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3일 일요일

'위협'의 의미

...사회주의적 기획의 결핍을 인정하는 일과, 현재성을 뛰어넘는 진리는 없다는 믿음은 늘 공존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좀더 방점을 둔다. 아무 것도 위협하지 않는 현자보다는 시시한 것 하나라도 위협하는 활동가가 백배 낫다고 생각한다. 위협하지 않는 건 의미 없는 것이다.
- 김규항

위협한다는 것. 내 생각 하나하나가, 내 세포 움직임 하나하나가, 내 육근 동작의 모든 것이 세상의 안일함과 일상성을 위협하는 것. 그게 비로소 활동이 되고 에너지로 충만해질 때 이 삶에 툭 던저져 치열하게 살다가 가는 작은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것도 위협하지 않는 현자'는 남들의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초월하지 않았으면서 세상을 초탈한 듯 사는 흉내를 내는 것일 테지. 지금 주어진 삶, 시간 속에서 불안한 현재 진행형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하며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는 발버둥이라도 있어야 삶의 틀도 확장되고 매일 갖게 되는 범주를 뛰어넘는 일들이 생길 테지. 작은 것일지라도 위협한다는 게 얼마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다.

현재를 보지 않고 미래를 보는 자는 몽상가에 다름 아니고 미래를 기획하지 않고 현재만을 보는 자는 일상성에 아무런 의심을 품고 살지 않는 자에 다름 아니다. 지금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은 지금 당장 확보하기 힘들겠지만 기획과 활동, 노력이 수반되면 가능하다. 지금을 뛰어넘겠다는 나름의 꿈은 삶이 내게 주어진 의미와 삶의 마무리를 위한 고민과 상호 관계를 갖지 않을 경우 공허해질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위협하지 않는 건 의미 없다는 말 이전에 삶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한다는 건 너무 공허한 되돌이표가 될까? 어쨌든, 조금씩 해결해가고 부딪혀 가며 '시시한 것 하나'에도 위협을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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