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25일 목요일

事後頓空(사후돈공).

성탄절이라 그런지 학교에 사람들도 별로 없다.
곧 수업도 끝나가니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수업 끝나고 후배가 성탄절인데 자축이나 하자고
점심이나 같이 먹자 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챙기는 기회가 생겼다.
사람과의 관계, 마음의 운용, 그 마음을 표출하는 방법들...
어쩌면 복잡하고 어쩌면 간단해 보이는 이 일련의 연결고리들은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임엔 틀림 없는 듯 싶다.
 
문득,
對境知止, 執事全一, 事後頓空 이란 말이 떠오른다.
 
경계에 대해서는 그 앎에 멈추고
결정을 한 후에는 그 일을 일심으로 오롯이 하며
일이 끝난 후에는 허공처럼 마음을 비우라...는...뜻이다.
 
살아가며 수많은 경계가 생길 때 과정과 결과부터 생각하는 경우가 왕왕있으나
일단 숨을 고르고 마음을 고르고 잠시 멈추는 방법도 좋다.
어떤 취사를 해야 하는지 지금의 상황과 나의 관계를 살펴보고
앞서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그 앞에 서서 잠시 멈추고 바라보는 것.
 
물론 일을 오롯하게 하는 것도 어렵긴 하지만
하지만 일이 끝난 후 집착, 상(像)을 버리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 상이 남겨져 있음으로 해서 자꾸 지난 일에 마음이 쓰이고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 오롯한 판단, 취사를 할 수 없게 됨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비운다는 건 정말 어렵다.
퍼내도 퍼내도 다시 채워지는 요술 항아리에서 물을 퍼내는 일같기만 하다.
 
성탄절,
모두 모두 행복한 마음이 들어앉아 활짝 피어나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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