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사람들이 MBC의 동영상은 너무 경솔하며 일방적이라는 생각엔 상당부분 동의한다. 경솔하다는 건 동영상이 만듦새가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일방적이란 건 한 편의 의견만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비상식적 행위에 대해 MBC동영상과 같은 방법으로 대응한다면 그들과 다를 게 무어냐고 질책이 나올 법도 하다. 사실 나도 처음 MBC 동영상을 봤을 때 앞 뒤 가리지 않고 내용을 몇 번씩 검토해보지도 않고 막 퍼와서 막 배포하고자 했다. MBC의 '떡밥'을 나도 덥썩 물었다고 볼 수 있다.
각 아나운서들이 여러 나라의 언어로 이야기를 전하는 내용의 수위가 일정하지가 않다. 김정근 아나운서는 사뭇 진지하며 진짜 뉴스속보처럼 보이도록 이야기하고 있다. 최현정 아나운서는 지난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이명박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기반을 흔들고 언론자유를 앗아가는 것처럼만 이야기하고 있다. 방현주 아나운서의 중국어 부분만 가장 코믹한데 다른 나라 언어로 된 부분과 비교를 해보아도 역시 중국어 부분은 '개그'에 가깝다.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웃긴 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지적하는 중국어 전문가들이 있다. 권희진 조합원은 비유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풀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조중동'이 사르코지와 같은 이름인지 혹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인지 구분을 못할 것 같다. 이동희 조합원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감탄을 넣으면서 약간 코믹스러운 느낌을 준다. 하지은 조합원은 앞 뒤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한 내용으로 되어있다고 생각하는데 '겐세이' 부분에선 역시 '개그'스럽다.
위와 같은 내용을 종합해보면 MBC가 동영상을 만들 때 많은 걸 고민하지 않고 후다닥 만들었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좀 더 신경을 썼다면 시간이 좀 길더라도 제대로 만들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다. 내용이 일방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전의 한나라당의 '행패'가 어떤 것이었는지 설명해주고 현재 한국의 '미디어법안'이 어떤 수위인지 설명을 곁들여도 좋았을 것 같다. 게다가 내용은 비교적 코믹해서 속보(뉴스)의 형태를 띠고 있는 외형과 너무 언발란스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MBC를 지지하겠다.(난 MBC의 광신도는 아니고 MBC의 괜찮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과 시사관련, 토론관련 프로그램을 아끼는 시청자다.) MBC가 배포하는 동영상에 대한 문제점은 어떡할까. 내 생각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지금 그 동영상이 국내용이네, 해외용이네 해서 문제가 더 크네 크지 않네 설왕설래하고 이 동영상을 외국인 친구에게 보여줄 수 있네, 없네 하며 설왕설래고 이 동영상이 자랑스럽네, 쪽팔리네로 나뉘어 의견들이 분분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할 때 이 동영상을 접하는 국내, 해외 블로거, 네티즌의 태도는 크게 나누면 세 가지 정도가 될 것 같다.
1. 동영상을 보고 한국 미디어법안, 언론, 정치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본다.
2. 동영상의 내용이 너무 코믹해서 한국무시, 비방용 짤방으로 사용한다.
3. 별 관심이 없다.
MBC 동영상이 한국의 미디어법안에 대해 구구절절 친절하게 설명을 곁들여 만들어진 건 아니다. 어느 나라 국민도 한국의 미디어법안에 대해 주목하고 있거나 관심있게 들여다보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무의미해 보인다. 세계 각국의 언론사들이라면 이미 한국주재 특파원들이 사태의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동영상의 파급효과를 지켜보며 '발생하는 어떤 현상'을 그 나라에 소개할 것이다.
각 나라에 해당하는 블로거, 네티즌들이 이 동영상을 보면서 한국의 아나운서들은 멍청하다가나 한국은 언론자유가 없는 나라구나라고 생각할 확률도 있긴 하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한국(을 안다는 전제에서)이란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고자 할 것이다. 생각있는 사람들이라면 '언론탄압', '독재' 등의 단어만으로도 쉽게 그 나라의 현 상황을 단정짓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언어로 자신들의 국가에서 발행되고 있는 미디어 매체를 이용해 한국관련 기사를 검색해보고자 할 것이다. 이 동영상이 한국의 언론을, 한국인을, 한국이란 나라를 비웃고 무시하는 용도로 사용되진 않을 거란 생각이다. 이 동영상을 시발점으로 해서 또 다른 '한국 언론, 미디어 관련' UCC들이 국내외 블로거, 네티즌들에 의해 만들어질 확률이 높다.
역으로 해외에서 유행하는 동영상이 한국에 소개될 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보통 앞 뒤 맥락이 잘린 채인 경우가 많다. 북경올림픽 전 '티벳사태' 동영상, '태국 정치탄압' 동영상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걸 간과하는 사람들은 그걸 꼬투리잡아서 그 나라를 비하하고 무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동영상의 출처를 이야기하며 앞 뒤 맥락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동영상이 뜨고나면 배경(내용)에 대해 관심있게 알아보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기도 한다. 해외에서도 MBC 동영상을 접하면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동영상이 소개되어 외국인 친구들에게 쪽팔릴 거라고 걱정하는 분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부끄러운 이유는 MBC 동영상 때문이 아니라 끝내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힘을 사용해 언론을 장악할 음모를 펴고 있거나 혹은 그들만의 세상에 있는 자들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청와대나 한나라당 등의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들 때문이다. 동영상 한 방으로 세계의 블로거, 네티즌을 설득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들이 한국의 언론상황, 정치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건 가능하다. 그래서 난 오히려 MBC 동영상이 너무 진지하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중국어 부분, 일본어 부분의 '개그코드'가 더 맘에 든다.
언론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CNN과 NYTimes의 보도 내용이 공정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 그래서 미국도 역시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주의라 할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것 같아서 아쉽군요.
답글삭제@planet3rd - 2009/03/01 13:52
답글삭제제가 그쪽 부분에 알고 있는 게 많지 않아 글 내용이 아쉬울 수 있다는 점 인정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론 미국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은 좀 다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미국의 CNN, NYTimes와 한국의 MBC, KBS, SBS, 조중동을 대등하게 비교하는 건 각 나라의 사회 시스템, 법집행, 제도보완 등 여러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가 처해있는 다각적인 상황을 배제하고 단지 '언론사'만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건 무리가 있겠지요. 미국의 대기업 언론 소유지분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과 상황이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독재'라는 말은 조금 과한 측면이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독재 말고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무형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독재'를 시도하려고 하는 게 느껴지긴 합니다.
planet3rd님이 말씀하신 CNN 및 NYTimes에 대한 부분은 좀 더 찾아보고 알아보도록 하지요.
@자유인 - 2009/03/01 14:00
답글삭제국내와 해외는 상황이 다르다는 반응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론장악이 이루어지거나 공정한 언론이 사라지는 이유는
정작 언론대기업이 방송을 소유하는 문제에 있는것이 아니라
말씀하신것과 같이 다른 사회 시스템, 법집행, 제도에 있는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오직 '대기업의 소유라는 것은 곧 공정한 언론을 잃는것'이라
매도? 확신?하며 반대만 할뿐 진정한 논의를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trackback from: [Korean MBC] Message to the world, "fight against Control of Speech"
답글삭제The National Union of Media Workers began a second strike Thursday(Feb. 25) to protest a plan to pass controversial media bills at the National Assembly. The union of MBC, the nation's second largest broadcaster that led a first strike through Dec. 26,..
동영상 하나를 보고 왜 이런저런 내용은 없냐, 심지어는 한나라당쪽 주장은 소개 안 해주냐..란 비판이 많습니다만, 말씀대로 동영상 하나는 단지 일종의 trigger일 뿐 이라고 생각해요. 관심을 갖게 하고, 이미 만연한 한나라당 측 주장에 대항하는 주장을 구성하고 강화하는 하나의 기제가 아닐까요?
답글삭제전 사실 이 UCC, 무지 참신하고 유쾌한 전략이라고 생각했어요. 외국을 향한 척 하지만, 실은 한나라당과 엠비를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6개국어로 전달하는 것 같았구요. 어쨌든, 지금 당장 시급한 문제는 또다시 언론관련 악법들이 날치기 통과되는 상황을 막고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오는 데 있는거 아닐까요? 시스템의 문제네, 운용의 문제네..라고 고담준론을 펼칠 상황이 아니라, 당장 시스템을 왜곡시키고 악화시키려는 움직임을 차단하는 게 급한 거 같은데요. 요건 윗분 댓글 다신 거 보고 드리는 말씀입니다만.ㅎㅎ
좋은 글 잘 봤습니다^^
trackback from: MBC노조, 이런 걸 뿌리고도 부끄럽지 않을까
답글삭제엠비씨(MBC) 언론노조에서 만들었다는 "MBC 아나운서들이 세계인에게 전하는 메세지"라는 동영상을 봤습니다. 동영상을 보면서 발바닥이 간지러워지는 기분을 느끼기는 또 처음입니다. MBC언론노조, 이런 걸 뿌리고도 부끄럽지 않을까 밥그릇 지키기거나 말거나, '언론장악'이라는 멘트까지는 그래도 뭐 어떻게든 봐줄만 하겠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독재국가가 되었다느니,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느니,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느니.. 이런 말들을 저...
@planet3rd - 2009/03/01 13:52
답글삭제답답하신 이유 충분히 공감합니다. 정부나 한나라당의 '막무가내'를 대응하기 위해 MBC나 언론노조도 '막무가내'로 나서야 하냐고 묻는다면 전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오히려 더욱 절차를 따라 상식에 따라 논리에 따라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렇게 노력하는 소수의 언론과 단체, 개인들의 이야기는 '조중동'과 정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비상식적 논리전개 및 법안 상정 등으로 인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폐해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planet3rd님이 말씀하신 대로 '논의'를 해야 한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연역법으로 이야기를 하면 각론에 도달하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 오판하기 일쑤고 귀납법으로 이야기하면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귀와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중요한 법안일 수록 하나하나 절차를 따라 논의의 장도 마련하고 협상도 해가며 절충안들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고 이 나라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논의를 끌어내는 것도 국민들에게 맡기고 있으니 정말 답답하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득이) 이런 UCC 동영상도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해 볼 뿐입니다.
@이채 - 2009/03/01 15:19
답글삭제한나라당쪽 주장까지 소개해 줄 필요는 없겠죠. 그건 그쪽에서 해야 할 일이니. 그런데 그런 '논리'까지 들고 나온다는 건...-_-;
이미 만연한 한나라당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소위 한나라당=조중동=MB정부=대기업으로 고리가 연결된다면 이 나라는 이미 그들의 의견으로 가득차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전 국내용이 아니라 해외용이어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좀 더 코믹하고 재밌게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ㅎ
글 잘 보셨다니 고맙습니다.
trackback from: UCC 하나에 오만가지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답글삭제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에서 만든 UCC([Korean MBC] Message to the world, "fight against Control of Speech")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공정하지 않고 비난과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는 비판도 있고, 해외에 이런 식으로 광고를 해대다니 부끄럽다는 이야기도 있고, 결국 자신들 밥그릇 싸움인데 지들만 잘난 척 한다는 빈정거림도 있고, 이넘이나 저넘이나 똑같은데 나는 알 바 아니라는 '쿨한' 냉소도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