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3일 금요일

천장

출처: 노커팅의 인디아고고

떠나는 자의 마지막 보시, 천장(天葬)

이제야 정리가 조금 되어서 뭐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2004년 4월 5일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목격한 가장 충격적인 이 장면에 대하여.

오래전부터 나는 티벳에 가게되면 그들의 장례풍습인 천장(天葬, 혹은 조장)을 꼭 보리라 별렀으나
시체가 없다 혹은 주말이다 등의 이유로 미루어지다 어렵사리 천장을 보게 되었다.
새벽 5시 30분. 전날 몇 사람을 급히 수배하여 총 7명으로 팀을 만든 우리는  
115위엔씩을 내고 랜드크루저를 빌려 천장장소로 향했다.
'남의 장례식에 가는데 술이라도 한병 사가야 되지 않겠냐'는
한 한국인아저씨의 객쩍은 농담을 흘려들으며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차는 3시간을 달려 사원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티벳에선 사람이 죽으면 3일동안 집안에 시신을 안치한 후,
이곳 사원으로 옮긴 후, 기도를 드린 뒤 천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례풍습이다.
난 사원을 들르지 않고 일행들과 헤어져 일찌감치 천장장소로 향했다.
아침 일찍 호젓하게 걷고 싶기도 했고 마음을 가라앉힐 겸 해서..

사원 아래로 굽이굽이 돌아진 산길을 올라가는데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어디로 가야되는 걸까. 너무 이른 아침이라 사람도 없고.
망설이고 있는데 머리위로 까마귀들이 한무리 떼지어 날아간다.
그래, 까마귀를 따라가자. 까마귀를 따라 한 20분을 올라가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다가가 물었다.
- 티엔짱? 티엔짱? (천장? 천장?)
나를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티벳말로 웃는다.
여기가 아닌가.. 마음이 급해졌다. 여기가 아니라면 얼른 돌아가야 하는데..
티엔짱? 한참 있다가 걔중에 가장 젊어보이는 남자가 씨익 웃으며
뜻을 알아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철조망이 쳐있는 작은 공터를 가르켰다.
'사진촬영금지'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걸 보니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물었다.
- 요? 메이요? (있어요? 없어요?)
다시 한무더기의 사람들이 낄낄대고 웃었다.
나는 눈 위에 유(有) 무(無)를 쓰고 막대기를 청년에게 집어주었다.
오늘 천장이 있으면 유에 동그라미를, 없으면 무에 동그라미를 치라는 뜻이었는데
그는 땅바닥에 내가 쓴 유, 무를 그대로 받아적고 나와 글자를 번갈아보며 계속 웃는다.
글을 못 읽나보다..
휴.. 한숨이 나온다. 주위를 둘러보니 눈 내린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천장이 이루어지는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기운이 맑은 곳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에라. 여기가 아니면 또 어때. 여기서 몇시간 놀다가면 되겠다..싶었다.

나는 계속 티엔짱? 요? 메이요? 못질을 하는 그들 옆에서 촐랑거리며
먹이 구하러 나온 겨울 토끼마냥 발자국을 찍으며 텐트 주변을 빙빙 맴돌고
그들도 일을 하면서 내 말을 흉내내다 눈이 마주치면 낄낄대고 웃고..
그렇게 1시간 반 정도 놀고 있었나.
어디선가 사람들 말 소리가 들리더니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언덕을 올라온다.
함께 온 일행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 뒤로 시신을 떠매고 올라오는 사람들..

사람들을 따라 철조망이 쳐진 공터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시체가 3구.
중앙에 들것을 내려놓더니 사람들이 갑자기 분주해진다.
천장사들이 장화를 신고 앞치마를 두르더니 칼을 벼른다.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사진을 찍을 수 없기에 대충 그림을 그리려고 수첩을 꺼내려는데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
찍지도 그리지도 쓰지도 말아라.. 보기만 해라.

10시 30분.
늙은 라마승이 드럼통에 불을 지피는 것을 신호로 칼을 갈던 천장사들이
일제히 앞으로 다가가 시체를 감쌌던 하얀 천을 사정없이 찢어댄다.
벌거 벗겨진 시신이 보이고 천장사가 손을 하늘로 높이 쳐드는가 싶더니
갈쿠리 같은 것을 시신의 머리에 확 꽂는다.
시신이 공중으로 확 들려지더니 이내 시신은 하늘을 향해 뉘어져 있다.
그리곤 능숙한 손놀림으로 배를 가르고 장기를 갈쿠리로 찍어낸다.
한 천장사는 그 시뻘건 장기들을 나무위에 올려놓고 조각조각 새들이 먹기좋게 자른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툭툭이형이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이리와. 거기 피비린내 나잖아. 왜 거기 서 있어.
마스크를 썼는데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마스크는 젖고,..발은 떨어지지 않고..
바로 2미터 앞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에겐 너무 낯선 이 풍습을.
천장사들은 발목부터 마치 생선 포 뜨듯이 능숙하게 온 시신의 살점을 벗겨낸다.
그 바로 뒤쪽에선 독수리떼들이 질서정연하게 앉아있다.
마치 백미터 선상의 신호를 기다리는 선수들처럼 조용히.
마침내 살점이 다 발라지자 라마승이 독수리를 향해 뭐라뭐라 얘기를 하면서
장기를 던짐과 동시에 독수리들이 득달같이 날아와 시신을 먹어치운다.
드럼통의 불타는 소리,
독수리들이 한 점이라도 더 먹겠다고 쟁탈전을 벌이며 푸드덕거리는 소리,
한쪽에 쭈그리고 앉은 늙은 라마승의 경문 읽는 소리.
그 광경을 바라보는 티벳인들의 웅얼웅얼 경문소리..옴마니밧메훔..
이방인들의 한숨소리..
일행들은 내려갔다.
나는 눈물콧물이 범벅이 되면서도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한 인간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내 망막에 고스란히 담았다.
떠나는 자의 마지막 모습까지 봐줘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체가 살 한점 없이 모두 걸러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는데도
독수리들은 더 먹겠다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니
죽은 자의 몸은 한낱 고기덩어리에 불과하다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독수리들에 의해 잘 발라진 뼈들과 깃털만 나뒹굴자 천장사가 다시 독수리떼를 쫓았다.
독수리들은 얌전히 물러나 아까 장소에서 다시 조용히 대기한다.
천장사들이 뼈를 주워다가 도마위에 올려놓고 보리가루와 함께 뼈를 쇠망치로 잘게 부순다.
두개골을 내려치는데 그 뼈가 내 신발에 튀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천장사가 저벅저벅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튕겨나간 뼈를 주으며
나를 한번 무심하게 쓰윽 쳐다 보고는 다시 퍽퍽 쇠망치로 뼈를 가루로 만드는 일에 전념한다.
그리고는 다시 그 뼈가루를 독수리들에게 뿌린다.
독수리들은 다시 일제히 날아와 아낌없이 먹어치운다. 한 조각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1시간 40분.
한 인간의 존재는 완벽하게 사라졌다.

허무하다.
현기증이 났다.
전날 남초호수에 같이 갔던 일본인 친구 토미가 잠깐 앉았다 가자고 제안을 했다.
독수리들이 보리가루로 범벅된 뼈를 먹어치우는 것을 바라보며 우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 눈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건 우는게 아니라 거의 자동발사 수준으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한 티벳인이 내 옆에 와 앉았다.
-울지마라. 넌 아까부터 우는 것 같던데. 봐라. 아무도 울지 않는다.
-당신은 안 슬픈가?
-슬프다. 울면 더 슬퍼지니까 울지 않을 뿐이다. 지금 느낌이 어떤가?
-느낌? 잘 모르겠다. 난 지금 무섭고 두렵고 슬프고 충격적이고 괴롭다.
실제로 내 마음은 예리한 면도칼 같은 것으로 심장을 얇게 도려내는 것처럼 마음이 아렸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이 참 파랗다.
배가 부른 독수리들이 그 파란 하늘을 선회하다 각자 갈 길로 돌아가고..
나도 갈 길로 가야하는데 자꾸 뒤통수가 땡겼다.
천장쪽을 돌아보고 잠시 기도를 했다.
다음 생에는 부디 원하는 모습으로 태어나세요..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모두들 괜찮냐고 물었다.
찻집에 들어가 뜨거운 짜이 한잔을 마셨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넘어가니 난 살아있구나.
이런 염치없는 생각과 동시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사람들.
그냥 아름다운게 아니라 한없이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나서 바코르를 오체투지하며 순회하는 사람들이 예전과 다르게 다가왔다.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그때의 느낌을 말할 수 있을까..
이상하게 천장을 보고 난 이후로 조금 피곤해졌다.
맞다. 피곤하다. 아마 그때의 느낌도 '피곤하다' 였을 것이다.


천장(天葬)관련 중국어 및 사진 (사진 수위가 높으니 미리 경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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