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3일 금요일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

▣ 그림·글 최규석

애니메이션에서 나름 이름을 알린 친구가 있다. 연상호다. 작품도 좋지만 혼자서 40분에 달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내가 알기로는 이것저것 밥벌이해 가면서 6년쯤 걸렸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작업실에 파묻혀 창작의 고통과 싸우는 고독한 예술가를 상상하겠지만, 그건 예술적 재능보다는 끝없는 단순노동을 견디는 질긴 엉덩이를 더 필요로 하는 일이다.

당연히 “왜 그렇게 긴 시간을 혼자 작업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어보는 사람은 예술가의 고집이니 창작의 순수성이니 하는 말을 기대하는 듯한데, 대답은 “돈이 없어서”다. 줄 돈이 없으니 혼자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던 연상호가 국가의 은혜를 입어 팀을 꾸렸는데, 이 팀이 돌아가는 꼴이 좀 특이하다. 커피와 박카스와 라면과 부르스타와 라꾸라꾸 침대 등 온갖 야근과 생활의 흔적이 난무해야 할 애니메이션 작업실이 마치 급조된 유령회사 사무실처럼 휑하다.

오전 10시 출근, 저녁 7시 퇴근, 지각을 하더라도 무조건 칼퇴근, 감독은 야근해도 직원은 퇴근. 여름에는 유급휴가를 가라 하니 스태프들이 오히려 어색하다.

사실 이쪽 동네에선 그러지 않아도 된다. 밥값이나 주면서 밤낮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세상 물정 모르고 열정이 넘치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가난과 과로를 버텨낼 기특한 청춘들이 깔린 동네다.

감독은 그들의 열정으로 제 명성을 쌓거나 배를 불리면 된다. 서로가 원하는 일이고

“예술(혹은 문화산업)을 위해서”이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열정만으로 버틸 수 없게 된, 좋은 기술을 가진 직원들이 판을 떠나고 그들의 빈자리를 새로운 20대들이 채운다. 결국 작업의 노하우는 쌓이지 않고 감독만 북적대는 세상이 된다. 그리고 시장은 사라지고 영화제와 지원금만 남게 된다. 아니 그렇게 됐다.

편한 길을 두고 연상호는 자신을 규제 속에 옭아놓는다. 그게 세상의 상식이고, 애니를 위해서도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눈치 보여서 퇴근 못할까봐 더 일을 하고 싶어도(연상호는 일중독이다) 일부러 감독이 먼저 일어서곤 했는데, 초반에 칼퇴근을 낯설어하던 직원들도 요즘은 시간이 되면 알아서들 잘 간다.

“감독이나 사장이 너무 편한 세상이야. 직원들 고생하는 게 대부분 감독이 제 역할을 안 해서 그런 거거든. 직원들이 좀 권리를 챙겨야 하는데 나중에 감독이 될 때 되더라도, 직원일 땐 직원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행복한 스태프 없이는 지속적으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어. 그럼 감독은 뭐 먹고사느냐고? 스태프들 열정에만 기대서 작품 할 거면 감독 안 해야지. 그 사람들 아니라도 감독 할 사람 많아. 왜 지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 고생시켜. 뭐? 그러면 애니메이션이 사라진다고? 애니가 뭐라고…. 아, 애니 없으면 어때? 상식이 우선이지 예술이 우선이야?

연감독, 안뇽~ 내일 봬요.

근데…나 빡세게 일하고 있는데 시간 되면 쓱 가버리는 스태프들 보면 마음이 참 뿌듯하면서도 억울하다. 하아~!

얼씨구, 돈은 국가가 대고 폼은 지가 다 잡는다.

출처: http://h21.hani.co.kr/section-021159000/2007/11/021159000200711150685001.html

** 지금 만들고 있는 애니메이션 <사랑은 단백질>의 원작자 최규석 작가가 친구인 연상호 감독에 대해 한겨레21에 올린 칼럼이다.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모습을 멋있게 그려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최규석 작가는 연상호 감독을 꽃미남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그려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 거라... 추측을...) 한국 만화와 애니메이션 계에서 나름 인정받는 이들이 서로에 대해 비판하고 칭찬해주는(비판에 방점!) 관계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특히 이 두 젊은 예술가들은 동시대 젊은 이들에게서 보기 드문 바른 세계관, 인생관, 작품관을 가지고 있다. 이 내용이 혹여 어떤 이들에게는 연상호 감독에 대한 칭찬이 아닌 내용처럼 비추어질 수도 있겠지만 단연코 말하건데 최규석 작가가 말하고 있는 내용은 연상호 감독에 대한 칭찬과 애정임에 분명하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칼 출근, 칼 퇴근을 지키는 데가 있을까? 이는 비단 출퇴근에 대한 개념, 시간준수에 대한 개념이 아니다. 모든 작업자들이 최소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하고 있는 일로 하여금 영향 받지 않게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복지에 대한 개념이다. 여기엔 분명 연상호 감독이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일에 대한 관(觀)이 드러나고 있다. 또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칼 출근과 칼 퇴근 사이, 즉 작업할 시간 동안 작업자들이 놀며, 수다떨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이 이상적인 시스템을 만들면 그 시스템을 악용하지 않고 제대로 시스템을 활용하는, 지금의 (나도 속해있는) 이 시스템은 정말이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모 감독이 이끌고 있는 팀은 밤을 새는 게 애니메이션의 열정이라 주장하며 젊은 스태프의 연애조차 작업을 방해하는 불순한 것으로 생각하며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연상호 감독이 주장하는 시스템은 아주 상식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 감독의 시스템에 비하면 천국의 그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좋은 시스템, 이상적인 작업방식을 직접 실행한다는 건 사실 감독이나 스태프들이나 쉬운 일은 아니기에 연상호 감독의 저런 '고집'은 주목받아 마땅하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관계가 얼마나 그리운 때인가.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수행을 제대로 해낼 때 내 삶은 풍요로워지고 윤택해지며 너의 삶도 함께 행복해진다. 그건 조그만 작업집단에서부터 커다란 세계사회까지 널리널리 전염되어야 할 기분좋은 바이러스다. 여기에 하나 더 연상호 감독은 좋은 스태프, 좋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고민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모로 스스로를 학대한다. 물론 그게 좋은 세상 만들기 일환이든 스태프를 아끼는 마음이던, 혹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던 간에 결국 바람직한 행동은 나와 너, 모두를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사실 연 감독이든 스태프든 7시간 되면 누구랄 것도 없이 이렇게 말한다. "퇴근 안 하세요?" 그러면 모두들 "아! 가야죠!"라고 말하며 주섬주섬 자신의 소지품을 챙긴다. 그리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함께 버스에 오른다.

2007년 11월 22일 목요일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날?? - 옮겨온 글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는 날.

다른 홈페이지도 있긴 하지만
남들 블로그를 가끔씩만 보다가
문득 일탈?을 하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남기게 되네.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온지도 벌써 6개월이 넘어간다.
늘은 건 외로움 밖에 없는 것 같다.

하긴 중국어도 좀 늘긴 늘었네.
만족하지 못해도 공부가 잘 안되는 걸 어떡해.
변명이라는 건 너무너무 잘 알지만 어떡해.

슬쩍 슬쩍 와서 꾸역꾸역 게워놓는다면
이중성인가?
아니지, 다른 집에서도 사실 잘 게워놓긴 하는 데 뭘~


04|04|23 03:14:11


** 이 때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던 날이었나? 흠;;;

머리에서 가슴까지... - 옮겨온 글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해가 밝지 않은 날이면
하루종일 우울한 주말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커튼을 걷어서 밖을 내다봐도 늘 같은 건물, 같은 사람들.
같은 걸 보면서도 다른 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이론상으론 쉬워도 마음까지 와닿게 하는 건 참 어렵다.

그러고보니 그런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어쩌면 난 많은 사람들에게 헛얘기만 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정말 끝까지 갈 수 없는 곳까지 내몰리고도
버텨오고 견뎌왔으면 스스로도 미혹한 어떤 부분은 분명 해결되었을 텐데...
슬쩍 바닥까지 갔다 온 듯한 느낌으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예전에 내가 겪었던 경험들은 꿈이었을까?
착각? 환상?.... 모를 일이다.
지나왔던 모든 게 꿈이라도 해도 혹은 착각이라고 해도
그것들을 딛고 내가 서있는 건 확실하니까...

한참 머릿속이 잘 정리되어 왔었는데
중국에 오면서 모든 게 얽혀버린 느낌이다.
예전과는 다른 얽힘의 형태로...어디서 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04|04|23 16:18:32


** 여전히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는 멀다.

술은... - 옮겨온 글

먹으면 먹을 수록 취하고
마시고 안주를 먹어도 속은 늘 비어가는 느낌.
친한 이들, 혹은 그리 친하지 않은 이들과 함께 술을 마셔도
늘 혼자 마셨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집에 돌아올 때가 가장 심하다.

먹기 싫을 때도 웃음으로 술잔을 가득채워 먹어야 할 때도 있고
무척 마시고 싶을 때도 짐짓 점잖은 척 먹지 않을 때도 있지.
그건 모두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여 가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

술은 먹어도 가슴에 쌓인 먼지는 쉬이 털어지지 않고
그 액체와 더불어 더 끈적하게 말라붙어 늘 가렵기만 하다.
긁다가 긁다가 지쳐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되면
다시 술 생각보단 사람 생각이 더 많이 난다.

마실 때는 즐거운 건 사실인데
가끔 마신 후의 그 알 듯 모를 듯한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다.

한 때는 1년 내내 술을 마신다 해도
늘 즐거울 수 있었을 것만 같았는데...


04|04|26 04:14:52


** 술 자리를 무척 좋아했고 술친구도 좋아했던 날들. 요즘은 시간도 시간이지만 상황이 허락하질 않는다. 아, 잼없다.

왜 이러지? - 옮겨온 글

왜 이렇게 피곤한걸까?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느낌이다.

밤새 뒤척이 느낌도 없는데 꿈을 꾼 기억도 없는데...

지난 밤은 아련히 기억도 나지 않는 몽상처럼 사라지고
아침은 늦게도 찾아왔다.


04|04|27 10:47:56


**  아침은 지금도 늦게 찾아온다. 아니, 내 예상보다 일찍 찾아와서 싫다.-_-;

한국으로 잠시 - 옮겨온 글

비행기 표를 겨우 예매했다.
아니, 겨우라는 말은 좀 그렇다.
30세 이상은 유학생증이 있어도 할인이 안된다고 해서
잠시 망설였을 뿐이다.
다행히 점장이 한국에서 파는 가격과 똑같이 해준다고 해서
그나마 할인 혜택을 좀 받을 수 있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는 의외로 한국보다 비싸다.

외국에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조건 돈이 많은 줄 아나보지? 젠장...

어쨌든...
중국인들이 5월 1일부터 일주일간 노동절 휴가를 즐기는 사이
난 한국에 가서 어머님도 뵙고 다른 인연들도 만나고 오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온지 1년도 안되었으면서
한국을 잠시나마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설레는 느낌.

가기 전에 이것저것 정리할게 많은데
머리 속에 알수 없는 뭔가가 꽉 들어차 답답한 느낌이다.


04|04|29 00:40:03


** 때론 공항이 더 익숙한 느낌이 들어버린 지금. 물론 자금과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지금이지만. :) 낑낑대며 살았던 날들 중 한토막.

... - 옮겨온 글

어머님을 뵙고 친구들을 만나고 교수님들을 뵙고 아는 인연들을 만나고 정신없는 3주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장춘으로 돌아왔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그 사람들에게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런 기대가(스스로에 바라는) 나를 좀 힘들게 하는 걸 느낀다.

사람들끼리 관심이 없이 살게 되면 견딜 수 없지만
사람들끼리 관심이 너무 많이 있어도 힘겨운 일이 될 것 같다.

관심을 받고 싶고 외롭고 싶지 않은 건 정말 분명한 일이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에 대한 반발인건지 아니면 무의식을 지배하는 큰 덩어리인지 자꾸 아주 한적한 곳으로 가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들이 문득문득 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꼬리를 물고 따라오고
죽음을 생각할 때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애착이 연이어 따라오게 되어서 생각은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할 때가 있다.

잘 해야 잘 하는 것인데
잘 하지 못하면서 늘 잘 해야지 하는 다짐은 그런 격려를 받는 건 별로 즐거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또 살아야지...이곳으로 왔으니 또 살아야지...
그러다가 다시 그곳으로 가야지...


04|05|26 14:28:58

** 참 그러고 보면 중국에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생각의 양만큼 술도 엄청 마셔댔고. -_-a

공부하러 가는 동생을 보며...

언제부턴가는 동생이 나보다 더 나아보이고 대단해보이기 시작했다. 그 언제부턴가...라는 시기는 아무래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이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 나에게 '형만한 아우 없다'는 얘기를 할 적마다 난 꼭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 내 동생은 형보다 나은 아우다'라고... 이건 겸손을 떨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충분히 그래 보였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음에 불과하다.

동생이 사운드 방면에 소질이 있고 내 졸업작품 주제곡을 작곡도 해주었는데 전공은 컴퓨터 공학과라 난 늘 동생이 음악 쪽으로 전공을 바꾸어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많은 어른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런 걸 반대했었다. 사실 컴퓨터 공학과를 나와 박사 과정을 밟고 나면 이러저런 명예와 부는 사운드 쪽보다 쉽게 상당부분 따라오는 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진로를 고민하는 동생을 볼 때마다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저 '니가 결정할 사항이야'라고 말하고는 슬쩍 구렁이 담넘가듯 했었다.

그 리고 시간이 흘러 사운드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을 때도 난 무덤덤하게 그러냐며 손을 내밀어 청했을 뿐이다. 그렇게 결정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학을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내 자신의 위치였다. 사실 동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학 가는 걸 도와주고 싶었지만 난 내 욕심대로 중국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으니 어머님 혼자 두 아들 유학비용을 대준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동생이 만약 유학을 못가게 된다면 내가 중국에 있는 걸 포기하고서라도 동생을 보내주고 싶었다. 그건 아무래도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동생에 대한 미안함도 한 몫 했음직 싶지만 그것보다 차라리 될 놈을 밀어주자는 생각이 더 자리하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다행이도 나도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생이 유학을 가게 되었다. 여전히 돈이 부족해 하고 싶은 공부 일정을 단축해 1년만을 계획하고 가지만 분명 1년 공부 마치고도 여기저기 능력 좋게 일을 해내며 호주에서 잘 생활할 것이라 생각은 든다. 만약 그게 되지 않으면 내가 한국으로 들어가야겠지. 그것 정말 싫은 일이긴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는 있다.

나도 잘 되어야 동생을 돕고 식구들도 도울 수 있는데 난 자꾸 중국생활이 몸에 익어가고 입에 익어가면서도 변변찮은 결과물 하나 없다. 물론 8개월 지났는데 뭐가 있길 바래면 그게 도둑놈 심보 아니냐고 질책할 사람들도 줄을 섰겠지만 사실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은 이미 사적으로 유용하고 싶은 꿈과는 멀어진 지 오래다. 돈 벌어서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님 마지막 여생에 도움이라도 될까 하는 생각 뿐. 아버님께도 제대로 사는 모습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난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사실 동생의 성공에 내가 덕을 볼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 다만 동생이 성공해서 내가 못한 물질적인 효도, 정신적인 효도라도 좀 해줬으면 하고 책임전가하는 수준 정도의 바램은 있다.

동생 가는데 해준 건 없고 심적으로 기운을 팍팍 밀어준 것도 없이 그냥 형 된 입장으로 믿는다는 말만 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참 내가 못났다 싶다.

잘 살아서 식구들, 아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은데 그 잘 살자.는 캐치프레이즈는 이미 소시적부터 입에 달고 마음에 담고 살았던 말이라 이젠 변변찮은 내 모습에 적잖이 실망도 한다. 술 한잔 걸치고 뭔가 잘난 듯 떠들 때면 그런 생각도 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꼭 그러고 나면 밀려드는 허탈함은 참 견디기 힘들다.

어쨌든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하러 떠난 동생이 건강하게 잘 공부하고 돌아오길 아니, 돌아오지 않고 호주에 정착해도 무방하니 하고 싶은, 이루고 싶은 일들 잘 이루길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도 또 다시 일어서야지...남들과 비교해서 더디다고 느끼기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턱없이 부족한 능력과 심지를 가지고 여태껏 용케도 버텨왔으니 한 걸음이라도 내딛어야지...

녀석~ 건강해야 한다.


04|06|11 22:38:00


** 결국 이런저런 이유(라지만 쩐의 문제)로 돌아와 열심히 살고 있는 동생. 잘 될 게다. 조금만 더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면 좋겠다. 3년 전 참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았고 많은 일이 있었네. :)

아버지가 생각나서...

동생, 요녀석이 호주로 떠나며 홈페이지 대문에 쓴 글을 읽으며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눈물이 났다.

나도 중국에 와서 가끔씩 아버지가 생각나고 아버지 없는 빈자리가 참 크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결국 어떤 결정을 하거나 생활할 때 보면 난 심중에 아버지를 그다지 크게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동생이 호주로 떠나며 홈페이지 대문에 누구에게 쓴 글인지 불분명하게 글을 남겼지만 난 본 즉시 알았다. 아버지께 잘 살겠다고 잘 다녀오겠다고 편지를 남긴 것이다. 아버지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동생의 그 기특한 마음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형으로써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늘 마음에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동생이 어쩌면 나보다 더 형으로써의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먼저 태어났다고 형이라 불리우고 늦게 태어났다고 동생이라 불리우는 것 세상의 모순인 것 같다. 심량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심지가 깊은가에 따라 형, 동생이 갈려야 하는 건 아닌 가 싶다.

아버지 가신지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가셨을 때는 모두 다 내 탓이라 생각하고 후회도 많이 하고 참회도 많이 했건만 한해 한해 지날 수록 그런 생각보다는 그저 내 앞가림 하기 바쁘고...당신 생각하는 때도 상당부분 내 감성에 치우친 바 많아서 참 죄송스러웠는데 이번에 동생이 또 참 나를 부끄럽게 하고 가네.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언젠가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한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도데체 모르겠다. 아무리 나름대로 생각하고 살아도 역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앞서가고 더 깊은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반박조차도 못하겠다.

아버지... 잘 살아볼랍니다. 정말 당신 자식으로 태어나서 당신께 잘난 모습 보여드리지 못하고 보내드렸지만 잘 살랍니다. 상인이 홈페이지에 써있던 글 보셨겠지요? 잘 살랍니다.

잘 살랍니다.
나중에 잘 살다가 다시 뵐께요....


04|06|11 22:55:54

** 참 많은 변화가 있었네. 이 글, 참 부끄러운 글이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아는 대로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대로 볼 수 있겠다 생각하니 낯 뜨거운 것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되는 뻔뻔함도 생기네. 사는 건... ....라 수없이 대답하고 반문해도 모르겠다. 정말.

벌써 7월이잖아? - 옮겨온 글

이런...덴장. 벌써 7월이네. 앞으로 2달 후면 내가 중국에 온 지 1년이 되가는 데. 난 아직도 뭐가 달라진 것 같지 않은 묘한 공허함에 휩싸여 있잖아. 왜 그러는걸까?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조급증이 생겨서 그러는 걸까?

해야지...해야지...라고 말만하지 말고 몸 좀 움직여보란 말이지. 하긴 하고는 있어. 그게 좀 착착착 뇌 세포 안에 저장이 잘 안되고 공기 중에 뽈뽈~ 흩어지는 기분이라 그렇지.

그 래도 몸에 맞지 않게 술을 들이 붓는 어떤 날에는 가끔 토악질도 해대고 끄억끄억대는데 중국어 공부는 그런 날이 없으니 다행이기도 하다. 그래도 제대로 소화는 못시키는 지 아니면 제대로 먹질 않아서인지 속도 더부룩하고 때론 뇌고프고... 끄억~


04|07|01 17:58:44

** 04년도 7월에 쓴 글 하나도 역시 옮겨 옴. 중국가서 10개월 정도 지난 상황인데 지금은 술도 매일 마시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중국에는 무척이나 많이도 들락거렸고 이젠 중국어는 잠자다 깨도 불쑥 튀어나오는 정도(실력의 고하(高下)는 무시하고)가 되었으니 그 동안의 시간, 빠르게도 흘러갔지만 많은 변화도 있었음을... 알겠다.

그래도 그래...

맨날 먹는 술이 아니어서 그런지 가끔 먹는 술은 속은 멀쩡한데도 정신이 조금씩 혼미할 때가 있어. 그런다고 술이 취했다고 말하기엔 좀 어정쩡한 그런 상태.

오늘도 동생들과 술을 먹었어. 그런데 말야... 처음 술을 먹을 때와 술이 조금 들어갔을 때와 술을 좀 많이 먹었을 때와 말하게 되는 건 조금씩(때론 많이) 다른 것 같아.

뭐 랄까... 나이를 먹어간다는 걸 실감한다는 건 너무 상투적인 것 같고 나보다 젊은 애들에게 느끼는 부러움? 에이, 사실 그것도 아니다. 난 나이먹는 게 좋은 걸. 부러움이 아니라면 뭘까? 아직도 난 마음은 젊은 것 같은데...하긴 아직도 마음이 젊다는 건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는 것일까?

내 옆에 없는 내 짝에 대한 막무가내인 그리움? 그리움이라고 말하기엔 크고 누군가 옆에 있어서 술 마실 때 술을 마시지 않을 때도 가끔 서로가 필요할 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해. 이건 부정할 수가 없군.

그 렇다면 이런 감정들이 바로 외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나? 살아도 살아도 늘 혼자라는 건 견뎌낼 수 있지만 그 견뎌냄도 누군가와 내가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지만 가끔 이렇게 술을 좀 먹고 오는 날엔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게 좀 버겁긴 해.

이런 날은 그냥 외롭다고 말할게.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아무도 없다는 것에 대한 쓸쓸함? 이 말도 그리 어울리진 않지만 적막함이 때론 좀 싫어. 때론 무척 좋은데 말야.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어떤 날은 즐거운 데 어떤 날은 싫거든... 내가 좀 이상한가?

오늘은 누가 좀 옆에 있었으면 싶어...


04|06|27 02:20:09

** 지금이야 함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지금 상황에서 이런 글을 올리면 오해할 여지가 많지만 이건 엄연히 04년도 6월에 쓴 글이라는 것. 3년하고도 5개월이나 묵힌 글을 처음 끄적여봤던 다른 블로그에서 옮겨 옴. 그쪽은 아무래도 문을 닫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2007년 11월 19일 월요일

첫 눈

상투적이긴 하지만 '첫 눈'이 왔다. 처음엔 비와 함께 섞여 내리길래 비가 오는 줄 알았는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금새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첫 눈에 얽힌, 남들도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이야기 따위는 이젠 스스로에게도 무덤덤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첫 눈'이란 말에 마음이 살짝 달뜨고 동요되는 건 왜일까. 마음 속에서 해결하지 못한, 혹은 해결되지 못할 일을 남겨둔 것 마냥, 조금은 조급한 마음도 함께 고개를 든다. 눈이 오면 옷 깃을 여미게 되는 건 날씨 탓이라 그러려니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수 많은 상념이 부유하는 건 날씨 탓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애꿎은 첫 눈 탓만 해야할 모양이다. 이제 겨우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건지, 이제 벌써 인생의 절반이 지나간 건지 말장난도 장난으로 생각이 들지 않을 지금이지만 내가 서있는 시간의 흐름 위에서 오늘 같은 날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말 없이 서서 내 어린시절을, 내 어렴풋한 지난 날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서 상투적이지만 자꾸만 '첫 눈'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감성을 몰아세우고 있다.

2007년 11월 18일 일요일

불어나고 있는 체중에 대한...

불어나고 있는 체중과 팽창하고 있는 나의 피부들을 보면서 살을 빼야겠다고,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한 적이 몇 번이었나. 이런 나를 보면서 가장 크게 자괴감이 드는 부분은 내가 무척 게을러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 게으름은 날이 갈수록 익숙하게 내 생활 전반을 감싸고 있다는 것이다. 난 살이 빠지면 속이 편하고 머리가 맑아지고 몸을 좀 더 가볍게 더 움직일 수 있어 좋다. 재작년, 작년 모두 체중을 적당한 정도로 조절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올해 들어서는 조절이 쉽게 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핑계도 대보고 변명도 해보지만 뭐 하나 딱히 이해할만한 이유가 없다. 이유가 뭘까. 소화기에 노화현상이 오는 것인가. 몸 속 부속품들이 인생의 절반을 꺽어지나가면서 성능발휘를 못하고 있단 말인가. 별 쓸데없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자. 적당한 체중, 적당한 근육, 적당한 지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져야 하고 생활의 리듬을 되찾아야 한다.

좀 더 어린 시절에 쉽게 되던 것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 어린 시절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지금 아주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삶 전반에 걸쳐 어떻게든 균형은 맞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체중이 늘거나 살이 불어나는 건 이런 균형이 흐트러지면서부터다. 균형의 지점을 어디에서 되찾아와야 할지 조금은 난감하지만 다시 스스로를 들여다 볼 시간을 가져야겠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내 삶에 대한 확고한 태도가 없이 자꾸 남의 시선과 의지에 따라 변해가는 건 아닐까...라고 소시적 고민했던 게 스물스물 기어나오고 있는.... 뭐... 그런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라. 거 참.

파도


파도, originally uploaded by jumpkarma.

힘 있게 밀고 들어오면 사실 어쩔 도리가 없다.
포말과 함께 부서지진 않더라도
머리 위로 바로 작열하는 태양 정도는 옆으로 비켜서서
보다 앞으로 펼쳐진 검푸른 바다로 걸어 들어갈 수도 있다.

갈매기


갈매기, originally uploaded by jumpkarma.

백날을 날다가 한날을 바다에 내려앉아 쉬는
푸르러 푸르러 하늘도 바다의 색을 닮아버렸는데도
녀석은 나는 폼조차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안개 속으로


안개 속으로, originally uploaded by jumpkarma.

안개 뒤 암벽과 부딪혀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보다는
걷힌 안개 너머로 나타날 오색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가 더 큰 이유는
무언가를 들었거나 알았거나 보아서가 아니다.
다음 걸음보다 지금이 좀 더 남루하다고 느껴져서다.

2007년 11월 10일 토요일

열병 - 박동식의 티베트 사진전

안녕하세요?
11월에 전시회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직 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이달 말에 나올 예정^^)
책 출간 기념회를 겸하는 것이오니
특별히 오프닝 때 많이들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동식의 티베트 사진전 [열병]
전시 기간 : 2007.11.10(토)~11.16(금)
오프닝 : 2007.11.10 PM 05:00
전시 시간 : AM 10:00 ~ PM 10:00
장소 : 갤러리 마다가스카르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앞역 2번 출구 효창운동장 방향 300m)
문의: 02-717-4508
*쾌적한 전시 환경을 위해서 화환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전시회 소개]
길은 끝이 없을 듯 아득했다.
바람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은 채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지들끼리 몰려다녔고
여행자가 지나간 후에는 어김없이 티끌 같은 미련들이 쌓여갔다.
티베트 여행은 질문의 연속이었고
열병을 앓아야 했던 여행자는 카메라를 들고 고원을 서성였다.
이제 그 허허로운 기록들을 펼쳐놓고 작가는 잠시 또 길을 떠난다.  
이 전시회는 동일한 제목 [열병]이라는
티베트 에세이집의 출간과 때를 같이 한 것이다.
책에 실렸던 사진으로는 다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전시회를 통해 풀어놓으려 한다.
전시회를 통해 티베트의 애절한 풍경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를 희망한다.

박동식:: http://www.parkspark.com


젊은 시절 첫 배낭여행으로 떠난 인도에서 우연한 인연으로 알게 된 박동식 형님. 삶을 사랑하고 글을 사랑하고 사진은 더더욱 사랑하는 형님이 전시회를 한다. 동식 형님의 글을 읽으면, 사진을 보면 삶이 느껴지고 가슴이 뜨거워진다. 가끔은 형님의 글을 읽다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사진을 보며 마음이 한 없이 시리기도 했다. 그건 그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 때문일 게다. 내가 중국을 오가느라 오랜동안 연락도 못하고 살았는데 이번엔 꼭 가서 얼굴이라도 비추고 와야겠다. 물론 형님이 찍어낸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제목도 참... 잘 지었다. 열병. 티베트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꼭 가고 싶은 곳이다. 인도를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더라도 (배낭)여행다운 여행을 못해봤는데 늘 그게 마음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열병이란 단어가 가슴 깊이 남으니 티베트 그 땅, 수 많은 이들의 열병으로 뜨거워진 그 땅을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다시 마음 다잡아본다.

책도 나왔다는데... 한꺼번에 두 가지 좋은 일이라니... 정말 축하드린다. 늘 끊임없이 세상 속에서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가는 형님을 생각하면 나 따위 예술(-_-;)한다 말하기 부끄럽고 나 따위 세상에 치열하다 말하기 민망할 뿐이다. 게다가 그보다 젊은 나이도 무색하기만 하다. 무언가 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좋은 일 생긴 날 혼자 중얼거리기만 할 따름이다.

오늘이 오프닝이었는데 시간이 되지 않아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 전하고, 전시 시작하는 날 포스팅으로 소개하게 되어서 두 번 미안한 마음 뿐이다. 암튼, 전시-출판 모두 축하합니다. :)

2007년 11월 9일 금요일

불량한 폭로, 유쾌한 음모

  • 불편한 진실? 이런 아전인수가 없다. 맞다. 이건 불량한 폭로다. 너무 불량하다. 이런 잡글이야 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란 말이 어울릴 터다. 도대체 한국사회에서 누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 그야말로 캄캄할 뿐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냐? 오후 12시 13분
  • 매경의 부장이 쓴 글은 한국사회에서 경제우위, 권력우위를 점하고 있는 자들의 진실된 속내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자주자주 이런 헛소리를 해주길. 오후 12시 14분
  • 대선정국이라서 정신없는 상황의 연속이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건 시와 때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밝혀질 건 밝혀져야만 사회가 건강을 회복한다. 자력이 아닌 꼼수와 협잡으로 커 온, 그런 삼성을 배우라며 모두에게 지침을 내리던 사회는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오후 12시 34분
  • 라디오헤드의 음모 !! 난 라디오헤드에 대해 아는 바 없지만 포스팅을 읽으면서 흥분이 된다. 100% 사실이라면, 정말 의도한 대로였다면 정말 멋지고 유쾌한 음모다. 이런 음모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오후 3시 23분

이 글은 jumpkarma님의 미투데이 2007년 11월 8일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