 꿈꾸고 맞서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참된 벗일수록 각자가 분명한 자신의 생각을 갖고 그것을 굽히지 않으며 실천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 없이, 아니 아무 생각 없이 남들에 떠밀려 사는 사람들을 어려서부터 많이 보아온 나는 남들과 똑같은 소리를 하거나 글을 쓰는 자를 경멸한다. 특히 자기 생각을 굽히거나 말과 행동이 다르게 사는 자를 스승은커녕 벗으로도 삼지 말라. 젊은 벗이여, 굽히지 말라!

물론 이처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서 특히 어렵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한다. 젊은이여, 그럴수록 더욱더 당당하게 살라고. 오로지 당당하게 당당하게 살라고. 당당하게 사는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젊은 벗이여, 저 도도한 패거리 문화가 만드는 억압과 불평등, 무사상과 무실천의 야만을 당당하게 갈아엎어라!

2005년 4월에
박홍규

고종석, 김진애, 박노자, 박홍규, 손석춘, 장회익, 정혜신, 조정래, 홍세화 등의 필자가 펴낸 책의 머리말에 나오는 글이다.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나는 당당하게 살아왔는가? 내 젊은 날의 깨달음은 무엇인가? 그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서 당당하게 살기가 가장 어렵다는 말은 더더욱 공감한다. 외로움이나 버거움은 그냥 덤으로 가져가야 할 업인가?

요즘 들어 애니메이션을 하는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작품을 만들어 영화제에 내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며 생각을 나누고 실천을 나누겠다는 초발심도 근래에 들어 힘겨움으로 흔들리곤 한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도 아니고 최근에 끝낸 작업 때문에 지쳐서도 아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생각이 맞물려서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생각을 좀체로 풀어보지 못하고 있다. 또 다시 대면하게 된 삶의 매듭이라 생각하고 있기에 그나마 버텨내고 있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하고자 했던 생각들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애니메이션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들고 좋은 작품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지금 내 나이, 젊다면 젊고 젊지 않다면 젊지 않다. 하지만 위에 있는 글은 비단 젊은 벗들에게만 말하는 건 아닐 터. 나이를 먹어가고 세월이 한참 흘러도 당당하게 살고 내 주체적 이성과 감성을 가지고 주체적 상대와 교류하며 괜찮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실천하고 노력해가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부디 시류에 휩쓸리지 않기를... 부디 하고자 했던 일의 끝간 데를 알아내기를... 서둘러 정착하고 서둘러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기를...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살아야겠다.

2005년 5월 18일 수요일

518

역사적 사실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내가 518을 이야기하는 게 마뜩찮을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알아가고 변화시켜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이다.

중학교 때 사촌형님에게 처음 들었던 "~오월 그 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엔 붉은 피 솟네..~"라는 노래는 가사가 충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가슴에 아주 오랜동안 울림을 전해줬었다. 그게 어쩌면 내가 처음 접한 518에 대한 기억일테다. 그 이후로 또 그냥 지내오며 최루탄 흩날리는 이리에서 전주에서 눈물 흘려가며 시위 학생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냥 본능적(?)으로 518 이야기만 들으면, 민중가요만 들으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맥박이 빨라지고 눈물이 글썽해지곤 했는데 왜 그랬는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518관련 사진을 접하고 역사적 사실을 접하면서 알 수 없었던 분노는 이유있는 분노로 바뀌게 되었고 다른 정치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깜깜한 상태였지만 518에 대한 생각은 점점 구체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사실에 근거해 생각을 쫓아가다 보면 사회 전반에 걸쳐, 아니 세계사 전반에 걸쳐 원인결과가 맞물려 있음을 알게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중력 상태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어디서부터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까.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고 시작하자면 518 진상규명부터 관련자 처벌까지 순서대로 해나가다 보면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는 어느정도 잡혀갈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오늘 518. 25년이 흐른 지금. 많은 게 바뀌었지만 또 많은 게 바뀌지 않고 있는 지금. 생각이 복잡하다. 내 개인의 삶도 복잡하지만 그 복잡함의 근원도 생각해보면 이런 역사적 사실과 연기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풀어갈까. 어떻게 해결해갈까. 시간이 흐를 수록 난 더 방황하게 되고 헤매고 있는 것만 같다.

잊지는 않아야지. 지금 생각하는 것들, 지금 고민하는 것들. 잊지는 말아야지. 세상을 통째로 변화시킬 수 있었을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치기는 지금 작은 것 하나 제대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버거워하고 있긴 하지만 분명 연결고리는 있으니 잊지는 말아야지.

참 살아내기 어려운 삶이다.

2005년 5월 16일 월요일

~같은 삶.

하루종일 간이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영화를 보고 졸다가 깨다가 땀도 흘리고 시원한 방바닥에 배를 붙이고 더위를 이겨내다가 때되면 밥먹고 그렇게 완전한 백수의 삶을 살아보고 있다.

뭔가를 풀어내야 하는데...라는 강박은 있는데 잘 잡히지도 않고 실마리도 잡히지 않는다. 꿈 속을 헤메는 느낌이랄까. 손가락 사이로 바람이 새어나가는 듯, 물 속에서 손가락을 펴고 물살을 가로지르는 느낌...

차근차근 하나씩..그래..차근차근... 한꺼번에도 괜찮아.

2005년 5월 15일 일요일

무슨 무슨 날.

스승의 날. 상인이 생일. 세종대왕 탄신일. 부처님 오신 날.

하루종일 따사롭게 내리는 햇살에 취해 시간도 몽롱하게 지나가고 해가 뉘엿 넘어갈 즈음에서야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간만에 반가운 이들도 함께 오붓하게 선생님 댁에 가서 간단한 음식에 간단한 알콜을... 복작스럽지 않아서 더욱 마음 편해지는 자리. 서로 사는 얘기를 즐겁게 받아내고 풀어낼 수 있어서 좋은 자리. 때 되면 자리를 일어설 수 있는, 가는 걸 몇 번 잡아서 만류할 수도 있는 그런 자리. 어쩌면 작은 삶의 모습이기도 하겠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자리기도 하다.

호주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고 생일을 축하했다. 그러고보니 직접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한 건 이게 처음이네. 하긴 동생과 난 별로 전화를 하지 않고도 그냥..서로 믿는 마음 하나로 살아오긴 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사는 것이기도 하고 가끔 대화를 해도 살아가는 큰 방향은 다르지 않으니... 타지에서 있으면서 이런저런 어려움도 많고 힘겨움도 많고 새로움도 많을 터인데 곧잘 지내온 것 같아서 다행이지 싶다. 오늘 하루는 친구들과 함께 넉넉한 생일 파티가 되길~

2005년 5월 14일 토요일

지금...

후배를 만나고 헤어지고 또 다른 후배를 만나고...

그러다 간만에 밀렸던 글들을 주욱 올리면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답답한 심정을 뽑아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정리되지 않는 삶의 틈을 발견한다.

자판의 간격보다 내 머리 속의 사고하는 흐름의 간격이 더 멀게 느껴지는 건 꾸준히 정리해내지 못하는 삶의 방식의 서투름이랄까...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이하고 싶은 작은 바램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루어지길 바래고 또 바랜다.

약속 :: -285

반가운 사람과 통화를 하는 건 말이죠. 그냥 그것만으로도 족한 거예요. 때론 상대방의 숨소리, 말의 간극, 말의 느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거죠. 모르겠어요. 유독 살면서 외로움(?)을 종종 느끼는 제가 말하는 궤변일지는 모르겠지만 벗을 만나면서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건 그렇다는 거죠.

하지만 당신이 아니라면 아닌 거예요. 우기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요.

스치는 바람에, 변해가는 계절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도 지금 제 마음을 충분히 보고 있을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리죠. 아직 뇌세포가 죽어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요...

문득, 오랫동안 전화기를 붙잡고 지금 앞에 있는 것처럼 대화를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어쩌면 오늘이 그랬는지도 모르죠. 여전한 "어색함"은 있을 수 있지만요...

이해할 수 없어요.

생각할 수록 이해가 되지 않고 꼬여가는 생각들이 있다. 본인이 생각할 때 옳은 일은 평생을 두고 옳은 일일까? 상대방과의 작은 약속도 본인이 생각할 때 별 것 아니면 방치해도 되는 일일까? 약속은 약속이지 않나? 얼마 전 내 기억의 한계로는, 내 사고의 범위로는 이해가 안되는 일에 대해 역으로 공격(?)을 당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가 있다면 상대방도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아니, 이런 말장난을 뒤로 하고라도 세상의 모든 일들은 최소한을 기본으로 하는, 정당함을 기초로 하는 "사실"이 존재한다. 그게 자신의 기억의 한도 내에서 기억되어지는 일들로만 판단하고 근거해서 상대방을 몰아 세울 수 있는 일인가?

난 아무래도 이상한 세상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온 게 틀림없다. 이렇게 글을 풀어내고 말을 풀어내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내가 뱉어낸 말은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될 수도 있을게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으련다. 최소한 지난 삶을 되돌아 보면 지랄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내가 상처를 준 이들에 대해서는 지금도 참회하고 반성하며 살고 있으니까...

아이러니.

인류의 역사까지를 거론하기에는 너무 거창할 뿐더러 내 개인사 조차도 정리하고 있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문득 든 생각. 세상은 늘 변화하긴 하지만 변화가 더디거나 반복되는 것엔 이유가 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라는 말을 다시 거론하지 않더라도 기억은 늘 사람들의 삶 속에서 왜곡되고 조작되며 자기 자신을 위한 훌륭한 알리바이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긴 일상을 적어두었다가 증거로 제시해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기도 하지.

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과 과오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남의 잘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한 것 같다.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하더라도 어쩌면 이런 보편적 오류로 인해 보다 나은 세상은 더디게 오는 걸지도 모른다.

우겨라! 세상이 그대를 인정할 때까지...
받아들여라! 세상을 이기지 못할 바에는...

2005년 5월 13일 금요일

약속 :: -286

이젠 약속이란 말 자체가 필요없는 것 같아요. 그죠?

잘 모르겠지만 이제 남은 건 상황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상황을 받아들인다 해도 내 자신의 상황 뿐만이 아니라는 것. 그건 사실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다만, 여전히 서로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 따른 삶은 유효하다는 걸 알고는 있겠죠.

문제는 어떤 행동과 취사 선택에는 늘 책임과 의무와 합의(?)가 따른다는 것이겠죠. 전 모든 걸 슬기롭게 해결해갈 수 있으리라 믿어요. 어떤 말도 쉽게 하진 않을게요. 다만, 서로에 대한 생각, 믿음은 쉽게 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그게 삶이니까요.

[mov] 누구나 비밀은 있다. / Everybody has Secrets / 谁都有秘密

누구나 (정말) 비밀이 있나?


비밀을 간직하게 하고 그 비밀의 크기만큼 행복을 주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바람둥이의 이야기. 하긴 이걸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바라보면 주인공 남자는 어떤 욕망과 욕구가 의인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남녀관계에 섹스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사랑은 섹스 이외의 것들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는 정석적인 대답은 어떨까? 남녀관계에서 섹스 빼고 대화와 삶의 공유라는 건 좀 삭막하기도 하다. 섹스가 훌륭한 대화이며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단, 이건 남자들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섹스가 아니라 남녀공통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섹스여야 한다. 일방적 소통일 경우엔 어떤 식으로든 폭력의 형태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내용인데 희대의 바람둥이 돈 쥬앙이 일반 바람둥이와 다른 점은 “만나는 여자들마다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점이라고 한다. 이것도 남자들의 시각에서 미화하기 좋은 말꼬리이긴 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장난으로 만나는 것보단 훨씬 낫다.

수현은 미영, 선영, 진영과 아슬아슬하고 짜릿한 관계를 형성해가는데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그 누구도 수현이 다른 이를 좋아하는 걸 탓하지 않는다. 어쩌면 많은 남자들은 수현의 완벽한 조건 때문에 질투는 할지언정 세 자매와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선 욕지거리를 하지 않을 것만 같다. 게다가 여자들은 상황의 황당함에도 불구하고 백마 탄 왕자와 같은 이병헌의 멋진 모습에 마음이 수그러들 것만 같다. 감독이 관객과 이런 식의 유희를 즐기며 사람들의 심리 이면에 있는 이중적인 모습을 끌어낼 목적이 아니었다면, 그저 단순히 관계의 복잡미묘함 때문에 선택한 내용이었다면 불쾌한 마음까지도 든다.

뭐, 어쨌거나 영화적으론 그리 완성도도 없고 배우들의 연기도 형편없었지만 결말이 어찌 될까 궁금한 마음에 마지막까지 봤다. 마지막 결말도 어이가 없었지만 마지막에서 수현이 다른 커플을 바라보며 새로운 “작업(?)”을 준비하는 걸 보면서 “완전 픽션”이란 생각이 강하게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영화보고 속은 듯한 느낌. 싫다.-_-

2005년 5월 12일 목요일

우습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중엔 참 별 일도 많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니 누가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겠다. 때론 내 자신이 애를 쓰며 지키고 살아가려 하는 것도 한 순간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마는 게 현실인데 뭘 그렇게 부여잡고 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솔직한들, 아무리 성실한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자신을 알아주는 이는 자신 밖에 없는 것을… 이런 푸념조차도 내 자신의 허세인 줄은 알고 있지만 남들의 이야기에 별로 귀 기울이고 싶지도 않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고 삶의 충고와 충언, 그리고 소소한 작은 일들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피식~ 웃음도 나고 다시 예전 감정이 올라오는 것도 느끼면서 아주 약간의 알코올로 꽤 많은 이야기 거리를 서로 나누고 또 나누었다. 사는 건 정말 우습다.

[mov] Danny the Dog / 狼犬丹尼

이연걸은 개(?)다(?)


대니로 분한 이연걸이 주인공이긴 한데 왠지 찝찝한 기분이다. 대니는 한 서양인의 애완견처럼 묘사되어 나온다. 이 서양인(Bob Hoskins 분)마치 투견을 데리고 다니면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과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대니도 나름대로 삶의 굴곡이 있을 테고 사연이 있겠지만 동양인이 서양인의 충실한 투견이 되어 살인을 하거나 폭력을 자행하는 걸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이연걸의 액션”만 아니었다면 굳이 볼 필요도 없는 건데…

초반을 좀 지나 대니는 맹인인 샘(Morgan Freeman 분)을 만나는데 동양인이 봉사 흑인을 만나고 그 흑인은 (순수 백인 혈통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백인 여자아이를 거두어 키우고 있다. 헐리우드의 만연한 인종차별적인 구조도를 보고 있는 듯 했지만 이 역시 좋은 뜻으로 해석하면 다른 인종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가져달라고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정말?!! 절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제작자, 감독이 뤽 베송이라니 프랑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다지 기분 좋은 영화는 아니다. 단지, 설정만으로도!! 하긴 좋은 얘기를 하기 위해 이런저런 무리한 설정들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동양인을 이런식으로 묘사한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겠는가. 리쎌웨폰4에서 이연걸이 악역으로 출연한다는 것 자체로도 많은 말들이 오갔는데... 뭐...어쨌든 인간성을 회복하고 억울하게 삶을 송두리째 뺏긴 이연걸의 삶을 나중에 다 드러내긴 한다.

이연걸의 액션은 여전하다. 성룡은 나이 들어 힘들어 하지만 이연걸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다. 역시 여전히 카메라는 이연걸의 액션을 쫓아가지 못해 버벅대는 아둔함을 보여주긴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이연걸의 좀 더 나은 "황비홍"의 모습을 만나보길 기대해본다. 액션, 카메라, 배역 모든 면에서...

2005년 5월 11일 수요일

나는 나.

난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은 하나 더하기 하나는 셋이라고 말한다. 누가 옳은가? 난 내가 100% 옳다고 말하진 못한다. 세상의 덧셈, 뺄셈, 나눗셈, 곱셈은 상황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 더하기 하나가 답이라고 정하고 살아가는 삶에서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그릇된 답이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해석과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게 없이는 지극히 고집스러운 이기심의 발로 밖에 되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기회들이 내 삶의 최고의 기회였을까? 누가 나에게 세상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할지라도 그게 내게 불합리하거나 내가 소화해 낼 수 없는 기회라면 내겐 최고의 기회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게다가 내게 최고의 기회라는 건 내가 판단하는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내게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내게 최고의 기회가 그 사람에게는 별 것도 아닌 기회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그러니 내게 누군가가 나를 무척 생각하고 배려해준 걸 내가 받아내지 못했다고 나무랄 이유는 하나도 없다. 나와 대화를 나눈 내용조차도 다 받아내지 못하면서 말이다.

생각할 수록 웃기는 상황 속에서 웃기는 광대노릇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람을 믿는 마음, 사람만이 희망이란 말은 여전히 내게 유효하지만 여전히 상식을 어긋나고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굳이 나를 해석할 이유는 느끼지 못하겠다.

2005년 5월 1일 일요일

마피아 게임

1.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마피아의 수를 정한다. 마피아의 수를 정할 때는 전체 인원에 비례하여 정한다. 예를 들어 12명 일 경우 약 4명 정도. 그 수는 게임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2. 모두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사회자가 마피아를 지목해준다.

3. 마피아로 지목된 사람들은 눈을 뜨고 같은 편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4. 전체 모두 눈을 뜨고 난 후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마피아를 골라내는 추리를 하기 시작한다.

5. 많은 사람의 의심을 받은 사람이 있을 경우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의심을 받은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의심받는 이를 죽이거나 살릴 수 있는 투표를 하게 된다. 과반수가 되면 의심받는 이는 죽거나 살 수 있고 죽게 될 경우 이후 발언권을 박탈당한다.

6. 만약 마피아를 지목하지 못하고 무고한 시민을 지목해 죽게 했다면 모두 다시 눈을 감고 마피아들만 눈을 뜬 상태에서 시민 한 명을 임으로 죽일 수 있다.

7. 모두 눈을 뜨고 난 후 사회자는 마피아들이 지목한 시민이 죽었음을 알려주고 다시 마피아를 찾는 추리를 하도록 한다.

8. 마피아를 다 잡아내지 못하면 마피아의 승리.

9. 가끔 사회자를 바꿔가며 진행을 한다.

* 게임은 그 결과에 따라 어떠한 벌칙 등이 수반되는 게 보통인데 이 게임은 그런 게 있지 않아도 충분히 흥미롭다.

전주영화제.를 다녀오다.

불쑥 이교수님과 통화가 되고 나서 전주를 내려가자는 제안에 따라 나섰다. 가서 영화는 딱 2편 밖에 보지 못했지만 계원 후배들과 준비하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독립애니메이션 협회 사람과의 이야기, 타 대학 강사와의 얘기를 통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문득 다시 또 "애니메이션을 왜 하는가", "애니메이션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고개를 든다. 아주 지극히 내 자신에 반문하게 되는 질문인지라 또 한동안 화두를 틀고 살아야 할 모양이다.

* 마지막 날 밤, 후배들과 교수님들과 함께 "마피아 게임"이란 걸 했는데 생각보다 꽤 흥미로운 게임이었다. 집단과 개인의 어떤 이질적인 문제 또는 사람들의 심리와 표정을 파악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