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10일 일요일

붓 위에 앉아 놀다.

할 일도 있고 오랜만에 낙서나 좀 해볼까 하고 예전에 사 놓은 먹과 붓을 꺼냈다. 서예나 붓 그림은 배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붓글씨를 배웠었구나. "중봉으로 잡고 팔꿈치는 수평을 이루고..." 등등. 그런데 하나도 모르겠다.

그냥 붓가는 대로 마음 가는 것도 좋고 화선지에 먹이 닿아 번지는 것도 좋다. 특히 먹향이 방 안에 은은하게 번지면 왠지 마음도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약간 쾨쾨한 느낌이 낡은 느낌을 줘서 좋다. 먹을 직접 갈아 쓰지 않아 아쉽지만 화방에서 파는 먹도 그런대로 쓸만 하다. 나같은 경우야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니 갈아서 쓰는 먹의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먹향이 좋을 뿐이다. 자주 맡는 먹향이 아니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 두어 시간을 가지고 놀았더니 방 안에 먹향이 가득하다.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낙서를 하고 화선지 하나 가득 내 마음이 검게, 물결을 따라 번진다. 마음대로 손이 가면 그런대로 기분이 좋고 손가는 대로 마음이 따라가도 상관없다.

코 끝을 살짝 자극하는 먹향이 화선지 깊숙히 배어 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시간이 지나 스며들어간 부분이 까칠하게 마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마음, 먹에 담그고 놀다.

댓글 2개:

  1. 먹에 마음을 푹 담그면

    마음 속의 나쁜 때가 먹물 속에 다 빠져나오기에,



    먹이 그렇게 까만가봐요.

    답글삭제
  2. ^^ 재밌네. 그렇지만 먹은 원래 까만 걸~ :p

    먹에서 놀면서 정말 내 나쁜 때들이 다 빠져나갔으면 좋겠다.



    그럼 그걸로 그린 그림은 나쁜 그림인건가?-0-;;;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