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6일 월요일

물난리

집 화장실은 좌변기가 아닌 수세식이다.
기울기가 뒤쪽으로 높아서 일을 보고나면 잘 내려가지 않는다.(음..좀 더러운 얘기군.-_-;)
그래서 화장실 옆 수도를 통해 큰 물통에 물을 받아 일을 해결하곤 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이 되었다.
어제 저녁 늦게 친구가 집 화장실을 사용하고 수도를 열어놓은 모양있었다.
수도꼭지에 호스가 길게 연결되었던 터라 물이 나오는지 잠겨져 있는지
소리가 나지 않으니 몰랐던 것이다.
결국 잠그지 않고 함께 외출을 한 결과가 되었다.
나도 친구도 술을 좀 먹은 상태여서 꼼꼼히 챙기지 못한 불찰이었다.
밖에 한 두어시간 다녀오니 집안이 온통 물바다다.
자연재해로 생긴 수해가 아니라 사람의 실수로 생긴 인재였다.
끕끕한 마음에 친구랑 허겁지겁 물을 퍼냈다.
한참을 퍼내도 물이 장판 밑까지 들어가서 수해를 당한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별 수 있나 부지런히 물을 퍼내고
친구는 내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일찍 자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물을 퍼내고 바닥을 닦아냈다.
그런데 누가 밖에서 자꾸 문을 두드린다.
이 새벽에 누굴까.... 누구세요?라고 물으니 아래층에서 왔다고 한다.
친구는 자고 나는 중국어를 제대로 할 줄도 모르고...음..그래도 천천히 얘기를 들어보니
아래층에 물이 다 새는 모양이었다. 나보고 함께 자기 집에 가서 상태를 보자 한다.
미안하다고 하는데도 자꾸 나를 잡아끄는 걸 보니 상태가 심각한 모양이다.
가서 보니 미용실이었는데 사장이랑 직원이 먹고 자는 걸 함께 해결하나 보다.
집 천장이 완전히 물로 적셔져 있고 물은 벽을 타고 흘러내려와 페인트가 흘러내리고 있다.
정말 할 말이 없다.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내일 다시 얘기하자고 그랬다.
얘기를 해서 보상을 해줄 부분이 있으면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마저 물을 퍼내고 대충 마무리를 하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또 누가 시끄럽게 문을 두드린다.
후배의 수양어머니다. 남동생(전에 화장실 누수를 고쳐준 분)이랑 같이 와서
어디에서 물이 새냐고 묻는다.
밖에서 봐도 이층에서 일층으로 물이 흐르는 게 보였던 모양이다.
실수로 생긴 일을 말하자니 차마 입도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대신 설명을 해주니 수양어머니는 마음이 불편했던지 가면서 조심하라 한다.
친구는 후배 집으로 가서 갈 채비를 하고 난 일어난 김에 계속 청소를 했다.
잠시 후에 아래층 남자가 또 찾아왔다.
후배에게 전화를 해서 바꿔줬다. 뭐라뭐라 통화를 하더니 알았다고 내려간다.
후배에게 다시 전화를 했더니 알아서 하겠다면서
수양어머니께 가서 해결 좀 해달라고 전화를 했단다.
조금 후에 아래층에서 무척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후배에게 전화를 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수양어머니가 가서 얘기를 하는 중에
그 미용실 주인 이모가 오고 싸움이 붙어 그리 된 것이라 한다. 참 미안하고 염치없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쪽에서 보상금으로 5000원을 달라 했단다.
5000원이면 한국돈으로 약 75만원 정도 되는 돈인데 그 돈이면 미용실 가게를 전세로 낸단다.
내가 한국사람이고 말을 잘 못하니 한 몫 보자는 심보였던가 보다.
그 얘기를 듣고 수양어머니가 화가 더 나 싸움이 났는데
그 와중에 미용실 직원이 수양어머니께 심한 욕을 했다고 한다.
수양어머니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그 남자를 우산으로 때리고 우산은 부러지고...
그쪽에서는 경찰을 부르네 어쩌네...하는 얘기까지 나왔다는데...-_-;;;
수양어머니는 수양어머니대로 화가 나서 이 지역 유명한 건달을 불러왔다.
그 사람들이 가서 몇 마디 얘기를 하니 그쪽에서도 겁을 먹었는지
보상금 받지 않겠다고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단다.
그 얘기를 들은 후배랑이 놀라서 그 건달은 돌려보내고
후배랑 중국친구가 직접 가서 상황을 보니 그리 심하지 않은데 자꾸 트집을 잡는다고 한다.
그래서 돈 200원 정도를 가지고 가서 이걸로 페인트 다시 칠하고 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이제는 도리어 돈이 너무 적어서 안받는다고 했단다.
사람 대할 때마다 바꾸는 태도에 후배도 중국친구도 화나고 어이가 없어한다.
 
결국 오후에 다시 가서 얘기를 하면서 보상금을 주려고 했는데
모두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그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트집을 잡으니
차라리 가지 말라 한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
 
상황을 전해들으며 안 이야기인데
중국은 워낙에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인지 물이 새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다고 한다.
물론 이번 일은 명백히 실수로 인한 것이었지만
그런 경우라도 대충 서로 조심하자고 그러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무마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미용실측에서 트집을 잡으며 나오니 수양어머니도 다른 사람들도 화가 난 모양이다.
 
나는 물론 내 실수는 아니지만 친구 실수라고 하더라도 친구는 한국으로 가니 도리가 없고
게다가 우리 집에서 물이 새서 그 쪽 영업에 방해를 준 것이니
보상을 해주는 편이 훨씬 깔끔한 마무리가 될텐데
수양어머니도 안좋은 소리를 들어가며 싸워댔고 후배들도 가서 실랑이를 벌이고 와서인지
보상은 일단 제쳐두고 상황을 좀 보자 한다.
그냥 넘어가도 아무 문제 없을 것이고 혹 문제가 생기면 그 때 가서 해결해도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쪽에서 시비를 걸어오면 수양어머니랑 후배들이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한다.
 
이래저래 끕끕한 마음이다.
물이 좀 심하게 새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 싸우게 되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집이 좀 안정되나 싶었는데 물바다가 되어서 다시 정리해야하는 불편함도 있고
이래저래 마음이 좀 그렇다.
 
하지만 일단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고 더욱 조심하며 생활을 해야겠다.
중국사람들이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모습을 종종 보인다며
너무 미안해하지도 말라고 충고해준다.
너무 미안해하면 한국사람인데다가 중국어도 잘 못해서 얕잡아 본다고 말이다.
뭐...모든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니 한편으론 이해도 된다.
게다가 중국사람들은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친구 공항에 배웅해주고 돌아와 점심 먹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수양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에 후배의 조언을 구해 포도 5근을 샀다.
내가 있는 집도 수양어머니 소유의 집인데 물난리를 나게 한 미안한 마음의 표시다.
그 미용실 사람들에게도 미안한데 지금은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마음으로나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조심스럽게 생활해야겠다.
 
오늘 하루종일 날씨가 좋아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내일도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서어서 말을 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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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바구니를 바닥에 놓아둔 바람에 옷이 다 젖어서 지금은 옷을 빨고 말리고 있습니다.
집이 건조해서 물에 젖은 바닥이랑 장판은 금방 마를 것 같긴 하네요.^^
휴~ 한바탕 일 치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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