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6일 월요일

성룡의 새영화, 신주쿠사건(新宿事件 The Shinjuku Incident)


新宿事件 The Shinjuku Incident

우연히 중국 사이트에서 보게 된 '신주쿠사건(新宿事件 The Shinjuku Incident)'의 예고편, 성룡 얼굴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클릭을 했는데 예고편을 보고 난 기분은 뭐랄까. 대박이다. 이 영화는 유덕화, 오언조, 고천락 등이 출연했던 '문도(門徒 Protege)의 감독 이동성이 맡았고 성룡이 제작하는 영화다. 게다가 성룡, 오언조, 서정뢰, 방조명(성룡 아들), 와타나베 켄, 전가락, 임설, 범빙빙, 타케나카 나오토, 쿠라타 야스아키... 이상이 출연진이다. 이 외에도 예고편을 보니 '귀신이 온다(鬼子來了 Devils on the Doorstep)', '썬더볼트(霹靂火 Thunderbolt)'에서 강렬한 악역을 맡았던 사와다 겐야도 출연한다. 이건 중국, 홍콩, 일본의 유명한 배우들이 다 모여 영화를 찍은 듯 싶다.

특히 이번 '신주쿠사건'은 성룡이 액션이 아닌 연기력으로 돌아오는 영화인 듯 싶은데 '중안조(重案組 Crime Story)'에서 인상적인 정극연기를 보여준 성룡의 모습이 떠올라 기대가 된다. 거기에 이동승 감독의 방대한 자료수집과 체험,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실제에 가깝게 만든 영화 '문도'의 경우를 볼 때 이번 영화 역시 무게감이나 사실감이 남다르지 않을까 기대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동승 감독의 '문도'도 좋지만 '망불료(忘不了 Lost in Time)'라는 영화도 좋아한다. 장백지와 유청운의 연기가 볼 만한다.

'신주쿠사건'은 '1990년대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일본에 밀입국한 중국 이주민들이 암흑계에 빠져들어 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고 한다. 4월 2일 개봉 예정.


2009년 1월 24일 토요일

미쯔비시중공업, 한나라당 의원발언, 경찰무선송신기록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에서 패소한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을 2000년 한국으로 가져왔다. 일본에서 관련 소송은 졌지만 한국에서 다시 배상 소송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법정에서도 1심은 지고 말았다. 일본 재판부와 똑같이 배상시효가 소멸됐다는 논리였다...

...일본에서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양쪽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요. 일본 정부한테는 승소하고, 기업한텐 패소했습니다. 그래서 고생고생해서 한국에도 관할권이 있다는 논리를 개발해서 한국으로 돌아와 소송을 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 법원들은 일본 법원 판결을 그대로 따라가며 기업에는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일본 변호사들조차 황당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해 국가에서조차 피해자에게 정의를 돌려주지 않는데 가해 국가에 그걸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 우주과학 정책의 핵심 사업인 아리랑3호 발사체 업체를 한국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이유로 미쓰비시중공업으로 결정했다. 지난 11일 아소 다로 총리가 한국을 방문한 뒤 이명박 대통령이 러시아 기업에서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바꾸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의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강제징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가혹한 노동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전범 회사에 한국의 미래 사업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죠. 우리 국민들을 대표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한국인 징용’ 기업에 사업권 선물 “우리나라 대통령이라 보기 어렵죠” - 보기

아리랑3호에 대한 이야기는 미네르바 때문에 완전히 주목도 못받고 묻혀버렸다는데... 사회 여러분야에서 나라를 위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사는 분들이 참 많은데 그 분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일반 국민들의 무관심이 아니라 그런 의지들을 꺽어버리는 정부, 관료들이 아닌가 싶다.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는 한 그분들의 가는 길이 무척 험난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적법 절차를 밟는다 하더라도 그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의식이 변화하지 않는 한 그 법은 단지 있는 자들을 위해 활용될 뿐이다.



...용산 참사에 대해서도 “선량한 시민과 살인도 가능한 새총으로 무장된 폭력을 일삼는 집단이 같지 않다”며 시위에 나선 철거민들을 폭력집단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용산 참사’를 “용산 도심 테러”로 부르며 “(이번 사태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법질서를 무시한 그런 시위대가 화를 자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의방화” “도심테러”…유족 가슴에 ‘대못질’ - 보기

뚫린 입으로 나오는 게 다 말은 아닌 것 같다. 이들에게 있어 철거민은 함께 공존하기 불편한 존재고 생존권을 위해 최후의 방법을 쓰는 것은 테러고 악랄한 행위로 밖엔 보이지 않나보다.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집안에 문제가 생겨도 친구들, 아는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결해주니 이들에게 있어서 사회가 시끄러우면 무조건 귀찮을 것이다. 그런데 이 양반들아!!! 기본적인 법질서를 무시하고 싶어서 무시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경찰 무선 송신기록 1 (06시29분42초)
-아울러서 용역 경비원들 해머 등 시정장구를 솔일곱(지참)하고 우리 병력 뒤를 따라가지고 3층에서 4층 그 시정장치 해제할 진중(준비 중 또는 진행 중이라는 뜻)



▲경찰 무선 수신기록 2 (06시29분59초)
-18(알았다) 경넷과 함께 용역경비원들 시정장구 솔입곱(지참)하고 3단 4단 사이 설치된 장애물 해체할 중 18



...이에 대해 경찰은 “공개된 무선 교신은 현장 지휘 간부간의 통신 기록이 맞다”며 “순간적으로 오인해 무전 보고한 것이며, 실제로 용역직원들이 작전에 참여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 진압작전에 '무허가 용역업체' 동원했다. - 보기

경찰 일에 불법/합법 용역업체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해 일을 돕는다는 사실은 이미 대다수 사람들이 알 거라 생각한다. 이랜드 사태 때에도, 기륭전자 사태 때에도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면, 경찰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안위를 마다하지 않고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사건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용역업체 직원들. 근데 돈은 안 받고 하는 거지요??? 국가와 경찰을 도와주고 설마 돈을 받는 건 아니겠지. 돈 대신 다른 걸 받나?? 경찰은 정규직 경찰을 더 충원하기 싫으니 비정규직 용역업체 직원들을 쓰는 건가? 아니면 경찰 대신 험한 불법적인 일을 해주길 바래서인가?? 근데 용역 업체 이름이 ㅎ건설이 뭐냐. 무슨무슨 용역이면 몰라도 무슨무슨 건설이라니. 혹시 MB건설사 직원들인가?


2009년 1월 23일 금요일

현실에서 재현되는 헐리웃 영화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면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로 실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들 한다. 영화는 상상력의 산물이자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이테크놀로지, 자연환경에 대한 경고, 세계의 정세 흐름 등등 많은 부분에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아마 헐리웃에서는 영화를 찍을 때 전문가집단의 자문을 많이 받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그들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반영되어 스크린에 옮겨지고 나면 오래지 않아 현실에서도 가능한 상황들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Morgan Freeman

Deep Impact에서 Morgan Freeman이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흑인 대통령. 아무리 영화라고는 하지만 현실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반응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Morgan Freeman의 훌륭한 연기로 인해 불만 혹은 의구심이 모두 상쇄되고 말았다. 그리고 Deep Impact 1998년 이후 10년 만에 실제로 흑인 미국대통령이 탄생된다. (그 전에도 1933년 '루퍼스존스'(단편), 1972년 '던맨'등 2편의 영화가 더 있었다고 함)

Barak Obama

정말 헐리우드에서 뭔가를 시도하면 실제로 이루어지는가. 그렇다면 헐리웃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부탁하건데 "대한민국"을 소재로 해서 괜찮은 영화 하나 만들어주면 안될까. 어떤 내용인지 예를 들자니 울컥해져서 그만 둔다. 뭐, 생쥐관련 애니메이션도 괜찮고.(톰과 제리, 미키마우스, 라따뚜이 말고!!!)

한글폰트 굴림체가 일본서체????

굴림체, 알고보면 일본서체?


이메일과 문서작업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한글서체 ‘굴림체’가 일본서체 ‘나루체’를 본 딴 것으로 드러났다.....1960년대 일본 디자이너 나카무라 유키히로가 개발한 나루체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디지털한글서체다.....인터넷시대 초창기인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서체 원도를 그대로 차용해와 한국식 이름인 굴림체로 명명해 보급해버린 것.....굴림체와 즐겨쓰이는 명조체 역시 중국서체다. 한자 명조체는 대만에서는 ‘송체’라고 불린다. <위 기사 내용 중>

충격적이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한글 글씨체(폰트)는 예쁜 게 정말 없다는 생각을 늘 해왔었고 얘기도 자주 들어왔는데 굴림체가 일본서체를 따라 만든 것이었다니. 어쩐지 뭔가 어색한 듯한 느낌이 있었어...라는 생각까지 든다. 윈도우 뿐만인가. 여러 소프트웨어에서도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글씨체 중 하나인데. 뭔가에 오랫동안 속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싶다.(나만 모르고 있었는지도...-_-;;;;)

암튼, 영상, 문서, 그래픽 작업할 때마다 글씨체가 맘에 들지 않아도 울며 겨자먹기로 사용하거나 아예 글, 문장 자체를 영문으로 작성해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가독성도 좋고 디자인도 좋은 한글글씨체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웹 상에서는 수 많은 무료 영문글씨체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글글씨체는 좀 괜찮다 싶으면 다 유료고 무료로 배포되는 글씨체는 정말 사용하기 싫은 모양들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물론 무료 중에서도 괜찮은 글씨체들이 있긴 하지만 본문으로 사용하거나 디스플레이용으로 사용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자간, 행간을 고려하지 않아 제목이나 몇 글자 사용하는 곳에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와 비슷한 디자인의 본문글씨체들이 없어 전체적인 디자인을 고려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비해 다채로운 한글글씨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전히 디자인도 좋고 가독성도 좋은 글씨체는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글씨체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씨체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 여러 개발업체와 개인, 예술가, 포털사이트, IT관련업체에서 고민하고 있을 테니까. 생소했던 캘리그래피가 갈수록 주목을 받고, 많은 종류의 글씨체로 씌여진 책이나 상품들도 많아지고 있는 걸 보면 앞으로의 상황은 더욱 좋아질 것 같다.

훈민정음, 여러 글씨체로 보이지만 잘 어울리는...

좋은 글씨체를 유료화해서 수익성을 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좋은 글씨체를 무료화해서 홍보하고 여러 미디어에 표준화시켜가는 과정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차별화도 좋고 수익성도 좋지만 많은 소프트웨어, 운영체계, 미디어에 사용되고 있는 기본글씨체를 과감히 바꾸고 표준화를 시키는 일도 중요하지 않나. 가독성도 떨어지고 태생불명의 글씨체가 여전히 기본글씨체로 자리하고 있는 한 한글의 의미나 중요성 역시 잘 읽히지 않고 희석될 게 분명하다.

보다 좋은 디자인과 보다 나은 가독성으로 만들어진 한글글씨체들이 많이 보급돼 길거리 간판, 여러 디자인 상품, 웹세상과 여러 미디어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되면 좋겠다. 아름다운 한글이 주변에 더욱 많이 보이길 바랄 뿐이다.

정조가 원손(元孫) 시절 외숙모에게 보낸 편지, 귀엽다. :)

선조가 정숙옹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 정갈하다.

명성황후가 오빠 민승호에게 보낸 한글편지, 글씨가 참 곱다.





2009년 1월 22일 목요일

오바마의 "노동자들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말.

오해를 없애기 위해 먼저 이야기를 하자면 오마바는 단지 "미국"의 대통령일 뿐이고 한국과는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좋고 나쁘고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오바마의 언행이나 정책에서 느껴지는 바가 있다면 '반면교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는 7일(현지시간) 시카고의 한 파산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퇴직수당을 요구하며 작업장 점거농성을 하고있는데 대해 “노동자들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 파산한 기업과 은행은 적절히 보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이날 시카고 인수위 기자회견에서 지난 주말부터 노동자 250여명이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시카고의 리퍼블릭 윈도즈 공장 사태에 관한 질문을 받고 “노동자들이 그러한 보상과 혜택을 받아왔다면 해당 기업들은 마땅히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면서 “이번 일은 미국 경제 전반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직장폐쇄 맞서 작업장 점거 “노동자 지지” 중 발췌

2MB의 대통령 취임사오마바의 대통령 취임사를 비교해봐도 많이 다를 것이고 취임 후 한 일도 많이 다르다. 오바마는 취임 후 바로 관료들의 임금을 동결했고 로비스트 출신들은 정계에 진출하더라도 유관업무를 맡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못을 박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뜻이다. 정책의 투명성을 높여서 미국민들과 정부간의 신뢰를 높이는데 주력을 한다고 하더라. MB는?????

해내고 있다!!! mb공화국 건설을!!!

바꾸고 있다!!! 돈있고 힘있는 자들을!!!

지금까지 분위기로 봐서 가장 크게 다른 점을 꼽으라면 아마도 노동자에 대한 생각일 것이다. 2MB는 집회나 파업 등에 대해 "법(공권력)으로 강력대응"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오바마는 "노당자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혹은 정치인이 "노동자가 옳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그것도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한 적이 있나? 노동자는 그저 타협을 해야만 하는 대상이고 그들은 생떼만을 쓰는 부류일 뿐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나.

위 신문기사에서 소개한 오바마의 발언 내용들을 살펴보면 한국에서 "빨갱이"로 몰리기 딱 쉽상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자 편이라거나 정부를 비판하면 무조건 좌파고 빨갱이니 오바마의 발언만 보면 완전 "꼴통 악질 빨갱이" 아닌가.

2MB는 오바마와 닮은 꼴이 많다고 스스로 자화자찬을 하던데 도대체 뭐가 닮았다는 것인지... 알파벳 약자? 2MB, 5BM??? 쩝.


:: 문득 생각나서 추가 - 오바마는 왼손잡이다. 이거 참 대단한 일이다. 오바마는 좌파라 할 수도 있겠다. :) 그는 소수자를 대변하려고 태어난 인물같기만 하다.

80년대 음악의 보고(寶庫) - 80smusicvids.com 그리고 A-ha의 take on me

http://www.80smusicvids.com/

linking with thinking에 갔다가 위 사이트를 소개해준 걸 봤다. 와, 80년대에 유명했던 노래들을 뮤직비디오로 보고 들을 수 있다.

"Over 1,000 classic music videos from the 1980's"

당시에 유행했던 뮤직비디오 형식과 기술적인 부분들도 살펴볼 수 있고 당시에 유행하던 의상과 머리 모양새들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익숙하게 들리는 멜로디며 친근하게 느껴지는 당시의 가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에 즐겨들었던 노래들도 이젠 제목마저 가물거리는 탓에 음악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며 음악을 들으며 보는 맛도 있겠다. 동영상 플레이되는 속도도 꽤 좋다. 80년대로 go~go~.


덧글::
알파벳 순이기도 했지만 맨 위에서 세번 째 있는 A-ha의 "Take on me"를 다시 보는데 지금 봐도 영상이 세련됐다. "Take on me"는 애니메이션 기법 중에서 "로토스코핑"기법으로 만든 것인데 이 뮤직비디오에 영향을 받아서 조용필이 "맥콜광고"를 찍을 때 사용했었다. 당시 가장 유행했던 노래와 함께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재탄생해서 광고에 등장한다. 상당히 강렬했었다. 요즘엔 다양한 기법, 감각이 아닌 감성이 담긴 광고를 보기 힘들다.



A-ha의 뮤직비디오와 비교해 보면 많이 비슷하긴 하지만 드로잉이나 예술적?인 면에서 조금 부족해보이긴 한다. 뭐, 이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과거에 "로토스코핑"으로 만들어졌던 영상이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작품들보다 훨씬 뛰어나고 영상미나 테크닉이 더 뛰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 거다. 애니메이션과 뮤직비디오는 기본적으로 다른 장르이기 때문에 단순비교를 할 순 없지만 A-ha의 "Take on me"의 경우 스토리텔링도 명확할 뿐더러 연필 드로잉만으로도 꽤 다양한 감각을 연출해내고 있다.


Take On Me (a-ha) 8 bit Remix
이상하게 유투브에서 "Take on me" 뮤직비디오 오리지널을 찾을 수가 없다.
대부분 짝퉁이거나 이상한 것들만 즐비하다.-_-;

"여긴" 위에 소개한 두 영상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
덧글이 더 길어져버렸지만 암튼! 80년대 음악을 즐기고 싶다면
80smusicvids.com로 한 번 방문해보라는...



[while at work] - 작업방식에 대한 고민...이랄까?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 누구의 잘못인가.

19일 밤 용산구 한강로2가 재개발지역의 5층짜리 건물에서
철거민 30여 명이 새 총과 돌 등으로 무장한 채 건물을 점거하고 있다.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소속으로 알려진 이들은
철거 이전에 생계대책을 우선 마련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때가 어느 때인데 화염병 들고 시위를 해?"
"폭력시위하는 사람들은 다 쓸어버려야 해"
"국가가 철거하라는 데 왜 말을 안들어?"
"이주비용 더 받으려고 그런 거 아냐?"
"전철연에서 조작한 거겠지? 역시 배후가 있어"
"경찰이 오죽하면 그랬겠어. 불쌍한 경찰도 죽었네. 나쁜 철거민 XX들"
"역시 무슨무슨 연합, 조직은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이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애국심과 애족심에 그 어떤 말도, 생각도 떠올릴 것이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더라도
국가는 국민으로 이루어진 사회고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주인되는 사회다.
그 국민 중 단 한사람도 국가의 힘으로 좌지우지되서는 안된다.
물론 법치국가에서 법을 지키는 건 당연하고
법을 지키지 않으면 댓가를 치뤄야 한다.
하지만 그 법이 공정하지 않다면
법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억울함에 처해있다면
부득이 시위를 하는 것이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 호소에 귀를 기울일 몇 시간, 며칠, 몇 주, 몇 달의 시간이 아까워
질서유지의 명목으로, 치안유지를 이유로
국민을 짓밟고 짓이기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국민을 섬기는 정부, 국민을 위하는 국가가 할 일은
시행하는 정책이 국민들의 요구를
하나하나 들어줄 수 있는 정책인지 살피는 것이고
시행하는 정책에 피해를 보는 국민이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혹여 불만을 가진 국민이 있다면 대화를 통해
이해와 설득을 시키는 것이다.
다수의 국민이 자신들을 뽑아줬다고
자신들의 권력으로 소수의 국민을 짓밟아서는 안된다.
국민들이 자신들을 뽑아준 건
뽑아준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해달라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모든 정책, 모든 생각, 모든 행동들을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들을 뽑아주지 않은 국민들을 무시하고 짓밟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 중
대한민국 국민 아닌 자들은 없다.
국가는 그 국민들로 이루어진 단체다.
누구만의 국가가 아니란 뜻이다.

대통령이 경찰청장을 임명하긴 했지만
경찰청장은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자리가 아니다.
경찰은 무고한 사람이 법의 횡포를 당하지 않도록
국민의 재산과 신체가 훼손당하지 않도록
국민의 안전과 안위를 살피고 또 살피는 일로
대통령의 근심을 덜어주는 자리다.
법을 어기면 강경하게 혼내줄 거라며 엄포를 놓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용산철거민들 참사는 100% 경찰과 정부잘못이라는 것이다.
김석기 경찰청장이 MB에게 잘보이려고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든
김석기 경찰청장이 원래 그런 성향이든
철거민들의 반항이 심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대든
경찰청장이 특공대 출동을 허락하고 강경진압을 허락했다는 것은
면책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경찰청장을 임명한 대통령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장이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 행동을 했든
대통령의 뜻에 맞추려 행동을 했든
경찰청장을 임명한 자가 지는 책임 말이다.

명백히 벌어진 사건을 눈가리고 아웅하려고
출동한 경찰병력, 소방병력을 부풀려 보고하고
자신이 사인한 문서가 명백히 존재함에도
보고만 받았을 뿐이라고 둘러대다가 문서가 나오자
보고를 받은 게 바로 사인한 것과 같다고 얼버무리는 경찰청장이란 무엇인가.
그런 경찰청장을 두둔하려고 궤변을 늘어놓는 한나라당 의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공무집행 중 세상을 떠난 경찰특공대원,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다 공무집행에 의해 희생된 6명의 철거민들에겐
어느 누구도 잘잘못을 말해서는 안된다.
시스템을 지휘하고 움직인 자들,
무리한 공무집행을 하도록 지시한 자들,
국민을 짓이겨도 좋다고 허락한 자들,
이 나라 국민을 위하지 않는 법과 시스템에 대해 잘잘못을 말해야 한다.

시사주간지 < 한겨레 21 > (2008.11.28 제737호)에 실린 글
 
시위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일단 숨을 멈추고
"무슨 억울한 일이 있는 걸까?"
"저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었나?"
"에구, 위험할 텐데 조심하면 좋겠다"
"국가는 왜 저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나?"
라고 생각해도 된다.
어떤 상황을 보고 습관처럼, 무의식반응처럼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욕하거나 비방하지 않고
그 상황의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그 상황이 옳은지 그른지
조금의 노력으로 좀 더 알아보고 난 후
판단을 해도 늦지 않는다.

힘이 강자를 위해 쓰여지는 순간
세상은 끔찍한 지옥도가 된다.
힘은 약자를 위해 쓰여졌을 때 빛이 나는 법이다.

2009년 1월 18일 일요일

95%가 보수라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언젠가 앞으로 최소한 10년-20년 동안은 이 나라에서 살기가 참 퍽퍽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상위 5%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의 95%가 보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도 않았고 근거를 댈 만한 것도 없다. 그냥, 주변을 살펴보면 그렇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 보수가 과거처럼 정치적, 사상적으로 극명하게 표시가 나는 보수 또는 우파, 극우와 같아 보이진 않는다.

인간의 존엄, 삶의 가치, 평등, 자유 등등은 이젠 절판이 된 책에서나 나올 법한 가치없는 메아리가 되어버렸다. 대신 자본(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그를 쟁취하기 위해 무한경쟁으로 내몰려진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세상이 되었다. 그 세상의 가치를 부정하고 철지난 가치를 들먹이면 바로 감각없는 사람이 되고 무능력한 사람이 되고 마는 세상에서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며 함께 어깨걸이를 한다는 건 허황된 꿈이 되고 말았다.

김규항의 '사람의 일이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건 알게 모르게 오랜동안 몸과 마음을 겪어왔던, 체험했던 지난 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이미 그렇게 변해버렸다. 언제부턴가 급속도로 좌우의 균형도 잃어버렸고 상하의 격차는 심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함께 '돈'과 '권력'에 올인을 하며 만들어놓은 사회구조에서는 개인발언이 쉽게 묻혀버리기 일쑤고 올바른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한다며 무시당하기 일쑤인 세상이 되었다. 더 자극적이지 않으면 타당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사실,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은 늘 거부하던 사회,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거품물고 비판하다가 점점 자신도 모르게 그 사회에 동화가 되어가는 것이다. 사회, 인간에 대한 문제의식은 단 몇 개월, 몇 년을 유지하면 선방한 셈이 되고 시간이 흘러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아도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동화되어서는 결국 앞장서서 변한 세상의 선봉에 서 '돈'과 '권력'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대결이 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은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라고 한다. 상식을 부르짖는 사람들끼리도 '자본'과 '권력' 앞에서는 다시 '상식(현실)'과 '비상식(비현실)'로 나뉘어 대립한다. 상식은 시대에 따라 늘 바뀌기 마련이다. 그래서 상식과 비상식이라는 말로 대립한다고 해도 세상이 더 나아지게 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능력없는 자신을 탓하기도 하면서 고민 중이고 또 고민 중이다.

2009년 1월 17일 토요일

미네르바는 21세기 홍길동

한국사회에 여러가지 면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던 '미네르바'. 그런데 신동아가 인터뷰한 '미네르바'와 검찰에 구속기소된 '미네르바'가 다르단다. 아, 재밌어진다. '미네르바'는 가히 21세기의 홍길동이라 할 만 하다. 홍길동은 탐관오리들을 혼내줄 때 직접 일일이 혼내지 않았다. 분신술을 쓰거나 홍길동을 가장한 수 많은 가짜 홍길동들이 대행을 했다. 게다가 그는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許)하지 않는 사회'에 '호부호형을 허하도록' 일갈하지 않았던가.


미네르바는 그 어떤 비관적 전망도 불허하는 이 시대에 비관적인 상황을 비관적이라 말하고, 바보를 바보라 말하며 진실을 전했다. 게다가 실명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저 넓은 네트에서 오로지 진실을 전하는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수 많은 추종자를 만들어냈다. 그 추종자들은 다시 '미네르바'를 대신하고 그 이름을 사용해 암흑에 가려 자칫 빛을 읽을 뻔 했던 진실을 만방에 알리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었다. 그들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탐관오리들을 조롱하고 풍자하며 모든 백성들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서자로 태어나 천대를 받던 홍길동은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신분차별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활빈당'을 만들어 의적이 된다. 검찰에 구속된 '미네르바'는 엘리트 교육을 받지 못한 비전문가라며 사회의 엘리트들에게 조롱을 받고 있다. 학벌사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법은 학벌을 숨기고 신분을 숨기는 '둔갑술'을 사용하는 수 밖에 없다. 지금 광활한 네트에는 '둔갑술'로 세상을 구하려는 수 많은 '의적'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에 차별이 극심하고 나라가 어지러워져 부정부패가 심해지면 과거엔 종종 의적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하긴 뭐,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의적들은 바로 '어'장수 일당들이나 '검'찰님들에게 토벌당할 확률이 너무 많아 쉬이 만들어지지도 못하겠다.

암튼, 홍길동이 세우려했던 '율도국'이 '미네르바 공화국'으로 탄생될 것인가, 아니면 미네르바만의 '유토피아'가 건설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다. 이보다 더 관심이 가는 건 얼마나 많은 '미네르바' 분신들이 넷상에서 '활자당'을 만들어 거꾸로 가는 시대에 대한 건전한 불응활동을 하는 가이다. 21세기 홍길동의 탄생은 자발적이라기 보다 높으신 분들이 만들어 놓은 분위기에 떠밀려 태어났다. 어떤 시대에서나 자발적 영웅은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발적 영웅이 탄생된다면 그건 미친 사람일 확률이 많다. 저 어딘가에서 스스로가 난세를 헤쳐나갈 최고의 리더, 영웅인 것처럼 떠들어 대는 이(李)씨를 보면 그렇다.


* 지금 상황에서는 두 '미네르바' 중 한 쪽은 거짓이 확실할 테니 신동아던 검찰이던 쪽팔리게 생겼다. 사실 일개 블로거가 쓴 글들을 가지고 '구속'을 하고 '처벌'할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엇이 진실이건 간에 검찰이 이미 자충수를 둔 건 확실해 보인다. 그 검찰 뒤에 서서 목 빳빳이 들고 있는 사람들도 똑같긴 마찬가지고.


** 미네르바 공화국(영어: Republic of Minerva) 또는 미네르바 공국은 오세아니아의 인공 섬에서 시도했던 초소형국민체이다.

** 초소형국민체(超小型國民體, Micronation)는 기본적으로 서류상에서나 또는 인터넷, 또는 창시자들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유사 국민 주체 또는 유사 국가 주체이다. 초소형국민체 중 몇몇은 물질적인 기반을, 예를 들어 통화나 깃발 또는 우표 등을 만들었다.

"초소형국민체"라는 용어는 1990년대에 출현한 신종어이다. 이 시기에 작은 유사 국가 주체들이 수천 개 생겨나게 되었다. 일단 용어가 자리잡게 되자 19세기부터 존재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던 몇 가지 정치적 주체들에게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16일 금요일

신경민 앵커, "무엇을 위한 중립이고 객관인가"

새로운 세기에는 진실이 아닌 것들이 너무 많이 유포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진실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 <저널리즘의 기본요소>

즐겨 들었던 MBC라디오 <뉴스의 광장>에서 흘러나오던 건조하면서도 힘있고 날선 멘트의 뉴스앵커가 어느 날 MBC뉴스데스크에 등장을 했다. 엄기영 앵커가 사장으로 취임한 후 그의 후임으로 모 앵커(이름을 모르겠음)가 나왔는데 새로 온-어색한 옷을 입은 듯한 앵커를 보면서는 저렇게 인상좋은 아저씨가 뉴스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뉴스가 너무 생동감이 없는데?..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뉴스의 광장>의 카랑카랑한 신경민 앵커가 떠올랐다.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신경민 앵커가 MBC뉴스데스크에 얼굴을 내밀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신경민 앵커의 멘트 하나하나에 가끔씩 쾌감도 느꼈고 저렇게 편파(?)적인 멘트를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거침없는, 자신감에 찬 멘트에 속이 후련했었다. 그가 TV앵커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의 날카로운, 저널리스트다운 멘트를 다시는 들을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기우였다. 처음에 마무리멘트에서 슬쩍슬쩍 이야기를 풀어놓는가 싶더니 요즘은 그 멘트가 듣고 싶어서 뉴스를 본다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신경민 앵커만의 "마무리 멘트 코너"로 자리를 잡았다.

화제의 클로징멘트 이야기를 해볼까요. 일단 신경민 앵커 클로징멘트의 특징은 “여야 모두 각성이 필요합니다”류의 주례사적 멘트가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단순치 않은 정보를 담을 때가 많다는 점인데요.

공자, 맹자, 예수님, 부처님 말씀 같은 말을 싫어해서 되도록 피해요. 그런 말은 교회나 절에 가도 들을 수 있고, 서점에 처세술 알려주는 책이 산더미인데 제가 할 필요가 없죠. 불과 20, 30초지만 나만이, 아니 기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자로서 내가 알거나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되 팩트와 논리, 관점을 취재기자나 정보를 가진 사람에게 더블 체크받고 모자라면 다시 객관적 인물한테 검증받습니다. 때로는 내 독선을 배제하기 위해 남이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리기도 합니다. 가령 내가 대운하를 반대한다고 해서 뉴스에서 “나, 대운하 반대합니다”라고 하면 누가 귀기울이겠습니까? 어느 정치인이 이야기할 때를 기다렸다가 이러저러한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멘트를 하죠. 정치인이 아닌 기자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보면 한계죠.

출처: 클로징멘트 30초, 혼을 담은 '독자 꼭지'

신경민 앵커에는 다 이유가 있다. 위도 쳐다보지 않는다. 옆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독자들과 시청자들에게 전해야 할 진실과 진실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에 대해서 말할 뿐이다. 진실을 위한 올곧음이랄까. 그가 저널리스트라고 불려지길 원한다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그가 너무 주관적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기자가, 앵커가 너무 주관적이 되면 진실을 왜곡, 호도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앵커로서 주관적 시각을 담는 편인데?

= 앵커는 객관·중립적이어야 하고 정치적으로 무색무취여야 한다는 게 교본처럼 통용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다? 무엇을 위한 중립이고 객관인가. 무색무취가 지고지순한 가치가 될 수 없다. 70년대부터 지금과 같은 뉴스제작시스템이 정착된 이래 삼십여년 동안 앵커의 자율권을 침해한 적은 거의 없었다. 앵커가 상층부와 은밀한 거래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가끔 편집 라인에서 멘트에 대한 제안을 할 때가 있지만 사전검열은 없다. 사후 시비가 붙는 경우는 있다. ‘뉴스데스크’ 진행 9개월 동안 몇차례 불평이 있었다. 부장 후배들이 불평을 하면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고 내가 지나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클로징 멘트에 우려를 하는 것은 보도국이 집합체라서 그렇다. 종일 협의를 하면서 뉴스를 만들고 데스킹을 거쳐서 리포트가 나가게 되는데, 앵커가 다른 목소리를 내면 불만이 터질 수 있다.

출처: 신경민 앵커 "방통위원장이 정명 찾으라 공갈 칠 일 아니다"

무엇을 위한 중립이고 객관인가. 정치인들이 개거품을 물며 입에 가장 많이 올리는 단어는 '국민'이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과 내가 생각하는 국민이 다르다. 그들이 말하는 대한민국과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이미 주관적인 견해와 해석차이 때문에 다를 수 밖에 없다. 세상에 100% 중립이 있을까. 100% 객관이 있을까. 뉴스를 전하는 앵커가 사실만을 읽어내려간다면 뉴스데스크 의자에 굳이 사람을 앉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사를 읽어주는 로봇이 있으면 된다. 사람의 얼굴을 보며 뉴스를 보고 듣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그 사람이 주는 인상과 그 사람이 속해있는 미디어에 대한 주관적 판단이 개입한다.

흔히들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도덕군자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중립'을 이도저도 아닌, 이쪽 편도 아니고 저쪽 편도 아닌 '회색분자'를 일컬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황희정승이 말하는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를 '회색분자'의 말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중립 혹은 중용은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걸 말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명확한 입장표명을 하는 것이고 그것은 시대를 읽어내는 눈과 마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단, 진실을 왜곡하거나 자신의 기호대로 변형하지 않는 것. 이것이 중립이며 중용이다.

신경민 앵커가 MBC뉴스데스크 앵커를 언제까지 하게 될지, 또 그의 이런 태도들이 언제쯤 진정한 저널리스트로 평가받게 될지 궁금하다. 많은 논란 속의 신경민 앵커가 보여주는 일련의 멘트와 행보들은 어쩌면 언젠가 대한민국에서 참언론인, 저널리스트의 표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신경민 앵커는 진실이 쉽게 가려지는 세상에서 진실을 어떻게 발견할 것이며 진실을 어떻게 들여다 볼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도대체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매일 밤 9시에 치열하게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허드슨 강의 기적과 부산 영도구의 악몽

불이 난 노래방에서 종업원이 손님들의 대피를 소극적으로 유도했다면?  그 종업원들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허드슨 강에 불시착을 유도한 에어버스 A320기 기장은 모든 승객이 탈출을 하고 난 후에도 남은 사람이 있는지 두 번이나 확인을 하고 나왔다는 기사를 읽으며 부산 영도구의 비극이 떠올랐다.

부산 영도구의 한 노래방에서 일어난 화재의 경우 불이 난 이후 안에 있던 사람들 중 먼저 화재를 발견한 종업원들은 안전하게 대피해 살아남았고 손님들은 질식사를 했다는 건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문을 열고 불이 났으니 대피하라고 말을 건네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을 일인데 급한 마음에 자신들만 몸을 피했다니 생각할 수록 아쉽기만 하다.

허드슨 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기장과 부산 영도구의 일을 결부시키는 건 무리인 줄 안다. 비행기 기장과 노래방 종업원을 단순비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며칠 간격으로 상반된 내용을 접하다 보니 문득 직업의식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직업윤리, 직업의식에 대한 그 어떠한 규정도 사회적 합의도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위급상황에서 똑같은 행동을 하진 못한다.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직업, 위치에 맞는 행동양식과 규범 정도는 제대로 숙지를 해야 하고 인지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만약 노래방 따위에 무슨 규범, 의식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런 이유로 인해 많은 직업과 직장에서 직업의식과 직업윤리 실종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흔히 말하는 손님에 대한 예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 열정같은 것 말이다.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쉽게 방심하거나 가볍게 무시해서는 안 될 일들이 많다.

2009년 1월 5일 월요일

노예들의 세상, 대한민국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삼성, 현대, LG 등 국내 30대 기업끼리 다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건 이미 알려진 바와 같다. 서로 친인척 관계거나 사돈을 맺거나 사돈의 사돈을 맺는 식으로 그들의 공화국은 건설되었다. 삼성과 현대, LG가 서로 경쟁을 한다고 하더라도 혹은 조중동이 서로 경쟁을 한다고 해도 엄밀한 의미에서 제대로 된 경쟁은 아닐 것이다. 경쟁을 가장한 협업이라고 해도 될까.

문득 이 나라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들은 그들의 노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제외하곤 중상층이라는 사람들은 노예들의 대장, 관리감독급이고 그 밑으로는 죄다 노예의 몸값으로 줄세워지지 않았나 싶다. 많은 이들이 열심히 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신의 소박한 꿈을 이루겠다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들이 열심히 일한 노동의 댓가와 피와 땀의 결실은 결국엔 대한민국의 족벌체제인 30대 기업들의 손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도덕이 바로 서지 못하고 교육이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사는 국민들은 족벌들을 위해 일생동안 피와 땀을 바쳐야 하는 노예와 다를 바 없다. 물론 노예들 중에 가끔씩 특출난 노예들이 있어 서울대 나와 유학도 다녀오고 변호사, 의사가 되고나면 족벌 중의 어느 누구와 일가를 이루게 되는 그야말로 주인에게 간택되어 삶을 활짝 펴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 그마저도 안되면 주인에게 배운대로 자신보다 힘없고 빽없는 자들을 2중, 3중으로 옭아서 자신들의 노예로 삼고 작은 어르신 흉내를 내면서 살겠지. 계산기 두드려봐도 그렇게 살게 되는 사람보다 노예로 평생을 살다 가는 사람들이 수십, 수백곱절은 많을 게다. 그런데 그 많은 이들은 이 세상이 자신들의 세상이라고 믿지 않는 것 같다. 이 세상을 송두리째 주인들에게 넘기는 것만이 노예로서 충실한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 믿는 것 같다.

말이 좋아 민주고 말이 좋아 대의정치라지, 말이 좋아 공교육이고, 말이 좋아 주공아파트라지. 언제 단 한 번이라도 국민들이, 서민들이 살 집 걱정하지 않고 입고 먹는 것 걱정하지 않고 살아온 적 있던가. 꼬박꼬박 건강보험료를 내도 병원비 때문에 병원문턱에 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도 제 집도 아닌데 전세사는 것만으로도, 지하 단칸방에 고단한 몸 하나 뉘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께 감사하고 나랏님에게 감사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 국민 아니었나. 못 배워서 세상이 이모양 이꼴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잘못 배워서 그런 걸 테지.

이 세상은 주인들의 것인가, 노예들의 것인가. 이 나라를, 이 땅을 주인들이 소유할 권한이 있던가. 그들이 과연 노예들의 주인이 맞는가. 이 나라 주인행세하는 자들은 그들에게 노력봉사하는 사람들의 배를 곯리고 심지어 착취를 하고 하소연을 해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세상이 달라졌는데도 주인행세하는 자들은 여전히 이 세상이 자신들의 것인양 오만을 부린다. 정상인 세상을 되찾아오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알면서도 지금 이 상태가 여전히 익숙하고 편해서 모른 척 눈감고 있는 걸까.

(씁쓸한 소식만 들려오는 날들이라...)

2009년 1월 1일 목요일

You can fool all the people - 새 해를 맞이하며...

You can fool all the people some of the time, and some of the people all the time, but you cannot fool all the people all the time. -링컨.1858.


링컨과 동시대를 살았던 유명한 흥행사 바넘(Phineas Taylor Barnum)이 먼저 이 말을 했지만 링컨이 16대 대통령이 되기 몇 해 전에 이 말을 한 뒤로 링컨이 한 말로 알고 있다고 한다. 누구 먼저 말을 했는지를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위에 소개한 문장이 의미하는 바에 생각이 많이 머문다.

2009년 올 한해는 나라의 지도자(들)가 저 말을 경구로 사용했으면 싶다. 언론을 쥐락펴락하려 하거나 언론자유를 봉쇄하려는 집단은 금새 몰락의 길을 걷게 마련이다. 그들이 여태 싸질러놓은 말에 대해 전에 그들이 한 말을 찾아내서 하나하나 알려주는 짓도 못할 짓 아닌가. 정치인은 원래가 거짓말을 잘하는 종자들이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해도해도 너무한다. 물론 국민들이 좀 빨리 잊기도 하고 좀 어리숙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눈가리고 아웅하는 거짓말,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다 밝혀질 거짓말, 검색엔진 돌리면 들통 날 거짓말들을 하루에도 무한도전 녹화방송 분량으로 쏟아내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겠나.

정직한 정치, 충분히 가능하다. 조금 더 노력하고 발품 팔고 고생은 되겠지만 그러라고 국민들 세금 펑펑 가져다 주는 거 아닌가. 어물쩍 거짓말로 위기상황 모면하고 사리사욕 위해 국민과 국가, 공공(公共)에게 사기치지 말고 좀 더 바르게 하면 안되겠니? XX~!! You cannot fool all the people all the time이라니깐!!!



그들은 너를 미워하리라 - 한 해를 보내며...

Tell people something they know already and they will thank you for it.
Tell them something new and they will hate you for it.
그들이 이미 아는 것을 말해주어라. 그러면 그들은 너에게 감사하리라.
그들에게 새로운 것을 말해주어라. 그러면 그들은 너를 미워하리라.

유명한 저널리스트 몬비오의 블로그에 써있는 글이다.

저널리스트가 한 말이지만 저널리스트가 아닌 내 일상의 삶에서도 자주 접하는 문제긴 하다.

누군가에겐 의견을 피력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이 좋아하는 말만 골라서 듣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나의 진심이나 말과 언어의 본질보다는 내 태도와 외형에 더 신경을 쓰는 나머지 고민해서 내놓는 좋은 의견도 불평불만으로 받아들이며 늘상 해왔던 일상적인 내 몸짓 하나도 그 사람에겐 불쾌한 공기흐름을 만들어내는 건방진 태도에 불과하다.

그 누군가에게 정작 필요한 말을 감추게 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그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오만함에 의한 상대방을 향한 비웃음,  다른 또 하나는 반복되는 자괴감에 의해 그에게 더이상의 노력을 기울이기 싫어지는 귀차니즘이 바로 그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그가 나를 미워하는 게 싫다는 착한사람 컴플렉스의 발동일 수도 있고 또는 오랜 시간 내 진심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내 안에서도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싹트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저런 이유들을 해결하기 힘들거나 귀찮다고 해서 그에게 그가 듣고 싶은, 그가 이미 아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진 않다.  물론 내 생각과 의견에 대한 오류가 발견되면 언제든 인정하고 수정할 자세는 되어있다. 받아들이기 아무리 아프고 힘든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경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간질을 하거나 험담을 하거나 사실을 날조해 퍼트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로 인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악화되고 때론 공멸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존재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것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만 가까이 하는 것이다. 스스로 진실과 객관의 세계로부터 단절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방성으로 인해 위안받고 힘을 얻으며 사실과 진실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조금 불안한 것은 나 역시 인간인지라 당장 눈 앞에 벌어지는 상황들(나를 험담하고 이간질하거나 내 의견이 전혀 통하지 않는 어떤 상황들)에 대해 인내심을 오래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가끔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굳이 "사필귀정(邪必歸正)"에 기대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알고 있는 보다 나은 가치와 삶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강해져야 하고 더욱 공부해야 하며 더욱 활동해야 한다.

돌아오는 기축년(己丑年)에는
주변의 환경에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쉽게 휘둘리지 않으며
주변의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이 쉽게 번복되지 않으며
주변의 험담과 손가락질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참 마음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갖고
참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실천을 자주 하며
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공부를 더 해야겠다.

2009년 새해엔 이성을 더욱 냉철하게 무장하되 감정에 더욱 충실하도록 노력하자.
새해에 복 많이 짓고! 받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