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14일 금요일

행운도 필요없다.

- 자신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제일 먼저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쉽게 잊혀지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매번 내 인생의 몇 퍼센트씩을 지옥 같은 현장에서 바치면서 영화를 찍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항상 관객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생각한다. 가끔 새벽에 케이블 TV를 보다보면 질 낮은 싸구려 영화를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나도 어느 순간 그런 영화로 기억될까봐 두렵다는 생각을 한다. 그 사람들도 똑같이 고생스럽게 영화를 찍었는데 완성된 결과물이 무의미하게 눈과 귀를 괴롭히는 영화로 남는 것 만큼 공포스러운 일도 없을 것 같다."


- 영화에 발을 들여놓은 과정이 독특했는데, 어떻게 영화감독이 자신의 길임을 확신하게 됐는지
"일단 말해두고 싶은 건 나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최악의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경제력, 인맥, 학벌. 정말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영화를 너무 만들고 싶어서 무작장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물론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도 배제할 수 없어서 여러 직업을 전전한 게 30가지가 넘는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평생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영화 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가끔 내게 영화 감독이 된 과정을 물어보는 질문 속에는, 과연 무슨 행운을 만나 지금까지 왔는지 나를 표본으로 자신에게 대입할 어떤 경우의 수를 찾아보려는 듯한 의미가 숨어 있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행운 같은 건 절대 오지 않는다.


생각이 있다면 직접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가서 영화를 찍어보거나, 시나리오 한줄 제대로 써보지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모두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에너지가 있을 때 과감히 행동하지 않으면 어느새 나이만 먹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에겐 행운이 없었다. 정말 최악의 상황 속에서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85818


류승완 감독과의 인터뷰 중 일부 내용이다. 세상엔 모든 게 갖춰져(있다고 생각되는)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리고 갖춰가는 사람들이 있다. 류승완 감독 말처럼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볼 때 어떤 행운을 만나 그 위치까지 갔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말한 대로 영화감독(혹은 그 무엇이든 간에)이 되기 위한 최악의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영화를 너무나 만들고 싶어서" 백방으로 뛰어다닌 노력의 결과가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 똑같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성공 이야기가 늘 잘 팔리는 이유는 그대로 해내는 이들이 적기 때문이고 나태한 자신의 삶에 쉽게 무릎을 꿇기 때문일 게다.


한 때 나와 동갑인 류승완 감독에게 터무니 없게도 질투를 느낀 적이 있었다. 지금의 내 나이와 현재의 위치가 늘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당연히 내 자신의 게으름과 변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인간적 본능으로 질투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신화(?)를 보고 들으면서도 움직이지도 않으며 꿈만 꾸는 건 바로 실패한 사람의 삶과 다를 바 없는 걸 안다. 아무튼 인터뷰 내용을 보며 많이 찔린다. 핑계로 점철된 삶을 꽤 많이 살아온 것 같아서다.


작품을 만들어서 수상을 하던지 말던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던지 말던지 일단 내 속에서 그르렁 대는 소리부터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만들어 내야하지 않나 싶다. 도저히 아무것도 정리도 안되고 꽉 막힌 속을 가지고는 허구헌날 무언가를 한다고 꼼지락 거리는 것도 지친다. 형편없는 작품을 만들더라도 만들어 놔야 형편없는지 어떤지 알 수 있을 거 아닌가. 남들에게 그저 그런 작품으로 기억되는 게 두렵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말이지.


별 것도 없는 상태로 참 오래도 버텨왔다 싶다.


행운도 필요없다. 그냥 좀 풀어내지길 스스로 희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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