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대삼성민국(大三星民國)

드디어 '이건희 사면'이 결정되었다. 그것도 이건희 한 명만 단독으로 사면되었다. 76명 사면,복권신청으로 훼이크를 쓴 다음 이건희만 단독으로 살려냈다. '법치'를 강화하겠다면서 '법치'를 무시한다. '지도층'의 비리척결을 강화하겠다면서 '지도층'의 비리를 알아서 사면한다. 평창은 동계올림픽 유치 성사와 관게없이 이제 용산철거민들과 함께 거론될 것이다.

 

최교일 법무무 검찰국장과의 일문일답을 보면 더욱 기가 찬다.

 

-이 전 회장이 유치에 실패하면, 특별사면 단행 자체가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

 

"그렇다. 한 사람에게 특혜를 준다는 비판이 있는 것 안다. 언론에서도 논란이 있었다는 것 안다. 표현이 어떨지 몰라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라고 해야하나. 결국 국익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지 않나"

 

국민은 구더기가 되고 이건희는 장이 되는구나. 국익이 가장 중요하니 천한 국민들의 기분쯤이야, 법의 형평성쯤이야 무시해도 되는 거겠지. 국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하겠다는 저 투철한 사명감. 몸서리 칠 만큼 무섭다.

 

-법무부 강조한게 법과 원칙이다. 불법파업에 대해 엄격히 법을 적용하겠다고 강조하면서도 형 확정 반년도 안된 시점에 이 전 회장을 사면한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해명해달라

"비판은 충분히 있을 수 있고 그런 것도 고려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면권은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고 사면위원회에서도 위원분들이 대부분 실용을 택했다고 할까, 국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겠다, 사면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대부분 냈다"

 

기본적으로 사면권은 대통령에게 있으니 법무부는 대통령 딸랑이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면 위원회 위원들의 실용선택, 정말 끝내준다. '실사구시(實事求是)'가 무슨 뜻인 줄이나 알고 '실용, 실용'하는 것인가. 실용은 법보다 상위 개념이고 실용은 만능임을 절감하게 된다.

 

-범죄 경중도 사면에 고려됐나


"그렇다. 사면하게 된 범죄 내용도 고려하게 된다. 흉악한 살인범은 사면이 어렵지 않겠나"

 

이건 뭐, 할 말이 없다. 흉악한 살인범은 '흉악'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때문에 더 끔찍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경제사범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흉악한 살인범도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갱생의 의지가 확실하며 사면할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가 고백한 내용만 보더라도, 그리고 그간 드러난 삼성의 모든 불법행위를 보더라도 설령 직접 손에 피를 묻혀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뿐이지 이건희는 흉악한 경제범이 아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을 것이며 그들의 행위로 인해 대한민국의 경제의 기초와 상도덕, 기업윤리들이 흔들리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흉악도 이런 흉악이 없지 않나.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살인범은 최악의 인간말종이지만 경제범은 대한민국을 살려내는 생명수와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불법파업을 한 자들은 엄정처단하지만, 이유도 없이 노동자들을 해고한 자들은 대한민국 경제를 위한 구국적, 실용적 결단을 한 영웅들로 받드는 것이다.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한 삼성은 괜찮지만 할 말이 있어 집회, 시위를 하면 애나 어른이나 외국인이나 때리고 가두는 것이다. 왜? 경제인들은 국가의 근간이고 영웅이고 지도층이기 때문이다. 그 외는 잉여인간일 뿐이다.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노동하고 소비해서 그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는 존재 그 이하, 이상도 아닌 것이다.

 

이번 정부에서는 지난한 삼성과의 밀고 당기기를 확실히 끝냄과 동시에 이제 대한민국은 '삼성'의 것이라고 선포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삼성의 은덕(恩德)을 입고자 하는 자들이 '경영'하는 대한민국 주식회사는 이제 회사의 이름을 바꿔야 할 것이다.

 

'대삼성민국(大三星民國)'이여!

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대한민국 경제의 실체 - 재계 사면·복권 청원 78명 리스트를 보고

이런 걸 두고 '해도해도 너무한다'라고 한다. 처벌사유도 가관이지만 판결내용 역시 고개가 갸웃거려질 만큼 그다지 혹독하지도 않은데 모조리 사면,복권 청원되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가 한 말도 가관이다. '2008년 광복절 특별사면 미반영 기업인'과 '신규 청원 대상 기업인'으로 분류해 사면 청원했단다.

 

기업인은 재판결과에 따라 징역을 살면 국가에 큰 손실이며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걸까. 2008년 광복절 특별사면 때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최태원 sk회장, 김승연 한화회장 등 74명이 사면 또는 복권되었다고 한다. 그 때 끼지 못해서 이번에 신규로 청원한 사람이 31명이다. 그 때 미반영된 기업인은 46명이다.

 

총 76명의 범법자들을 풀어달라고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5개단체가 정부에 건의한 거다. 이유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경제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저렇게 다 해먹고 문제가 있어 징역을 살아야 할 사람들이 풀려나와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이미 없어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도 포함되었단다. 이미 해체된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도 있단다. 재판 도중 해외로 출국 후 귀국을 거부하고 있는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도 있단다.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삼성 불법 경원권 승계 관련자 모두 역시 대상에 포함되어 있단다.

 

사면, 복권을 신청한 자나 이들과 소통하는 자들은 얼굴이 두껍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대한민국 국민을 X으로 알고 있는 걸까. 가만, 이들이 모두 사면, 복권되길 간절히 바라는 국민들도 적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데 재계의 거물들을 잡아두는 걸 못마땅해하는 사람들, 분명히 있을 거다.

 

아직 결정된 일도 아닌데 호들갑일까. 하지만 이런 내용들을 보도하고 비판하며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은근슬쩍 사면, 복권해버릴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다. 아무리 지적하고 비판해도 사람들은 금새 잊는다. 대중 다수는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도 관심없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 자신의 경제와는 수 억 광년이 떨어져 있어도 대한민국의 경제는 곧 자신의 경제라고 생각한다. 경제를 살리는 것이 곧 '정도(正道)'다. 사람들은 '삼성 X파일' 사건이 있건 말건, 그들이 '투명경영 약속'을 지키건 말건 사실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해먹었는지, 세금은 어떻게 포탈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을 것 같긴 하다.

 

슬픈 대한민국이다.

 

아래의 표에 적힌 굵직굵직한 대기업들의 이름표를 보면 '대한민국의 경제'라는 게 참 볼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을 비호하고 이들과 소통하는 사람들이 이들과 함께 사회의 지도층이랍시고 국가의 중심, 경제의 핵심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꼴이라니... 한숨이 깊어지고 시름은 길어진다.

 

» 경제 5단체가 청원한 사면·복권 대상 기업인(78명)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via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6395.html

2009년 12월 23일 수요일

MTV EXIT의 Intersection, 인신매매를 고발한다.

아래 소개하는 애니메이션은 2009 아티비스트 필름 페스티발에서 세계 인권 단편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Intersection>(러닝타임 약 30분)이다.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내용을 살펴보면 <Intersection>은 2009년 MTV EXIT가 처음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필름임. <Intersection>은 적나라하고 스타일리쉬하며 높은 퀄리티의 저패니메이션을 닮음.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와 성착취에 대한 강도높은 표현을 보여주고 있음. 았다. 이야기는 인신매매 연결고리가 되는 다섯 명의 캐릭터-희생자, 인신매매범, 마마상(매음굴 포주), 매음굴 고객, 비밀 경찰-의 각기 다른 관점으로 이루어져 있음. 30여 분 정도의 애니메이션에 목소리를 담당한 사람은 영화배우 Ananda Everingham과 MTV VJ, Taya Rogers(영어버전)임. <Intersection>은 한국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JM Animation이 제작을 했음.(영어 원문 중에 <원더풀 데이즈>가 언급되는 걸 보면 <원더풀 데이즈>에서 2d digital coloring을 담당한 제이엠 미디어(JM Media)가 아닌가 싶음. JM Media는 1997년 창사 이래로 TV시리즈, OVA, CF 의 디지털작업과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레스톨구조대, JOJO의 기묘한 모험, Honda와 Wow껌, 코코볼 CF, 게임타이틀 Arcturus 오프닝 등이 있음), 사운드 트랙의 음악은 영국의 록 밴드 라디오 헤드와 Thievery Corporation이 참여함.
(via http://en.wikipedia.org/wiki/MTV_EXIT) 영어 의역과 해석 실수 있을 수 있음.

 

** 아쉽게도 자막이 없음. 주인공 Mei의 복장을 보니 배경은 베트남인 듯.

 

 

 

 

엔딩 크레딧을 보고 몇 사람만 옮겨 적음.

감독 김재우 감독 / 스토리보드 감독 김재우 / 캐릭터 슈퍼바이저 정인 / 캐릭터 디자인 이혜령 / 칼라 슈퍼바이저 한문중 / 칼라 디자인 이혜령 / 프로듀서 정현 / 사운드 디자인 Lucy Media / 각본 Mark Hillman

 

사실, 연상호 감독 블로그에서 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포스팅을 봤을 때는 기획, 투자, 제작 모두 JM Animation에서 한 줄 알고 정말 쉽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다. 물론 추가 정보를 찾아본 결과 MTV-EXIT에서 기획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JM Animation이 프로덕션 작업을 한 걸 알고 난 후에도 JM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 다만, 조금 아쉬울(?) 뿐이다.

 

솔직히 애니메이션을 다 보고 난 후의 감상은 '보통'이다. 잘 만들어진 TV시리즈 정도? '범작'이라고 하면 제작한 팀들에게 미안해지려나. 스토리와 연출은 일반적이고 스타일은 평범하다. 더빙은 무미건조하고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오래 전의 미국 TV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가는 건 솔직히 '작품'보다는 작품을 만들게 한 동기와 그 배경에 있는 단체(?)라 할 수 있다. 자료를 검색하다 MTV-EXIT(::End Exploitation And Trafficking) 사이트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소개는 이렇다.

 

MTV EXIT은 자유를 향한 캠페인입니다. 살 곳과 일할 장소, 친구와 사랑하는 상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자유를 당연시 여기지만 전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은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 당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현대판 노예제도라 불리는 인신매매의 희생양으로 범죄자들에 의해 성적 노예나 강제 노동에 동원되어 착취와 억압의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유엔의 국제노동기구(ILO)는 전세계적으로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약 2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중 반 이상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미 국무부) 인신매매 행위를 통해 범죄 조직은 매년 미화 10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유엔) MTV EXIT은 다양한 TV 프로그램과 온라인 컨텐츠, 라이브 쇼, 그리고 반인신매매 조직과의 연계를 통해 인신매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높이고 이를 사전에 예방하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EXIT 사이트에서는 인신매매에 대한 내용과 반인신매매 운동에 참여하는 방법 또한 소개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단편 영화 및 공익 광고, 그리고 각국의 유명 인사들이 내래이션에 참여한 다큐멘터리를 감상하거나 다운로드 할 수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250만 명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절반 이상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솔직히 충격적이다. 하긴 대한민국에서도 '인신매매'라는 단어가 사라진지 얼마되지 않았을 뿐더러 지금은 연예기획사를 통한 '신종 인신매매'들이 횡횡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존엄에 차별이 있을 수 없는데 경제적 약자들은 예외가 되니 참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신매매'라는 말이 솔직히 일반인들의 사고범위 안에는 잘 포착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사창가나 기타 변종 업소에 일하는 여성들은 대체로 '스스로가 원해서'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비, 생활비, 유흥비를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을 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인신매매'로 인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도 있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할 테고 필요하다면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도움도 줄 수 있어야겠다.

 

MTV EXIT의 <Intersection>은 MTV Europe Foundation의 프로젝트로 인신매매와 성착취를 저지하고 사람들의 의식고양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또 MTV EXIT는 USAID(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미국국제개발처::개발도상국의 경제적·정치적 안정을 기하고 경제개발을 촉진하며, 산업시설의 현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지원을 위하여 설립된 미국의 정부기관)와 협력관계다.

 

MTV EXIT에서 만든 작품들은 저작권 자유이니 맘껏 퍼다 나르거나 다운로드 해도 된다고 한다.



*** 이현진 기자의 말에 따르면 <Intersection>은 MTV와 JM애니메이션이 공동투자한 작품이며, JM이 기획단계부터 참여했다고 함. 국산물 판정도 받았고 조만간 MTV 코리아에서 방영 예정. 작품의 메시지를 널리 알리기위해 대한민국 여성부에 기부한다고 함.


(그런데 기부를 해도 여성부의 미디어 채널이 다양하지 못해서 작품이 방영될 수나 있을런지... 케이블 채널을 빌리면 가능할지도... 딱히 여성부에 기대는 없지만...)

 


▣ 참고 읽기

허술하게 형성돼 견고하게 굳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 via November Jasmine

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안분지족(安分知足)

安分知足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면
둘을 준다 한들 만족이 되겠습니까.

 

인간의 욕심에 악마적 속성은 없다 했는데
세상에 뒹굴며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둘, 셋 원하는 욕심만 큰 삶이다 보니
너 죽이고 나 죽이는 판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윤택함과 無所有의 소박한 가치가

서로 충돌할 때는 자기성찰하는 이들조차
‘하나’도 버거운 짐이 되곤 하나 봅니다.

 

‘하나’도 너무 많아

반으로 쪼개 '너'에게 나누고 나면
반쪽은 다시 완전한 ‘하나’가 됩니다.

 

반쪽이 완전한 '하나'가 되는 이치,

'하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나'를 놓아버리는 행위로 살아 낼 세상은

작은 가슴으로 품어 낸, 태산도 품을 큰 세계입니다.

 

 

 

 

** 안분지족[安分知足]: [명사]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

 

 

90년 중반을 넘어서며, 어느 날.

옹골지게

옹골지게

 

아는 만큼만 쓰고, 알아진 만큼만 쓰기.

사족은 달지 말고, 구차한 변명도 하지 않기.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매 순간 부족한 자신과 대면하면

아이쿠야! 멍충이 바보야!

남 탓말고 내 탓으로, 내 덕말고 네 덕으로.

온기있는 손으로 마음 어루만지기.

 

단전에 힘 주고, 숨 한 번 길게.

마음 속 '나'와 '너', '툭'하고 놓으니 
아는 게 요만큼이어도, 할 말이 두어 줄이어도

가슴은 하늘만큼, 맑고 맑다.

 

부끄럽지 않고 매이지 않게, 가슴에 품은 만큼만

아무런 사량계교없이 이쁘게, 옹골지게 삼세.

 

 

 

 

 

95년을 넘어서던 청춘의 어느 날.

IRIS와 24, 카메라의 다른 시선.

 24

 

IRIS

 

<아이리스>를 보면서 <24>가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드라마, 영화들의 흔적들도 보이지만 영상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24>가 가장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기 때문에 무척 아쉬웠던 부분은 <아이리스>의 카메라 움직임이었다. (<아이리스> 예고편은 그나마 나은 편)

 

이야기가 산으로 올라가던 땅으로 거꾸러지는 건 논외로 하고 <아이리스>의 카메라는 너무 정신없이 흔들어대기만 했다. 사실 <24>나 <아이리스>가  핸드헬드로 촬영된 건 같은데 <24>의 경우엔 카메라의 무빙, 쉐이킹, 줌인/아웃과 편집시 화면분할이 비교적 주관적 시각과 객관적 시각을 철저히 분리하고 이야기 전달의 효과를 위해 활용된 게 확실히 느껴지는 반면 <아이리스>의 카메라는 초점을 잃은 눈동자처럼 화면의 불필요한 구석을 헤집고 다니고 등장인물들의 감정흐름을 방해하는데 적극적 역할을 했다.

 

핸드헬드 기법이 전면적으로 사용되었던 영화가 <쉬리>가 아닐까 싶다. <쉬리>는 마이클 만 감독,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주연의 <히트>를 모방했지만 한국영화사상 새로운 시도-도심 총격전, 핸드헬드 촬영기법 등-라며 찬사를 받기도 했다. 물론 <쉬리> 역시 부족한 특수효과, 물량 등을 감추기 위해 카메라를 조금 더 격하게 흔들어 댄 측면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적어도 필요할 때 흔들고 필요하지 않을 땐 가만히 두는 안전한 방식을 택했다.

 

또 이창동 감독이 <오아시스>를 촬영할 때 영화 전반에 걸쳐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사용했는데 당시 카메라 감독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호흡의 안정감이 없으면 카메라가 심하게 요동치기 때문에 호흡을 조절해야 했고 모든 장면에서 핸드헬드를 사용하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카메라가 조금이라도 더 흔들리거나 덜 흔들리면 이창동 감독의 NG사인을 받아야 했으니 핸드헬드가 감독의 의도대로 나오기가 그다지 쉬운 게 아니라는 소리다.

 

반면, <아이리스>는 주인공의 심리가 어떻든, 극의 흐름이 어떻든 줌인/아웃을 남발하며 카메라가 스스로 긴장감을 조성하려고 했다. 게다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거리거나 움직이면서 배우들의 디테일(이 있건 말건)을 다 카메라 워킹에 묻히게 해버렸다. 사실, 핸드헬드가 쉽게 생각하면 카메라를 들고 흔들면 그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흔들어대는 정도가 심할 경우엔 감독의 의도와 별개로, 카메라 감독의 의도와 별개로 카메라 스스로가 화면을 장악하거나 헤집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 결과 긴장감을 불러오게 하는 씬과 가장 긴잠감이 고조되어야 할 씬의 구별이 사라지면서, 씬과 씬의 유기적 연결, 호흡, 리듬이 다 흐트러지고 말았고 화면은 마치 망망대해를 떠도는 부표처럼 방향을 잃은 채 허공에 뜨고 말았다. 드라마에서 서스펜스를 주기 위해 핸드헬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 박수를 받을 만 한데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해 아쉽다.

 

새로운 영상표현방법을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잘 된 드라마, 영화들의 표현방법을 차용하고 모방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쉬리>를 보고 <히트> 따라쟁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쉬리> 이후에 한국영화의 다양한 영상기법이 시도되고 창조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리스>가 투자한 금액에 비하면 카메라 기법이 너무도 안쓰러운 상황인 듯 해서, 혹여 <아이리스2>를 제작하게 된다면 드라마를 보면서 눈과 정신이 어지럽지 않으면서 충분히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는, 카메라의 유려한 움직임만으로도 드라마의 감정과 이야기를 읽을 수 있도록 신경을 쓰면 어떨까 싶다. 다른 드라마, 영화를 무수히 모방하더라도.

 

감미로운 목소리 Kina Grannis의 Together - Original

유투브에서 우연히 보게 된 Kina Grannis의 동영상. 어리게 보이는 젊은 여성이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다. 제목마다 orginal이 붙어있다. 아~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을 했다는 뜻인가 보다. 목소리가 귀에 잘 들어오길래 몇 곡 들어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Kina Grannis는 어떤 사람일까. 1985년 출생, 미국 guitarist and singer-songwriter, 일본혼혈, <the Doritos Crash The Super Bowl> 콘테스트 우승, 월스트리트 저널에도 소개가 되었고, The Orange County Register에도 소개되었고, Glass City라는 영화에 음악이 쓰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목소리. Kina를 보면 여러 가수와 배우들이 겹쳐 떠오른다. 이런 목소리가 아주 특별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유투브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노래를 하는 모습이 아마추어같기도 한 풋풋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느낌이 특별하다고 할까. 그렇게 듣고 듣다가 그녀의 홈페이지까지 가서 보게 되었는데 official 뮤직비디오가 있더라.


Message From Your Heart- Official Video

Kina Grannis | MySpace Music Videos

 

흥얼거리며 감정을 싣는 목소리를 좋아하는 터라 Kina Grannis의 어떤 노래들은 무척이나 감성을 자극한다. 좋은 노래들을 더 많이 불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그녀의 광팬들이 생기고 수 많은 팬들이 그녀의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모양이다.

 

Joan Baez처럼 오랫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가수가 되길. 오래가는 예술가가 되길.

 

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사랑은 단백질 - ASIAGRAPH 2009 in TOKYO 최우수상

 

 <사랑은 단백질(Love is Protein)>이 ASIAGRAPH 2009 in TOKYO에서 애니메이션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발표는 이미 10월 25일 쯤에 났다고 하는데 명색이 PD라는 사람은 그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연상호 감독도 어제 안 듯 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만. 이젠 배급팀에서 알아서 작품을 돌리고 있을 테니 엄밀히 말하면 저랑은 별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단백질>이 약간 소강상태인 듯 하더니 이렇게 좋은 소식을 가져다 주네요. 암튼, 참 기분 좋은 일이며 자축이라도 해야지 싶습니다.

 

왼쪽에서 세 번 째, <사랑은 단백질>

 

<사랑은 단백질> 외에도 우수 작품상에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박지연, <우측통행> 양선우, <명자야, 울지마 화장지워져> 진윤경, <포크 커틀렛> 김도영, <개조심> 김규현 그리고 입선에 <지워버리다> 황보새별, <더 데일리 라운드> 전영찬, <아침이슬> 곽기혁 마지막으로 준입선에 <창조기> 박재영 등이 있습니다. 한국작품들이 꽤 되네요.

 

홈페이지에서 수상작들 목록을 보고 있자니 대만 작품들이 눈에 띄네요. 대만은 몇 년 전부터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퀄리티가 한 해 한 해 좋아지고 있다고 하네요. 중국(대륙) 작품들도 있는데 북경전영학원 출신 감독들 작품을 중심으로 퀄리티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쪽 대학 학장이 이미 학교 이름을 걸고 장편을 두 편이나 만들며 중국의 창작 애니메이션의 선봉에 서 있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그 외에는 당연히 일본작품이 많지요.

 

수상작 소개 아래 보니 심사위원들이 평이 있어 슬쩍 보니 눈에 띄는 단어-Love is Protein-가 있어 얼른 구글번역기로 돌려봤습니다.

岩野 一郎 Ichiro Iwano

トライデントコンピュータ専門学校講師、アニメーション作家

토라이덴토 컴퓨터 전문학교 강사, 애니메이션 작가


応募作品全体を通して、2Dのアニメーション作品の方が、映像としての表現やデザインの柔軟さにおいて多様で、安定感を感じた。その一方、3DCGの作品では制作工程の複雑さの問題もあるとは思うが、技術的な表現の制約を感じる作品が多く、特に個人レベルでの制作において、3DCGのアニメーション表現が、まだまだ発展途上である印象を受けた。その分、新しい表現の余地もかなり期待できるとも言える。個人的には「Love Is Protein」という作品が非常に残酷でとても面白かった。


응모 작품 전체를 통해, 2D 애니메이션 작품은 영상적인 표현과 디자인의 유연성에 있어 다양하고 안정감을 느꼈다. 반면, 3D CG의 작품은 제작 공정의 복잡성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기술적인 표현의 제약을 느끼는 작품이 많고, 특히 개인 수준의 제작에서 3D CG 애니메이션 표현이 아직 개발 중(발전 중)인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새로운 표현의 여지도 꽤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Love Is Protein"라는 작품이 무척 잔인하고 매우 재미있었다.

빨간색으로 굵게 표시한 부분을 보면 심사위원 이치로 이와노씨는 <사랑은 단백질>을 '잔인'하고 '재미'있다고 말하고 있네요. 작품을 아주 제대로 즐긴 경우가 아닌가 싶은데 왠지 반갑습니다. <사랑은 단백질>은 잔혼극일 수도, 코미디일 수도 있거든요. 등장인물 각각에게 다른 시선을 주고 다른 행위를 줘서 그 다름이 부딪히며 에너지를 발생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누구의 시각으로 작품 내용에 참여하느냐에 따라 '닭돌이'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겁니다.

 

<사랑은 단백질>이 올해 6월에 극장 개봉했을 때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준비를 좀 더 했더라면 확대개봉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했다면 결과가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그냥 조촐하게 개봉하고 넘어갔지만 실적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나름 선방한 셈이죠. 좀 더 많은 관객이 작품을 봤다면 이치로 이와노씨와 같은 반응부터 다양한 반응들을 피드백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여하튼, 좋은 소식에 슬쩍 기분이 좋아집니다. :)

 

<사랑은 단백질> 다운로드 서비스도 합니다. :)

 

 

 

▣ 참고하기

<사랑은 단백질> 예고편 ver.02

인디애니박스:셀마의 단백질 커피 - 스틸 전격 공개!!!

 

 

 

이건희의 사면? 짝퉁 애국자를 위한 설레발.

이건희 사면, 결단만 남았다? via 한겨레21 [2009.12.18 제790호]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어떤 식으로든) 한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고 국제/사회 영향력이 있으면 어떤 죄를 범했든지, 어떤 잘못된 일을 했던지 '애국자'가 된다. 그래서 감옥에 있으면 꺼내줘야 하고 과거의 흠결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오로지 국가를 위해, 위대한 대한민국을 위해 몸바쳐 살아온 애국자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인과 (大)기업인들은 이런 의미에서 대부분이 '애국자'다. 그들만이 대한민국을 건사하고 이끌어가는 거다.

 

그런데 가진 것도 없고 힘 없는 자들은 평생 법을 지켜오다가 생존에 위협을 느껴 법을 아주 조금만 위반해도 '반국가세력', '도심 테러리스트'가 되어 국가를 붕괴위험으로 내모는 '매국노'가 되고 만다. 혹여 현재 흠결을 찾아낼 수 없으면 오래 전 과거까지 탈탈 털어 결국에는 범법자를 만들어 놓고 감옥에 가두어 둔다. 사면? 글쎄 '애국자'가 감옥에서 나올 때 상황 봐가며 '끼워팔기'로 몇 명 쯤 후한 인심을 쓴다면 모를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의미에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잠재적 범죄자다. 이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애국자'들이 쳐 놓은 그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게 대한민국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얼마나 국가적으로 대단한 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건희 사면'을 들먹이며 뜻을 모으는 애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니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정상으론 보이지 않는다. 그냥, 딱 한 가지. 자기들의 이익만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수구'라고 부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친일행적'이 있어도 나라를 위한 훌륭한 업적 운운하며 말도 안된다며 펄쩍펄쩍 뛰는 인간들이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과거에 어떤 거짓말을 했던 어떤 사실이 밝혀지건 간에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면 눈 딱 감고 밀어주고 응원해주는 인간들이 있는 것이다. 하긴 눈도 감지 않는다.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눈을 감지.

 

짝퉁 '애국자'들이 나라 말아먹고 자신의 뒤통수를 때릴 때 쯤이나 정신이 들까. 아님, 그들의 '영원한 제국'에서 분배되는 떡고물만으로도 평생 행복한 포만감을 누리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혹은 정치인들의 잘못에 대해 엄정한 심판과 법의 댓가가 따르면 대한민국이 곧 망할 거라고 생각되나?

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임진각(臨津閣) 유감(遺憾)

 

해가 남쪽의 도로에서 북쪽의 언덕 뒤로 기울어갈 때

바람은 매섭게 옷 속을 비집고 들어와 괜시레 코를 싸하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담벼락보다도 낮은 녹슨 철조망과

내가 나고 자란 고향으로 가는 도로보다도 짧은 철교 건너편엔

분명히 사람이 살 텐데...살 텐데...

남쪽에선 너무 흔해 발에 채이는 사람의 그림자가 쉬이 발견되질 않는다.

그렇게 60년을 얼굴 맞대고 등 돌려 앉은 기이한 자세로 살아왔다.

 

 

금수보다 못한 인간이란 말을 푸른 빛에 보석처럼 박힌 철새 떼를 보며 떠올렸다.

난 숨가쁘게 달려도 갈 수 없는 지척의 땅을 저들은 날개짓 두어 번으로 넘어가 버렸다.

짐작으로조차 헤아릴 수 없는 지난 날인데 철망 너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큰하다.

 

 

눈비바람을 맞고 서있는, 누가 언제 다녀갔는지도 모르는 때묻은 리본마다

구구절절 애타들는 사연이 철망에 끈질기도록 애처롭게 매달려 있고

리본들마저 남쪽을 향해 걸려있어 새겨진 이산의 아픔조차 북쪽을 향해 등돌리고 섰다.

모른 척 우-하고 넘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데

이념으로 돌려진 등은 60년의 세월동안 투명한 장벽이 되었고 남북의 하늘을 갈라 놓았다.

 

 

覆水不返盆 - 엎지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모 항공사 TV광고에서 중국어가 들리죠? 그런데 도대체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한문을 보면 알듯 말듯 아리송하죠. 광고에 나오는 짧은 몇 마디 중에 우리가 자주 쓰는 속담도 있네요. 한 번 알아볼까요?

 

覆  水  不  返  盆

fù shuǐ fǎn pén

 

무슨 뜻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엎지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라는 뜻입니다.^^

지난 번에 병음(拼音) 읽는 걸 소개했죠? 거기에 맞춰서 일단 한국어로 변환시켜 읽어본다면

'f''ㅍ'(아랫입술)'이고 'u''ㅜ'니까 '푸', 'sh'는 shi에서 읽었던 것처럼 '쓰'발음, 'ui''우웨이' 그래서 '쒜에이', 'b''ㅂ/ㅃ'이고 'u''ㅜ'니까 '뿌', 'f''ㅍ'(아랫입술)이고 'an''안'이니까 '판', 'p''ㅍ'이고 'en''언'이니까 '펀'입니다. 이어서 읽어보면 '푸 쒜에이 뿌 판 펀'(f의 아랫입술발음 주의)이라고 읽습니다.

(광고보며 발음듣기: 광고와 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클릭은 안하시고 직접 다른 걸 찾아보셔도 됩니다.) 성조가 있으니까 성조 읽는 법을 유의해서 읽어보면 비슷한 소리를 내실 수 있을 겁니다.

 

친구가 실수를 한 후에 안타까워 하고 있다면 중국어로 '푸 쒜에이 뿌 판 펀'이라고 말해주고 어깨를 도닥여 줄 수 있겠죠. 기분이 무척 상해있던 친구라면 어디서 '외국어질'이냐며 화풀이를 할지도 모릅니다.^^ 혹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친구라면 '어디서 염장질이냐'고 '타-마---더'를 혼자 중얼거릴지도 모릅니다.-_-;; 그러니 웃는 얼굴로 말하지 말고 광고에서처럼 멋진 저음으로 말해줘야겠죠.

 

조금 간단하게(그래봐야 한글자 적은 것이지만)

 

覆  水  难   收

fù shuǐ nán shōu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푸 쒜에이 난 쏘우'라고 읽고 뜻은 위와 같습니다. '난'이 '어려울 난'이구요. '쏘우'가 '거두어들일 수 '입니다.

 

발음을 녹음해서 올려드리면 좋을 텐데, 그럼 너무 일이 커지니...

 

 

▣ 읽어보기

 

원문: 若能离更合 覆水定难收 (拾遗记) - 강태공이 다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아내 마씨(马氏)에게 동이에 물을 길어오라 해서 땅에 붓게 한 후에 다시 동이에 담으라 했다. 물은 담을 수 없고 진흙만이 손에 잡히는 마씨에게 강태공은 "그대는 떨어졌다가 다시 합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장 요약) via http://blog.naver.com/wing927/42773477

 

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경쟁은 필요없다.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 시선이 멈췄다. 호흡이 느려졌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EBS의 지식채널e에서 화면에 뎐져지고 있던 글귀들 때문이었다. 다시보기를 찾아 2부작으로 된 '핀란드의 실험'을 봤다. 아주 평범하고 단순한 사실인데 그 평범하고 단순한 사실 앞에서 '울컥'했다. 아래는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텍스트의 일부를 옮겨 적은 내용이다.

교실에서의 경쟁은 필요없다. 협동이 살길이다.
교실에서의 협동을 위해 성적표에서 사라지는 등수
오늘은 못하지만 내일은 잘할 수도 있고
수학은 못하지만 언어는 잘할 수도 있는 건데
몇 번의 시험으로 우열을 매기는 것이
학생 개인에게나 사회 전체에게나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학교에서 경쟁만을 배우고 협동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진다면 과연 그 사회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가정환경, 부모의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출발점
학교에 입학한 모든 아이들이 같은 출발선에 서지 못한다
그러니 공정한 경쟁이란 있을 수 없다.
학교에서의 경쟁을 금지하는 국가.(핀란드)
성적표는 있다. 하지만 등수는 없다.
등수 대신 각자의 수준에 맞게 설정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가 표시되는 성적표
경쟁 대상은 친구가 아니라 내 자신.

 

일제고사를 통해 더 못하는 아이, 더 못하는 학교가 받는 차별은 다름아닌
더 많이 책정되는 1.5배의 예산이었다.
그들에게 차별은 차이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좁히는 도구였다.

 

경쟁은 경쟁을 낳아 결국 유치원생까지 경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설득시켰다. 학교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다. 그리고 경쟁은 좋은 시민이 된 다음의 일이다. -에르끼 아호, 핀란드 전 국가교육청장

 

via EBS 지식채널e 중

핀란드의 실험 제1부 탈출구
핀란드의 실험 제2부 더 많은 차별

 

대한민국의 교육이 문제라고 열을 낸다. 교육정책이 엉망이라고 한탄한다. 교육정책이, 교육관련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면 실컷 비난하고 욕을 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리고 잠시 담배 하나 피고 올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래도 제 자식은 잘 키우고 싶어 등 떠밀어 학원에 보낸다. 학원에 가지 못한 아이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과 다른 삶 때문에 힘겨워 한다. 자식을 학원에 보내지 못한 부모는 아이에게 평생의 미안함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누구나 다 학원에 가고 누구나 다 경쟁을 하고 누구나 다 상대를 짓밟아야 하는 냉정한 경쟁사회에서 '교육문제'를 거론하고 '바른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건 왠지 뒤쳐지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교육이 문제라고 열을 올리면서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 생각하는 거다. 지금 뒤쳐지면 평생을 '루저'로 살아야 하고 인생 전체가 망가지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괜찮은 대안학교가 생기면 '경쟁적'으로 학교에 입학을 시켜야 하고 그 학교를 나온 학생이 대학도 잘 가더라, 공부도 알아서 잘 하더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번진다. 공교육을 강화하자고 입을 모아 외치고선 과외선생님을 집 안으로 모시고 따로 선생님을 찾아뵙고 입소문과 인터넷을 뒤져 가장 좋은 학원으로 아이를 떠민다. '교실에서의 경쟁은 필요없다. 협동이 살길이다.'는 말은 '이상적 답안'일 뿐 '현실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제 자신 혼자서 '이상적 답안'을 좇아 사는 건 무척 두렵고 힘겨운 삶이다. '이상적 답안'을 좇는 게 둘이어도, 열이어도, 백이어도 어차피 이 세상에선 소수일 뿐이다. 다수가 하자는 대로 살지 않으면 피곤만 가중될 뿐이다.

 

세상이 이렇기에 '학교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고 '경쟁은 좋은 시민이 된 다음의 일'이라 말하는 에르끼 아호의 말이 더 가슴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내 어릴 적 '전인교육'에 대한 뜻을 배우고 '배움은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는 말을 배웠는데 그건 단지 교과서 안에만 있는 말일 뿐이고 현실에선 전혀 쓸모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학교를 통해 좋은 시민이 되었는가. 좋은 시민으로 살고자 하는 욕구는 존재하는가.

 

경쟁은 소수의 지배자가 세상을 다스리기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의 노예로 만들게 하기 위해선 '경쟁'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 혹 경쟁을 통해 그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은 단지 그들 사회의 가장 하층계급이 되는 것일 뿐 그들이 정해놓은 룰을 벗어나 그들과 같은 레벨로 설 수는 없다.

 

경쟁을 거부하면 당장은 나의 삶이 힘겨워질 것이다. 남에게 짓밟히고 이리저리 채일 것이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그렇다고 착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을 거부한다고 해서 그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 확률은 생각보다 적다. 오히려 그런 노력들이 세상을 바꾸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 공정한 경쟁이란 존재할 수 없음에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고 부추기는 특권층과 사회 분위기. 평등이란 말 자체가 이미 성립될 수 없는 사회임에도 평등을 이루겠다고 주장하고 부추기는 사회. '아랫것'들이 머리 터지며 출혈경쟁을 하는 것이, 평등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윗분'들의 레벨로 상승할 수 있다고 맹신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에 대해 밤낮으로 이야기한들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 지식채널e 동영상에 나온 내용 중 핀란드는 1985년 우열반을 폐지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학교에 경쟁이 아닌 협력과 협동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나 싶은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30년이 흘렀다. 어떤 정책이던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이 바뀌는 시간 대략 30년, 한 세대 정도의 시간.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

 

 

▣ 함께 읽기

비장(悲壯)한 수능(修能)현장을 보며...

via 규항넷

행복이란 무엇인가
학원을 없애자

2009년 12월 9일 수요일

사실대로 증언 할 내부고발자는 100명 중 단 26명 뿐.

어렸을 때 종종 듣던 이야기 중에 하나.

 

돈 많고 권세 있는 집안의 청년이 늘 수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지만 유독 허름한 옷을 입은 친구와는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청년에게 말한다.

"저 많은 사람들 중에 진정한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청년은 대부분이 자신을 위하는 진정한 친구라고 대답한다. 아버지는 청년에게 제안한다.

"네가 친구들을 찾아가 살인을 했다고 하면서 숨겨달라고 해 보거라. 만약 숨겨주는 친구가 있다면 너의 진정한 친구라고 할 만하다."

아버지는 단 한 명도 청년을 숨겨줄 리 없다고 단언했고 청년은 콧웃음을 치며 그럴 리 없다고 부정했다. 결과는? 모든 친구들은 청년을 문전박대했다. 청년이 늘 허름하다고 무시했던 친구 한 명만이 그 친구에게 손을 내밀며 집안으로 들인다. 청년은 깨닫는다.

"아, 그 많던 친구들은 나의 돈과 권세만을 보고 가까워진 것이구나. 진정한 친구는 정말 어려움에 처한 나에게 손을 내민 이 친구 밖엔 없구나"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진정한 친구를 가려내는 법(?)' 정도가 되겠다. 물론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법도 중요하고 자신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같은 이들을 가려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살인을 하고 왔더라도 나의 진정한 친구라면 숨겨줘야 한다. 만약 관아에 가서 고발을 한다면? 그건 친구도 뭣도 아닌 그냥 '개XX'다. 친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을 때나 어려울 때 함께 해야 한다. 동고동락(同苦同樂)해야 한다. 좀 더 이야기를 확대해서 친구의 우정과 의리 따위를 신고와 고발로 바꿀 X은 그 바닥에서 매장당해야 한다.
 
진정한 친구, 동료라는 개념이 아주 친밀하게 발전함과 동시에 그 개념의 깊은 곳에 '가족'이란 단어를 함께 박아두고 사용하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가족(한민족)이며 그 안에 수 많은 직장과 단체, 집단들은 소가족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족과 같은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촘촘히 얽혀있는 대한민국에선 내가 어렵다고 등 돌리는 X은,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고와 고발'따위로 소금 뿌리는 X은 매장당해야 할 존재고 그냥 그 바닥에서 죽음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부고발자(휘슬 블로어;whistle-blower) 혹은 공익제보자들의 행위는 다른 말로 배신행위며 배신은 곧 죽음이란 무시무시한 결과를 도출해낸다. 그 배신행위는 가족을, 친구를, 동료를, 후배를, 하늘같은 선배를, 윗 사람을 팔아먹는 행위에 다름없은 일이며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조직에 등을 돌린 파렴치한 행위정도로 간주된다.  

한 실험에서 밝혀진,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친구가 운전을 하던 중에 과속을 해서 사람을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을 옆에서 지켜 본 사람이 변호사의 제안(-거짓을 진술하면 친구는 형량이 감해진다.)을 뿌리치고 사실대로 진술할 확률은 100명 중에 26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PD수첩 841회 내용 참고-Did the Pedestrian die? 폰스 트롬페나즈 교수의 '개인의 의리와 공익과의 딜레마 실험') 일본 67, 중국 48 보다도 낮은 수치다. 캐나다 96, 미국/스위스 94, 스웨덴 93 이었다. 즉 대한민국에서는 74명이 '사실대로 증언하지 않겠다'라는 것이다.
 
가족같은 회사, 형제같은 동료, 평생을 함께 해야 할 동반자라는 말처럼 공과 사가 뒤섞여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혹여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까지 옮기는 데는 얼마나 힘이 들던가. 겨우겨우 행동을 취하고 나면 돌아오는 건 '배신자'라는 타이틀 뿐이다. 몸 담고 있던 사회로부터 격리조치 되고 아예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정도의 댓가가 뒤따른다. 스스로가 내부고발자(whistle-blower)가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내부고발자를 지지하고 지켜줄 수는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부고발자를 지지하는 사람까지 묶여서 배신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사회에서는 지지를 하거나 지켜주는 작은 행위조차도 어려울 뿐이다. 오히려 대다수는 고발을 당한 단체, 기업, 기관, 사람을 앞장서서 변호하고 이해해주려 노력하며 고발을 한 사람을 비난한다.
 
내부고발자가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가장 절실히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이라도 달라지면 좋겠다. 스스로 내부고발자가 될 자세를 갖추면 좋겠다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일 테니까.
 
공(公)을 사적으로 취하고 사(私)를 마치 공적 영역인 것처럼 착각하고 오도하는 사회에선 개인의 이익은 점점 멀어질 뿐이고 사회 전체의 발전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길고 넓은 안목으로 보면 지금 개인의 의리보다는 공익을 위해 솔직해지는 것이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며 그로 인해 개인의 의리 역시 올바른 자리를 찾게 됨을 알아야 한다.
 
(종종 느끼는 거지만 대한민국은 내부고발자는 말할 것도 없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행위조차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만 하는 이상한 나라다.)


▣ 함께 읽기

2009년 12월 8일 화요일

중국어의 운모(모음)와 발음 연습

이거 원, 중국어 기초 부분을 간단하게 설명하려다가 오히려 점점 복잡해지는 느낌이네요.^^;; 중국어 자음, 모음 소개만 끝내고 간단한 중국어 소개를 해야할까 봐요. 불특정 대상을 향해 무언가를 소개한다는 게 이런 문제점이 있군요. 스스로 한계를 잘 구분지어야 하는데 그런 계획없이 시작하니 처음부터 버거운 느낌이 들 밖에요.-_-; 인터넷에 '중국어' 검색어만 넣어도 어마어마한 분량의 정보가 쏟아지니 제가 그 정보를 늘리는데 일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멋쩍어집니다.-_-a

 

각설하고, 중국어 자음(声母;성모)는

 

b(ㅂ)  p(ㅍ)  m(ㅁ)  f(ㅍ/아랫입술)  발음듣기

d(ㄷ/ㄸ)  t(ㅌ)  n(ㄴ)  l(ㄹ)  발음듣기

g(ㄱ/ㄲ)  k(ㅋ)  h(ㅎ)  발음듣기

j(ㅈ/ㅉ)  q(ㅊ)  x(ㅅ/ㅆ)  발음듣기

zh(ㅈ/ㅉ/혀말기)  ch(ㅊ/혀말기)  sh(ㅅ/ㅆ/혀말기)  r(ㄹ/혀말기)  발음듣기

z(ㅈ/ㅉ)  c(ㅊ)  s(ㅅ/ㅆ)  발음듣기

y(ㅇ)  w(ㅇ)

 

가 있었지요. 앞서 소개한 표에는 등장하지 않는 y나 w같은 글자도 보입니다만 이건 한글의 'ㅇ'과도 같은 발음이라서 모음과 함께 있을 때만 발음을 합니다. 그래서 발음표에서 볼 수가 없었죠.

 

그럼, 모음(韵母;운모)은 어떤 게 있을까요. 모음은 한국어의 '아에이오우'와 같은 a  o  e  i  u가 있구요. 그 외에

 

a(아)  o(오어/오)  e(어/에)  i(이)  u(우)  ü(위)  발음듣기

ai(아이)  ei(에이)  ao(아오)  ou(오/어우)  발음듣기

ia(이아/이야)  ie(이에)  ua(우아/와)  uo(우오/우어)  üe(위에/웨)  발음듣기

iao(이아오/야오)  iou/iu(이오우/이우)  uai(우아이/와이)  uei/ui(우에이/우이)  발음듣기

en(언)  in(인)  uen/un(운)  ün(윈)  발음듣기

an(안)  ian(이안/얀)  uan(우안/웬)  er(어-얼/얼)   발음듣기

ang(앙)  iang(이앙/양)  uang(우앙/왕)  ong(옹)  발음듣기

eng(엉)  ing(잉)  ueng(우엉/웡)  iong(이옹/용)  발음듣기

 

이 있습니다. 무슨 모음이 이렇게 많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잘 살펴보면 a  o  e  i  u  ü가 기본이고 나머지는 조합일 뿐입니다. 가령, un같은 경우는 '우'와 'n'의 'ㄴ'을 붙여 읽으면 됩니다. 즉 '운'이라고 발음하는 거지요. 여기에서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단어는 ü가 되겠지요? 이것은 한국어로 '위'라고 읽으면 됩니다. 닌텐도 게임기 'wii'를 읽을 때 처럼 '위'라고 발음하면 됩니다. 그럼, ün은 어떻게 읽죠? .... 맞습니다. '윈'으로 읽으면 됩니다. 이렇게 모음끼리 조합을 이뤄 다른 모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어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에서 말한대로 y, w의 경우 모음과 있을 때만 발음을 한다고 했기 때문에 살펴보도록 하죠.

 

yi(이)    yu(위)  ye(예)  yue(웨)  yang(양)  yong(용)

yin(인)  yun(윈)  yuan(위-안/웬)  ying(잉) 

wu(우)  wang(왕)  weng(웡)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으면 이, 우, 위, 예, 웨, 인, 윈, 웬, 잉...이 됩니다. 그런데 yu가 어떻게 '위'가 되냐구요? y와 함께 쓰이는 u는 원래 ü인데 위에 점 두 개를 생략한다고 하네요. 이건 그냥 암기를 하는 수 밖엔 없습니다. 그럼, yun은? 네, '윈'이라고 읽습니다. y와 w가 다른 모음과 붙었을 때 변화되는 건 다른 자음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다음 사이트에서 발음을 직접 듣고 따라해볼 수 있습니다.

 

e-Chinaro 사이트

다음(daum) 중국어 사전 사이트

 

위 두 사이트 모두 발음 모두가 소개되는 건 아니네요. 그래도 충분히 연습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 접할 때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쉽게 익혀지지 않을 뿐 몇 번 접하다보면 병음을 보며 읽거나 발음을 흉내내거나 하는 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읽기 어려운 발음이 있으면 문의해주세요.^^

 

DAUM 꼬마사전을 컴퓨터에 설치한다면 중국어 위에 마우스를 올려놓거나 글자를 더블 클릭하는 것만으로 발음을 들을 수 있고 사전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론 꽤 괜찮습니다.

 

자음, 모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되신다면 앞어 말했던 大家好라는 글도 아래 병음을 보며 따라 읽을 수 있겠지요. 성조표시를 뺀 병음이 'da jia hao'였지요? 그렇다면 '따 지아(쟈) 하오'라고 바로 읽을 수 있겠네요.

 

혹시 빠진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발음듣기 관련 링크는 小学生优秀作文网을 참고했습니다. (헥헥...)

4개의 성조와 성모(자음) 발음표

성조는 모두 4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광동어는 모두 9개(1.高平声 2.高上声 3.高去声 4.低平声 5.低上声 6.低去声 7.高入声 8.中入声 9.低入声)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에 비하면 정말 적은 숫자죠.^^ 중국어는 아시겠지만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글자 수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신조어도 등장하고는 있지만 기존에 있는 한자를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신조어는 거의 없기 때문에 성조는 글자의 용도를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중국어로 쓰이는 한자-간체자는 원래 한국에서 쓰는 한자-번체자와 같았는데 <汉字简化方案(중국어 간략화 방안)>을 통해 1956년 1월 28일 간체자로 변하기 시작해 1964년 5월 수정을 거쳐 현대 중국어의 표준이 생기게 되었다네요. UN에서도 이젠 한자는 간체자만을 사용한다고 하는군요.(참고) 간체자를 사용하게 된 데에는 중국 내에서도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지만 누구나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으며 디지털 시대에 맞는 간단한 표기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겠지요.

 

성조에 대한 설명입니다.

 

제 1 성 : 높고 평탄한 소리.

1성은 성조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소리라고 합니다. 사실 중국어 발음을 하다보면 1성을 발음하기가 왠지 어색합니다. 여러 책에서 소개하는 걸 보면 대략 '솔'음계 정도의 높이로 주욱- 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성의 소리높이 위치를 제대로 잡고 나면 2성, 3성, 4성의 위치가 비교적 쉽게 잡히기 때문에 기본이 되는 소리라 하는 모양입니다.

 

제 2 성 : 급하게 상승하는 소리.

2성은 1성보다 낮은 음에서부터 1성의 위치까지 소리를 끌어올리며 내는 소리인데요. '미'음계에서 '솔'음계까지 소리를 이어내면 됩니다. 사실 공부할 때 2성과 3성의 구분을 잘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그건 3성이 뒷에 오는 단어의 성조에 따라 변화를 하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튼 2성은 듣고 분간하기에도 어렵지만 소리를 내는 것도 그다지 썩 쉽진 않습니다. 연습이 많이 필요한 성조입니다.

 

제 3 성 : 낮게 쳐졌다가 다시 상승하는 소리.

4개의 성조중 가장 낮은 소리를 냅니다. 원래의 3성은 아래 음까지 떨어졌다가 끝에 다시 끌어 올리는 게 정상이지만 일반적으로 반3성(半三聲)이라고 하여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곳까지만 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다시 끌어올리는 소리가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3성은 2성과 구분하기도 어려울 수 있는데다 4성하고도 헷갈릴 수 있습니다. 4성 역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이기 때문이죠. 다만, 3성이 조금 낮은 위치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4성과 3성은 떨어지는 위치가 좀 다릅니다. 원래는 "레"음계에서 "도"음계까지 떨어진 후 다시 "파"음계까지 올라가는 음이라고 합니다만 뒤 '파'음계까지 발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제 4 성 : 급하게 하강하는 소리.

1성의 위치 '솔'음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급격히 떨어뜨리면서 내는 성조입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잘 내는 성조 중에 하나죠.^^ 그런데 주의를 하지 않으면 1성보다도 훨씬 더 높은 음에서 시작해 아래로 떨구기 때문에 1성이 마치 3성처럼 느껴지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실제 회화에서는 4성을 1성보다 높은 곳에서 시작하기도 합니다만 TV아나운서들의 말을 잘 들어보시면 4성의 위치가 1성의 위치에서 정확히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성(輕聲) : 4개의 성조 외에 쓰이는, 성조는 없고 앞 단어 성조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소리입니다. 그냥 '툭' 아래로 힘없이 떨구는 정도의 소리만 내면 됩니다. 예를 들어 '妈妈 māmā 마마(엄마)'는 둘 다 1성인데 둘 다 1성으로 발음하는 게 아닙니다. 앞의 '마'만 1성으로 발음하고 뒤의 마는 그냥 툭 떨궈서 성조가 없이 발음하게 되는 겁니다. 중국어엔 이런 경우가 많이 있죠. 어떤 중국어 관련 책을 보면 '병음'에 성조를 표시해주면서도 간혹 성조 표시가 되지 않은 '병음'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경성'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래는 중국어 발음표입니다.

 

중국어 발음표(성모편)

■ 성조소개부터 아래 발음표까지 중국어 발음표를 참고하고 개인적인 의견을 더해 첨삭과정을 거쳤습니다.

 

참 어려운 느낌만 가득하군요. 실제 발음을 들어가면서 연습을 한다면 이런 기본을 익히는데는 며칠, 혹은 몇 주면 끝나는 일이겠죠.^^;

 

사실 발음이 어려운 건 중국어만은 아닐 겁니다. 영어도 발음이 어렵고 일본어도 한국어로는 표현이 안되는 발음이 있잖아요?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처럼' 말하는 것은 솔직히 스스로도 맘에 들진 않아요.^^;; 근데 관심이 있고 재미가 있다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2009년 12월 7일 월요일

china;chinese 시작합니다.

쉽고 재밌게 접근해 볼 수 있는 중국어 학습에 관련한 내용을 적어볼까 합니다. 제가 공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쉽게 이해하는 중국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혹여라도 이곳을 통해 간단한 중국어 몇 마디 정도를 배울 수 있게 된다면 무척 기분 좋은 일이겠지요. 중국어를 이야기하다보면 중국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텐데 저도 조금씩 공부하며 알아가는 중국이니만큼 그 정보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중국어 전공자 분들에겐 책 잡힐 일이고 중국통이라 불리시는 분들에겐 송구할 일이겠지만 아는 건 아는 만큼 또모르는 건 배우는 자세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갈까 합니다. 관련자 및 전문가 분들께서 혹시라도 보시다 틀린 부분을 발견하고 지적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없이 고맙겠습니다.

글이 빨리빨리 올라오면 무척 좋겠습니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아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그래도 큰 마음먹고 'china;chinese' 목록을 추가했으니 가능한 한 꾸준히 해봐야죠.

먼저, 인사 드립니다. :)

한국어로는 '따지아(빨리 읽으면 '따쟈') 하오'라고 읽고 '여러분 안녕하세요'라는 뜻입니다. '따쟈'가 '큰 집'이란 뜻이니 여러 명이 있는 걸 상상할 수 있겠지요. '하오'는 좋다!라는 뜻입니다만 '大家好'를 붙여서 읽을 때는 '여러분 좋아!'가 아니라 '여러분 안녕(하세요)!'라는 뜻이 되겠죠. 하긴 '안녕(安寧)'이란 말이 평안하고 좋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여러분 좋아!'도 꼭 틀린 뜻은 아니네요.^^ 그렇게 기분 좋은 말로 인사합니다.

'따쟈 하오!'

기본적으로 중국어 아래 있는 알파벳(병음(拼音:pīnyīn)이라고 합니다)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직접 소리를 들려드리지 않고 글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네요. 일단 병음은 로마자를 읽는 것에 가깝지만 어떤 소리들은 '된소리'로 읽거나 '쇳소리'로 읽으면 된다는 점만 유의하시면 될 듯 하네요.^^

알파벳 위에 보면 작대기 표시들이 있는데 성조(음의 높낮이) 표시입니다. 1성, 2성, 3성, 4성까지 있습니다. 성조는 daum이나 naver 중국어 사전에 가셔서 직접 들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중국어가 성조 때문에 배우기 어렵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렇습니다. 저 역시 처음 배울 때 성조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대충 넘어간 바람에 지금 성조 교정하느라 죽을 맛입니다.-_-; 성조와 몇 가지 발음만 정확히 하고 나면 사실 중국어는 일본어나 영어보다 더 쉽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몸과 마음의 습관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습관이란 건 참 무섭다. 내 육근동작 움직임 대부분이 습관 속에서 나오는 것임엔 틀림없다. 

가령, 책상다리를 하고 앉을 때 왼발이 오른쪽 무릎 위에 올라오는 것,
걸음을 걸을 때 어깨를 약간 뒤로 제치듯 펴고 걷는 것,
얼굴 땀을 닦을 때 왼손이 먼저 올라오는 것,
소위 말하는 짝다리를 짚고 서 있을 때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
윙크를 할 때 오른눈을 감는 것,
양치질을 할 때 오른손으로 하는 것,
핸드폰은 왼쪽 바지 주머니에 넣는 것,
열쇠는 오른쪽 주머니에 넣는 것,
썩소를 지을 때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등등

사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습관들은 반대로 해도 아무 상관없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 불편하다는 건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지 괴로운 정도는 아니다. 어느 순간 내 행동양식은 습관이 들었고 그 습관에 맞춰 생활하다 보니 다른 식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내 마음과 사고(방식)은 어떤가. 습관이 들어 쉽게 고쳐지지 않는 부분은 없는가. 어떤 상황에 대한 편견은 없는가. ... 없을 수가 있나. 분명이 있다. 다만, 그 편견과 편향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반대편에 서서 생각했을 때 불편함은 있겠지만 그럴려고 노력은 해보았는가. 반대편에 서서 사고하고 생각하며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했었는가를 반문한다. 

자신의 신체에 국한되는 몸의 습관과는 달리 마음과 사고의 습관은 반대로 했을 때 주변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거나 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다. 특히 자신의 전체 삶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하지만 분명 역지사지를 충분히 하고 반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한 후에 자신의 '편견'과 '편향'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과 사고의 습관은 반대에 서는 가상(假想)의 행위를 통해 발전하고 진화하며 폭을 넓혀간다.

쓰지 않았던 다른 쪽 몸, 신체를 어색하게 움직여보면서 내 마음과 사고 역시 나와 상대를 투영해 범위를 확장해 본다. 습관인 줄 모르면 고치려는 노력 역시 사막 위의 신기루마냥 공허하다. 뜬구름 잡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습관을 습관이라고 명확히 알고 나면 그걸 고치려는 노력, 혹은 범위를 확장시키려는 노력 등은 그 자체로 재미도 있고 신이 난다.

습관은 앎에서 시작하되 망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 망각의 강에서 벗어나면 지금의 내 현재가 명확해진다. 변화는 두려움 없는 자의 몫이고 변화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여는 문열이다. 몸에 배인 (좋지 않은) 것들을 털어내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

2009년 12월 4일 금요일

정태춘에 대한 기억, 고맙고 미안합니다.

출처: idomin.com


중학교 때 사촌 형님의 소개로 처음 듣게 된 정태춘의 노래. 그 뒤로 줄곧 그의 노래를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모 대학에서 열린 행사에 정태춘이 온다고 해서 그를 보기 위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도망쳐 나와 찾아갔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대학생이었던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정태춘을 환호했다. 나 역시 '떠나가는 배', '촛불', '시인의 마을', '애고, 도솔천아' 등등 서정적이며 감성 풍부한 그의 노래를 좋아했기에 자리를 잡고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난 TV에서 딱 한 번 밖에 보지 못했던, TV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도 없었던 특이한 가수 정태춘.(그의 아내 박은옥은 그보다도 더 유명했던 것 같았다.) 엄밀히 말하면 소위 대중적인 스타는 아니었지만 정말 많은 팬이 있었던 '노래하는 음유시인' 정태춘.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때의 정태춘을 잊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원형극장에 둘러 앉은 대학생들이 환호를 보내며 그의 노래 제목들을 외쳐댔다. (아마도) 고무신을 신고 통기타를 맨 수수한 옷차림의 정태춘은 '촛불'의 전주부분을 연주했다. 사람들은 더욱 환호했다. 정태춘은 갑자기 연주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런 노래도 있었지요"


사람들의 연호에 정태춘은 '떠나가는 배', '시인의 마을' 등의 전주부분을 연주했지만 모두 '이런 노래도 있었지요'라는 말과 함께 연주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이 노래들은 여러분의 테잎으로만 들으셔야겠습니다. 앞으로 이 노래들을 부르지 않을 겁니다. 이젠 전대협을 위해, 전교조를 위해 노래하겠습니다."


100% 정확하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말은 그랬다. 그리고 그는 이어 '아! 대한민국'을 불렀다. 사람들은 그 노래에 맞춰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 흔들며 열광했다. 난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에 완전히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회에 대해서 별 관심도 없었지만 그 노래, 그 가사는 내 가슴을 크게 울렸고 심장이 터질 정도로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어 부른 '그대, 행복한가' 등의 몇 곡의 노래 역시 내 정신과 마음을 심하게 흔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갔음에도 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다음 날부터 그의 노래가 담긴 테잎을 구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 '금지곡'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저 그날 밤 들었던 멜로디와 몇 마디의 가사만 입에서 중얼거리며 잊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테잎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는데 매일 수 십 번씩 반복해서 듣는 바람에 테잎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면 다시 테잎을 구해 다시 들었다. 정태춘이 부르던 노래의 가사는 그렇게 살아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후에도 모든 앨범을 구입했고 모든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성격상 공연같은 걸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었던, 누군가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찾아다닌 적이 없었던 나는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정태춘이 온다고 하면 가슴 설레며 그를 기다렸고 그의 노래를 따라 불렀으며 그의 노래에 담긴 가사와 의미를 되새기려 애를 썼다. 그리고 새롭게 나온 앨범들을 꼬박꼬박 구입해서 애지중지하며 간직했고 반복해서 들었다.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가 뭐냐 물으면 난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정태춘'이라 답했다. 중학교 때 처음 그의 노래를 들었던 순간부터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지 않은 이후에도 난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정태춘'이라 말했다. 당시 내 또래 애들은 정태춘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내가 차츰 갖게 된 사회의식의 일부는 '정태춘(과 박은옥)'에게 빚진 부분이 있다.


언제부턴가 그에 대한 소식이 뜸해졌고 나 역시 개인적인 삶의 질곡 때문에 그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되면서 그의 공연이나 소식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챙기지 못했다. 그러다 김규항의 정태춘 인터뷰를 접하고 나서 마음이 심하게 아팠는데 청중, 대중으로서의 내가 그의 '힘들어함'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제도 아는 교수님과 이야기하던 중에 정태춘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던 주점의 사장 아주머니가 몇 마디 거들게 되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자니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여전한데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로 인해 그가 다시 무대로 돌아오지 않는 걸, 다시 노래하지 않는 걸 슬퍼하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암튼, 정태춘과 박은옥이 다시 노래하지 않는다는 건 무조건 '우리'의 책임인 것 같다.


다시 그가 돌아와 노래를 불러주길 간절히 바라지만 여러 기사와 인터뷰 내용을 보니 쉽진 않을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래는 김규항의 정태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 예술가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적인 예술가들은 90년대 이후 사회운동가, 아니 정치인의 상상력을 뒤쫓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실 정치에서 당선 가능성이라든가 현실적 실현 가능성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상상력의 최대치가 제도정당의 그것에 머문다는 건 우리가 현재 세상을 넘어서길 포기한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나는 그런 상상력의 빈곤이 답답했어요."


- 아내이자 오랜 동지인 박은옥 선생 보시기엔 어땠는지요?

(박)"너무 힘들어하니까 보는 나도 많이 힘들었어요. 이 사람이 반복해서 말했어요. 군부독재가 물러났지만 이젠 더 공고하고 사악한 자본의 독재가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군부독재와 싸우던 사람들이 그런 변화에 대해선 외면하고 그 질서 속에 들어가 명랑한 얼굴로 개혁을 말하고 민주화를 말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고…."


(박)"남에게 공격적이진 않았지만 서운함이나 고립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이런 일이 있었어요. (경기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인) 대추리 싸움 하다가 논구덩이에서 플래카드에 목이 졸려 경찰에 연행돼 가지고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거기 병원에 쫓아온 후배가 그랬대요. 형님은 아직도 이러고 사시냐고, 세상 좋아졌는데 이제 그만하시라고. 그랬는데 이 사람이 그러더래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왔다고? 그 세상이 왔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거라고?' 지금도 그 이야기만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박은옥씨의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via http://gyuhang.net/1692

via http://media.daum.net/culture/view.html?cateid=1003&newsid=20091023145012007&p=hani




예나 지금이나 - 2009년 안에 1987년 있다. by 행복한 자유인


2009년 11월 30일 월요일

시스템과 개인

너무 혼란스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불가(?)쪽 공부를 좀 했던 터라^^; (감히)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황대권 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도 충분히 옳은 말씀입니다. 제가 글을 썼던 것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 속에 그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시스템이 먼저냐, 개인(인간)이 먼저냐... 저는 일단 개인(인간)에 무게를 두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하나의 문제에 봉착을 하더군요. 즉, 시스템(법, 제도를 포함한)은 분명 인간이 만들어 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그 시스템은 나름의 생명력을 얻어버리게 됩니다.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살아 숨 쉬게 된다는 것이지요.(물론 기득권층이 힘을 실어주거나 조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말입니다.)

 

개인의 수양을 통해 내 안에 있는 분노와 잘못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건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곰곰히 주변을 둘러보면 한 개인이 잘 사는 것과 국가나 사회시스템이 그런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것은 아주 별개로 움직이더란 말이죠. 평생을 착하게,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오히려 남을 도우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돌연 국가 간의 분쟁에 의해, 사회 권력자들의 이권다툼에 의해 적당한 댓가도 받지 못하고 아니, 오히려 피해를 받고 사는 인민(민중)이 너무 많다는 거지요. 개인의 수양은 수양대로 끊임없이 정진해 가야 하는 건 사실이고 중요한 일입니다만, 거대 시스템에 맞선 풀뿌리 인민들의 연대도 분명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가령 한 개인이 촛불시위에 참여하거나 농활이던 어떠한 운동이던 참여하는 건 개인이 분노를 표출하는 감정적 행동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시스템을 고쳐보기 위한 소중한 움직임이라 생각하는 거지요. 그저 희망없는 넋두리 한탄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나'를 비롯한 더 많은 인민(서민)들이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대권 선생님의 말씀이나 제가 적은 글이나(감히 비교해서 죄송합니다.)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언부언이지만 제가 6.25에 대해 적은 글은 이미 한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국가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20:80로 나뉘어져 있고 그건 자본에 힘입은 자본가들과 결탁한 소위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구분을 해버린 것이고 진작에 없어졌어야 했을 봉건계급사회가 여전히 다른 모습, 즉 자본계급사회로 변화해서 존재하고 있음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적은 글입니다. 특히나 전쟁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면 (단순한 표현으로) 반미와 같은 움직임이 결코 감정에 의한 분풀이가 아닌 정확한 문제 해결을 위한 괜찮은 방편임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반미가 아니라 반자본주의, 반저질자본주의가 되겠고 집중편향되어있는 권력에 대한 항거(?), 개인이 잘 살기 위한 적정한 보장을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via 한국전쟁... 가장 추악한 범죄 - 전쟁
http://cjh6520.egloos.com/2541469 글에 달았던 답글을 옮겨 와 몇 개 단어 수정하고 생략해서 보관함.

2009년 11월 29일 일요일

내일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어.
굳이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이지.

 

하지만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나를 잠시 맡겨두는 것.

 

그 흐름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서
온 몸에 힘을 주고 버텨보긴 하지만
그리 쉽진 않아.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걸.

 

오늘 내가 설겆이를 하는데
그릇에 남겨진 흔적들이 왠지 지저분하게 느껴지는 거야.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내가 살아온 날들도 그렇게 느껴질까봐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거야.

 

하지만,
찬 물에 조금 남아있던 그릇의 온기가 사라지듯이
내 마음에 작은 불씨마저 꺼져버리게 하진 않을래.

나를 믿고 있는 마음,
나도 잘 알고 있으니
오늘보다 다른 내일이 될거야.

 

아마도...
그렇겠지?

 

 

 

2003년 11월 27일에 쓰다.

 

 

 

컴퓨터 하드를 뒤적거리다 오래 된 텍스트 문서를 발견했다. 문서 이름이 '내일은'이라고 되어있길래 무슨 문서인지 궁금해 열어보니 위에 적힌 내용이 있었다. 2003년 말이면 중국에 도착한 후 2개월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막막한 이국(異國)에서 답답함, 조급함, 불안함, 외로움 등이 스물스물 올라오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글을 읽다보니 당시 홀홀단신 멋모르고 부딪히며 애쓰던 내가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때보다 잘 살고 있나, 지금은 그 때보다 다른 오늘을 살고 있나, 그 때의 내일보다 지금의 내일이 내게 더 벅찬 희망을 주고 있나 곰곰히 지금을 돌이켜 생각한다.

 

적어도 그 때의 나에게 작은 위로 정도는 보낼 수 있겠다.

2009년 11월 28일 토요일

블로그 인테리어를 바꾸다.

(중국과 같이) 접속되지 않는 곳이 있어서 여러 불편한 점이 있던 (하지만 정들었던) 티스토리를 정리하고 텍스트큐브로 옮겼다. 물론 다음(daum)이나 티스토리에서 중국에 항의를 하거나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해 본다면 접속불가 상황이 해결될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리 쉬워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결국 블로그 이사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여러모로 아쉽다. 나중에 티스토리의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다시 옮겨올 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주관적인 선택에 의해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 이사를 한다는 건 아무리 인터넷 상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유쾌한 건 아니다. 개인의 선택과 취향이 거대 시스템에 의해 자동적으로 통제될 수 밖에 없다는 건 참 씁쓸한 현실임에 틀림없다.

 

글을 자주 올리지는 않지만 가끔씩 들러 개인적인 글, 외부에 전하고 싶은 글을 올리며 처음과 생각했던 블로그의 모습과는 약간의 변화를 겪어왔다. 나의 변화만큼이나 블로그도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쉼 없는 블로그질과 더불어 스스로를 절차탁마해야겠지.

 

물론 도메인 주소는 원래 사용하던 http://jumpkarma.com을 그대로 사용하니 별 문제는 없다. 포워딩되는 주소가 티스토리에서 http://jumpkarma.textcube.com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외관은 별 문제가 없는데 인테리어가 바뀌는 정도겠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글(들)을 옮기고 여러 세팅을 다시 해야하니 불편한 건 사실이다.

 

통제와 감시가 없는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2009년 11월 18일 수요일

이데아의 그림자



불완전한 현실은 완전한 이데아의 그림자.
결코 이데아로 다가설 수 없다는 불완전한 현실을 딛고
얼만큼을 참아내면 되는 걸까.
그림자의 그림자를 통해, 현실의 현실을 통해
찬란한 빛이 가득한 이데아로 다가설 수 있을까.
내 지난 그림자여, 나를 이끌어 그림자를 넘게 하라.
내 안에 있는 이데아를 현실로 끌어낼 수 있도록.

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몸 보수-입 진보, 광장 진보-밀실 보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지못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곳을 쳐다보면서 경제적으로 짭짤한 곳에 뿌리내린 자들, 인터넷에선 진보, 술자리에선 중도, 직장 가면 보수가 되는 자들의 탄식이다.

...그래야 ‘몸은 보수-입은 진보’, ‘생산은 보수-소비는 진보’, ‘광장에서는 진보-밀실에서는 보수’로 분열된 정치적 분열증이 개선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정으로 심각한 정치적 문제는 지식인 몇몇이 보수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이 몸까지는 진보로 전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역사적 상처에서 비롯된 의심이 깊어서 정치적 주체로 나서는 데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남재일 교수의 말과 행동의 정치적 분열증을 넘어 중의 일부다.

글 내용의 어떤 부분에 대해선 생각이 조금 다르지만 전반적인 내용에 동의를 한다. 몇 번의 곡절과 앓이를 겪으며 민주사회로 진입했다는 대한민국은 그다지 균형이 잡히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다. 언젠가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근 1-2년 새에 젊은이들 대다수가 보수적 성향이란 쪽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대다수가 보수란 생각까지 하는 참이다.

사회의 많은 부조리와 병폐들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교육'에 초첨이 맞춰지곤 하는데 이렇게 되면 '원론적'인 이야기만 오갈 뿐이어서 참 대책이 없기도 하다. 이보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제대로 된 소리를 들어먹을 줄 아는 젊은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수 밖에 없는데 사회적으로 유아기적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는 그들에게 먹힐 법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를 제외하곤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들의 '선생님들' 역시 그들을 사회에서 돈 잘 벌고 성공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고용된 존재일 뿐 그들에게 사고, 사유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엔 벅차고 나름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더라도 펼치기엔 너무 많은 '적'들이 존재한다.

그래도 역시 가장 빠른 방법은 젊은이들이 깨어나는 것이다. 그들이 의무교육기간을 마치는 순간부터 대학, 군대, 직장, 사회, 새로운 가정을 거치는 동안 세뇌당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매몰당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관점과 소신을 가지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해야 한다. 그들에게 다가서는 방법과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 그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렵지만 한 명씩 한 명씩 변화의 모터를 달아주어야 한다. 

몸 보수-입 진보, 광장 진보-밀실 보수... 지금 수 많은 공간,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상처를 상처로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상처는 빠른 속도로 부패하고 결국엔 생명을 잠식한다. 사회의 많은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수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 문제들은 결국 나의 미래와 내 자식의 미래까지 집어삼킬 것이다. 지금 그 고리를 잘라내지 않는다면 희망과 미래를 말할 기회조차 오지 않을 것이다. 

문제인지 문제가 아닌지 지금보다 더 신중한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마주하면 '문제다!'라고 소리쳐야 한다. 
옆 사람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면 '문제야'라고 알려줘야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 내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그것이 집단 최면에서 깨어나는 방법이다.

피겨 문외한이 본 김연아의 특징, 그리고 예찬


김연아의 특징은...

1. 피겨 선수가 아니라 피겨 예술가다.
과거에 유명하다는 피겨 선수들의 경기 중계를 본 적도 있다. 그들의 느낌과 김연아의 느낌이 다른 건 딱 하나다. 과거(김연아를 제외한 현재의 선수 포함)의 선수들은 시합을 하고 경기를 한다. 하지만 김연아는 예술을 하고 있다. 피겨 경기를 보면서 선수의 몸짓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음악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느끼게 된 건 김연아가 처음이다. 이건 무척 신비한 경험인데 지난 시절 봤던 피겨 경기들은 대부분 점프를 잘하면 잘한다고 생각했고 스핀을 잘하면 잘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던 것에 반해 김연아의 경기 대부분은 저 선수가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있고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는지가 보인다는 것이다. 점프나 스핀, 기타 기술들은 모두 연기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느껴지게 한다. (과장하면) 빙상 위의 발레리나와 같다고 할까. 스포츠 선수가 아닌 예술가. 김연아는 스포츠 선수로 출발해서 예술가의 경지로 달려가고 있고 이미 어느 정도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2. 계속 성장한다.
솔직히 유명한 스포츠 스타들을 보면 갈수록 한껏 정점에 오른 후에는 갈수록 원숙해지는 느낌인데 김연아는 그냥 계속 성장한다. 몸은 계속 유연해지고 표정은 갈수록 풍부해지고 감정은 화산처럼 폭발한다.

3. 연기를 위한 점프를 한다.
위와 중복되는 이야기지만 김연아와 다른 선수를 비교해보면 다른 선수들은 점프를 위해 연기를 (대충) 한다. 점프를 잘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기는 경직되기 마련이고 점프에 대한 긴장감이 증폭되서 실수가 잦다. 하지만 김연아는 전체 연기를 위해 점프를 할 뿐이다. 물론 김연아 역시 점프에 부담이 없진 않겠지만 전체 안무를 위해 점프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착지 후에 연기로 연결되는 게 자연스럽고 전반적으로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4. 냉정하다. 무심하다(?)
소위 '쿨'하다는 것인데, 자신의 감정에 대해 별 숨김이 없고 실수에 개의치 않으며 성취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한다. 이건 젊은 층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태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젊은 층들은 결코 '쿨'하지 않다. '쿨'하다고 불려지는 이들은 이기적일 뿐이고 무관심할 뿐이다. 선택도 빠르고 포기도 빠르다. 김연아의 행동양식은 그런 류의 것이 아니다. 발랄한 소녀가 대인배의 품을 가지고 있다랄까.

김연아는 이 외에도 많은 특징, 장점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단점도 있고 부족한 점도 많을 것이다. 위 내용은 김연아를 '신성화'하는 게 아니라 피겨 문외한이 피겨를 보며 짜릿한 감동을 느꼈기 때문에 그 감정이 신기해서 생각해 본 일부분일 뿐이다. 김연아가 한국인이라서 혹은 미디어에서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니다. 피겨 스포츠를 즐겨보는 것도 아니고 '애국'을 들먹이며 단지 한국인이란 이유로 쌍수를 들고 응원을 하는 건 몸서리치며 경멸하는데...어찌...(해설이 긴 것도 병인양 하여...)

아무리 생각해 봐도 김연아는 괴물이다.

루저(Loser)의 원래 뜻이 변한 건가?

los·er  [lúːzər] 
1. 실패자; 손실자, 분실자 a loser at marriage 결혼에 실패한 사람 You shall not be the loser by it. 그것 때문에 너에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겠다.
2. 진 편 (경기에서), 진 말 (경마에서); 패자 Losers are always in the wrong. 속담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
3. 영 [당구] HAZARD 3
4. (구어) 전과자(前科者) a two-time loser 전과 2범자
5. 전혀 쓸모가 없는 것[사람]

실패[失敗]
 [명사]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실패하다 [동사] 1 찾아보기: 실패.  2 어떤 일에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하다.

패배[敗北] [명사] 1 겨루어서 짐.
패배감[敗北感] [명사] 싸움이나 경쟁 따위에서 자신이 없어 무력해지는 느낌. 또는 싸움이나 경쟁 따위에서 진 뒤에 느끼는 절망감이나 치욕스러운 감정.
패배자[敗北者] [명사] 싸움에 진 사람.

출처: Daum 사전

'루저' 열풍은 나중에 알았는데 내막을 알고 난 후에도 별 관심은 없다. 그보단 왜 '루저;패배자 혹은 실패자'라는 말을 쓴 것일까. 실패는 하던 일이 잘못되어 그르치거나 완성되지 못할 때 쓰는 말이고 패배는 경쟁 따위에서 진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아마 루저라는 말을 한 사람의 뜻은 키가 작은 사람은 (모종의) 경쟁에 조차 나갈 수 없는 상태가 안 된다...라는 생각에 루저라는 말을 쓴 것 같다. 하지만 '키 큰 사람 선발대회'도 아니고 '우수 신랑감 선발대회'도 아닌데 키를 가지고 루저라는 표현을 썼다. 시합 출전을 하기도 전에 패배자가 되었다고 하니 루저의 범주에 들어 간 사람들이 흥분할 만도 하겠다. 혹은 맨 아래처럼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이해는 되지 않는다. 노자의 '무용지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키가 작다는 이유가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는 조건이라니.

하지만 만약 그의 발언이 통용되는 사회라면 '실패'와 '패배'라는 게 경쟁과 겨룸을 통해, 혹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 어떤 일을 진행한 것과는 별개로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버린 '운명적 사회'라는 뜻이 아닌가. 태어나면서부터 신체적, 교육적,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사람은 바로 위너(Winner)가 되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바로 루저(Loser)가 되는 사회.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고 이성의 선택권 밖에 있다는 것이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사회. 이는 못생기면 서비스나 잘해야 하고(모 국가 대표가 한 말) 못생기면 반드시 성형해서 이뻐져야 하는 사회. 자신들이 만든 규칙 속에서 조건 충족이 되지 않으면 경기조차도 할 수 없도록 추방시키는 사회. 공정한 기회는 고물상에서 엿 바꿔 먹고 평등한 출발은 쓰레기통에 버려버린 사회. 이런 사회가 과연 살 만한가. 희망을 품고 뭔가 해볼 만한 사회인가. 보아하니 택도 없는 것 같고 그렇게 변하려면 수 많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만 할 듯 하다.

루저 발언을 한 사람이 사고하는 방법, 사유하는 방법 조차 많이 부족한 상태가 아닌가 싶은데 언제부턴가 사회 분위기가 한국어를 한국어대로 쓰지 못해도 별로 개의치 않게 된 건 말할 것도 없고 사고(思考)를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외형과 조건만 좋으면 대체적으로 인정하고 떠받드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 같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외형과 조건이 좋지 않으면 개무시하고 깔보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이며 한국어를 제대로 쓰지 못해도 외국어 하나 잘 하면 최고로 대접받는 사회가 된 것이랄까. 그렇다보니 루저 발언에 거품을 물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발언자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날 밖에.

발언자 역시 교육과 사회의 피해자일 터인데 루저 발언을 듣고 흥분하는 사람들은 발언자만을 붙잡고 '사냥'을 할 게 아니라 그런 발언을 만들어 낸 교육 시스템, 사회 시스템 그리고 언론과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비판을 하고 스스로의 모습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마녀'가 되거나 '사냥꾼'이 되거나 밖에 할 수 없다. '마녀' 자체가 없는, '사냥'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더 낫지 않은가. 

사람은 '감정'만으로 이루어진 동물이 아니고 '이성'이란 것도 존재한다. 두 가지를 함께 써 먹어야 할 때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 루저(Loser)의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보다 생각의 가지가 또 뻗어나갔다......-_-;

** 091118|01:00 일부 수정

2009년 10월 8일 목요일

091008 - 9시 뉴스 관전평 (효성|4대강|K-9 자주포|정운찬)

이 글은 자유인님의 2009년 10월 8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부패에 대한 비난에도 잘 견디는 사람들.

“People who are really corrupt can live with it, but Roh was a crusader who could not deal with the fact that he had done something wrong,” said Michael Breen, author of The Koreans. “Criminals live with their criminality – he was an honest man.”
출처: http://www.timesonline.co.uk/tol/news/world/asia/article6350518.ece

'한국인들'(The Koreans)의 저자인 마이클 브린은 "진짜로 부패한 사람은 부패에 대한 비난에도 잘 견뎌낸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개혁가였다"며 "범죄자들은 범죄와 함께 살아가지만 그는 결국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 영국 The Times ,23일자 기사 中 -


예전에 적어뒀던 타임즈의 기사 한토막.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수 많은 비난, 혹독한 비난에도 꿋꿋하게 버텨내는 이 땅의 정치/ 경제/교육/문화계의 사람들에게 대한 이야기다. 내가 하는 행위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꿋꿋하게 살아가려면 그 어떤 비난과 비판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해 늘 고개를 돌려 살피고 앞을 향해 발전적이려면 비난과 비판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때론 흔들리고 때론 쓰러지기도 하겠지만 중요한 건 한 걸음씩 진보하고 옳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모습이다.

삶의 모든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잘못을 시정하고 개선하려는 사람은 비난과 비판에 아파하기 보다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경청한다. 하지만 스스로가 이미 부패하고 타락했다면 사람들의 비난과 비판은 패배자의 아우성일 뿐이며 현실과 맞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귀를 닫는 게 더 편한 사회, 귀 기울이면 피곤해지는 사회는 '진짜로 부패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게 아니라 '그들을 쉽게 용서해주는 사람들', '알고도 쉽게 잊는 사람들'이 만들었음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반드시 변한다.

만약 노무현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우리는...

노무현 서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계속 머릿속에 떠돌던 화두.

노무현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게다가 연임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사람들은 다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을까?

2년 전 노무현과 2MB가 붙었다면

사람들은 다시 노무현을 선택했을까?



이미 2년이 흐른 시간 속에서 새정부의 면면을 알게 되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상태라면 어느 누구라도 "다시 노무현을 선택하겠노라"고 말할 것이다. 질문은 현재 수 많은 상황을 겪고 난 후 던지는 게 아니다. 2MB와 새정부가 이럴 줄 몰랐던 상태, 예측만 가능했던 상태, 2년 전 그 때로 돌아가 던지는 질문이다. 한가지 더, 7년 전 김대중과 노무현이 경선에 나왔다면 사람들은 누구를 선택했을까. 그들 중 한 명? 아니면 그들을 제외한 한 명?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자각해야 하는가. 김대중과 노무현은 '최선'이었을까, 아니면 '차선'이었을까. 대한민국 국민들이 바라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대한민국 국민들이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진보정당은 힘이 없으니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일까. 정치인과 정치는 내 삶에 별로 중요하지 않고 신자유주의건 무한경쟁의 시대건 내가 원하는 걸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사람, 단체만 있으면 만족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사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투표를 하고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일까.
우리가 원하는 삶은, 원하는 세상은 과연 무엇인 걸까.

2009년 10월 7일 수요일

부정부패, 비리 수사에 대한 작은 바람.

작은 바람이 있다면 한국에서 벌어지는 수 많은 비리와 부패 사건들 수사가 '끝장수사'가 되는 걸 보고 싶다.

보통 검찰이나 경찰 혹은 감시기관에 적발된 경우 비리/부패의 일부분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사를 확대'한다거나 '전방위 수사'를 약속하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국민적 관심도 시들해지고 자신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이상 그 사건은 쉽게 잊곤 한다. 그러면 수사는 소위 피래미들만 처리하고 유야무야 종결처리 되고 만다.

상처가 났을 때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상처는 곪기 시작하고 점점 상처 부위가 넓어진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바로 상처가 난 부위를 치료하기도 하지만 손댈 수 없을 만큼 심각할 경우에는 상처 부위부터 차근차근 병세를 잡아가며 상처의 뿌리를 뽑게 된다. 국가, 사회도 마찬가지다. 넓어진 상처부위를 발견하면 상처를 치료하겠다고 덤비기 마련인데 진통제 몇 알 먹고 통증이 멈추더라도 치료를 늦추면 안된다. 완치되지 않은 상처부위는 반드시 재발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매일 접하게 되는 뉴스와 보도/고발 프로그램을 보며 한국 내 각종 상처와 병들이 조금씩 치료되는 경우도 보게 되지만 대체적으로 근본적인 치료는 하지 못하고(않고) 있다. 경/검찰이 '수사확대'를 약속하고 '성역없는 수사'를 선언해도 그게 그저 '쇼(Show)'에 불과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그간의 과정, 역사들 때문일 것이다.

한가지 더, 상처를 치료해감과 동시에 건강한 몸 만들기도 시작해야 한다. 기초를 튼튼히 다지면서 건강한 몸을 갖게 되면 가끔 생기는 상처와 병들은 그닥 걱정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두순 영아 성폭행 사건'이라 말해야 한다.

사건을 저지른 자는 기억에서 잊혀지고 피해자는 영원히 기억되는 현실, 합리적인가?

'누구 사건', '누구와 누구 사건'이라고 미디어에서 떠들 때 그 안에는 피해자만 존재하고 피의자 또는 피고인(범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가 가령 어린 아이일 경우 그 아이의 부모와 당사자는 수 십 년이 지나도 초고속 인터넷 망이 깔린 대한민국에서는 다시 과거의 상처와 대면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사건 직후나 시간이 오래 흐른 후에도 정신, 심리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 또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대한민국의 정서와 시스템상 피해자만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허술한 법(시스템)을 정비, 보완하기 위해 피해자를 기억하는 게 옳은가. 아님, 피의자, 피고인, 범인을 기억하는 게 좋은가. 개인적인 생각으론 피의자(피고인, 범인)을 기억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조두순 영아 성폭행 사건'이라 말해야 한다.

그 외에도 'ㅇㅇㅇ 영아 유괴사건', 'ㅇㅇㅇ 초등생 성폭력 사건', 'ㅇㅇㅇ 아동폭력 사건' 등 'ㅇㅇㅇ' 안에 범행을 저지른 사람의 이름을 넣어야 한다. 아동 성폭력 관련자는 신분공개 및 특별 감호, 피해자에게 접근금지 등 엄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걸 이해못하는 바 아니지만 '한국적 상황'은 절대 다른 나라와 '똑같지 않다'. 강한 법 집행이 범죄율을 낮춘다는 보장이 없다는 등의 이야기 역시 강력한 법 집행 이후로 다시 토론하고 논의해도 늦지 않다.

특히 황당한 것은 술에 취한 게 감형의 이유가 되는 것인데 이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음주는 자신의 의지로 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자신의 결정으로 한 음주 행위 이후에 벌어지는 일은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 아닌가. 그럼, 마찬가지로 본드를 불거나 마약을 한 후에 범죄를 저지르면 본드 흡입과 마약관련 처벌만 받고 나머지는 감형이 되어야 맞는 것 아닌가. 세계 최고의 음주율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음주로 인한 끔찍한 범죄행위가 용인된다는 건 이 나라가 미쳤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동기-동생과 대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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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1. 조두순이 예외적으로 독방생활을 한다고 한다. 감옥에서 독방생활하는 게 예외적인 게 아니라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도 12년 밖에 형을 받지 않았다는 것과 음주로 인한 참작이 있었다는 게 예외적이고 놀랄만한 일이라 하겠다.

사족2. 대한민국은 '부녀자와 아동'이 살기 어려운 끔찍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폭행/살인 사건을 보면 대부분 '부녀자와 아동'이다. 사회적, 신체적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대한민국은 얼마나 비정상적인 사회인가.

사족3. '삼성 중공업 태안 기름유출 사건', '삼성 테크윈 군납품 비리 사건', '대한제분·동아제분·CJ·한국제분·영남제분·대선제분·삼양사·삼화제분 등 밀가루 담합 사건', '농심 신라면 이물질 발견' 등 기업이나 단체가 저지른 비리, 불법 등도 'S사', 'N사' 등의 표기가 아니라 정확하게 이름을 밝혀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