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2일 토요일

[mov] 연인 / House of Flying Daggers / 十面埋伏

연인 / House of Flying Daggers / 十面埋伏


감독 : 장이모
출연 : 리우더화(리우), 진청우(진), 장쯔이(시아오메이)


스포일러 있습니다!!!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뭐 사랑이란 주제로 수많은 철학자, 종교가, 영화감독, 소설가, 화가 등등이 오랜 시간 동안 설왕설래 해도 막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느끼는 것과 다른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때론 오랜 시간 탐구해온 통계처럼 진행되기도 한다. 사랑을 단한 마디로 정의 내린다는 것은 아마도 내 정체성에 대해서 딱 한마디로 잘라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난 20대 초반에 아는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내가 하는 사랑에 어느 정도 지침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돌이켜 본다. 그 분이 해주신 말은 “사랑은 이해”였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집착이 생기고 원망이 생기고 상처가 생긴다는 것. 그 이해의 폭에는 그 어떤 것도 다 담을 수 있다고 믿었었고 지금도 상당부분 내겐 유효하다.

사랑은 시간이 오래되었다고 더 깊어지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짧다고 해서 깊이가 얕은 것도 아니다. 사실 이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긴 하다. 간혹 오래 만나야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떤 경우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도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 일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결국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접촉한 시간의 장단에 의해 익어가는 사랑이 아니라 그 접촉할 때의 각자의 마음가짐(마음이 열어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리우와 시아오메이의 3년의 사랑(?)과 진과 시아오메이의 3일(?)의 사랑은 쉽게 속단할 수 있을까? 3년 동안이라도 서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만나왔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터. 사실 진과 시아오메이의 3일도 마음이 서로 통하고 이해하게 된 시간은 거의 하루 정도의 시간 뿐이지 않았던가. 과정을 무시할 순 없어도 마음이 열리고 닫히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지속해가는 노력, 그게 바로 이해라는 틀에서 생각해 봄 직 하다. 영화 속 세 사람의 사랑은 아마 그들만이 제대로 알 것이다. 다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 나의 생각은 리우의 마지막 행동은 약간의 집착이 가미되었고 진의 사랑은 남성의 전형적(?)인 표현이 슬쩍 비춰진다. 그런 면에서 시아오메이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결과적으로 진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울긴 했지만 그녀의 고민은 타당하다. 게다가 그 멋진 두 남성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0-;;;

내 관점으로 영화는 한국 인터넷에서 악평을 쏟아내는 것과 달리 꽤 괜찮게 봤다. ‘영웅’보다는 훨씬 좋다고 느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색감과 사운드였다. 색감이야 뭐 말할 것도 없겠지만 사운드는 정말 잘 입혀졌다. 사운드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등장인물들의 거친 숨소리였는데 난 이게 어떤 성적 표현의 방법으로 쓰인 게 아닌가 싶었다. 특히 진과 시아오메이가 관군에 쫓겨 도망갈 때 숨소리가 더 거칠고 크게 들렸는데 이 둘의 성적 묘사를 하지 않고도 숨소리만으로도 이들 둘의 관계가 점점 깊어진다는 상징적인 효과를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하긴 중국에서 찐한 성적 표현은 할 수 없었을 테니 이런 편법을 썼을 수도. 그런데 편법이건 아니건 그 효과는 영화 내내 상당한 효과를 전달해 준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장쯔이의 춤 씬. 장쯔이가 원래 무용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진가가 나타난다. 그 유연한 몸놀림이라니.-0- TV에서 영화 촬영기가 좀 소개되었었는데 사실 그 춤 씬을 찍으면서 고생을 무척 많이 했다고 한다. 특히 손에 감은 천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등…하긴 영화는 편집의 예술 아닌가. 그렇게 찍고 찍은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을 모아놨으니… 연주와 춤의 싱크도 끊어지지 않고 잘 연결되어서 참 멋지다는 생각 밖엔. 장쯔이의 장님 연기가 역시 장이모 영화 “행복한 날들/happy time/幸福时光”에 나온 둥제(董潔)의 연기와 비슷한 게 보였다. 이 둥제라는 배우도 장이모에게 발탁된 신인이었는데 장쯔이를 많이 닮았다. 기회가 되면 영화를 한 번 보시길.

영화 중에 가장 이해가 안되었던 장면은 갑자기 눈이 내린 장면이 아니었다. 칼에 맞고 한참을 쓰러져 있던 시아오메이가 리우와 진이 한참을 싸울 때는 죽은 듯 있더니 나중에 서로 결정적인 상황이 되니까 벌떡 일어나서 칼을 뽑겠다고 악을 쓰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상식적으로 이해를 하려고 해도 그것만큼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눈이 내리는 것이야 그들의 사랑싸움이 하늘을 움직일 정도 그랬다던가, 혹은 장이모의 욕심으로 설경에서 싸움을 하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었겠지. 게다가 중국은 워낙에 넓으니 그런 기후변화 정도는 감안이 된다. 그런데 시아오메이의 벌떡 일어섬이란!!! 영화 보다가 내가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_-;;; 그것만 빼고는 이해를 충분히 하고도 남는 이야기였다.

잡설 하나; 한국에서 중국영화를 볼 때는 자막에 의존해서 보기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 자막 번역을 한 사람의 뜻대로 해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에 와서 느낀 건데 중국어를 들으며 중국어 자막을 보며 영화를 보면 한국 자막 중에 상당부분 제대로 된 전달을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중국 애들의 감수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한 지금이라면 내 경우에 ‘연인’의 경우에 내용도 그렇게 형편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시작 전에 알려주는 큰 역사의 흐름은 삼각관계를 만들기 위한 장치였을 뿐(그러니 마지막 관군이 비도문을 포위해 들어갈 때도 전투 씬이 등장하지 않는다.)이고 장이모가 TV인터뷰에서도 말했듯이 무협형식을 빌린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보면 난 충분히 이해를 하고 몰입을 할 수 있었다.(절대 중국어 좀 한다고 잘난 체 하는 게 아님.-_-;;;) 아마 영어를 좀 하는 분들도 영어권 영화를 원어로 보려고 하는 이유 중에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잡설 둘; 장이모가 상업적으로 돌아선 두 번째 영화(내 기억으론) ‘연인’. ‘영웅’ 다음으로 찍은 영화인데 중국 내에서 관심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제작비를 빼고 약 30억 원을 들여서 중국 CCTV에서 ‘연인’의 성공을 기원하는 축하 쇼를 했으니 말이다. 이런 경우는 중국 정부(공산당)의 지지가 있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TV에서 그 쇼를 보는데 중국의 유명한 가수들, 연기자들이 모두 출연해 영화의 성공을 기원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불법 DVD가 나오는데도 시간이 한 참 걸렸다. 중국 정부에서 단속을 열심히 했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장이모 띄워주기 행사를 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아테네 올림픽 폐막식 8분 중국편’과 ‘북경 올림픽 개폐막식’의 감독 장이모를 세계에 알리려고 했던 수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장이모는 지금 영화계에서도 중국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이니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그에게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중국 영화계(애니메이션 포함)가 뛰어넘어야 할 벽임을 감안하면 일종의 희망을 주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아, 그런데 제목이 '연인'이 뭐냐고-_-; '십면매복'이라고 하면 이상한가? '연인'은 너무 직설적이잖아. '십면매복'은 뭔가 2-3중의 복선이 있는 것 같고...나만 그런가?-_-a

댓글 4개:

  1. 흠.. 보고는 싶은데 볼 길이 막막하네.

    개봉은 안할 듯 하고, 당나귀는 천천-히 가고;;;



    형이 이야기한 거. 그 번역...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난 영화나 소설 등의 번역은 거의 '제2의 창작' 수준이라고 봐;;;



    한 때 '이미도'의 번역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되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어.

    답글삭제
  2. 음...호주에서는 개봉 안한다던? 충분히 개봉을 할 것 같은데...

    지금 동영상은 돌고 있나보네? 여기도 당나귀는 당나귀야...말이 아니라서 느려.-_-;



    번역에 대한 생각은 동감을 하는구나.

    정말이지 번역을 하는 사람이 영화를 어떻게 봤느냐에 따라

    번역의 느낌, 영화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듯.



    '이미도의 번역'은 나도 싫어했어.

    등장 인물들이 말은 한 참 하는데 자막을 딸랑 몇 글자 나오는 그런 거 싫어.

    답글삭제
  3. 나 이거 결국엔 호주에서 봤지.



    장쯔이의 그 '춤씬' 거기서 나오는 소리들, 마치 영화 시작 전에 돌비 로고 광고하는 화면 같았어. 아아- 좋다고 !!!



    그리고, 단순할 정도로(?) 적나라한 색감이 드러나는 걸 보고 감탄했어. '정말 아름답다...' 하고 봤거든. 그게 우리나라에서도 뻔히(!) 볼 수 있는 색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오죽하면 '얘네들 올림픽 준비, 이런 것까지 포함되는 건가...' 싶은 생각도 잠깐이지만 들었다니깐 !



    개인적으로 제목은 '십면매복 > House of Flying Daggers > 연인' 인 것 같아. '연인'은 정말 쌩뚱 맞다고 봐.



    그리고 너무나 슬픈 사랑 이야기.

    답글삭제
  4. 맞어. 사운드~ 정말 좋아. 한 세 번쯤 봤나? 볼수록 사운드가 귀에 감기더라구. 사실 영어제목도 좀 생뚱맞긴 하지만 연인.보다야...-_-;



    out of sight, out of mind인가? 세 사람 모두 이해가 되긴 하더라구.



    장이모의 올림픽 개막에 관련된 것들은 중국에서도 찬반양론이 팽팽한 것 같아.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