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31일 토요일

새해 복 많이 짓고 받으세요!

送舊迎新

謹賀新年




시간은 늘 속절없지만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의 키는 한웅큼 자라고
새로운 한 해를 치열하게 할 거름을 만든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올 한 해
어제가, 오늘이, 내일이 별 날이 아닌 걸 알지만
병술년(丙戌年) 새해엔 아쉬운 것도, 복잡한 번뇌도 다 놓아지길,
하고자 하는 일에 보다 명확한 지점이 보여지길,
표면보다 본질에 더 관심을 두는 한 해가 되길,
그리고 흔들림없는 걸음이 되길 희망한다.


병술년(丙戌年) 한 해엔
보다 더 복 많이 '짓고' '받길' 희망한다.

2005년 12월 26일 월요일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중국 친구 安颍(An Ying)이 보내 준, 함께 인사동에 갔을 때 찍은 사진.


이젠 실내야구장도 많이 사라져서
인사동에 있는 실내야구장은 문화유적같은 느낌이다.

야구장에 배트를 들고 서면
잘 치고 싶다는 욕심과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근육들의 마찰음 때문에
괜한 땀만 흘리는 듯 하지만
투입된 금액만큼 공들이 다 던져지고 난 후
배트를 제자리에 꽂아놓을 땐
시원한 바람이 분다.

언제나 9회 말 투 아웃, 주자 만루일 수 없고
또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일 수 없지만
타석에 선 만큼 공을 끝까지 봐야 하고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 자세를 고쳐 잡아야 한다.
그 안에 진지함, 즐거움, 경쾌함, 반전이 있다.
삶이 꼭 그러하다.

잘 치고 싶으면 늘 연습이 필요하다.
가끔씩 휘두르는 배트로는
아무리 느린 공도 맞혀주지 않으니까.

2005년 12월 25일 일요일

따스함, 가볍다.

손 안 가득 만져지는 햇살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덩어리 채 나를 눈부시게 하는 느린 낮을 보내는 게
아주 오랜만인 '오늘'
TV소음과 전화하는 소리,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오히려 현실에서 나를 멀리 격리시킨다.


아무리 가슴에 담고 눈시울을 붉히더라도
행동없는 삶 변두리엔 스러지는 사연들이 즐비하고
그저 지금 이 순간만은 햇살에 송두리 채 무너져
현실 위를 부유하는 영혼, 가볍다.


해가 지지 않을 것 같은 이 몽롱함은
사실 오래가지 않아야 좋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여전히 매혹적으로 아름답지만.

2005년 12월 24일 토요일

메리 크리스마스~ :)

사실, 크리스마스나 기타 기념일, 명절 등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기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것도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인사는 즐거운 일이니... 기쁜 마음으로 '메리 크리스마스~ :)'


더구나 25일은 세째 조카 도연이의 '생일'이기도 하다. 누나네 집에 오면서 도연이 생일인지는 모르고 크리스마스 케잌이라도 사가려 전화를 했더니 도연이 생일이라 한다. 근처 빵집에서 고르고 골라 나름대로 괜찮은 케잌 하나 들고 들어오니 조카들이 난리가 났다.


'우아아아, 삼촌이다!!'
'삼촌, 이상해, 이상해'


검정 빵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애들에겐 내 모습은 이상하고 신기하기만 했을 게다. 신기하고 이상한 괴물 삼촌? 그래도 케잌을 들고 있는 난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애들은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는지 케잌을 먹자고 난리가 났다. 주인공 도연이는 자신의 생일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기분이 너무 좋아 감정 고조 상태였고 주연, 도연도 기분이 좋아 자진해서 도연이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뽀뽀해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지고 올 거라고 얘기를 해준 후 아이들이 잠든 사이, 매형과 누나, 동생은 조카들 선물을 사러 나갔다.


크리스마스가 어쨌든 간에 잠시라도 기쁨을 공유할 수 있다면, 다른 이들에 대해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는 세계인의 축제가 아닌가 싶다.



솔로든, 듀엣이든, 트리플(?)이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MERRY~ X-Mas.!!!



아, 우리팬님 블로그를 통해 본 성탄절과 관련된 중국어 유머 하나.


听说过几天要生个蛋,真的吗?
那我得祝你的生蛋快乐!



해석을 하자면...
'듣자하니 며칠 후에 알(계란)을 낳는다던데 진짜야?
그렇다면 알(계란) 낳는 거 축하해야겠다!!!'


알을 낳는다는 발음과 성탄의 발음은 같다. :P

2005년 12월 20일 화요일

좋은 만남, 인연들...

오늘은 경기도지사가 '경기디지털컨텐츠진흥원'을 방문하는 바람에 진흥원 건물 이곳 저곳에 전경들과 경찰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한 쪽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위하는 내용이 흘러 나오는, 뭐랄까... 'Boss'가 뜨면 주변 환경이 순식간에 바뀌는 체험을 했다. 도지사가 수업 중간에 들어와 (전시행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잠깐 수업을 참관한 후 강사와 학생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고는 무수히 많은 식솔(?)들을 데리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로 인해 오늘 하루 종일 진흥원 아카데미 직원들은 긴장 에너지가 흘러 넘쳤고 수업도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었으니 열심히 촬영을 해댔고 진흥원에서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지사를 열심히 찍었건만 정말 애석하게도 경기도 행정이 바쁘셨던 탓인지 조는 모습이 꽤 촬영되어 버렸다. 물론 그 졸린 눈을 뜨려고 애쓰는 모습은 박수칠 만 했지만... 아!!! 이게 어릴 적 겪었던 참관수업이었네.-_-;;;


담당했던 촬영(계약서에 '촬영기사'라는 문구를 보고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일도 내일이면 끝난다. 촬영이라는 게 쉬운 듯 어렵고 어렵지만 재밌는 일이라는 걸 느낀다. 기록촬영과 영화촬영, 애니메이션촬영은 다른 기법, 느낌이겠지. 어쨌든 카메라 두 대를 돌리며 힘든 점도 많았지만(가장 힘든 건 촬영하는 중엔 앉을 수 없었다는 것) 사람을 프레임에 담아내고 그 프레임을 통해 실제 느끼지 못하는 느낌까지 얻어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워크샵에 참여하신 임아론, 유진우, 오순한, 이문성 등 네 분의 강사님들의 강의 내용은 오히려 참석한 학생들보다 내게 더 많은 소득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간의 소득을 짤막하게 말하자면...(더보기)

2005년 12월 16일 금요일

'허탈'한 소식

(한 번도 관련 내용을 포스팅하지 않은 내가 이 시점에서 글을 올린다는 게 참 뻘쭘하긴 하지만 '허탈'한 마음을 스스로 풀어보기 위한 자위 정도는 될 것 같다.)


오늘 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조금 후에 식당에 올 거라는 얘기와 함께 한 말은 '엄청난 속보를 알려주겠다'였다. 그리고 그 내용은 모두가 알다시피 '황우석 박사 관련 내용'이었다.


사실, 얼마 전에 여러 블로거들의 글을 읽다가 '[PD수첩] 폐지 반대 릴레이'를 봤다. 며칠 간 급박하게 전개되었던 '황우석 박사 논란'을 며칠 간 정독을 하며 이해를 해왔던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에 부족함이 많지만 최소한(?) [PD수첩]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포스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나마도 갑자기 일이 생겨 며칠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없어서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오늘 '급보'를 전해듣고 잠깐 멍하게 있었다. 사실 화가 나지도 않았고 '그럴 줄 알았다'거나 하는 식의 반응은 더더욱 없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고 정작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던 탓인지 담담했다.


그럼에도 난 무척 '허탈'했다. 그건 황우석 박사측에 대한 허탈함이 아니었다. 그 많던 논란들 -'좌경세력'과 '보수세력'으로, '황빠'와 '황까'로, '종교화된 믿음'과 'PD수첩에 대한 믿음'으로, '일반인'과 '과학도'로 나뉘어진 그 많던 논란들이 달구어지기만 했지 정작 중요한 문제점들은 오늘 '속보' 한 방에 다 날아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여전히 꽤 괜찮은 블로거들의 글은 진심과 차분한 시각들을 담고 있고 의견들을 펼치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것은 분명하고 이 많던 논란들이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묻힐 수(잊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욱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그간 '공부'는 나름대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앵똘레랑스에 대한 단호함의 '똘레랑스'와 참 의미의 '중용'을 다시 곱씹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참 재밌는 세상이다. 허허.




여전히 열심일 젊은 과학도들에겐 격려가 필요하겠고,
황우석 박사를 비롯한 팀들에겐 다독임이 필요하겠고,
많은 사람들에겐 황우석 박사의 진심어린 사과도 필요하겠고,
권력관계에 여전히 숨 죽이는 이들에겐 진실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겠고,
순식간에 황색 언론에 휘둘리는 누리꾼들에겐 동요하지 않을 진중함이 필요하겠고,
국익에 목숨 걸던 사람은 자신과 이건희가 같은 민족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겠고,
여자의 난자를 계란 노른자 정도로 치부하는 이들에겐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겠고,
그 동안 5-10% 속에서 마음 고생이 심했을 누리꾼(블로거)들에겐 심심한 위로와 박수가 필요하겠고,
정신없던(난잡했던) 언론판은 스스로 정화필터를 착용해야겠고,(불가능하리라)
[PD수첩]은 폐지되지 않고 계속 좋은 방송을 해줬으면 좋겠다.


아! 이 뜨거운 열기로 '검찰이 삼성 가족이 아님'을 증명했으면 좋겠다.




혹시, 내일이 되면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드는 밤이다.

2005년 12월 14일 수요일

아시아디지털콘텐츠마켓플레이스 2005에 대한...

내일부터 경기디지털컨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행사 아시아디지털콘텐츠마켓플레이스 2005 중 워크샵 부분에서 촬영을 담당하기로 했다. 아는 PD 부탁으로 한다고 했지만 겸사겸사 워크샵이나 행사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겠다. 행사 담당자나 진흥원 몇 분은 전부터 아는 분들이라 편하긴 하다.


오늘 미리 와서 내일부터 할 일에 대해 상의하고 중국에서 온 사람들도 있으니 (이지선씨가 통역은 담당하고 있지만) 서로 얘기 나누는데 도움을 달라고 한다. 와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중국 친구들과 통성명하고 저녁먹고 술 한잔 하고 여차저차해서 작업실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 진흥원 내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중국 친구들은 상해에서 3D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하고 있다 한다. 쓰촨성과 허난성 출신인 두 친구들은 젊은 나이에 비해 꽤 실력이 있는 듯 하다.


내일부터는 RG스튜디오의 임아론 감독과 미국에서 'ICE AGE' 캐릭터 애니메이터를 맡았고 속편을 준비 중인 이문성씨도 오셔서 워크샵을 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대학 강의를 하고 계신 유진우 연극인도 동작표현연구에 관한 강좌를 맡았다. 워크샵 뿐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상영회도 하고 세미나도 개최하는데 세미나에는 일본의 곤조(GONZO)에서 감독과 제작자(PD)가 참석한다고 한다. 워크샵 촬영을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파트는 참석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마지막 날 리셉션에서 모두 모여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니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자세한 내용 보기)


간단한 인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갖게 된 술자리에서 진흥원 소속 몇 분과 애니메이션에 관한 몇 가지 고민들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는데 이 생각들을 묶어서 정리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05년 12월 10일 토요일

친구의 결혼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 온 '아름솔' 계모임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16명이다. 10년 넘게 살아오면서 별별 일도 많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나 둘씩 유부남이 되었다. 친구 부모님들도 모두 우리들을 알고 지내기 때문에 보다 각별한 관계들이랄까? 물론 이제 사는 곳은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그래도 두 달에 한 번은 모임을 갖는다. 바빠지는 시간 속에, 먹고 살기 힘든 나날 속에 두 달에 한 번 모이는 것도 어렵긴 매한가지이지만 되도록 모이려고 애를 쓰며 산다.


이제 결혼을 한 친구들이 12명이고 내년에 결혼을 예약한 친구가 한 명이니 (나를 포함해서) 3명이 결혼을 하지 않은 셈이다. 오늘 친구 결혼식이 있었다. 신부는 회사 동료인데 친구 못지 않게 유머감각이 뛰어난 친구다. 결혼하는 친구 충훈이 때문에 중국까지 갈 결심을 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친구의 신부 역시 중국어를 잘 한다. 뭐, 굳이 중국어와 결부시키지 않더라도 충훈이를 포함한 친구들은 모두 내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신혼 여행은 대만이라 한다. 오래 전 대만에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서 몇 가지 특색있던 곳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꼭 들리라 조언해줬다. 결혼식 후에 참석한 친구들 대부분은 충훈의 새 집이 있는 수원으로 가서 거나하게 술자리를 가졌다. 날씨가 워낙에 추워서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즐거운 시간들.


어이 친구~, 잘 살고 행복한 생활 보내길 진심으로 바라네. :)
사진 중에 몇 장은 잘 인화해서 전해줌세.


축하해~!!!


결혼식 사진은 아직 정리를 하지 못했기에 며칠 후에 올릴 생각이다.

2005년 12월 9일 금요일

화산(和山)님 기일

오늘은 화산(和山)님 기일이다.
저녁에 제사가 있다고 하니 점심 먹고 출발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점점 가슴은 무뎌지고 있지만
당신의 영향력인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날이라고 해서 꼭 더 많이 생각나거나 그리운 건 아니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경우가 많고
그런 날은 대개 부끄럽게도 내 자신의 삶이 버거울 때가 대부분이다.


결국 나는 여전히 당신의 부재(不在)마저도
내 에너지를 충당시키는데 활용하는 못난 놈인 것이다.


늘 죄송스러운 마음조차도 내겐 사치가 아닐까.


여전히 당신이 그립긴 하다.

전문직이 차별화 되는 이유

의과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겨울 필자를 아끼시던 한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의사를 포함해 모든 전문직이 차별화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때문임을 기억하라. 먼저 전문직 별도의 행동윤리가 있고 이는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윤리보다 더 엄정하다. 둘째 졸업 후 직업 훈련 과정은 평생 수행되는 것이니 배움의 끈을 놓지 말라. 마지막으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전문직이 전문직일 수 있는 이유는 자정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출처 보기


이런저런 논란의 틈새에서 상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마주친 글귀 하나. 난 의대생도 아니고(아주 어릴 적 꿈이긴 했지만) 과학도도 아니지만 위에서 말하는 모든 ‘전문직’이 차별화되는 이유에 대해 공감을 한다. 위의 ‘선생님’이란 분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겠고 ‘말’뿐인지 ‘행동’도 함께 수반되는 분인지 확인할 길 없지만 하신 말씀은 내게도 울림을 준다.

애니메이션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도 아니고 국가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직업도 아니겠지만 나름의 ‘차별화’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물론 요즘에는 플래시나 간단한 툴을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반인(비전문)’들도 많고 그들의 실력도 상당하지만 여전히 전문직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럴 경우 위에서 말하는 차별화를 적용해서 생각해 보면 적당한 기준들이 생길까? 간혹 애니메이션 ‘판’에서도 ‘카르텔’이 형성이 되어 아주 기본적인 ‘권리’들 조차도 무시당하기 일쑤고 여느 보수 집단보다도 더 ‘상하관계’가 중요시되곤 한다. 그게 이쪽 나름의 행동윤리 강령이라면 끔찍하다. 하지만 또 반대급부는 분명 존재하고 행동하고 있다. 종종 나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혼동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나름의 ‘윤리’의식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윤리도 윤리지만 내 마음을 잠시 머물게 했던 건 ‘배움의 끈을 놓지 말라’는 말이었다. 어릴 적 교육에서도 전인교육이네 뭐네 하며 들어왔던 끊임없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성에 빠지게 되고 지금 내가 아는 것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속적인 노력보다는 여태 알아왔던 사실만으로도 가능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으며 공부를 하고 학위를 따는 것만이 배움의 길은 아닐 터.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업종에서 내게 주어지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과거 혈기 왕성했던 시절에 몸 담고 있었던 ‘집단’을 줄기차게 비판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런데 그 때가 지나 지금의 내 모습은 스스로가 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내가 평생 가지고 갈 직업이 아니라면 모르거니와 혹 그렇다 할지라도 그만두는 순간까지는 명심해야겠다.

전문직이 가지고 있는 자정 기능은 믿긴 믿되 믿음만으로는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내 성격이 ‘강성’이고 ‘옹고집’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측면이기도 하겠지만 집단 내 변화가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10년 후에 가져올 좋은 결과가 1년 후에 올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나? 이런 믿음으로 살다가 결국 10년을 꼬박 채우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겠지만 여전히 중요한 건 ‘언제 누릴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자정 기능이 없다면 전문직이 아니다. 전문직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보통 집단이다. 개개인의 자정 기능과 순기능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개개인이 모여 형성한 집단에서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애니메이션 계를 포함해 상당수의 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직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지 않은 이야기를 귀동냥으로만 들어도 심각한 일들이 많다. 하지만 자신이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고 소위 그들이 전문 집단이기 때문에 자정 기능을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랫동안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이 체질화되고 관습이 되어버린 경우도 많다. 다시 고민해 볼 일이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는 (내 마음과 생각, 몸이 죽지 않았다면, 여전히 움직일 만 하다면)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게 모르고 행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쁘다.

2005년 12월 6일 화요일

짱개;짱깨;짱꼴라의 어원(?)

掌柜(장꾸이;Zhang gui)는 상점 주인, 사장이란 뜻의 중국어다. 물론 지금은 이 말을 쓰지 않는다. 老板(라오반;Lao ban;남자 사장), 老板娘(라오반냥;Lao ban niang;여자 사장)이란 말을 쓴다. 掌柜는 예전에 쓰던 말이었다. 전에 즐겨보던 '大染坊'이라는 중국 드라마에서 나오던 말이었는데 1930-40년대까지 쓰던 말인 듯 하다.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老板이란 말이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1. 짱꼴라란, 장(葬)+골(骨)+人 로서,
'불결하고 더러운 썩은 뼈다귀 같은 인간'이란 뜻입니다.

-> 아마 이 말은 잘못된 말인 듯 하다. 말을 억지로 끼워맞춘 듯한.


2. 中國人(중국인)을 중국어로 읽으면 "쭝꿔런"으로 읽히는데
"쭝꿔런"이 발음이 변해서 "짱꼴라"가 되었다고 하네요.
덧붙여서, "짱개"라는 말은 '지배인'이라는 뜻의 '장궤(掌櫃 )'의
발음 zhanggui 가 변해서 된 것이라 합니다.

-> 그럴 법한 이야기지만 변화의 폭이 너무 크니...


3. 흔히 ‘짱꼴라’로 폄하해 부르는 ‘장궤’(掌櫃)란 뜻도 ‘돈 궤짝을 장악한 사람’이란 의미다. 곧 중국인이다.
-> 위와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이 어원은 맞는 듯.


생각해 보면 중국인들이 셈에 밝은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말이야 서로 win-win하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지만 상황이 잘못되더라도 절대 자신이 손해보도록 '설정'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얄밉고 쉽게 정이 안가더라도 속내를 잘 알아보고 친해지기만 한다면 너무 깔끔하고 좋은 돈 관계,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인보다 훨씬 더 '의리'를 중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젠 중국 친구들이 좀 있다 보니까 중국인을 폄하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물론 전에도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은 없다) 그런데 어원을 살펴보니 그다지 나쁜 뜻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 추가 : 알타이 호랑나비짱깨, 짱꼴라의 유래는? (좀 더 자세한 소개)

2005년 12월 4일 일요일

첫 눈, 初雪。

얼마 전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직접 본 것도 아니었고 눈이라고 할 만큼 내린 것도 아니었다 하니 첫 눈이라고 말하긴 그렇겠다.


오늘, 첫 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눈이 내렸다. 늦은 오후엔 시력이 좋아야만 보일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내리더니 저녁이 되어서 눈다운 눈이 내렸다. 전남 지역을 포함해 몇 곳은 폭설주의보가 내려졌다니 첫 눈 치고는 강력하다.


첫 눈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 사실 첫 번째라고 하는 의미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을 이해못하는 바 아니지만 - 특별한 감흥을 느끼진 못하고 있지만 어릴 적(?-지금보다 젊었을 때^^;)엔 첫 눈에 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흥분(?)했었다. 첫 눈이 내리면 무조건 '어디어디'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정해두기도 했고. 그런 내 삶의 여정 속에 꽤 인상적인 기억이 하나 있긴 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후에 맞이한 '첫 눈'이 내리던 날의 기억.(그냥 생각만 하련다.)


눈이 사람의 심리적인 작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의 움직임이나 사람들의 반응들을 보면 참 신기하기만 하다. 언제부터 눈에 대한 반응들이 생겨났을까. 게다가 수 많은 자연 현상 중에서 눈이 갖는 의미는 보다 특별함이 담긴 듯 하다. 이런 의문(?)을 갖는 게 우습긴 하지만 암튼 그렇다.


예전보다 설레거나 감상에 젖지 않게 된 건 단순히 세월이 흐르며 감성이 무뎌진 탓이 아니다. 내 감성은 여전히 건재하게 작동을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감상에 빠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조카들과 함께 살짝 쌓인 눈을 보는데 너무너무 즐거워하던 조카들을 보고 있노라니 말이다.


그저 이렇게 주절주절주절, 눈 때문인 것 같다. :)


중국어로 첫 눈은 초설; 初雪(Chu Xue)라고 한다. 우리 말이나 중국 말이나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