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29일 수요일

상해라지요.

학회 일 때문에 상해에 왔습니다. 어쩌다, 혹은 종종 나오게 되는 중국이지만 올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듭니다. 물론 편안한 느낌이 더 많겠죠. 그런데 이번 중국행은 그닥 재미는 없습니다. 더워서 그럴까요? 좀 지치고 그렇습니다. 해야 할 일은 툭툭 해내긴 하는데 깔끔한 맛은 없구요. 어찌된 일일까요?

상해는 무척 덥습니다. 온 몸이 땀입니다. 땀으로 샤워를 하는 기분이지요. 공기는 여전히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식당에서건 택시에서건 우연히 마주치는 상해사람들의 좋은 웃음 때문에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돈 있고 실력있는 사람들보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웃음이 더 맑고 투명한 것 같습니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진 게 없어서 더 좋게 보는 거라구요? 하핫. 설마요...

중국어는 버벅대고 있지요. 한국에서 한동안 중국어와 이별해 살았더니 바로 이런 버벅거림의 효과가 빛을 냅니다. 그래도 들리기는 합니다. 말이 부드럽게 안나올 뿐이지요. 길가면서 혼자 중얼중얼 연습도 해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중국에서 쓰던 핸드폰과 SIM카드를 다 잃어버려서 로밍된 한국 핸드폰으로 사용하려니 참 속이 쓰리군요. 금액 차이가 좀 나는데...허헛. 핸드폰 살까말까 소심하게 망설이고 있는 중입니다.

자...어쨌거나 상해에서의 일은 내일 정도면 끝나고 모레는 같이 오신 분 한국으로 먼저 보내드릴겁니다. 상해의 무더위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흐~ 더운 날씨에 모두들 건강하시길... 그리고 행복하시길...

2005년 6월 27일 월요일

걸음.



구름을 밟듯 사뿐한 발걸음으로
어디든 갔으면 좋겠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좋다.
발 닿는 대로 어디든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illusion

연속과 비연속. 현실과 상상의 경계.
많이 보아왔던 형식의 그림이지만 여전히 재밌다.
마우스를 위아래로 드래그 해보길~



* 로딩이 다 끝나면 맨 아래 텍스트를 클릭하면 됨. 글자가 작아서 잘 안보이네..-_-a

2005년 6월 24일 금요일

검색엔진에서 보고 싶지 않네...

얼마 전 친구가 해준 얘기. 자신에게 이메일이 왔는데 자신의 블로그를 보고 보낸 이메일었다는 말에 깜짝 놀라 검색엔진에 관련 단어를 쳐보니 자신의 블로그 내용이 주르륵 뜬다는 얘기를 들었다. 난 블로그의 기능이 어느 누구나 다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 아니겠느냐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말이 안된다. 검색엔진에 등록되고 검색되는 게 기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글내용이라면 공개시키지 않게 할 권리가 있을테니까. 인터넷은 공개적인 장소임과 동시에 개인적인 공간으로 활용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뭐, 어쨌든... 그러다가 우연히 <검색엔진 배제규약>에 관한 블로그 글을 보게 되었고 고마운 마음으로 트랙백 걸어 올린다.

|거절을 모르는 검색엔진|

지식의 편린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2005년 6월 22일 수요일

만나고 헤어지고.

체코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하던 친구 녀석이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그리고 재충전을 해가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지도 벌써 두달 정도가 되어간다. 내일 다시 체코로 돌아간댄다. 체코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열심히 노력했고 좋은 결과들이 있었기에 이번에 다시 체코로 가는 건 가서 열심히 사는 일 밖엔 남은 게 없어 보인다. 좋은 능력, 좋은 마음이 있으니 좋은 결과로 (나중에) 금의환향하겠지. 즐거운 한국 생활이었길, 그리고 한국에서의 좋은 만남들로 인해 더욱 든든한 힘을 얻었길 바래본다.

체코어는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배우기 어려운 언어에 속한다고 한다. 그 어렵다는 체코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지 몰라도 사람사는 곳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단단하게 잘 여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사실 친구에게 이런 바램을 할 처지가 아니기도 하지만 입에 붙어 고치기도 어려운 말. "열심히!" 열심히 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내일 가는 친구 녀석과 바톤터치라도 하듯 애니메이션 공부하러 체코로 떠난 (친구와 룸메이트인) 동생 녀석이 들어왔다. 이 친구도 한 두 달 정도 있다가 들어간다고 한다. 이미 체코에서 지낸 시간이 훌쩍 삼년이 되어간다. 낯선 땅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만으로도 버티기 힘들었을 땅에서 잘 살다가 돌아온 얼굴이다. 밝아졌고 맑아졌다.

자기 고집이 있으니 잘 살테고 이미 체코에 스며들었으니 괜찮겠지. 같이 저녁을 먹는데 감자탕을 먹으면서도 감격하고 은행을 먹으면서도 감동하는 걸 보니 체코의 척박한 음식들을 짐작할 수 있겠다. 즐거운 식도락을 즐기다 또 체코에 들어가서 열심히 생활할 수 있길...

늘 사람은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만나길 반복하며 살지만 그 만남과 헤어짐의 사이에 각자의 옹골진 힘들이 키워지면 좋겠다. 특히 내가 부족한 부분이겠지. 다음에 만날 때는, 다음에 헤어질 때는 지금보다도 더 밝은 웃음으로 환한 미소로 마주하길...

긴 여행 조심히 즐겁게 가렴... 친구야.

2005년 6월 20일 월요일

낯선...

강하게(?) 살아남기.

어제 경기도 연천군 중면 최전방 GP에서 김아무개 일병이 동료장병들에게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해서 장병 8명이 죽는 참사가 발생했단다. 참 충격일 따름이다. 여기저기 속속들이 올라오는 기사를 읽고 있노라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내 마음을 더 답답하게 하는 건 그 기사에 대한 답글들이다. 인터넷에서 답글 내용의 무모함을 한 두 번 본 게 아니지만 여전히 답답하다.

답글의 많은 내용들이 사고를 낸 김아무개 일병에 대한 성토인데 주류를 이루는 내용은 '나약하다', '그 정도도 못견뎌서 사회생활 어떻게 하겠느냐', '폭력, 구타도 아니고 욕설때문에 그랬다니 황당하다', ' 얼차려를 겪어보지 못해 정신이 해이해진 결과다' 등등이다. 뭐랄까.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지간한 욕설은 달콤한 속삭임 정도로 넘겨야 하고 어지간한 폭력은 모기에게 물린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뉘앙스들... 그러고보면 한국사회는 참 살기 어렵고 고단한 나라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모든 국민들은 어떠한 서바이벌 게임에서도 살아남을 정도의 강인한 정신력과 신체를 갖도록 교육받고 강요받아온 게 아닌가 싶다.

분명 사고를 낸 김일병은 분명 처벌되어야 한다. 그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지금 사건에 대한 의문점들이 많지만 김일병이 저지른 게 확실하다면 그는 평생을 두고도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의 인생 뿐만이 아니라 가족들의 마음도 인생도 함께 죽이는 것이고 그와 관련한 인연들의 삶 또한 죽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김일병은 그렇다 치고 이 사건을 보며 한국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강인한 신체와 강인한 마음 정도는 기본으로 갖춰져야 한다면서 이 사회에 만연해있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눈가리고 아웅하는 듯한 행위들은 도대체 뭔가. 문제시되는 폭력의 수위가 과거보다 많이 낮아진 듯 하지만 여전히 평균치(이상) 정도의 폭력 수위를 가지고 그걸 견뎌내지 못하면 이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못난 사람이 되어버린다. 무섭다. 정치인들은 이게 안보의식의 부재때문에 그렇다고 하고 이 기회에 국방장관 및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싶어 안달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려 해결하는 사람이 절실할 때다.

폭력을 비판하면서 내가 또다른 폭력의 편에 서지 않기를 주의한다.

아웃백에서 싸게 먹는 방법(-_-;)

문득 아웃백에 관련된 기억 하나. 오래지 않은 얼마 전 작업자들 응원할 요량으로 먹고 싶은 걸 말하라 했더니 아주 착한 얼굴로 '아웃백'에 가고 싶다는 말을 들었었다. 사실 아웃백과 같은 곳(티지아이프라이데이, 마르쉐 등)을 거의 가지 않는 편이기에 약간 당혹스럽긴 했지만 응원은 역시 응원...

사실 작업자들이 내 생각해주느라 많이 시키지도 않았지만 4-5명이 먹고 약 6-7만원 정도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후에 그 중 제일 어린 친구의 제안으로 할인카드도 하나 만들었다. 나중을 위해서라지!!? -_-;;; 하긴 그 이후로 한 번인가 두 번 더 갔던 듯... 어쨌든 그런 추억(?)이 있는 곳이기에 '종종 가서 눈팅하고 중국관련 기사를 잘 읽고 오는 서명덕 기자님의 블로그에서' 발견한 아웃백에서 싸게 먹는 방법같은 정보는 유용할 수도 있겠다.

내겐 연중행사처럼 이루어지는 일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은 좋은 효과를 누려볼 수 있게 되길...흐~

2005년 6월 19일 일요일

이상해.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 차창 밖으로 낯익은 동네를 지났다. 아주 오래 전 기억같기만 한데 그 기억은 지금처럼 너무 생생하다. 돌아오는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온통 한 생각 뿐이다. 지난 날에 대해 미련 비슷한 감정이 스물거린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긴 한가보다.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이 휑하다. 참 이상한 날. 저녁. 한 때.

2005년 6월 17일 금요일

그런 나이.

친구와 간단한 술 한잔에도 취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나? 정신은 말짱하지만 속은 허하고 몸은 지친다. 별별 얘기를 나누면서 내 자신을 또 보게 되지만 여전히 내 머리 속은 엉망진창 얽히고 섥힌 실타래같다. 그래도 불끈불끈 내지르는 고집이 있는 걸 보면 의욕은 없는데 '악'만 남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무언가 작업을 해서 꿈을 이뤄가는 게 아니라 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작업을 해야 하는 것들...현실과 이상과 방황과 삶의 뒤틀림 모든 게 그냥 하나의 큰 덩어리로 들어오는 듯 하다가 잘게 파편으로 부서져 버리고 있다.

슬슬 움직이며 손도 풀어보고 뇌도 흔들어보고 마음도 달궈봐야지..라는 게 단지 억지춘향같은 짓거리만 되지 않았음 좋겠네. 쩝~!

2005년 6월 15일 수요일

무선 인터넷 시작...!

무선 인터넷을 사용해보려고 네스팟 사이트에서 몇 시간을 읽어보고 생각해 본 후에 한 달 정액제(15,000원)를 신청했다. 다른 방에서는 되지 않는데 창가 쪽에 오니 신호가 (나쁘게) 잡힌다. 그런데 일단 연결이 되고 나니 인터넷 사용하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노트북이 좀 무거워서 그렇지. 가지고 다니면 어지간한 곳에서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곳도 있긴 하겠지만...앞으로 네스팟 존이 늘어나길 바라는 수 밖에... 그래도 이렇게 인터넷이 되니 얼마나 좋아... 흐흐흐~ 노트북 배터리는 핸드폰처럼 하루, 이틀씩 가게 못하나?-_-;;;

오랜만에...


스승의 날을 맞이하야 선생님을 찾아뵙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 비싼 양주 홀딱 다 비우고 2차까지 갔다가 새벽 늦게까지 얘기하고 돌아오던 날. 많이 마시지 않아도 취하지 않아도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 세상이 흔들리니 취하지 않아도 어지럽긴 마찬가지지만...

예담이는 용배샘의 이쁜 딸. 광회형이 자꾸 추파를 던지지만 의연한 아이. 근데 창훈인 표정이 좀 그렇네. 고의가 아니었다.

2005년 6월 12일 일요일

창 너머로 비친 작품.


발걸음을 잡아 둔다. 햇살은 창 안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었지만 외벽 돌출에 부딪혀 수 많은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는 창 밖으로, 창 안으로 시선이 망설이는 동안 내게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림인 줄 알았더니 창문이었고 창문인 줄 알았더니 한 폭의 그림이었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라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는 중이다.

약속 :: -256

해도, 하지 않아도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지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잠시 머물다 가면 얼마 되진 않았지만 습관처럼 세포가 반응하곤 하죠. 습관처럼 탄성이 생겨 행동으로 옮겨지는 건 아니죠. 더구나 습관처럼 생각해내거나 하지는 않으려구요. 그런데도 그리 쉬운 발걸음이 떼어지지는 않네요. 사는 거 참 우습죠?

2005년 6월 9일 목요일

친구.


작년 12월 초 별안간 동해로 놀러가자는 친구들의 제안에 하던 일 급히 정리하고 새벽에 동해로 떠났다. 친구들이 다 모이진 않았지만 제수씨들과 애인들이 오고 나니 제법 사람 수가 된다. 나를 비롯해 짝이 없는 친구도 셋이나 되었는데도 말이지. 무박 3일 동안 술만 먹다 왔다고 중얼대긴 했지만 그 시간 동안 긴 말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동해 바다 비릿한 바람에 이제 훌쩍 커버린 친구들의 미소와 마음들을 실어 놓고 올 수 있었다. 친구들은 늙어가는데 나만 늙지 않는 것 같다가 요즘 들어서야 친구들은 그대로인데 나만 늙어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보고 싶다. 친구들.

2005년 6월 7일 화요일

무지개.


민섭이가 부른다. 삼촌 여기 무지개요. 무지개가 있어요. 물보라가 계속 생기니 무지개가 있을 법도 하겠다 싶어 굼뜬 동작으로 조카가 가르키는 곳을 봤다. 아~ 쏟아지는 햇살에 잘게 부서지는 물방울 사이로 색깔들이 다리를 놓았다. 나른한 기분과 아련한 느낌이 함께 밀려오고 무지개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무지개를 본지도 꽤 오래되었지만 평소엔 눈에 보이지 않다가 햇살의 반사각과 물 포말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무지개가 많은 소설, 동화에 나왔던 것처럼 정말 꿈(이상)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기껏해야 카메라에 담아오는 것 밖엔 할 수 없지만... 내가 꾸는 꿈도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을까 몰라...



그리 높지 않게 쏘아올려지는 물줄기는 최고 정점에 다다르면 산산히 부서지는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곤 한다. 더운 날 시원한 느낌을 받는데 왜 시원한 느낌이 들까. 내 머리 속에 주입되어 온 물은 차갑다. 시원하다의 이미지가 강한 탓일까? 더운 날씨가 정말 이 물줄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시원해진 탓일까? 부서지는 물방울은 다시 아래로 떨어져 땅으로 스며들고 하늘로 날아가고 하나로 합쳐지고 그러겠지. 조각나 흩어지는 물방울 사이로 보고 싶은 이 얼굴 아른거린다.

2005년 6월 4일 토요일

인정.

아는 선생님과 대화를 하던 중 내가 가지고 있었던(그러나 지금에야 다시 적확하게 알게 되었던) 보수성과 폭력성에 대해 인정을 했다. 내가 상대방에게 폭력을 쓰지 않더라도, 욕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내치지 않더라도 내가 그런 것들을 어떤 상황에서 감내할 수 있다거나 혹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내 스스로가 그런 폭력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

사람마다 개성이 있고 특성이 있기 때문에 한 개인의 삶의 형식을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과정에서는 분명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주는 일이라면 폭력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상대방의 형식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걸 받아들이는데 있어 관대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아니, 포용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부분들에 대해 의견을 내고 따지거나 투쟁(?)을 해야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냥 피하면 그만이긴 하겠지. 그리고 마주치지 않으면 될 일이겠지. 하지만 이후로는 그런 일에 마주쳤을 때 할 말 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넘어가는 일은 지양해야겠다. 어쩌면 그런 행위들이 나를 더 고립시키고 살아가는 데 버거움을 안겨줄 지 모를 일이지만 아닌 걸 맞다고 하면서 살아가는 건 싫다. 옳고 그름, 맞다 틀리다의 기준을 어떤 식으로 내려야 하는지는 계속 꾸준히 자기 반성과 성찰을 통해 변화시켜 가면 될 것이다.

여전히 불편한 상황에서 피하고 싶고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말은 아끼되 실천은 풍성해지는 삶의 자세는 견지해야 하지 않나 싶다. 좀 더 생각을 정리하고 행동을 다듬어야 하겠지만...

2005년 6월 2일 목요일

6월

6월의 시작. tv에서는 전씨의 현충사 습격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고 러시아 유전관련 비리가 밝혀지기 시작하고 있다. 비도 내리기 시작하고 있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될 모양인가 보다.

한 2-3주일은 완전히 늘어진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지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하기 싫던 날들...역시 일도 작업도 환경이 중요한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런 사실도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어쩔 수 없는 게 되곤 한다.

앞으로 더 현실을 버거워하며 지낼지라도 거울 속에던, 사람 속에던 비치고 반사되는 것의 실체를 좀 더 붙잡고 고민해야겠다. 머리와 몸이 하얀 백지가 된 것 같다. 원래 그랬는데 내가 몰랐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