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22일 월요일

~없기를 바라지 말고...

가난한 농부가 세상을 만든 을 찾아갔다.
"부탁이 있소. 당신이 진정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일년만 일기가 고르게 해주시오.
딱 일년만 비와 기온이 알맞게 된다면 내 곳간은 가득 차게 되고 난 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소"
 
농부간청을 들어 주었다.
고른 날씨, 알맞은 비, 곡식은 무럭무럭 자라 이윽고 수확의 철이 되었다.
한데 가을걷이를 해본 농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곡식 낟알이 죄다 껍질 뿐 어느 것 하나 알이 영글어 있는 건 없지 않은가!
 
농부는 다시 을 찾아가 항의했다.
"왜 이런 좋은 조건에서도 곡식은 헛쭉정이 뿐입니까?"
 
그러자 은 말했다.
"곤란과 갈등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둥과 비바람, 가뭄과 홍수 끝에 고심참담하여
거두어 들인 것만이 알맹이가 있는 법이니라"
 
곤란과 갈등을 치루지 않은 삶에는 알맹이가 없다.
 
혹 완벽한 어떤 조건을 바라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그건 지금의 삶이 조금 지치고 힘들기 때문에 원하는 상상일 뿐이다.
 
설령 그런 조건이 주어진다고 해도
나의 경우엔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조건도 있고 좋지 않은 조건이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 좋고 좋지 않다는 것이 내 기준으로 인한 가치판단일까 지극히 객관적인 판단일까.
분명 주관적인...상대방의 조건과 나의 조건을 비교해서 내린 결론이겠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서 살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나보다 나은 사람만 보면서 살고 싶지도 않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지금 내가 노력을 하고 있느냐 하지 않느냐를 돌아보고 싶다.
그 노력의 기준은 상당히 애매한 것일지라도
나는 알고 있을 것이니...
 
불교 보왕삼매론에서도 "마구니 없기를 바라지 말라" 했다.
마구니가 없으면 깨달음도 없는 법.
 
나에게 주어진 순경, 역경 모든 것에 대한 흔들림과 다시 바로잡음의 반복 속에서
삶의 깊이도 깊어지고 색깔도 진하게 입혀져 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난 나를 잘 보고 있는지가 더 걱정이다.
종종 외부로부터 자극을 끌어와 나를 깨우고는 있지만
내 스스로 깨어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서는 늘 한계가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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