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다.
수업 시간에 아무리 집중을 해도 잘 들리지 않는다.
어학을 시작하면서 아마 대부분 경험하는 고민이자 고통일게다.
예전에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처음에 서로 다른 문자를 가진 사람들끼리 어떻게 서로의 글과 말을 이해하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시작한 이들은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지금이야 한글로 된 번역서나 중한사전도 있고 그러니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내가 이곳까지 와서 이렇게 중국어를 배운다고 할 수 있었을까?
내게 30평생 익숙하지 않았던 음의 높낮이와 발음들이
이제 매일매일 듣고 알아야 하는 목표가 되어있다.
생활부터가 달라지고 노력하는 자세도 좀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내가 어릴 적에 부모님으로부터 맘마,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배울 때처럼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소리와 발음과 뜻이 튀어나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터지만
그 쉬운 일이 아닌 일들을 또 많은 이들이 해내고 있고
해내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
늘 익숙치 않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익숙치 않은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심이 나거나 부럽거나
때론 질투심도 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처음엔 힘들었을 것 아닌가.
그 익숙치 않은 것을 현재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연습하고 노력했을 것인가.
습관의 습(習)이란 단어는 날개 익(翼)자와 일백 백(百)자가 합쳐진 글자라 한다.
날개짓을 백번 정도는 계속 해야만 습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밥 한술을 뜨기 위해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얼마나 많이 했겠나.
이제 중국어 걸음마를 시작했으니 습을 얻기 위해 노력할 일만 남았다.
그래도 들리지 않는 소리는 여전히 있지만
두려워하진 말자. 걱정도 하지 말자.
다만 마음에 열정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자.
늘 청년이지 못함을 두려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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