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7일 목요일
[mov] 송환 | Repatriation | 送还
"몇 번의 눈물과 여러 차례의 한숨, 그리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 하나"
송환을 보고 난 감상이다. 생각해보면 난 간첩에 대해서 초등학교 웅변대회 말고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간첩을 생포하고 사살하던 뉴스도 그저 그런가보다 했을 뿐 인상에 남아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이나 간첩사건, 조작사건 등으로 인해 부지불식 중에 내가 받은 영향은 꽤 된다고 생각한다. 그 영향은 장성해서 나름대로 '사실'을 알고 있는 지금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은 듯 하다. 나 혼자만의 흉터가 아닌, '모두'의 흉터.
간첩이 아닌 북한에 대해서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나도 '북괴'란 말을 사용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북한주민을 뿔달린 괴물로 묘사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나이를 먹으며 떨쳐내려고 해도 쉽지 않은 부분이 많다. 아직도 어린 시절 "똘이장군"이나 "해돌이의 대모험"같은 '만화영화'에 열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의지가 아니었음에도 강제적으로 뇌리에 각인되었던 간첩, 북한의 이미지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한국 사회의 정체성은 나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한참 후에서야 차츰 거짓틀에 대해, 잘못 교육 받아온 것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는 대북 사상, 관념들은 왜 그런 것일까. 그 시절을 피와 눈물로 살아온 어르신들 이외에 젊은 세대들을 옭죄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역사는, 기억은, 경험은 세습되고 유전이 되나보다. 거부하지 않는 한.
김동원 감독님은 한국독립영화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사석에서 몇 번 뵌 적은 있지만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었다. 그 분의 모습은 옆 집 아저씨같은 넉넉한 인상과 목소리로 기억을 하는 것이 전부다. 그 분이 12년에 걸쳐 기록한 간첩의 이야기 '송환'은 그 분의 이미지에 비해 다루는 내용의 충격 내용으로 인해 더욱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더불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생각들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영화는 비극을 담고 있지만 비극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희망을 얘기하고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나는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그 신념을 위해 인생 모두를 버릴 수 있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반문하고 또 반문했다. 거듭되는 반복의 굴레, 윤회의 굴레를 벗어버리기엔 이놈의 경직된 사회는 너무도 견고하지만 끊임없는 두드림과 노력으로 차츰 완화되고 있긴 하다. 그저 난 반문 밖에는 할 수 없다. 스스로 묻고 있지만 스스로 답을 얻어내기란 요원해 보인다. 일단은 살아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아직도 난 '미전향'과 '비전향'이란 말이 주는 엄청난 간극의 뉘앙스를 쉽게 체화해내지 못하긴 하지만 영화는 내게 인생을 송두리째 묻고 있고 그로 인해 답답한 마음만 한가득이다.
죽음과 싸워 지켜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죽음을 이겨내고 자유를 찾고서 또다시 죽음을 마주하는 이들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가슴은 먹먹하기만 하다.
12년의 기록이 지난 50여 년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낼 수 없듯 50여 년의 상처는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아물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http://imgmovie.naver.com/mdi/mi/0382/C8253-0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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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힘든 영화, 힘든 글, 힘든 작품들을 만나는게 두려워져서, 되도록이면 피해가고, 안보려고 노력을 하고 살았는데...
답글삭제나도 오늘 힘든 영화 한편 봤다. 제목도 모르고, 어느 나라에서 만든 것인지도 모르고, 걍 TV 켜놓고 있는데(체코어 더빙도 아니었어), 갑자기 발동이 걸려서 의자 끌어다가 봤지. '보스니아 내전'에 관한 영화였는데... 잘났다고 설쳐대는 UN군도 나오고, 부시 전 대통령도 나오고... 여기 다 쓰진 못하겠고. 아주 기분 더럽게 끝나 버렸어. 짜증 만땅인데. 영화 너무 잘 만들었더라구.
'송환'... 예전에 참 보고 싶었었는데, 이젠 보려면 큰 맘 먹어야만이 볼 수 있을 것 같아.
@wolhoo - 2005/10/28 06:59
답글삭제그러게. 힘든 영화, 힘든 글을 마치 전리품이라도 획득하는 양 좋아하던 치기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나 역시 지금은 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건 하지 않건 보고 나서 앓는 것 같다.
그 영화 제목이 궁금해진다. 보스니아 내전에 관한 영화라면, 그리고 개봉한 헐리웃 영화라면 알 것도 같은데... 다큐멘터리만 아니라면.
마음은 결코 물러지지도 단단해지지도 않는 물건인 것 같다.
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Anonymous - 2005/10/29 06:41
답글삭제그랬구나. 미안한 마음이 드네.
그런데 분명히 네가 원하는 만큼의 실력을 갖추게 될 거라 생각해. 어차피 대화라고 하는 건 언어가 주는 유창함보다 말 속에 담긴 진실함이 먼저니깐.
하지만 지금 네가 느끼는 그런 감정은 참 아쉬움이 많겠다. 답답하기도 하겠고. 힘내라.
그런데 수만가지 자극과 경험이 폭풍처럼 지나간 자리라면 단단한 마음이 싹을 틔울까? 난 잘 모르겠다. 생각으론 위에 썼듯이 단단해지지도 물러지지도 않는 것 같아. 그냥 그대로인. 잘 활용하기 나름인.
보스니아 내전이라면 아마 노맨스랜드 아닌가 싶어요. 유럽의 블랙 코미디 영화인데.. 전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더라구요.
답글삭제@프리스티 - 2005/10/29 23:30
답글삭제아...그런가요?
블랙 코미디 영화였군요.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